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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3-18 (일) 12:21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2마가복음_2강_(오정훈)-1.hwp (52KB) (Down: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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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제2강] 권위 있는 새 교훈
2012년 마가복음 제2강                                      오정훈

권위 있는 새 교훈

말씀  마가복음 1:16-45
요절  마가복음 1: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 즉 순종하는 도다 하더라”

사람들은 흔히 권위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권세를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그런 위치에 서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정한 권세인지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권세를 가지고 제자들을 부르시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며 문둥병자와 많은 병든 자를 고치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권세에 대해서 배우고 그로부터 오는 권세를 덧입어 우리도 사람을 부르고 병든 자를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는 역사 가운데 쓰임받는 자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16-36, 40-45)
첫째, 제자들을 부르시는 데서 예수님의 권세가 나타났습니다. 16-20절을 보면 예수님이 네 명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시몬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던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열심히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을 던지며 고기를 잡고 있던 이들을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그러자 그들은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이 부르시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님을 따라나섰을까요? 고기잡는 어부의 삶에 심한 권태를 느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갈릴리 어촌계에 희망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이런 저런 이유를 다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권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은 거역할 수 없는 절대 권세가 있는 부르심이요 소망의 부르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사람들을 권능으로 부르시고 세우셔서 쓰십니다. 우리 자신을 살펴봐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예수님의 권세 있는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공부하는 것이 너무 좋고 소감 쓰는 것이 너무 신나서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된 것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신 예수님의 권능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님으로부터 오는 권세 있는 부르심의 역사가 이 시대 우리를 통해서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을 부르신 예수님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은 그들을 처음부터 사람 낚는 어부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는 말 그대로 사람을 낚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죄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건져 올려 구원의 나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세상에는 예수님의 제자 말고도 사람을 낚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이상한 글을 올려 사람을 낚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화로 사람을 유인하여 돈을 노리는 보이스피싱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남의 마음과 돈을 노리는 강도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우신 사람 낚는 어부는 죄와 허무의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건져 올리는 생명의 구조자들입니다. 세상에 많은 일이 있지만 이 일보다 더 고귀하고 값진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 12:3절에서도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 이 시대에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면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낚시꾼 체질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면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사람 낚는 위대한 어부시오 그런 권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부르심을 받은 네 명의 제자는 자기 하나 감당하기 어려운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시몬 베드로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변함없이 예수님을 줄기차게 좇았을 때 오순절 한 번의 설교로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돌이키는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권능의 부르심에 순종해 따르므로 사람 낚는 어부요, 별과 같이 빛나는 사명인의 삶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말씀에서 예수님의 권세가 나타났습니다.(21-28)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이 다 그 교훈에 놀랐습니다. 여기서 놀랐다는 것은 ‘엑플레소’로서 이는 약간 surprise한 것이 아니라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 있는 자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말씀일까요? 당시 회당에는 회당장이 있었고, 회당의 가장 큰 기능은 안식일에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당에는 ‘모세의 자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서기관들과 랍비들이 ‘모세의 권위’를 가지고 모세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이런 권위에 더해 당시 가장 큰 영향력이 있던 큰 랍비 힐렐과 랍비 샴마이의 권위로 율법을 해석했다고 합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랍비 힐렐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는 ‘랍비 샴마이는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유명한 선생들의 말을 인용하여 유식한 소리를 많이 했지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말하는 자기들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교훈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하였습니다. 이는 사람의 교훈으로 가르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큰 감동과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이 예수님의 영적 권세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권세가 얼마나 강했던지 평소 서기관들이 말씀을 전할 때는 졸거나 콧방귀도 끼지 않던 귀신이 예수께서 말씀을 전하시자 깜짝 놀라 그 사람 안에서 발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귀신은 예수님이 나사렛 예수시라는 것을 귀신같이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면 그 앞에 무릎 꿇어야 하는데 귀신은 쫓겨나지 않기 위해 최후의 발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발악을 한다고 해도 어둠은 빛 가운데 쫓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개거품을 물며 그 사람에게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28절입니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권위 있는 새 교훈은 더러운 귀신들마저도 순종하는 놀라운 권세를 가진 교훈을 말합니다. 이제까지 서기관들은 유명한 사람의 권위를 힘입어 가르쳤지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지는 못하였습니다. 쫓아내기는커녕 귀신은 그들을 비웃으며 자신이 사로잡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더 완악하게 하여 파멸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사람 속에 숨어 역사하던 귀신은 더 이상 힘을 못 쓰고 쫓겨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더러운 귀신도 쫓아내버린 이 예수님의 권위 있는 새 교훈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는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권세는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절대적인 권세입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권능의 주가 되십니다. 말씀의 권능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예수님의 권세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는 창조의 권세요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변화의 능력입니다. 이 말씀의 권세가 역사하면 우리 안의 모든 더럽고 추한 마귀의 세력이 쫓겨나가고 새롭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과 교훈으로 듣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영접해야 합니다. 말씀의 권위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때 말씀이 우리 안에서 흥왕하여져 나를 통해서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많은 말씀을 알고 그것을 수준높게 해석하는데서 자신들의 권위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말씀을 많이 알고 또 수준높은 해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말씀에 권세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몇 말씀 아니 단 한마디 말씀이라도 심령으로 영접하고 확신을 가지고 증거할 때 거기서 말씀의 권세가 나오게 됩니다. 심령으로 깊이 영접하고 확신을 덧입은 말씀이 죄와 귀신의 세력을 몰아내고 변하여 새 사람되게 하는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우리는 신자로서 성경의 많은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모든 말씀을 다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한마디 말씀을 심령으로 깊이 영접하고 받는 것입니다. 그 한마디 말씀이 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이룹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말씀으로서 이 땅에 오셨고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한 마디 말씀을 심령으로 깊이 받아 말씀의 힘을 덧입고 확신있게 증거하므로 봄학기 큰 권능의 역사를 체험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권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습니다. 제가 한마디만 하면 사람들이 복종하고 그대로 되는 것을 자주 상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이제 집에 있는 애들도 조금 커서 뭐라고 하면 쫑알거리며 바로 순종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저는 그라운드에 올라 축구할 때라도 소리를 질러 자신의 권위를 세워보고자 하였지만 그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런 자신을 볼 때 어떻게 말씀으로 변화와 구원의 역사를 이룰 것인가 회의적이 되었습니다. 나이도 이제는 조금 들어 세대차가 느껴지고 말주변도 별로 없어서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쩌다 양을 만나게 되면 말씀만 주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전공인 군사학, 역사에서 소재를 끌어내어 관심을 끌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럴듯하게 잡다한 얘기로 관심을 끌어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본문의 네 제자와 같이 정말 소원 있는 양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람을 낚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에게 이사야55:10,11말씀을 심령 깊이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저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역사하고 열매를 맺게 된다는 확신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잘 모르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할 것이 아니라 그냥 단순하고 순수하게 말씀을 주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씀만 주었을 때 사람들이 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신입생 한 분도 제가 전하는 말씀을 들었고 또 센타에 몰래 와서 피아노 치던 형제도 제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말씀 자체에 힘이 있고 역사하는 능력이 있음을 체험하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확신을 가지고 말씀만을 전할 때 주께서 역사하사 사람들 심령 가운데 역사하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이런 믿음으로 봄학기 한마디 말씀을 심령으로 받고 단순히 말씀만을 증거하므로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사명을 힘써 감당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권세가 병 고치는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29-31절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나오셔서 시몬의 집에 갔는데 거기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사위 시몬이 잡으라는 고기는 안잡고 밖으로만 나돌아서 열이 난 것일까요? 왜 열병에 걸렸는지 알 수 없지만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므로 열병이 떠나가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일어나 예수님 일행을 수종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손을 잡아 일으키시면 어떤 열병도 순식간에 떠나가는 권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32,33절을 보십시오. 해가 저물자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의 도움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각종 병든 자를 고치시고 많은 귀신을 내어쫓으셨습니다. 보통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 하더라도 모든 병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 두 개만 확실히 고쳐도 명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치질로부터 온갖 난치병을 다 고치시는 명의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께 나가면 어떤 고질병도 나음받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40절을 보십시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나와 꿇어 엎드려 간구하였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나병은 천형으로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생각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나을 수도 없고 낫기를 기대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간구하였습니다. 그는 질병에서 깨끗해지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의 몸에 손을 대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아주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치의 병인 나병도 말씀 한마디로 깨끗케 하시는 권능의 주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역사하실 때 우리 가운데 모든 더럽고 추한 병이 물러가고 깨끗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을 믿습니다.

2.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35-39)
그러면 예수님은 이런 영적 권세를 어떻게 덧입으셨습니까? 3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은 지난 안식일 밤늦게까지 몰려든 병자들을 돌보시느니라 조금도 쉬지 못하고 일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새벽 아직 밝기 전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나가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지 기도하실 필요가 없으실 것 같습니다. 기도를 안하셔도 얼마든지 성령충만 하시고 권능의 역사를 계속해서 섬길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새벽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지치고 피곤할 수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귀신의 세력들, 질병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영력을 덧입으셔야만 했습니다. 이것을 위해 새벽 미명에 일어나 무릎 꿇고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신 것입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아무리 해도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데 예수께서 단번에 쫓아내시자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조차 이렇게 말씀하시고 기도하기에 힘쓰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더욱 기도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처럼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 하나님 앞에 나가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새벽은 조용히 하나님께 나가 그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력을 덧입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종들은 다 새벽을 깨워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8)"하였고 마틴 루터도 "내가 매일 새벽 2시간이상 기도하지 않으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 가운데 이동원 목자님도 새벽형 인간으로 변신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이며 영적인 에너지를 덧입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소원을 가지고 기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신 예수님을 배워 새벽을 깨워 기도하므로 성령충만함을 덧입고 봄학기 승리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나아와 말했습니다. 37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제자들은 몰려드는 사람을 보고 신이 나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제자들이 볼 때 지금은 그렇게 기도할 때가 아니라 몰려드는 사람 가운데 큰 역사를 행하실 때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38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서 전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분명한 가치관 가운데 사람들의 요구에 요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좋고 많이 모이면 사람들의 요구를 따라 원래 하던 것을 바꾸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큰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들의 요구와 현재 일어나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목적의식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 역사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고 맙니다. 한 우물을 파지 않고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던 기업들이 망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아시고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전진하셨습니다. 요즘 교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 본래의 사명보다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 방과 후 관리와 이혼 남녀들 관리 사역이나 노후를 맞이하신 어른들을 위한 모임 등등 교회가 본래의 역할보다 문화원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도 사람들의 반응이나 요구를 따라 목적을 잃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가운데서도 가까운 마을로 가서 전도하리라 하는 분명한 사명의 중심을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복음전파만이 생명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하고 이 핵심적인 사명을 줄기차게 감당해 나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권능으로 제자들을 부르시고 말씀을 전파하시며 귀신을 내어쫓으시고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권위 있는 새 교훈의 역사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 여전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권능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씀을 심령으로 받고 확신 가운데 증거하여 죄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영혼들을 건져내는 사람낚는 어부들로 귀히 쓰임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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