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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11-09 (월)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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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베드로전서
첨부#1 베드로전서1장_주제1강(시니어팀-이인구).hwp (67KB) (Down: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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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1강]-산소망(시니어팀_이인구)
2009년 가을 제자수양회(Senior팀) 주제 1강......이인구 목자

산 소망

말씀: 베드로전서 1:1-16
요절: 베드로전서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초대교회의 지도자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자면 베드로와 요한과 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사도바울을 통해 믿음을 배우고 사도 요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소망의 사도’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는 소망이란 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소망이란 말이 열네 번 나옵니다. 베드로전서는 베드로가 AD 64년경 네로의 대 박해가 시작되기 직전에 로마에서 핍박으로 소아시아 지방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쓴 서신입니다. 당시 네로황제가 통치하고 있던 때로서 그의 광기는 극에 달해서 그는 시적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로마도성을 불태우며 춤을 추며 노래했습니다. 로마시민의 항의가 시작되자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웠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어 원형경기장에 끌려가서 맹수의 밥이 되기도 하는 등 온갖 참혹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결국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지금의 터키지방인 소아시아로 흩어지게 됐습니다. 소아시아의 바위 굴속에 피신한 그들에게 어떤 소망도 없어 보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그들에게 소망 가운데 편지합니다.

Ⅰ. 산 소망(1-12)
  1,2절을 보십시오. 사도 베드로는 박해로 흩어진 성도들을 ‘흩어진 나그네’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향한 믿음 때문에 세상에서 쫓겨나 세상을 겉돌며 유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또한 그들을 하나님께 선택된 자들이라 부릅니다.(2) 하나님께 선택된 자들인데 흩어져 죽도록 고생하는 나그네라는 것은 세상적으론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선 ‘내가 너희를 세상 가운데 보내지만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 뜻 가운데 선택받은 자들로서 그들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니라 천국이었습니다. 세상을 유리방황하는 것이 아닌 천국을 향한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나그네의 인생을 살기 때문에 죄악된 세상과 구별되었습니다. 세상의 죄악과 유혹에 빠지거나 매이지 않으며 세상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하는 하나님께 선택된 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선택받은 나그네들에게 편지하며 가장 먼저 무엇이라 말합니까? 그의 첫 마디는 “찬송하리로다”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생하는 성도들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이나 슬픔보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이 충만했습니다. 그럼 그의 찬송제목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긍휼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죄로 인해 영원한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선 인간이 스스로 죄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갚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고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믿는 모든 이들을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평생 죄와 죽음의 세력에 매여 살다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구원역사를 믿는 믿음 하나만으로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자유한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물론 거듭났다고 해서 결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쓰러질지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부활의 능력과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이는 그 속의 부활의 씨로 인해 죄와 죽음이 멸망시킬 수 없는 생명, 즉 영생의 복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인간적으로 훌륭해도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영생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영원한 파멸에 처하게 됩니다. 인류역사상 수많은 이들이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기기 위해 죽도록 싸우다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신자들이 값없이 받은 거듭남의 은혜 하나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산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산 소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그 결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로마속담에 소망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힘든 가운데서도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사람에게 살아갈 이유와 원동력과 목적을 줍니다. 하지만 갈수록 소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집착하기 때문에 소망에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없으면 사람은 현실에 집착해 현실의 쾌락과 육신의 욕망에 빠져들거나 현실의 절망에 무너집니다. 단테는 작품 신곡에서 ‘이곳에서는 일체 희망을 버려라’ 는 말로 지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지옥 같은 삶은 고난이 있는 삶이 아닙니다. 고난 자체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닥쳐왔을 때 절망이 우리를 무너뜨리고 맙니다. 하지만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고난은 우리를 절대로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그럼 왜 산 소망이라고 했을 까요? 그것은 세상이 주는 기만적이고 공허하고 거짓된 소망에 반대되는 확실하고 실제적인 참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는 오랫동안 인간들에게 누구나 공평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차별 없는 행복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역사를 통해 그런 희망이 기만적이고 공허하며 거짓된 것임이 드러났습니다. 요사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돈이 최고의 가치요 목적이요 소망입니다. 돈만 있으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 주식과 부동산과 위험한 사업에 목숨을 겁니다. 하지만 많은 돈과 땅을 소유해 땅땅거리며 살려고 하다 결국 땅을 치며 후회하기가 일쑤입니다. 세상이 주는 소망은 성취하지 못하면 절망하게 되고 죽도록 노력해 설사 성취한다 해도 짧은 기쁨 후 긴 허무로 인해 실망하게 됩니다. 세상의 소망은 절망하든지 실망하든지 결국 망하게 됩니다. 세상이 주는 소망은 인간의 한계적인 지혜와 경험으로 육신의 탐욕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목적 때문에 참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땅과 육신의 쇠락과 함께 결국 소멸할 죽은 소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젊은 나이부터 많은 땅을 정복해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땅을 치며 울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 인도 정벌전쟁 가는 중 열병으로 죽음의 문 앞에 서자 인생의 영광과 소망이 얼마나 헛됨을 깊이 깨닫게 됐습니다. 그는 죽기 전 유언으로 관에 구멍을 뚫어 자신의 빈손을 관 밖으로 내보이도록 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에서의 소망은 허무한 신기루일 뿐입니다.
  그러면 산 소망이 무엇입니까? 육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세상소망과는 달리 산 소망은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이 소망이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세상에 있는 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기업은 부패하거나 파괴되거나 더러워지지 않은 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영원한 기업입니다. 이 산소망은 오직 택함 받고 거듭난 자만이 믿음의 영적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하늘나라의 상급입니다. 신자들이 세상의 기업에 연연하지 않고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 있게 물질과 시간과 청춘을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장차 상속받게 될 하늘의 기업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하철과 비행기의 차이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 뛰지만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나이든 사람일수록 더욱 뜁니다. 그 이유는 지하철엔 자신을 위한 지정좌석이 없어 뛰어야 자리를 맡을 수 있지만 비행기엔 뛰지 않아도 자신을 위한 편안한 지정좌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선 우리가 죽도록 경쟁하지 않아도 거듭난 신자들을 위한 기업을 하늘에 지정해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이 소망은 우리의 삶에 늘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고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이 소망은 우리를 순수하게 하고 진실 되게 하고 고상하게 합니다. 이 소망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풍요롭게 하고 확신에 넘치는 승리의 인생을 살게 합니다. 또 하나님께선 하늘의 기업만 간직하실 뿐 아니라 기업을 받기 위해 거듭난 상속인들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함께 하시며 보호하십니다.(5)
  이 산 소망이 있을 때 세상에서 나그네로 사는 신자들에게 세상의 연단도 그 의미가 있습니다. 거듭났다고 해서 산 소망을 가졌다 해서 세상의 고난이 신자들을 피해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베드로가 서신을 보냈던 흩어진 성도들처럼 죄악된 세상을 거슬려 살기 때문에 더 많은 고난에 처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자들은 고난 가운데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사도 베드로는 신자들이 당하는 고난을 믿음의 시련이라고 합니다. 시련이란 금을 생산하는 제련소에서 쓰는 말입니다. 금광석 1톤에서 약 2g의 순금이 나온다고 합니다. 금광석에서 온전한 금을 정제하기 위해선 뜨거운 용광로를 수십 번 거치는 과정에서 금 아닌 성분이 다 타버리고 녹아 버린 다음에야 불로 연단해도 없어지지 않는 금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거듭났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하늘나라의 기업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앞에서 아직도 죄악된 자신의 본성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성화의 과정을 겪든지 아니면 외적 연단을 받으며 불순물을 빼야 합니다. 신자들에게 닥치는 세상고난의 이유와 의미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욥처럼 세상에서 하나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신자들도 때로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고난 앞에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오랫동안 부르짖고 간구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선 거듭난 자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택하시고 예수님의 피로 거듭나게 하신 후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까지 준비해놓으셨는데 신자가 고난으로 인해 영원히 실족한다는 것은 사단이 심는 불신일 뿐입니다. 아무리 힘든 고난이라도 거듭난 자들에겐 이미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룸으로 신자들은 고난 가운데 세상소망의 찌꺼기가 빠지고 하늘나라의 산 소망을 덧입게 됩니다. 고난 전에 연약하고 믿음 없는 자라도 고난을 통해 감당한 능력과 지혜와 무엇보다도 정금과 같은 믿음과 소망을 주십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23;10)’ 그래서 세상고난이 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더욱 정금과 같은 자로 빚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닫고 기뻐하며 믿음과 산 소망 가운데 더욱 인내하며 고난과 맞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럼 신자가 바래야 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나라의 산 소망이 궁극적으로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제 2의 답변은 많이 있으나 대답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편 23;1,6)”라고 하였고, 예레미야는 애가에서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예레미야애가 3;24)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기 위한 큰 전쟁을 치룬 후 두려움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세기 15;1) 이때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상급인 자식을 구해 결국 이삭을 얻었지만 나중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는 사건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인생의 소망이요, 상급은 자식이 아닌 하나님임을 깨달았습니다. 신자들의 산소망은 결국 자신을 택하시고 십자가의 피로 거듭나게 하시고 이 세상의 험한 나그네 길에서 항상 함께 하시며 하늘나라 천성 길까지 함께 동행 하실 하나님이십니다.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산 소망을 얻는 것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소유하고 또 하나님께 소유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사이는 단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받고 고난 받는 시대는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신자로 자처하면서 오히려 불신자들보다 더 세상소망을 붙들고 사느라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시대 우리는 무엇보다도 택함 받은 거듭난 신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산 소망을 붙들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산 소망을 붙들 때 또한 헛된 세상소망에 대해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부족한 죄인을 그 뜻 가운데 택하신 후 거듭나게 하시고 제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산 소망을 붙들도록 도우셨습니다. 죄인은 큰 은혜로 거듭난 이후에도 수시로 눈에 좋아 보이는 세상소망을 좇아 살았지만 하나님께선 때마다 말씀과 많은 사건들 가운데 썩어지고 더럽고 쇠할 세상이 아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산 소망을 붙들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세상적 소망을 무시하거나 무너뜨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소망의 한계와 허무함을 깨닫고 참된 소망을 붙들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동안 바랬던 박사과정가운데서도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교수님들이나 자신의 성실과 의지로 이루고자 했지만 번번이 한계를 깨닫게 도와주시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찾고 구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박사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서 이제 세상물질에 대한 소망이 찾아왔습니다. 얼마 전부터 치과 옆 부동산에서 여러 투자처를 소개해주면서 마음을 뺏기게 됐고 단지 재태크가 아닌 세상소망이 되 매이게 됐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소개해준 투자처의 사기 행각을 깨닫게 됐고 세상소망의 거짓과 허무함을 깊이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목자로서 캠퍼스에서 소망을 찾기 위해 토요일 혼자 피싱을 나가게 됐지만 너무 오랜만에 밟는 캠퍼스 땅이 큰 고난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고난을 통해 죄인의 세상에 대한 욕심과 탐욕의 때를 빼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주신 소망을 바라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산소망을 덧입기 위해 무엇보다도 새벽기도에 힘쓸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항상 생각과 계획은 있지만 육신의 안일가운데 잠으로 허비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을 때 결국 세상소망을 따라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감정에 기초해 습관대로 본성대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 나이 중년을 넘긴 시점에서 제 인생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소망을 찾고 붙들기 위해 또 감당할 믿음과 힘을 덧입기 위해 기도생활이 필수적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가운데 항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참기쁨을 찾고 세상가운데 거룩한 나그네로 살수 있는 믿음과 소망을 덧입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Ⅱ. 거룩한 삶(13-16)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가진 자들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영적 긴장을 풀 때 안일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세상 풍조에 말려들어 시험에 들게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계속하여 신자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증거합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우리는 과거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때 몸의 사욕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때는 거룩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즐기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회개하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삶은 경건의 모양만 갖춘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이란 단어는 구별이라는 뜻으로서 소망을 이 땅에 둔 세상 사람과 구별되고, 죄와 구별된 성결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욕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거룩함을 사모하는 욕망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육신의 본성대로 살고자 하는 동물적인 욕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산다는 것은 육신의 본성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절대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16절을 보십시오.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레위기 11:45절을 인용한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게 하신 것은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함에 있었습니다. 신자는 상대적인 세상 가치관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가치관을 따라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두드러진 성품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1서4:8)는 것과 “하나님은 거룩하시다”(계4:8)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의 자녀된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사랑을 하더라도 거룩한 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받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고 싶지만 우리 속에 죄를 즐기고 싶은 죄의 소욕이 활화산같이 내 마음속에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악하고 음란하여 죄의 소욕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거대한 향락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거룩하지 못한 문화가 신앙공동체에도 흘러 들어와 악영향을 끼칩니다. 이런 세속주의의 현상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누룩같이 번져 고린도 교회처럼 타락하다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바다는 0.4%의 염분이 거대한 바닷물의 부패를 방지해줍니다. 오늘날 신자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짠 소금 맛을 잃지 않는 신자가 얼마나 되는가가 중요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믿고 실제 삶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제 삶에서,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에서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한 투쟁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은 다리와 같다. 현명한 사람은 그것을 건너갈 것이지만 그 위에 집을 세우지는 않는다” 한 사람의 외적 모습만 보고 그에게 산 소망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산소망의 씨는 그 사람의 인생방향을 바꾸고 가는 길을 바꾸고 인생열매를 바꿉니다. 우리가 택함 받은 세상의 나그네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산 소망을 붙들고 세상의 나그네 길에서 승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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