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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5-12 (일) 10:48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24년_마가복음_제9강-1.hwp (83KB) (Dow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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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제9강]둘씩 둘씩 보내시며
2024년 마가복음 제9강                                                             이 인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말씀/마가복음 6;1-29
요절/마가복음 6;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예수님은 12제자들을 부르시고 함께 하시며 교육하신 후 이제 전도여행을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이때 세상은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배척받고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이 살해당하는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어두운 시대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시는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어두운 시대 복음 역사를 섬기는 믿음을 덧입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장. 고향 사람들의 배척-편견으로 은혜를 버림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시며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후 수많은 무리들의 열렬한 환대를 뒤로하고 고향 나사렛으로 오셨습니다. 나사렛은 ‘어린 가지’, ‘싹’이란 뜻의 시골마을로 예수님이 30세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살았던 고향이지만 그곳 사람들은 싹이 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고향사람들의 반응은 놀람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감격하는 놀람(대박!)이 아니라 황당하고 어이없고 화가 나는 놀람(헐!)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5번이나 되물으면서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불신했습니다. ‘마리아의 아들 목수’란 표현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출생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생아’라고 비꼬는 모욕적 표현입니다. 또 현재 목수는 고급기술자지만 당시 목수는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떨어진 문짝도 고쳐주고 문고리도 달아주며 생계를 유지하는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 형제도 다 아는 가난하고 하찮은 목수 예수가 온 유대의 유명인이 되어 지혜의 말을 하고 놀라운 권능을 행하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환영은커녕 오히려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을 이상히 여기셨습니다.(6) 어릴 때 평범한 모습을 기억한다 해도 얼마 전까지 난치병 혈루증 여인을 고치시고 죽은 회당장의 딸을 살리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깃이라도 스치기 위해 쫓아다녔는데 그들의 태도는 정말 이상해 보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편견이 얼마나 진리를 왜곡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해도, 심지어 공익을 위한 일이라도 모든 이들을 다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 진리입니다. 더구나 진리를 위한 일은 자신이 희생한다 해도 많은 이들의 배척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해서 물으니 처음에 아들이 당나귀를 타고 가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버지는 걸어가는데 버릇없다 해서 다음에는 아버지가 타고 가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린 아들이 불쌍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둘이 같이 당나귀를 타고 가니 사람들이 동물학대라고 비난해서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를 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당나귀 타고 가는 것도 이러한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가는 우리는 사람들의 평판이나 배척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진리의 길을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고향사람들은 예수님과 같은 고향이라는 이유로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만 편견과 시기심으로 축복을 걷어찼습니다. 그들의 배척에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처럼 놀라운 기적의 권능을 행하실 수 없고 다만 소수의 병자를 고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편견과 교만이 그들을 믿음의 세계, 은혜의 세계로 못 들어가게 막았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뜻을 잘 안다는 종교지도자들이나 예수님을 어릴 때부터 잘 안다는 고향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운동이든 음악이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어렵고 힘이 듭니다. 이미 몸에 배어버린 이상한 습관과 사고의 틀을 고치는 것이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신앙에서도 초신자보다 자칭 모태신앙이라는 구신자들이 믿음을 갖고 변화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고향사람들의 배척에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4) 예수님은 당시 통용되는 속담을 인용하시며 아는 사람이 자기보다 크게 되는 것을 싫어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꼬집으시며 또한 선지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셨습니다. 힘이 없어 배척받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는 선지자로 살기 때문에 배척받는 것입니다. 누구나 신앙생활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환대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도 모르는 이들의 무시와 배척은 견딜 수 있지만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처럼 가까운 사람들, 오랫동안 정든 이들에게 배척받을 때 신앙생활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회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향에서의 배척을 체험하게 하심으로 신앙생활에서 배척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배척 역시 제자들이 앞으로 걸어야 할 길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배척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고향사람들의 배척에도 생명의 말씀을 찾고 치유를 구하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제자들과 전도여행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배척받고 무시 받는 것에 눌리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주의 일에 집중하고 힘쓸 수 있길 기도합니다.

2장. 12제자의 전도여행-동역과 권능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7)” 예수님은 지금까지 함께 하며 가르쳤던 제자들을 모든 촌으로 보내시며 예수님처럼 말씀을 전하시며 치유하는 하나님역사를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들을 둘씩 둘씩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왜 둘씩 보내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동역을 위해서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4;9,10) 또 예수님은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18:19) 신자는 예수님께 각자 인격적으로 부름 받지만 하나님 역사를 섬기는 것은 동역이 필요합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기보다 온라인에 접속해 기쁨을 찾고 일을 하고 또 돈을 법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동역의 역사이고 사실 인류 역사도 두 사람의 동역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땅을 개척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 맡기셨는데 첫 사람 아담 혼자는 부족한 것을 아시고 하와를 동역자로 주셨습니다. 동역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항해할 때 별(나침반)을 보고 진로 방향을 잡아야지 다른 배들의 불빛을 보고 진로를 잡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 동역입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한 사람을 택하셔서 하나님 역사를 섬기도록 하셨지만 때마다 합당한 동역자를 주셔서 같이 위대한 역사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아론을 주시고, 다윗에게 요나단을 동역자로 주시고 고 이 사무엘 선교사님과 배사라 선교사님의 동역을 귀하게 쓰셔서 캠퍼스 개척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제자들이지만 병든 자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도록 둘씩 둘씩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가 둘씩 둘씩 짝을 이루어 복음전파를 하도록 보내십니다. 우리가 복음전파자로 보내시는 주의 뜻에 순종하여 둘씩 둘씩 캠퍼스로 나갈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종들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힘든 형편과 상황을 극복하고 제자의 사명인 복음전파자의 사명에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요즈음 정규적으로 주일 점심식사후 캠퍼스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하는 목자님들을 귀하게 쓰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들 각사람이 둘씩 둘씩 보내시는 하나님의 뜻에 자원함으로 여름수양회를 준비하며 성령의 역사에 동역하는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현재 세상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요 미국과 중국의 전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빛과 어둠의 대결이요 하나님과 사단과의 대결입니다. 인생은 누구를 왕으로 섬기고 따르는가의 선택입니다. 예수님은 죄의 종인 인간을 구원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며 사단을 이길 수 있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권세입니다. 제자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권세, 말씀의 권능을 덧입어야 합니다. 신자가 사단에게 잠시 패할 수는 있지만 예수님의 권능이 있을 때 결국 승리합니다. 전도자는 말쟁이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지팡이 외에 양식이나 배낭이나 돈도 가지지 말고 오직 신만 신고 두벌 옷도 입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지팡이는 험한길을 여행할 때 또 광야에서 들짐승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결국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도록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왜 그렇게 인색하신 것입니까? 제자들은 고향에서 예수님께서 배척받으신 것이 외적으로 뭔가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국가고시 서기관 자격증이라도 따고 많은 돈을 벌어 황금 마차를 타고 방문했다면 절대로 무시 받지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권능은 그런 것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빈털터리에 나무 지팡이만 들고 다닐지라도 오직 예수님이 주신 권능만을 의지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주신 권능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주신 권능에 인간적 능력과 조건까지 더해지면 더 큰 능력이 생길 것이라(금상첨화)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인간적 능력과 조건까지 좋아지면 예수님이 주신 내적 권능보다 먼저 눈에 보이는 외적 인간적 능력을 의지하고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 인간적 능력과 조건이 충만할 때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광야에서 모든 것을 잃고 아무것도 아닌자로서 자신을 발견할 때 하나님의 권능을 덧입고 위대한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는 위대한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가치있게 여겼던 세상 자랑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을 때 가장 값진 보화인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소유를 통해 존재를 드러내려 합니다. 그래서 물질이 넘쳐나는데도 상대적인 비교의식과 욕심 때문에 항상 뭔가 부족한 빈곤함에 시달립니다. 이런 시대 신자들이 소유와 의식주 문제에만 매이면 예수님의 주신 사명과 제자로서의 정체성이 약해지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주신 권능을 망각합니다. 왜 우리가 능력있는 제자가 되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소유와 능력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의지하고 경험을 의지하고 어떤 분은 능력있는 동역자를 의지함으로 예수님께서 주신 권능을 잊고 살아갑니다.
현재 예수님께서 신자에게 주신 가장 큰 권능은 성령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넘어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성령은 일생 나와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 역사를 감당할 기도와 말씀의 능력뿐 아니라 전도인으로 사는 우리의 모든 필요한 것들도 채워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의 외적 축복과 조건만을 구하고 매인다면 막상 나와 함께 하신 가장 큰 보화요 선물이신 성령의 역사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끔 인생의 고난을 통해 나의 소유와 능력과 자랑이 비워지게 하심으로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인 성령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신자는 버리고 비워질 때 더 좋은 것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께서 주신 예수님의 이름 권세, 성령만을 의지하고 성령과 함께 함으로 승리하는 인생, 풍성한 열매 맺는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했는데도 영접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하는가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11)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은 당시 랍비들이 이방 지역 땅을 떠날 때 그들에게 묻은 오염을 옮기지 않기 위한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거절한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대한 기억을 털어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또 그들이 복음을 듣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라는 말입니다.(행13;51) 신자가 복음을 전할 때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면 신자는 그 책임을 자신에게 찾거나 아니면 복음 자체에서 찾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복음에 대한 불신이 들고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주를 돼지에게 주었을 때 돼지가 진주를 밟아버렸다고 해서 진주가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진주의 가치를 몰라보는 돼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배척해도 그가 나중에 자신이 배척한 복음을 깨닫고 돌이킬 수 있기 때문에 소망 가운데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이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로서 당당함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한 가장 값진 보화인 예수님을 안 받아들이는 것이니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야 할것입니다. 때로 양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문제를 자신의 목자 삶의 실패로 보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사명감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안 받아들이는 자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도 바울같이 더욱 열심으로 복음전파 하는 담대한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배척과 냉대를 받으면서도 변함없이 복음을 전파하는 충성된 믿음의 종들을 통해 구원역사를 이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3장. 세례요한의 죽음-세례요한(소리)과 예수님(빛)
제자들이 예수님의 권능을 덧입었을 때 "회개하라" 전파하면서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들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을 통해 단기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유대지역에 엄청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놀라운 역사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탄하는데 한 사람은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헤롯 안티파스(BC4-AD39)로 헤롯대왕의 둘째 아들이면서 갈릴리와 베뢰아를 통치하던 분봉왕(한 나라의 1/4 군주)입니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이 목 베어 죽인 세례요한이 살아나 이런 엄청난 역사를 이룬다면서 두려워하였습니다. 성경에 여러 명의 헤롯왕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출생 당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 일대의 유아를 살해한 이가 헤롯대왕입니다. 그는 타고난 정치수완으로 로마로부터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고 예루살렘 성전 등 많은 도시들을 건설하였지만 권력에 눈이 멀어 왕권에 도전할 것같은 부인과 그 부모 또 자신의 3아들까지 죽인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3아들에게 유대를 나눠 통치하도록 하였는데 그들은 로마로부터 왕의 신분을 받지 못한 군주(분봉왕)로써 그중 한 사람이 본문의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처음 그 지역에서 강력했던 나바티안 왕국의 공주와 결혼하였으나 이복동생인 헤롯 빌립1세의 아내인 헤로디아에게 반해서 그와 결혼하기 위해 아내를 버렸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헤로디아의 미모에 반했고 헤로디아는 헤롯 안티파스의 정치적 야망에 이끌려 욕심 없는 전 남편을 가차 없이 버린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통치자인 헤롯의 죄악과 불의를 단호하게 깨우쳤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어떤 권력의 힘도 개의치 않고 하나님 앞에서 직언하며 책망하였습니다. 이에 헤롯은 세례요한을 옥에 가두었고 헤로디아는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지만 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헤롯이 세례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하면서도 달갑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악된 욕망과 양심의 가책 사이에서 괴로워하였습니다. 하지만 헤로디아에게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습니다. 헤롯이 자기의 생일잔치 날 헤로디아의 딸이 춤추는 것을 보고 초청된 사람들 앞에서 그녀가 원하면 나라의 절반까지 주겠다고 헛맹세를 하였습니다. 헤로디아의 딸은 전남편 빌립 사이에서 태어난 15-17세 정도의 ‘살로매’라는 여자아이입니다. 공주의 지위로 의붓아버지를 위해 당시 천한 신분 출신 무희들처럼 연회장에서 음란한 춤을 춘 것은 당시 헤롯 궁전의 도덕이 얼마나 문란하고 퇴폐적인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헤롯은 그런 모습에 반해 헛맹세를 하였는데 헤로디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즉시 살로매에게 세례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달라 요구하도록 했습니다. 살로매의 독사 같은 말에 헤롯은 심히 근심하였으나 사람들 앞에서 한 맹세를 번복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왕으로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의인을 지켜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를 누르고 세례요한의 목을 잘랐습니다.(A.D.29)
헤롯 안티파스는 나중 예수님이 빌라도의 심문을 받을 때 예수님을 심문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죄악을 돌이킬 기회였지만 그는 예수님이 아무 이적도 행하지 않자 업신여기고 희롱하며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눅23장)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왕처럼 살고 싶었지만 실상은 일생 죄에 이끌려다녔던 죄의 노예였습니다. 이것이 갈릴리의 최고 권력자의 실상이었습니다. 자신이 감당치 못할 권력은 자신을 죄의 노예로 만들뿐 아니라 백성과 나라를 절망에 빠뜨립니다.
그런데 저자는 12제자의 전도여행으로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질 때 어둡고 절망스러운 세례요한의 죽음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적으로 보면, 이 부조리한 역사속에서 절망과 슬픔과 허무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왜 세례요한을 이 어두운 땅에 보내셨는가 목적을 알면 그 이유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막1;2,3)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예수님을 준비하고 증거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제사장의 자녀로 금수저 출신이었습니다. 당시 제사장은 최고 권력층으로 모든 특권을 누렸지만 그는 부르심 이후 모든 특권을 버리고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회개하라’ 외치며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았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가장 낮은 말구유의 아기로 오신 빛(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되신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마지막 선지자로 살다 30세 하나님의 때에 순교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이 닦아놓은 길위에서 30세 예수님께서 공생애 구원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의 죽음은 바로 앞으로 예수님이 걸어가실 길을 예비(암시)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목적)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즉 십자가 죽음의 길이 구원자 예수님이 가실 길입니다. 헤롯이 세례요한의 말을 듣고 갈등하다 헤로디아의 계략에 넘어가 세례요한을 죽인 것처럼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 앞에서 갈등하다 결국 종교지도자들의 압력에 십자가형을 선고 했습니다.(15:15) 이렇게 세례요한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예수님이 가실 십자가의 길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는 세례요한의 고백처럼 그의 죽음은 복음역사의 씨앗처럼 뿌려져 구원자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고 구원역사를 이끄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을 비롯한 수많은 종들이 예수님처럼 부활생명을 얻고자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데 예수님보다 먼저 그 길을 준비한 세례요한의 삶과 죽음은 얼마나 값지고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세례요한의 죽음은 어둡고 비참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두운 시대 수많은 박해와 고난의 길을 가는 신자들에게 진정한 믿음과 부활의 소망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죽음 이후 그가(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준비한 길위에서 구원의 복음을 완성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죽음이후 전도여행 했던 제자들은 그 길을 통해 복음역사를 이어나갔고 그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신자들과 현재 우리들이 가는 생명의 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 같은 사명감이나 진실한 믿음은 없고 오히려 예수님 고향사람들 같이 편견으로 은혜를 배척하는 죄인을 택하셔서 예수님의 주신 권능으로 복음역사의 동역자로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세상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예수님의 주신 권능을 깨닫지 못하고 동역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직장문제, 건강문제와 자녀문제등 여러 현실문제 속에서 부족한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붙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주신 권능을 체험하며 현실문제해결뿐 아니라 하나님역사에 동역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겨주심으로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고 증거하는 목자로 살도록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 말씀뿐 아니라 매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 역사에 동역하며 섬기는 기도의 종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고향에서 배척받고, 세례요한이 죽임당하는 시대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이 어두운 시대에도 둘씩 둘씩 동역하여 예수님의 주신 권능으로 전도하였을 때 수많은 이들이 구원받고 세상 왕이 두려워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복음역사를 보면 신자들에게 닥친 배척과 고난은 짧게 보면 신자들을 절망하게 하는 원인이 되지만 길게 보면 오직 예수님만을 붙들게 하는 계기를 만들고 결국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결실하게 하는 양분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현재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종교에 배타적이 되어 더욱 캠퍼스전도가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어두울 때 빛이 더 밝아지는 것처럼 세상의 배척과 박해의 때 신자들이 더욱 예수님 안에서 동역하며 자신에게 주신 예수님의 권능을 깨닫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 가운데도 연약했던 학생목자들이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과 기도의 권능을 의지하여 합심 동역함으로 실제적인 캠퍼스 복음역사의 주인으로 서게 됐습니다. 여름수양회를 앞두고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주신 권능을 덧입고 둘씩 둘씩 합심 동역하여 캠퍼스에 보냄 받은 종들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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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1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관리자 2024-05-26 312
865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0강]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관리자 2024-05-19 300
864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9강]둘씩 둘씩 보내시며 관리자 2024-05-12 362
863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8강]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관리자 2024-05-05 233
862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7강]그가 누구이기에 관리자 2024-04-28 231
861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6강]하나님 나라의 비밀 관리자 2024-04-21 228
860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5강]열둘을 세우셨으니 관리자 2024-04-14 297
859 마가복음 [2024년 부활절 메시지]그가 살아나셨다 관리자 2024-04-07 260
858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4강]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관리자 2024-03-31 302
857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3강]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24-03-24 335
856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2강]권위 있는 새 교훈 관리자 2024-03-17 318
855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강]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관리자 2024-03-10 463
854 디도서 [2024년 디도서 제2강]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 관리자 2024-03-03 293
853 디도서 [2024년 디도서 제1강]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책망하게 하라 관리자 2024-02-25 344
852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5강]주의 강림이 가까우니.. 관리자 2024-02-18 375
851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4강]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관리자 2024-02-11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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