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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9-02 (일) 12:19
분 류 고린도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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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가을학기준비특강 제1강]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2012년 가을학기 준비특강 제1강                                                         오정훈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말씀/고전1:18-2:5
요절/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지독히도 무덥던 여름이 한 풀 꺾이고 이제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선선한 가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2학기 개강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에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전도에 관한 말씀을 공부하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는 전도의 미련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미련함과 지혜로움이란 단어가 계속 대조되어 나옵니다. 이를 통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 미련함 가운데 이루고 계신 놀라운 구원역사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전도의 미련함으로 세상을 구원해 나가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확신 가운데 전도에 힘쓰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전도의 내용: 십자가의 도(18-20)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 교회에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돕기 위해 쓴 것으로 그 도시가 가진 여러 악영향과도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 고린도는 무역과 상업이 발달한 항구도시로서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도시였습니다. 그곳 아데미 신전에는 천명의 여사제들이 있어 매일 밤마다 거리를 휩쓸며 매음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사람하면 음란한 사람이란 뜻을 의미하였습니다. 음란과 방탕 술취함이 난무하는 고린도는 선원들과 주정뱅이들에게는 놀기 좋은 천국이었지만 정숙한 여인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헬라철학과 강력한 육신주의 영향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십자가의 도를 놓치고 그것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다시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였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기서 ‘십자가의 도’란 십자가의 말씀, ‘십자가의 진리를 담은 메시지를 말합니다. 당시 십자가는 살인자나 강도와 같은 흉악범이나 반란죄를 지은 자를 처벌하는 무시무시한 형벌이었습니다. 이 십자가 형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했던지 로마의 철학자이자 원로원의원이었던 키케로는 “십자가형은 로마 사람들의 눈과 귀에서 사라져야 할 형벌이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그리고 동시대 사람인 바로(Varro)는 “쾌락을 말할 때는 귀에 즐거우나 십자가를 말할 때는 귀에 거슬린다. 십자가라는 말의 거슬림은 십자가 위에서 당하는 고통에 필적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십자가에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었다고 하면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세상에 그런 엉터리 메시지가 어디 있나? 왜 하나님의 아들이 그렇게 미련하게 죽음을 당하냐’는 것이었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추구한 헬라인에게나 힘을 숭배했던 로마사람에게 십자가의 도는 무능한 자의 변명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들은 멸망당할 자들로서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반면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는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십자가 속에는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은 누구에게나 임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영접하므로 구원을 얻는 자에게만 임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변화되는 것,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는 것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들의 한없는 희생을 알 때 교만한 자가 고개를 숙이게 되고 음란한 자가 부끄러움을 알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들의 지혜로 십자가의 도를 안 받아들이고 멸망하는 자들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19,20절을 보십시오.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 있는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지혜 있다 하는 자의 지혜가 아무것도 아니고 그 총명이 쓸모없는 것임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당시 철학자 수사학자들은 지혜와 지식으로 세상에서 존경받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의 지혜와 총명은 구원을 얻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 시대에도 만인의 부러움을 살만큼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십자가의 도를 모를 때 지혜와 총명으로 추구하는 것은 결국 돈과 쾌락과 세상 영광과 자기 자랑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죽음과 함께 다 사라지는 것으로 인생을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총명이 없는 삶일 뿐입니다.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은 동방박사들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깨닫고 영접하여 영생을 얻고 묵묵히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과 현실의 어려움으로 십자가의 도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이 도를 잘 전하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대에 진정한 변론가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죄인을 구원하거나 변화시킬 지혜가 전혀 없습니다. 각서를 쓰고 혈서를 써도 안 되고 심지어 손가락을 자른다고 사람이 구원받거나 변화되지 못합니다. 죄인이 구원받는 길은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들을 향한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의 극치입니다. 죄로 인해 영원한 심판에 처할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 찬송드립니다. 현재 우리가 전도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반드시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는 영적 전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도록 섬기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21-25)
  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느니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도를 통해 하나님과 그 구원의 방법을 드러내셨습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전도를 통해서 전해지는 십자가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놀라운 능력과 기적을 구하는 유대인에의 입장에서 볼 때 전도는 미련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에게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구원을 말하고 하나님을 믿도록 한다면 환영을 받을 터인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전도한다는 것은 참으로 미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심오하고 고상한 철학을 추구하는 헬라인에게 십자가의 도는 너무나 비이성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죄에 빠진 사람을 구원할 길은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뿐이기 때문에 이를 전도하는 것입니다. 죄에 빠진 사람은 아무리 고상한 철학이나 학문적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스스로는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누군가 그 사람을 죄의 세력과 죄의 올무에서 건져낼 밧줄을 던져주어야 합니다. 이 구원의 줄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전도는 바로 죄의 늪에 빠진 사람들에게 구원의 줄인 십자가의 복음을 던져주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보기에 참으로 미련하고 답답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표적은 기적을 말하고 지혜는 이성적으로 이해되는 합리적인 사고를 말합니다. 여기서 유대인과 헬라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인들의 양면적 모습입니다. 이 시대 지성인인 대학생들은 힘든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을 위해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지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지 표적과 성공신화를 구합니다.  그런 절박한 현실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을 보면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우리는 미련하게도 힘든 현실 가운데 있는 지성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당장 힘든 현실 가운데 있는 지성인들에게 아무 도움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십자가 복음을 발로 차버립니다. 그러나 실상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이 표적을 구하고 성공신화를 구하는 지성인들을 진정으로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24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믿지 않은 자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거리끼는 것이요 미련한 것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어떤 죄인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십니다.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불타던 벤허를 사랑의 사도로 변화시킨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였습니다. 이기적인 레위를 성 마태로, 정욕으로 병든 어거스틴을 성 어거스틴으로 변화사킨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로마서 1:16절에서 말씀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힘든 현실 가운데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 시대 지성인들에게 실제적인 힘과 승리를 주는 것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를 붙들고 십자가를 증거하는 종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당시 수치와 저주의 십자가를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어리석음으로 보였습니다. 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심은 어쩔 수 없이 세상의 강한 세력에 무너지는 하나님의 약하심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가 세상 모든 죄인들을 살리신 최상의 지혜요 가장 막강한 힘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도하다가 배척받거나 무시당하면 “때가 되어야지, 마음이 준비되어야지, 무조건 전도하는 것은 시간만 낭비하는 어리석은 짓이요, 전도가 별 도움이 안되는 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점점 의욕과 열정을 잃고 가만히 앉아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자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어두운 땅에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복음을 전파한 선교사님들을 통해 이 땅이 복음의 땅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미련하게 보이는 전도의 십자가에 대한 자세를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요즘 고린도 성도들처럼 타이틀을 자랑하고 인간조건을 자랑하며 전도의 십자가는 멀리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도의 십자가는 인간조건이 꿀리고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나 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인간조건을 내세워 이를 힘써 감당하지 않으려 합니다. 전도의 십자가를 지는 것을 꺼려하고 고상한 전도인이 되는 길이 없는가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 확신을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힘써 전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말씀을 통해 십자가만이 죄인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가 됨을 배우게 됩니다. 제가 이 확신 가운데 십자가의 복음을 힘써 전해야 하는데 전도의 사명이 부담스러워 이를 잘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고상한 것을 좋아하는데 무지막지하게 양들에게 달려들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고상한 척하며 센터에서 편히 있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한번 캠퍼스에 나가면 양들이 확 걸려드는 그런 표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또 양들의 귀가 솔깃해질만한 멋진 이야기가 어디 없나 찾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조금은 미련스럽고 우직하게 캠퍼스에 날이면 날마다 나가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존경하는 사모님들과 자매 목자님들을 통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을 구원하는 길은 전도의 미련한 길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미련하다 거리낀다 하여도 힘든 현실문제와 죄로 인해 괴로워하는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전도의 미련한 길 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이를 영접하고 미련하고 우직한 마음으로 캠퍼스에 나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종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3. 전도의 힘: 성령의 능력으로(1:26-2:5)
  26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인간적으로 뛰어난 자들이 별로 없다고 말합니다. 보통 자신의 교회에 대해서 말할 때 거꾸로 얘기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교수님도 있고 대기업CEO도 있고 대통령도 있습니다. 그래야 교회가 빛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그들 가운데 지혜로운 자, 영향력 있는 자, 집안 좋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이 인간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있음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27,28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하나님은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세상의 미련한 것들, 세상의 약한 자들을 택하사 세상일에 지혜롭고 강한 자들, 세상 성공에 눈이 밝아 하나님의 택하심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 지혜와 능력을 믿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자들을 택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무 자랑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마음이 한없이 낮아진 자들을 택하사 구원하시고 쓰십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29) 고린도 교회에는 자기 자랑으로 인해 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단치도 않은 인간조건으로 자기자랑하고 편을 갈라 싸움을 하였습니다. 이들이 세상의 미련한 자들, 약한 자들인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을 때 곧 마음이 부요해지고 세속화 되어 분쟁이 끊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사람이 죄악된 본성으로 인해 교만해지고 세상 욕심과 이기심으로 성령의 그릇을 깨고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는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정여사’란 프로를 보면 자신이 대단한 고객이라는 것을 내세워 물건을 무조건 바꾸어줄 것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인형개에게 ‘물어’ 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정여사든 김여사든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설 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대단하지도 않는 학벌과 능력과 인간조건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회개하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이 되게 하려 함이라(31)”
  2:1,2절입니다. 어떻게 사도 바울은 놀라운 복음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까? 그의 전도의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아니하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전하고자 작정하였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뛰어난 말재주로 아덴에서 설교하다가 큰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곳을 떠나 고린도에 와서는 아예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고자 작정하였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가 고린도에 갔을 때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 말합니다.
  4,5절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사도 바울은 사실 백전노장의 복음 전파자로서 얼마든지 자기 경력과 경험을 내세워 노련하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과 경외함으로 복음역사를 섬겼는가를 말해줍니다. 바울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않고 다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성령을 의지했을 때 그 가운데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캠퍼스에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캠퍼스의 죄악된 분위기와 복음을 배척하는 분위기로 인해 복음 전하기가 심히 두렵고 떨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때로는 선배의 권위로, 인간적인 친절과 사랑으로 양들을 설득해야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적 지혜와 능력이 전도의 힘이 될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복음을 영접하고 변화되는 것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믿고 성령을 의지해서 캠퍼스에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의 도는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이 십자가의 도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전파됩니다. 이 복음역사는 사람의 지혜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자신의 힘이나 경력을 의지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순전하게 성령을 의지하여 생명구원 역사를 섬기는 새 마음, 새 믿음의 종들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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