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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9-25 (일) 12:33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1년_누가복음_23강-1.hwp (25KB) (Down: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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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23강]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
2011년 누가복음 제 23강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

말씀: 누가복음 12:1-12
요절: 누가복음 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에 대해 화가 있을 것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를 배경으로 제자들에게 이들의 악영향을 받지 않도록 경계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려면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적극적으로 시인해야 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자세를 배우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지기를 기도합니다.

Ⅰ.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라(1-7)
  1절을 보십시오.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시는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역사는 왕성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들보다 제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외식이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의롭고 경건한 모습을 하였으나 그 내면은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십일조를 드리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기도를 하며 어디서나 기도 시간을 절대적으로 지켰고 식사 전에는 손을 열심히 씻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기는 사람들에게 옳게 보여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데 있었습니다. 그들 마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양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외식을 ‘누룩’이라 하셨습니다. 누룩은 떡 반죽에 조금만 넣어도 떡 덩어리 전체를 부풀게 합니다. 누룩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무섭게 침투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처럼 외식은 조용히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하여 사람을 이중적인 자로 타락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좋은 영향력보다 좋지 못한 영향을 더 잘 받습니다. 우리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힘써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주의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악영향을 받아 따라가게 됩니다.
  우리가 외식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 말씀은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사람들이 보지 않으니 문제없다 생각하고 은밀하게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죄를 철저히 감춘다 해도 결국에는 다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나팔을 부는 것처럼 전파됩니다.(3) 감추인 것, 숨긴 죄가 다 드러나는데 여기서는 특별히 어두운데서 말한 것,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마음의 죄가 말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겉으로는 좋은 척하지만 골방에서, 뒤에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흉보고 비난하는 소리가 다 전파됩니다. 낮에 하는 말은 새가 듣고 밤에 한 말은 쥐가 듣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사람을 속일 수는 있으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고 자신의 양심을 속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고후 5:10) 우리가 사람을 의식하고 눈가림식으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겉모습을 꾸미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자세로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순수하게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주님의 역사, 주님의 양들을 사랑하고 섬기고자 투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경계하신 것은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을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악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나 세상 욕심과 교만과 불평을 갖고 있을 때 형식적으로 주님을 좇게 만드는 악영향을 끼칩니다. 제자들은 장차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해야 할 복음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종들인데 바리새인의 누룩에 물들어 ‘누가 크냐?’ 일인자로 인정받고자 할 때 도토리 키 재기 하느라 영적인 데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런 세상적인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한 원대한 하나님의 뜻을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바리새인의 악영향을 경계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순수하고 진실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4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 친구’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가 아주 친밀함을 나타냅니다. 친구에게는 숨기는 것이 없습니다.(요15:15)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종은 명령대로 순종해야 할 위치에 있지만 친구는 그의 의도를 알고 자발적으로 자원하여 함께 참여합니다. 예수님은 그 본체가 하나님이시오, 제자들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구 삼으시고 그들에게 모든 비밀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친구로서 간절히 당부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은 외식을 주의하라고 하시면서 두려움 문제를 언급하셨습니다. 이는 외식하는 이유가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사람은 기껏 육신의 생명을 해할 뿐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은 일정 기간 후 끝나지만 장차 우리가 갈 천국에서의 삶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죽일 수 있지만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므로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려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만을 마땅히 두려워해야 합니까?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5) 하나님은 죽음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만을 마땅히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 지옥에 가는데 낸들 못가겠는가? 용기 있게 큰소리칩니다. 심지어 친구들이 다 지옥 가는데 나만 천국에 가면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농담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는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입니다.(계20:8) 이곳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고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는 곳입니다.(막9:48,49) 지옥은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형벌을 받는 곳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옥에는 절대로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능히 우리 생명을 영원히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애굽왕 바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추상같은 명령에도 불구하고 남자 아기들을 살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습니다.(출1:20-22)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118:6)
둘째로,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 손에 달렸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심판하시는 하나님만을 생각하면 우리도 죄와 허물이 많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 되십니까? 6,7절을 보십시오. 당시 한 앗사리온에 참새 두 마리가 팔렸습니다. 한 앗사리온은 16분의 1 데나리온으로서 가장 작은 화폐 단위입니다. 두 앗사리온이면 참새 4마리 값인데 하찮은 참새라 한 마리를 덤으로 더 주어 5마리를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찮은 생물까지도 하나님은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은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겠습니까? 거기다가 택함 받은 제자들은 누구보다 귀히 여기실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된 자들로서 하나님의 섬세한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었지만 머리털 하나도 그을리지 않았습니다.(단3:27) 또 다니엘은 믿음의 순결을 지키다가 사자 굴에 던져 졌으나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단6:22)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이야기는 성경에서만 나오는 것이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복음을 위해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고 보호해주심으로 안전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많은 참새보다 얼마나 더 귀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손 안에서 보호해주시고 계십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을 귀히 여기시고 책임져주실 하나님을 믿을 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외식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몇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경험한 것을 인생 법칙으로 정리했습니다. ‘머피의 법칙’은 미국의 항공기 엔지니어였던 머피가 생각해 낸 것으로 잘 못될 소지가 있는 것은 어김없이 잘 못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검퍼슨의 법칙’은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일수록 잘 일어난다는 법칙입니다. ‘루딘의 법칙’은 위기에 몰리면 사람들은 대부분 최악을 선택한다는 법칙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인생의 법칙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도서 7:14) 이는 인간의 삶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으므로 인간이 감히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요 궁극적으로 선하신 하나님은 선하게 인도하시기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무엇인가 되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제자 한 사람 키우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러니 내가 제자의 삶을 사는 것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고 책임져 주실 것인가를 신뢰하고 나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깨우치십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오 근본적으로 내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두려움을 이기는 담대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권세 잡은 자들을 두려워했을 때 예수님이 체포당하시자 모두 줄행랑을 쳤습니다. 죽는 데까지 따라가겠노라 큰소리치던 베드로도 계집종 앞에서 벌벌 떨며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활신앙을 가졌을 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세자 앞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9)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나의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한분만 경외하는 가운데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한 주님의 제자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Ⅱ.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라(8-12)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이 험한 세상에서 더 적극적으로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떤 것인가 가르치십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것은 공적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권세자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려면 내 생명의 주인은 주님이시오 내 생명은 주님께 달렸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할 때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하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시인한 자를 기뻐하시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십니다.(계3:5) 이는 참으로 엄청난 복이요 최후 승리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받는 손해와 고난은 잠시이지만 그로 인해 얻을 복과 영광은 영원합니다.(롬8:18)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런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 당하게 됩니다.(9) 심판 날에 심판장이신 주님께서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시므로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그때는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난이나 생명의 위협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사람은 연약하고 무지한데다 두려움이 많아 예수님을 거역할 수 있는데 그러나 이를 회개하면 사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같이 고의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모욕하고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죄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를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받지 못합니다. 11,12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다른 성령의 역사를 가르쳐주십니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장차 종교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로부터 박해를 받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때 그들은 무엇으로 대답할 것인가 할 말을 연구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 때에 할 말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짐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음란하고 패역한 세상에서 신자들은 물질과 권세의 위력 앞에 주눅 들고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자 외식하기 쉽습니다. 믿음으로 분명하게 살면 손해볼까봐 중간노선을 걸으며 외식하기 쉽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 내에서는 영적인 사람으로 보이고자 외식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외식을 주의하라 하십니다.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세상 권세자나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그들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시인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믿음의 용사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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