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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08-25 (일) 13:13
분 류 골로새서
첨부#1 2013년_골로새서_제1강_(한아브라함)-1.hwp (27KB) (Down: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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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골로새서 제1강] 모든 충만이 예수님 안에

2013년 골로새서 제1강                                                                   한아브라함

모든 충만이 예수님 안에

말씀/ 골로새서 1장
요절/ 골로새서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가끔 우리모임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해보곤 합니다.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행복할까? 관심을 갖게 됩니다. 또 가끔 이 분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는 되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사명을 떠난 삶은 좋아 보이지 않다는 것과 어려움을 슬기롭게 잘 극복했더라면 더 귀하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정체기, 혼돈기에 접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심령에 은혜가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성장이 없습니다. 사명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골로새서는 이런 배경으로 쓰여진 서신입니다. 골로새는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작은 도시입니다. 동서교통의 중심지였지만 그렇게 유명하거나 중요한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이 쓴 서신 골로새서를 통해서 더 유명해졌습니다. 이런 별 볼일 없는 도시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제자 에바브라가 이곳에 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바울의 두란노 서원에서의 강해를 통해 회심하고 제자가 되어 골로새에서 복음을 전하자 이 땅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잘 성장하다가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헬라의 영지주의와 유대의 율법주의가 혼합된 이상한 이단이 활개 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하여 흔들리는 골로새 성도들의 신앙을 붙들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부흥기를 지나고 시련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밖으로는 영적인 무관심으로 인한 성장의 둔화, 교회 안으로는 성도들 간의 갈등, 다툼으로 인한 상처, 이단의 무차별적인 교회의 침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2학기를 준비하면서 골로새서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잘 배우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위에 굳게 서서 성장하고 열매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충만함을 누림으로 승리하는 신앙으로 새 출발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를 형제 디모데로, 골로새 성도들을 신실한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친 형제들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바울은 골로새 형제들을 위해 자주 기도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보통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점을 먼저 지적하고 돌이키도록 도와야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문제가 있긴 하지만 문제는 문제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비록 자기가 직접 돕고 복음으로 낳은 자들은 아니지만 귀하게 여기며 진심으로 도와주고 있는 것입니다. 4-5절은 감사하는 이유입니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첫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이 갖고 있는 믿음이요 둘째는,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이요 셋째는,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입니다. 이들은 목자가 전해준 말씀을 그대로 받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사랑 할 줄도, 사랑 받을 줄도 모르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러던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맛보고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과거에는 땅에 코 박고 살았습니다. 이 땅에 재물을 쌓는데 열심이었습니다. 이제는 변화되어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멋진 신앙 뒤에는 눈물로 섬긴 목자 에바브라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신앙이 정체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계속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정체가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9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바울은 듣던 날부터 이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그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새벽마다 기도제목 표를 만들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로는 축복을, 때로는 시련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으로 그의 뜻을 이루십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허물과 죄로 죽었던 한 영혼이 거듭나 새 사람이 되면 그 빈 그릇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순수한 욕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싶은 열정이 생깁니다. 이것이 신령한 지혜와 총명입니다. 세상에는 좋아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유혹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지 않고 다른 것으로 채우면 어떻게 될까요? 금새 병들어 버립니다. 오직 말씀으로 채울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인생의 나아갈 길을 알게 됩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말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둘째,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라게 하시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으십니까? ‘주께 합당하게 행하라’ 하십니다. 지식만 쌓고 행함이 없으면 이론적인 신앙이 되어 버립니다. 힘이 없습니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경건한 습관을 몸에 익혀야합니다. 병원에 몸이 아픈 환자들이 오면 그분들이 똑같이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술, 담배 끊고 음식 골고루 잘 섭취하고 운동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의사들은 맨날 똑같은 소리하냐고 말합니다. 똑같은 소리 해야죠. 이것이 진리이니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말씀을 잘 먹어야 하고 영적인 운동을 해야 하죠. 영적인 운동은 행하는 것입니다. 즉, 행함이 있어야죠. 경건한 습관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장이 멈추고 영적인 비만에 걸립니다. 합당하게 행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내적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됩니다. 성장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셋째, 능력을 구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영광의 힘이 무엇일까요? 기독교 신앙 안에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능력을 영광의 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힘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임하는 성령의 능력을 말합니다. 언제 영광의 힘,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까? 성도들이 모여 살아있는 예배를 드릴 때 모임 가운데 임재하시며 엄청난 성령의 능력이 부어 집니다. 이 능력이 홍해를 갈랐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렸으며,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 개개인이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께 나아가 말씀의 은혜를 받고 기도할 때 위로부터 성령의 능력이 부어집니다. 이 능력이 세리 마태가 변화되어 성 마태의 삶을 살게 했습니다. 이 능력이 핍박자 바울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능력의 사도가 되게 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면 알 수 없는 기쁨이 내면으로부터 샘솟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오래 참음에 이르게 됩니다. 전에는 시험이나 환란을 만나면 쉽게 무너졌습니다. 이제는 기쁨으로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게 됩니다. 착각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죄 문제로 괴로워 하다가 수양회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은혜 받고 구원 받습니다. 영혼의 자유와 기쁨을 맛봅니다. 그런데 이제 변화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면 세상 사람들이 박수 쳐주고 격려합니까? 그렇지 않지요. 막상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데 왜 어려움이 있나? 왜 기쁨이 없냐?” 하며 자기 문제로 보지 않고 모임 문제로 봅니다. 우리 모임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며 “다 배웠다.” 하고 떠나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동안 배운 것까지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제 시작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우는 즉 인내의 학교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오래 참음과 견딤을 배우고 성장해야 합니다. 한참 성장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 충만함으로 능력을 덧입고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넷째,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했습니다.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빛 가운데서.” 골로새 성도들은 그동안 어두움 가운데 살았습니다.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을 따라 우상숭배하며 죄가 죄인지도 몰랐습니다. 일생 죄의 열매를 맺으며 비참하게 살다가 죽어 심판받을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고 빛의 자녀가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12절을 다시 보십시오.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게다가 기업의 부분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영광스런 직분을 주셨습니다.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 주셨습니다. 내가 무엇이길래, 한국 백성들이 무엇 이길래,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세상 가운데서 우뚝 세워 주시는 것입니까? 일방적인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자신들에게 임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마땅히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 제목을 일일이 머리로 세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범사에 감사했습니다. 감사하는 신앙은 건강합니다. 강력합니다. 우리도 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마땅히 심판받을 어둠의 자식들이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까? 감사 제목들을 세어 보아야 합니다. 감사 제목들을 머리로 세 보십시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어서 우리가 얻게 된 속량, 즉 구원과 죄 사함을 주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remind 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5절을 보십시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 이십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다고 하나님이 안계시거나 형체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으로 감히 볼 수 없고 우리 이성으로 제한할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 이십니다. 그런데 이단은 “피조물보다”를 “피조물 중에서” 먼저 나신이라고 살짝 바꿉니다. “피조물 중에서”로 살짝 바꾸면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수님도 창조물에 불과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 이십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세상만물이 그에게서 창조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잘나서 왕권 주권 권세들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폼을 잡습니다. 그리고 그런 권세가 영원할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는 주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일정기간 주의 뜻대로 사용하다가 때가 되면 거두어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주의 뜻대로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로 말미암아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주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마땅히 이 땅에서는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 이십니다. 머리는 몸의 모든 것을 지시합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함으로 칭찬을 받더라도 예수님이 빠지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나신이 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을 줍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모든 충만으로 거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충만이 있습니다. 당시 이단들은 예수님 말고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고, 충만하다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충만이 무엇일까요? 사도요한은 예수님 안에 있는 충만을 보고 외쳤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예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이십니다. 이 광활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오묘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지혜와 권능이 충만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안에는 십자가의 구속의 사랑이 충만합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보배 피를 흘리신 주님의 구속의 사랑! 누군가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을 때 기쁘고 행복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자기 아내에게 폐의 일부분을 떼어 주었던 사람이 또 다시 신장을 떼어 주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면 한쪽 폐, 한쪽 신장을 떼어줄 수 있을까요. 이분의 아내를 향한 지극한 사랑에 감동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 뿐인 심장을 이식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내놓지 못할 거예요. 내놓으면 죽으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 뿐인 목숨을, 온 몸을 내어 주심으로 죄 투성이인 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사랑이 충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 뜨거운 심장으로 사랑하신 것입니다.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사랑하신 것입니다. 눈부시도록 찬란하고 아름다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이 모든 충만함을,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충만하신 예수님만을 갈망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에서 다른 것을 추구합니다. 돈을 추구합니다. 명예를 추구합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합니다. 더 자극적인 쾌락을 갈망합니다. 편리함을 갈망합니다. 더 편하게 살고자 합니다. 집도 아파트에서 그것도 “이 편한 세상” 아파트에서 살고자합니다. 우리는 충만함의 자체이신 하나님을 갈망하고 추구해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에이든 토저는 “하나님을 추구함”이란 그의 저서에서 충만하신 하나님을 추구함으로 누구보다 풍성한 인생을 산 사람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을 예로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기 까지 약속의 자녀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고 충만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충만함을 누렸습니다. 다윗의 생애는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영적 열망으로 불탔습니다. '시편은 하나님을 찾는 자의 부르짖음과 하나님을 찾은 자의 기쁨의 외침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악된 세상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22절을 보십시오. 여기서 주목해야할 단어는 화평, 화목입니다.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로 얼룩진 인간이 화평케 될 수 있을까요? 이는 주의 거룩하신 피, 보배로우신 피가 흘러야 가능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피의 은혜를 덧입은 사람은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게 됩니다. 이 십자가의 피의 은혜를 덧입은 사람은 화목케 하시는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평케 된 사람이 비로소 이웃과의 관계도 화목을 누리게 됩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는 다툼과 분열이 충만 했습니다. 헬라의 영지주의, 유대의 율법주의의 이단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었던 것이죠. 다시금 십자가의 피로 화목케 되기를 하나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가 하나 될 수 있을까요. 23절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피로 깨끗케 된 후에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가능하리라. 믿음에 거하고 복음의 소망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신앙생활 오래해도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것 같은 나의 죄성, 어려워만 보이는 교회 안에서의 하나됨과 성장, 이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하다고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복음 신앙 위에 굳게 설 때 성령께서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형제의 허물을 바라보고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주의 말씀을 붙들고 오직 주만 바라보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그의 선하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외냐하면 이 복음은 이미 천하 만민에게 전파되었고 증명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바울이 이 복음의 일꾼이요 증인이 되어서 온 몸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겠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셨다 하시고 운명하셨는데 무슨 고난이 또 남아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을 믿고 십자가의 피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구원역사는 다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삶속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답게 사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의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고난을 감당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을 성장하도록 돕고 섬기는 양육의 고난을 감당했습니다. 중보기도의 고난을 감당했습니다. 특별히 이방인을 구원하는 역사에 자신을 던졌던 것입니다. 이 은혜의 복음이 돌고 돌아 백 년 전 우리에게 전해졌던 것입니다. 당시 귀신을 섬기던 한국 백성들에게 임한 복음은 뜨겁게 역사했습니다. 평양 대부흥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이 비밀의 영광이 오늘날 이방인인 한국 백성에게 얼마나 풍성하게 나타난 것입니까? 장차 이방인들 가운데 나타날 비밀의 영광의 주인공이 바로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인 것을 바울이 알았을까요? 잘 몰랐겠죠.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방인 가운데 비밀의 영광이 풍성하게 나타날 것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이 소망 가운데 이천 년 전 바울이 힘을 다하여 수고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 안에 있는 충만함, 예수님 안에 있는 충만한 구속의 사랑을 통해서 은혜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말씀에 기초하여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께 집중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은 그저 내 삶의 부분인가? 저는 하루 중에 많은 시간을 직장인 병원에서 보내고 예수님 보다 내 자신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말로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섬긴 답시고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였습니다. 내안에 있는 뿌리 깊은 이기심으로 사랑이 없는 자요 양들을, 동역자들을 제대로 섬길 수 없는 자였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께 집중하고 예수님께 뿌리내리고 성장하고자 결단케 되었습니다. 제가 한 영혼을 사랑하고 섬기며 동역자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로 변화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 안에는 지혜와 권능이 충만합니다. 구속의 사랑이 충만합니다. 예수님 안에는 모든 것이 충만합니다. 주님은 모든 것 되시는 주님입니다. 예수님께 더욱 가까이 가고 예수님께 뿌리내리는 삶을 삶으로 열매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충만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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