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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4-01 (일) 12:46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2_마가복음_4강_(홍승재)-1.hwp (28KB) (Down: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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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제4강] 열 둘을 세우시다
2012년 마가복음 제 4 강                                                         홍승재

열 둘을 세우시다

말씀/ 마가복음 3:1-19
요절/ 마가복음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오늘 말씀은 열두 사도를 세우신 내용입니다. 제자 양성은 예수님의 복음 사역 중 가장 핵심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 양성을 통해 생명구원 역사는 계승, 발전될 수 있었습니다. 제자 양성은 복음 역사를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하게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택하시고 사도로 세우게 된 직접적인 동기와 목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와 내 동역자들에게 두신 거룩한 소망을 깨닫고 이 시대를 섬길만한 사도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Ⅰ. 한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예수님 (1-12)

 1-12절에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시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오른손이 말랐다고 하였습니다 (눅6:6). 그는 마른 손이 안보이도록 호주머니 깊숙이 넣고 회당 한 구석에 숨어서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그도 남들처럼 두 손을 사용해서 개척적이고 자립적인 인생을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부장애는 그를 원치않게 어둡고 눈치보고 얻어먹는 슬픈 인생이 되게 하였습니다. 한 손이 마른 것으로 인해 그의 내면도 마르고 감정도 마르고 그의 인생 전체가 마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누가 보나 도움이 필요한 자였습니다. 그를 보신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사 먼저 도와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마음에 독을 품고 예수님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눈빛은 인자와 사랑이 가득찬 눈빛이었으나 이들의 눈빛은 정죄와 독기가 찬 눈빛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 손 마른 자를 고치시는가 엿보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 지도자들로서 안식일에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상처받고 소외된 양무리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 의해 자신들의 권위가 실추되자 시기와 미움으로 악한 일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회당 분위기는 이들로 인해 긴장감이 감도는 살벌한 분위기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 주고 싶어도 고치실 수 없습니다. 한 장애우 때문에 당대 권세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충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같이 보입니다. 또 그의 병은 안식일인 오늘 당장 치료해야 하는 급성 질환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쳐놓은 올무에 걸리실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한 손 마른 사람을 회중앞에서 일어서도록 하심으로 그들의 악함에 정면으로 도전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4) 이 말씀은 안식일에 무엇을 하는 것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근본정신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 즉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에 의하면 그날은 하나님께 예배하며 거룩하게 지키되 필요한 의무와 자비를 베풀기에 힘써야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그들이 잠잠하거늘"(4b) 그들은 마음이 들킨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분명 잘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살의를 품게 되자 그들은 더욱 잠잠해졌습니다.  이를 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습니까? 5a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마음의 완악함이란 잘못을 알면서도 회개치 않는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2:5절에서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면서 유대인들의 악함을 지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쌍한 영혼을 앞에 두고도 회개치않는 소망없는 종교지도자들을 볼 때 탄식하사 노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손 마른 사람에게 명하셨습니다. "네 손을 내밀라" 이 말씀이 순종하기 힘든 점이 무엇일까요? 그가 손을 내밀기 위해서는 자의식과 수치심을 이기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 했습니다. 또 엿보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미움을 받아 출교 당할 위험성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과연 고침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른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때 놀랍게도 그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그의 마른 손에 핏기가 돌고 근육과 신경이 완전히 (completely) 살아났습니다. 이와 함께 그의 마른 심령도 회복되었습니다. 그가 회중에 일어서서 내민 손은 바짝 마른 손이었지만 그 손은 믿음의 손, 순종의 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마른 손과 마른 심령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그의 망가진 인생을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도 슬픈 인생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추한 죄와 허물, 거듭된 실수와 어두운 과거를 있는 모습 그대로 주의 말씀 앞에 내 놓아야 합니다. 믿음의 손, 순종의 손, 기도의 손을 주님께 내밀어야 합니다.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의 마른 손을 내밀 때, 또한 내 양이 마른 손을 내밀도록 도울 때 주님께서는 능력으로 모든 인생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한 손 마른 사람의 놀라운 회복의 역사를 지켜본 바리새인들은 바로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는커녕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했습니다. 평소에는 철천지원수처럼 미워하던 헤롯당이었지만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이 순간 만큼은 둘도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외형은 지도자들이었지만 그 내면은 심판받아 마땅한 악인들이요, 종교의 탈을 쓴 악마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지도자들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의 형편은 어떠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잠시 쉬러 바다로 나가시자 큰 무리가 따랐습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심지어는 이방 땅 두로와 시돈에서도 많은 무리들이 몰려 왔습니다. 한마디로 다국적 백성들이었습니다. 어찌나 많은 무리가 몰려와서 예수님을 에워싸며 미는지 작은 배를 준비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을까요? 8b절을 보십시오.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그들은 예수님이 열병에 신음하던 환자, 추한 나병으로 고통받던 환자에게 손을 대시며 깨끗케 하시고 각색 병든 자들을 일일이 영접하시고 고쳐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 주시고 그 증거로 그를 일어나 걷게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버림받은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불쌍한 한 영혼을 살리려고 완악한 바리새인들에게 도전하신 예수님의 참된 사랑과 용기에 대해 들었습니다. 이런 소식들은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유대 사방으로 퍼졌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감격하고 예수님 보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구름떼 같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이들은 병마에 시달리고 더러운 귀신들려 울부짖는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의 거짓 지도자들에게 시달리고, 세상풍파에 시달리다가 지친 그들에게 예수님은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시대의 요구’란 말이 있습니다. 또 ‘역사가 부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물밀듯이 나아오는 이 무리들은 시대의 요구,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절실한 요구가 무엇입니까? 바로 양들을 사랑하고 양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한 목자 예수님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참된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99% 서민들의 생활고를 해결하고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줄 공평한 지도자, 치안을 확립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능력있는 지도자, 권모술수를 쓰지 않는 정직하고 도덕성을 갖춘 지도자, 사리사욕없이 민의에 귀기울일 수 있는 겸손한 지도자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 양들을 사랑하고 양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한 목자입니다. 사람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정말 원하는 것은 선한 목자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없이 유리방황하고 있는 인생들을 돌보시면서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II. 열 두 사도를 세우신 예수님(13-19)

  예수님은 이 시대 문제를 가지고 산에 오르사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찾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 열두 제자를 택하여 부르시고 그들을 사도로 임명하셨습니다. 이들이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복음역사의 계승자, 이 시대를 감당할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부르셨으며 그들을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또 이들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비전과 소망이 무엇입니까?

(i)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심(13)

 13절을 보십시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여기서 '자기가 원하는 자들'이란 공동 번역에 보면 '마음에 두셨던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평소에 눈여겨보시고 키우기로 마음먹은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를 볼 때 부르심은 전적으로 주님의 주권에 속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부르심은 어느 누구도 변개할 수 없는 절대적인 부르심입니다. 이는 부르심이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았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부르심은 온전히 은혜에 기초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면면을 한번 살펴봅시다. 이들에게 제자가 될만한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 있을까요? 그들은 대부분 갈릴리 어부 출신으로 신분이 낮고 학문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또 재산이 많거나 바리새인들처럼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이를 볼 때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된 것입니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팻말을 써 붙여 놓았다고 합니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플라톤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었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려면 뛰어난 성적뿐만 아니라 재정과 가문이 좋아야 합니다. 요즘은 왠만한 직장에 취직하려고해도 학력뿐만 아니라 어학, 봉사활동, 창의성, 재능 등을 매우 깐깐하게 따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학교에는 이러한 조건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 여기에는 은혜로 택함을 받은 자들은 모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한번 부르신 이상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에 큰 실수를 해도 잘릴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부르심입니까? 이 부르심에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나아온지라"(13b). 이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인격적으로 응답했음을 말해 줍니다. 부르심에 응답해야 주님께서 훈련하실 수 있고, 이 시대를 감당할 만한 제자들로 키우실 수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이들은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마음만은 준비된 제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귀한 재목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예수님께서 캠퍼스 목자로 원하시고 부르신 제자들입니다. 과거의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면 내가 어떻게 이런 인생을 살고 있는가? 신기하기만 합니다. 세상 조건이나 가정환경, 자격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 받을만한 아무런 꼬투리가 없어보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대학 초부터 주의 종들을 통해서 말씀을 받았지만 주님께 드린 것은 허물과 실수, 교만과 반발심 밖에 없던 자였습니다. 제 과거를 잘 알고 계시는 어떤 목자님은 저의 변화를 보고 진짜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체험하셨다고 말하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내 기준으로는 주님께서 나를 제자로 부르실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내 동역자, 내 양들을 캠퍼스 제자로 원하시고 부르셨습니다. 말씀을 몰라 죄와 죽음 권세에 짓눌여 신음하다 죽어갈 캠퍼스 영혼들을 위해 우리를 목자요 영적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 이 시대에 많은 문제들이 있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한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맡겨주신 한 영혼을 주님의 귀한 제자로 키워내는 이 사명이야말로 이 시대를 변화시키고 생명구원 역사를 이루는 원동력입니다. 주님은 이 부르심에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단순히 순종해서 나아온 우리 목자님들을 통해서 수많은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통해서 전세계 233개국 7000 캠퍼스를 복음화하는 성서한국, 세계선교의 위대한 사도행전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계십니다. 저는 지난 해 시카고 센터에서 전 세계에서 오신 많은 선교사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선교일선에서 많은 양들을 감당하시느라 고단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감당할 지도자로 불러주시고 세워주신 은혜에 기초해서 자발적으로 헌신적인 삶을 사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선교사님들 한분 한분을 영육간에 축복하시고 귀한 부르심에 더욱 합당한 삶을 사시도록 선하게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ii) 열둘을 세우신 목적(14-15)  

 예수님은 열둘을 택하여 세우셨습니다. 열둘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나온 것으로 온 세상 백성을 섬길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열둘을 택하여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4,15절을 보십시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첫째,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문하생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스승을 모시고 살면서 스승의 모든 것을 배웁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말씀을 배우고 기도를 배우고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병든 내면을 치유받고,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 양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예수님을 닮은 선한 목자로 성장합니다. 이 예수님의 교육 방법은 한 영혼을 다면적으로 키우는 전인 교육입니다. 현대인들은 지식과 기술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엄청나게 많이 습득하고 있지만 인격 형성을 위한 교양 교육을 받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개개인의 역량은 뛰어나지만 사회와 소통하고 더불어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교육 방법은 영육간에 성장하는 인격적인 산교육입니다. 이를 통해 세상적인 가치관이 변화되고 인격이 변화되고 존재가 변화됩니다.  

둘째, 전도하게 하십니다. 제자들은 세상에 나가서 주님께 배운 것을 증거하고 양들을 감당하는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즉 주님은 제자들을 자립적인 성경 선생으로 키우고자 하셨습니다. 생명구원역사는 결국은 말씀 역사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말씀의 샘을 파서 전하기만 하면 반드시 복음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연구하고 적용해서 밝히 증거할 수 있는 자립적인 성경 선생들로 성장해야합니다. 그러려면 한마디 말씀에 대한 도전과 체험이 있어야합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매일, 매주 마다 주시는 말씀에 겸손하게 귀 기울이고 또 이 말씀을 가르치는 성경선생의 직분을 온전히 감당킬 기도합니다.

셋째로,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십니다. 사람을 근본적으로 망가뜨리는 것은 시대 문제나 물질 문제나 인간 문제가 아니라 귀신의 세력, 즉 사단입니다. 사단은 첫 아담 이후 끊임없이 인간을 유혹하여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뜨렸습니다. 사단은 교묘하게 역사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파괴시키고자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제자의 삶에 대한 두려움과 갈등을 심어서 넘어뜨리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과 교회에서 내적, 외적으로 역사하는 사단의 역사를 분별하고 이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영적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의 전신갑주를 입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건져내는 믿음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악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영적 권세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iii) 예수님의 소망(16-19)

 예수님께서 부르신 열두 제자들은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특징이 있습니다. 시몬은 큰 소리를 잘 치며 나서기를 좋아하고 강한 것 같지만 연약해서 베드로(반석)라는 이름을 더해 주셨습니다. 반면 요한은 조용하지만 불같은 성격으로 약한 것 같으면서도 아주 강했습니다. 야고보는 인간적인 야심이 강하여 한번 물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 끈질긴 근성의 소유자였습니다. 안드레는 단순하면서도 긍정적이었고, 빌립은 복잡하면서도 부정적이었습니다. 마태는 세리답게 이기적이었고, 도마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일단 의심하는 의심의 달인이었습니다. 또 바돌로매는 사색적이었고 열혈당 시몬은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열을 올리는 행동가였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는 순진한 자요, 가룟 유다는 음흉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 각각 그들의 개성을 인정하시고 그 개성대로 키우셨습니다. 이는 각 족속의 목자로 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실 때 처음부터 그들을 사도로 임명하시고 키우셨습니다. 그들의 현재 모습을 보면 도저히 소망이 생기지 않았지만 주님은 그들의 부족한 면을 보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배우는 가운데 제자로 성장하여 장차 위대한 사도행전의 역사를 창조할 일꾼들로 보셨습니다. 우리도 나 자신을 볼 때, 또 내 자녀, 내가 섬기고 있는 양들을 볼 때 예수님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예수님처럼 현재 모습을 보지 않고 장차 변화될 모습을 보고 소망가운데 나와 내 자녀, 내 양들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악한 세대 가운데 12제자를 부르시고 세우심으로 인류구원의 소망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이 시대에도 주님은 부족하고 자격없는 우리를 부르시고 캠퍼스 목자요 영적 지도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원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 제자들입니다. 우리 모두 눈을 들어 나를 부르시고 사도요 영적 지도자로 인정해주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봅시다. 예수님의 소망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내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소망을 심령깊이 영접하는 가운데 이 시대를 감당하는 영적 지도자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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