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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7-25 (일) 17:52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년_여름수양회_주제_2강(이동원)-1.hwp (25KB) (Down: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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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여름수양회제2강]다 이루었다
2010년 여름수양회 주제 2강                                                  이동원

다 이루었다
말씀/ 요한복음 19:1-30
요절/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본래 십자가는 수치와 고통을 극대화하는 사형방법으로 고안된 것입니다. 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자 예수그리스도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 사건을 바라볼 때 슬픔과 아픔을 느끼게 합니다. 이 현장에 있었고 이 사건을 기술하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누구보다 엄청난 충격과 아픔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읽다보면 감정의 동요없이 담담히 이 사건을 기술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됩니다. 짐작컨대 십자가의 의미가 사실적 설명에 갇히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치 않으셨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 십자가 사건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의미와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다 이루었다 선포하시며 운명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의 은혜를 충만히, 무한 리필로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고난당하신 예수님(1-16)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였지만 아무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유월절 특사로 석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의 선동을 받은 무리들이 예수님 대신에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외쳤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에 빌라도는 무리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했습니다. 판결이 내려지기도 전에 채찍질 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또한 로마법은 형이 확정된 후에 자유인이나 군인은 막대기로 때렸고, 오직 노예만 채찍으로 때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불법적으로, 그리고 노예취급 받으셨습니다. 채찍 형은 옷을 벗긴 후 기둥에 묶어 놓은 채 군인들이 등을 사정없이 내려 갈겼습니다. 채찍 형이 너무나 가혹하여 맞다가 죽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채찍이 “획!”소리를 내며 예수님의 등을 지날 때마다 깊은 상처를 남기며 붉은 피가 튀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오히려 죄인들을 채찍으로 때릴 권세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왜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신 것입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우리는 나음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죄로 인한 상처가 많기 때문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 세상에는 상처 주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의 불화의 채찍에 맞아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신음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 상사의 권위라는 채찍에 맞아 받은 상처로 고통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자 친구 혹은 여자 친구로부터 거절당한 채찍에 상처를 받아 괴로워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아내는 남편에게 상처를 줍니다. 목자는 양에게서 상처를 받고, 양은 목자에게서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온통 “상처 받았어요!” 하는 말뿐입니다. 상처로 인해 고통하고, 괴로워하며, 상처로 인해 인간관계가 파괴됩니다. 상처로 인해 공격적인 성향이 더해져서 무차별적으로 타인에게 테러를 가하기도 합니다. 어떤 뛰어난 상담원도, 정신과 의사도 사람의 마음의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속 시원한 해답을 합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 내 대신 채찍을 맞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상처로부터도 나음을 입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바로 ‘나’를 치유하기위해 채찍에 맞으셨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십시요. 군인들은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웠습니다. ‘가시나무’는 아담의 범죄 후 저주 받은 땅의 상징 식물로 성경에 나옵니다(창3:18). 예수님께서 가시나무 관을 썼다는 것은 인류가 받은 저주를 예수님이 머리에 쓰신 것을 말해줍니다. 군병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짓을 했지만 하나님은 인류의 머리 위에 내려진 저주를 예수님의 머리 위로 옮기셨습니다. 날카로운 가시가 예수님의 머리 혈관을 뚫으면서 핏방울이 예수님의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군병들은 왕을 상징하는 자색 옷을 예수님께 입힌 후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조롱하며 손으로 때렸습니다. 손으로 얼굴을 때리는 일은 모욕중의 모욕입니다. 힘을 숭상하는 군병들은 힘없이 당하고만 있는 예수님께 ‘유대인의 왕은 무슨 빌어먹을 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사람을 제압할 힘(power)이 없는 왕은 왕이 아니었습니다. 힘(power)을 숭상하는 자의 눈에는 예수님이 왕으로 보일 수가 없습니다.
4절을 보시겠습니다. 빌라도는  성난 군중을 진정시키기 위해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을 다시 그들 앞에 세우며 말했습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이렇게 가련하고 불쌍한 예수를 보라!”, “내가 이만큼 처벌한 이 사람을 보라!” 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동정심을 자극하여 예수님을 놓아 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피를 본 야수처럼 달려들어 빌라도를 닦달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빌라도는 죄를 찾지 못했다며 거부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말합니다.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함이니이다.” 유대인들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고 강하게 요구하자, 빌라도는 심각한 상황임을 알고 두려워졌습니다. 보통 죄인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고 당당하셨고 살기 위해 어떤 변명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때문에 빌라도는 더욱 두렵고 초초하였습니다. 그는 답답한 나머지 다시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가 심문합니다. 9절입니다. “너는 어디로부터냐?” 예수님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빌라도는 예수님을 협박해 보았습니다.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빌라도의 마지막 엄포에 예수님은 초연히 말씀하셨습니다. 11절입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11) 예수님은 모든 권한은 하나님께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고 하나님께서 빌라도에 주어진 권한을 올바로 쓰도록 오히려 책망하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요.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였다가 자신도 큰일을 당할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약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소리쳤습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12) 잘못하면 민란이 일어날 심각한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며 최후의 일침을 놓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포기하면서까지 예수님을 죽이고자 악을 썼습니다. 사단의 종으로 전락하여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며 그 죄를 더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무리의 요구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진리를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제 2장,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17-30).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군병들의 손에 넘겨지셨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위해 골고다 언덕으로 데려가고자 했습니다. 군병들은 십자가를 예수님의 등에 메웠습니다. 십자가는 쌀 한가마니 무게 정도로 웬만한 성인도 지기 힘든 무게입니다. 예수님은 잠도 못 주무시고 채찍에 맞아 탈진 상태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져야할 십자가로 받아들이시고 어깨에 매셨습니다. 그리고 해골이라 부르는 골고다 언덕으로 한걸음 한걸음 오르셨습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보면 예수님이 골고다에 오르는 장면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피와 섞여 흘러내렸습니다. 가시관으로 찔린 머리로 인해 머리가 아파오고 육신은 출혈로 인한 탈진상태여서 몇 발자국 가다가 비틀거리며 푹 스러지셨습니다. 이때 로마 군병의 채찍이 사정없이 날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일어나 몇 발자국 가다가 또 쓰러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쓰러져가며 고난과 수치와 멸시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골고다를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가시밭길이요 피 흘린 발자국이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볼 때, 예수님은 비참한 패배자의 모습으로 골고다 길을 오르신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 자신의 왕국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 길을 오르셨습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어깨에는 ‘자기 십자가’가 매여 있습니다. 길은 가파르고 숨은 차오릅니다. 그러나 그 길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예수님처럼 그 길을 적극적으로 갈 수 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군병들은 거기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사도 요한은 십자가 처형광경을 차마 자세히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간결하게 십자가 처형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습니다. 그 패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씌어져 있었습니다. 이 패는 죄목을 써야할 패인데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그저 유대인의 왕 이란 신분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뿐 아니라, 로마어, 헬라어로 씌어졌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영적인 왕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하실 때 군병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그 겉옷을 취하고 속옷은 제비 뽑고 있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도 무감각하였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작은 이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가장 가까이서 구원의 주를 목격했지만 영적무관심으로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는 그들을 향한 기도도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들의 영적무관심이 십자가를 등지게 했고 십자가의 원수로 남게 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곁에서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하고 믿음으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요.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밑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울고 있는 모친을 위로하시고 후일을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제 3장,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예수님
28절을 보십시요. 이후에 예수님은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시기 위하여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신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여 예수님의 입에 대었습니다.그러나 여기에는 예수님이 육신의 갈증을 호소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성경 말씀을 온전히 성취하고자 하는 말씀이셨습니다.(시69;21)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가 다가왔습니다. 이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같이 30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오늘 말씀의 주제인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구속역사를 완성하셨다는 선포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다 끝냈다’, ‘완성했다’, ‘성취했다’ 로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메시야에 대한 구약의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15부터 시작해서 시편, 이사야서에  오실 메시아에 대해 자세히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약속과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생애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구원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죄의 권세아래 심판받을 우리에 대한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형벌을 나 대신에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죄의 결과로  받아야할 수치와 조롱과 고통과 저주를 몸소 감당해 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이 너무 부담스럽고 힘들다고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중간에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b)’ 하시며 십자가의 고통의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시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 이루었습니다” 승리의 보고를 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모두 만족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죄와 함께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한 인간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철저한 심판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심으로  하나님이 사랑과 공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는 간혹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죄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7,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죄로 인해 마땅히 십자가 형벌을 받아야할  나를 대신하여 예수님께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의 사랑을 알게 하셨습니다.
넷째,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피로 단번에 영원하고 온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이 피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피요,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였기 때문에 단 한번의 사건으로 영원하고 온전한 속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죄 사함의 효과가 100% 완전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99% 이루셨다면 우리는 나머지 1%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여서 1%의 행위로도 죄의 값을 치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간들을 위해 죄 값을 100% 치르셨습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빚을 다 갚아주시고 그 차용증서를 완전히 불태우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1%의 행위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단 한 가지는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다 내려놓게 죄사함 받는 것입니다.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손과 머리 위에 무거운 짐 보따리를 들고 열차를 탔습니다. 할머니는 열차에 올라 두 손의 짐 보따리는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이상하게도 머리위에 있는 짐 보따리는 그대로 이고 있었습니다. 열차가  한참을 지나갔는데도 할머니는 여전히 머리에 짐을 이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옆에 사람이  참다못해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열차 안인데 짐 좀 내려놓으세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열차에 타고서도 구원을 얻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죄의 짐을 반은 내려놓고 반은 자신이 들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이루신 완전한 구원을 완전히  믿지 못하게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모든 죄 짐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을 때 내가 어떤 몹쓸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십자가에서 다 용서해 주십니다. 과거에 지은 죄, 현재의 죄, 반복해서 지은 죄, 미래에 지을 죄까지도 십자가에서 100% 감당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믿음으로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나의 죄 짐을 내려놓기만 하면 됩니다.  이 시간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 돌아가신 예수님께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12살 때 집에 화재로 인해 전신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로 인해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생의 뜨거운 맛을 보게 되자 앞으로의 삶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이전과는 달리 거동도 자유롭지 못한 점과 화상 흉터로 인해서 자의식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름에도 반팔을 입지 못하고 긴 팔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가서 저의 인생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잘 놀고 잘 마시는 치대 분위기에 어울려 많은 경험을 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구속되지 않는 나만의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였습니다. 겉으로는 마무 문제없는 것 같았지만 저는 내면은 정욕에 대한 목마름, 다른 사람과의 비교의식, 혼자 책임져야할 것에 대한 외로움으로 괴로웠습니다. 마음의 괴로움은 만성위장장애로 나타났습니다. 거울에 비친 저의 모습은 피골이 상접이 된 불쌍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저는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이게 무언가 하는 질문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사는 것이 피곤하고 인생이 허무한 것 같아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허무감과 절망감으로 울부짖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말씀공부를 통하여 진리의 세계, 은혜의 세계, 구원의 세계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96년 여름수양회를 참석하며 십자가위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의 모든 죄를 내려놓고 나의 왕으로 모시게 되자 구원의 기쁨과 하늘나라의 평강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죄인도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밥도 잘 먹어 살도 찌고  신앙과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혜준 동역자와 믿음의 결혼을 하게 하시고 세 자녀를 주시고 치과원장이 될 수 있는 축복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죄인이 또다시 예수님을 십자가 위해 달리게 한 죄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저의 안일과 자기중심적인 행동이 못이 되어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있었습니다. 저의 얄팍한 생각과 정욕적인 생각들이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있었습니다. 양들과 동역자들에 대한 무관심이 창이 되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제가 예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갑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보배피로 씻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제가 십자가 은혜를  힘입어 날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나에게 허락한 사명을 다 이루기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의 구원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믿기만 할 때 위로부터 놀라운 죄 사함의 은혜가 임하고 구원의 기쁨이 영혼 깊은 곳에서 솟아나게 됩니다. “다 이루었다” 이는 실로 우리를 향한 위대한 해방 선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십자가 사랑을 온전히 영접하고 구원의 기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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