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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11-09 (월) 23:32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사사기
첨부#1 사사기6장_주제1강(주니어팀-함바나바).hwp (33KB) (Down: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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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1강]큰용사여(주니어팀-함바나바)
2009 가을 제자 수양회(Junior) 주제 1 강
큰 용사여
말씀/ 사사기 6:1-24
요절/ 사사기 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높아지는 하늘, 낙엽은 우수수, 깊어가는 가을 자칫 가을 타기 쉬운 이 때에 저희 가운데 말씀을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제자 수양회를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제자 수양회 통해서 Junior 팀은 주인의식과 개척 정신을 충만하게 덧입고 큰 용사로 살고자 하는 결단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위대한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야구를 했다면 이승엽같이, 축구를 했다면 박지성같이 되고 싶어합니다. 학생들은 all A+를 맞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이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자기도 원치 않게 소심하고 살살살 소시민의 삶을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 기드온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을 큰 용사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 받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기드온을 구원자로 부르셨습니다. 기드온은 살기 힘든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 자기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척 소심했고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부르심을 받게 되자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소심한 기드온을 큰 용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은 여 선지자 드보라 이후 40년간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축복을 감당하지 못하고 타락하여 하나님께 악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붙여 연단하셨습니다. 미디안은 유목생활을 하는 호전적이고 난폭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초원을 떠돌아다니다가 추수 때가 되면 어김 없이 쳐들어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며 마을 마다 불을 지르고 먹을 것과 양과 소와 나귀까지 모조리 쓸어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미디안이 무서워서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구멍과 굴과 산성을 만들어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가운데 어찌든지 먹고 살고자 미디안의 눈을 피하여 몰래 파종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도 “삐뽀 삐뽀 삐뽀, 미디안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미디안군대가 나타났습니다….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민방위 경보가 울려퍼지면 잽싸게 방공호로 대피하였습니다. 이렇게 두더지 생활을 하며 꿋꿋이 7년을 버티어 왔습니다. 이스라엘도 처음 미디안이 쳐들어올 때는 “지들도 양심이 있겠지, 한두번으로 끝날꺼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양심이 없었습니다. 7년 째 변함없이, 한결같이, 나중에는 아말렉 사람들과 동방 사람들까지 가세하여 씨 곡물도 남기지 않고 싸그리 긁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심히 미약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7년 동안 미디안의 압제로 이스라엘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40년 이상 전쟁을 하지 않았으니 변변한 무기조차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점점 더 심해지는 미디안의 압제 앞에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때서야 이들은 자신들이 버렸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지만 바로 미디안 군대를 물리쳐주시지 않고 한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 길을 걸을 때는 구름기동과 불기둥으로 지키셨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이스라엘을 앞서 행하시며 가나안의 대적들을 물리쳐주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실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고 그 신들에게 잘 보이고자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 신들에게 절하며 그들을 숭배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을 때 하나님도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센터에 있을 때는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지만 캠퍼스나 가정, 또는 직장에 가면 하나님보다는 다른 것을 더 두려워하기 쉽습니다. 부모님들을 두려워하고 친구들을 두려워하고 직장상사들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을 거스르면 망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쓰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더 두려워 섬길 때 우리는 반드시 미약하게 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며 섬겼던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결국은 그들에게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내면에 없을 때 마음의 평강을 잃어버리고 환난과 곤고에 시달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면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싸워주십니다. 로마서 8장 32절은 말씀합니다. “자기아들을아끼지아니하시고우리모든사람을위하여내주신이가어찌그아들과함께모든것을우리에게주시지아니하겠느냐” 우리가 이 하나님만을 믿고 두려워함으로 세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기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는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하나님은 한 사람 기드온을 부르십니다. 그때 기드온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10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기드온은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밀은 넓은 들에서 큰 도리깨로 타작해야 하는데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 숨어서 아무도 몰래 타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디안에게 들키는 날에는 다 빼앗아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기드온도 이런 생활이 미치도록 싫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입이 포도청이라 먹고 살려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기드온은 자기하나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숨어서 밀 타작하며 살아가는 초라한 소시민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시대 청년들 가운데도 기드온과 같이 소시민의 삶을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 시대의 교육 목표는 지도자 양성이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을 양성하는데 있습니다. 학교 교육이나 TV 매체도 어떻게 하면 평범하게 잘 살 수 있는가 가르칩니다. 이로 인해 마땅히 시대를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할 지성인들마저도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너무 근시안적이고 편협합니다. 도전과 모험은 부담스러워합니다. 지도자가 되기를 아주 싫어합니다. 젊은이의 높은 기상과 뜨거운 열정은 식은 지 오래된 채 현실에 안주하고자 애를 씁니다. 문제는 마지막 희망이 되어야 할 우리의 현주소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이런 기드온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졸장부 기드온아”라고 부르셨습니까? 아닙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시작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큰 용사여!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을 큰 용사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큰 용사는 어떤 자입니까? 큰 용사는 단순히 생명을 내놓고 용맹스럽게 싸운다고 해서 붙여주는 칭호가 아닙니다. 무엇을위해서용맹스럽게싸우는가를보고붙여주는칭호입니다. 자신의 장래와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을 큰 용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싸우고자 말만 하고 현실이 어렵다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리는 자도 큰 용사라 할 수 없습니다. 큰 용사는 그 시대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 싸우는 자입니다. 큰 용사는 싸움에 능하며 항상 선두에 서는 용감한 군사를 말합니다. 큰 용사는 두려움 없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적과 용감히 싸웁니다. 이를 볼 때 기드온은 큰 용사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 천사는 왜 기드온을 큰 용사로 부르고 있습니까? 이는 사람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에서 기드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졸장부가 아닌 큰 용사로 보십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이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현재 모습보다도 장차 변화된 모습을 보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는 소심한 졸장부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도 장차 큰 용사가 될 희망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큰 용사로 쓰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더 이상 소심한 겁쟁이로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을 믿고 큰 용사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불굴의 전사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성공과 받을 복에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신 희망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믿음입니다. 나는 졸장부야 생각하면 일생 졸장부의 인생을 살 것이요, 큰 용사로 생각하면 그렇게 성장하게 됩니다. ‘나는 양 한 사람 감당할 수 없는 못난이의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자야’라고 생각하면 양이 조금만 힘든 소리를 해도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쉽게 포기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큰 용사로 부르신 하나님의 소원을 믿고 영접하면 투쟁 방향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숨어서 세상 잔재미나 즐기며 안일한 소시민으로 주저 앉아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큰 소망을 영접하고 큰 용사다운 생각과 비전을 가지고 한걸음씩 영적 투쟁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기드온이 어떻게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까? 12b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너와함께계시도다!” 기드온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는 결코 큰 용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와 동행하시며 그에게 지혜를 주시고 힘을 주시고 방향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세상의 어떤 세력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었습니다. 걸인이 깡통을 앞에 놓고 아주 볼 품 없는 바이올린을 들고 열심히 연주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듣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보고 있던 한 신사가 다가오더니 그의 바이올린을 받아 연주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한 곡이 끝나자 사람들은 다 박수를 쳤습니다. 두 곡이 끝나자 사람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덧 걸인의 깡통에는 지폐가 가득 쌓였습니다. 그가 바로 바이올린의 마술사라고 하는 파가니니였습니다. 바이올린은 보잘것 없는 것이었지만 파가니니의 손에 들어갔을 때 아주 놀라운 음악이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비록 보잘 것 없는 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면 달라집니다. 아무리 부족한 자라도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면 큰 용사로 쓰임 받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처음부터 아멘 하며 믿음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소연하고 있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그는그들에게닥치는재앙을볼때,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셨기 때문이라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앞의 선지자와는 달리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죄로 인해 이런 모든 일이 닥쳤음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영적 현주소였습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죄를 징벌하는 수단이 아니라 이를 통해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연단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죄를 깨우치지 못한다면 징계는 징계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른 길을 가게 하시기 위해 매를 드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면서 원망하고 소시민적으로 쪼그라든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너는가서이너의힘으로이스라엘을미디안의손에서구원하라내가너를보낸것이아니냐…” 여기서 이 너의 힘으로 할 때 “이”는 바로 앞에 나오는 것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로서 기드온이 먹고 살기 위해서 밀타작 하던 바로 그 힘을 말합니다. 이런 힘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힘으로는 큰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큰 힘과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이런 힘으로도 하나님의 큰 일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피터 김 선교사님은 저와 함께 처음 식사하시는 자리에서 소설 동의보감의 한 구절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한의사이기 때문에 그냥 하시는 말씀이려니 생각하였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구절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들에 핀 이름없는 풀들도 온 몸으로 껴안아 사랑하겠노라” 피터 김 선교사님은 이 글을 읽으시고, 한 영혼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정죄하고 있는 자신의 속 좁은 내면을 발견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들에 핀 이름없는 풀을 붙들고 눈물로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이방 땅에서 그렇게 큰 역사를 이루신 선교사님께는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신앙의 기본인,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충실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능력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 같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도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공부할 힘, 밥 먹을 힘과 같은 미약한 힘만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시며 그 일을 감당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의 비밀이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자꾸 자기 형편만 내세우며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우리는 이러한 기드온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자기 형편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형편을 바라보면 큰 용사는커녕 작은 용사가 되기도 힘들다고 생각됩니다. 남들보다 특출 나게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엄청 부자도 아닙니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밤낮 없이 뛰어도 자기 한 몸 가누기 힘든 자는 큰 용사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만을 바라보고 어두운 생각을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하나님보다 인간적인 조건을 더 믿고 있는 불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두 마음을 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것을 떠나서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이 이렇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을 사전에 아시기라도 한 듯 그의 대답에 상관없이 큰 약속을 주십니다. 16절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기드온에게 반드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심으로 믿음을 심으십니다. 그러므로 기드온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우리가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소심한 기드온 조차도 미디안 군사를 마치 한 사람 치듯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미약할지라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주실 것입니다. 18-24절을 보면 기드온은 표징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고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평강이시다’는 뜻입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 내면의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강이 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잠잠히 응할 수 있었습니다.
죄인은 지난 여름 하나님의 은혜로 흑해수양회에 참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했던 거 보다 훨씬 더 많은 은혜를 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영혼들의 자발적인 헌신과 스피릿, 부족한 가운데 오병이어를 드려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제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나의 모습으로는 안되겠다.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하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온 제게 그 결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죄악된 생활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다시금 약 먼지가 날리는 3평 남짓한 진료실에 앉아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살살살 타작질을 하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미디안 군대와 같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직원 둘이 들이닥쳐 저의 진료부를 복사해 갔습니다. 저는 혹시 과거 개원 초 철 없이 저지른 죄가 들통이 난 것은 아닌가 심령이 심히 조마조마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때 주님께 납작 엎드려 만일 이들의 눈을 어둡게 하셔서 저의 죄과를 간과하게 하신다면 일대일이 없는 날에는 캠퍼스에 오르겠다고 서원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캠퍼스에는 올랐지만 양들에게 말씀을 전하지 못할 정도로 소심해 있었습니다. 혼자 앉아서 담배라도 피고 있는 양들에게는 무슨 안 좋은 소리나 듣고 마음에 상처라도 받을까 주변만 맴돌고 있었습니다. 또 둘째 출산도 임박해 있으니 수양회를 통째로 제낄 수 있는 더 좋을 수 없는 구실이 언제 또 오겠는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고 있던 죄인에게 주님은 ‘이런 소심한 자야’ 라고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큰 용사 말씀을 맡겨주셨습니다. 예전에는 피싱할 때 거절하는 양들을 향해 심히 분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양들이라도 주님은 긍휼히 여기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습니다. 힘겹게 캠퍼스에 올라 말씀을 전하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거절을 당한 저의 마음이 아파 욕이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 내면에 구원자를 갈망하는 구석지고 어두운 그늘을 발견하게 도우셨습니다. 주님은 거절하는 이들이라도 불쌍히 여기고 말씀을 먹일 목자를 찾고 계셨던 것입니다. 제가 그 동안 학업에 대한 실패로 인한 열등감이라는 자기문제에 갇혀, 양들의 내면에 죄로 고통 하는 신음을 듣지 못하고 큰 용사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영접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제가 날마다 큰 용사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영접하겠습니다. 아직은 퇴근할 때 잠깐 들러 전도지를 나눠주는 수준이지만 소심한 저도 큰 용사로 부르시고 훈련하시는 소망의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미약한 힘으로나마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일대일 전투에 나아가겠습니다. 이곳에 참석한 여러분들도 모두 저와 함께 영적 전투에 큰 용사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미디안과 같이 눈에 보이는 원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더 강한 원수들이 우리를 미약하게 합니다. 인본주의와 상대주의, 다원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을 인간의 수준으로 상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리고 캠퍼스 청년들은 참된 진리를 몰라 육신주의와 물질주의의 죄의 세력에 갇혀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여 이 한 몸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이들을 진리 되신 말씀으로 먹일 큰 용사 캠퍼스 목자를 찾고 또 찾으십니다. 부르고 또 부르고 계십니다. “큰용사여여호와께서너와함께계시도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고, 큰 용사로 부르셨다는 것을 믿을 때 모든 연약하고 두려움 많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 시대를 섬기는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고 이 시대의 큰 용사로 쓰임 받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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