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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09-01 (일) 12:35
분 류 골로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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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골로새서 제2강] 그 안에서 행하라

2013년 골로새서 제 2 강                                                                   최  동  진

그 안에서 행하라

말씀/ 골로새서2:1-23
요절/ 골로새서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을 주로 받은 자가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줍니다. 사도 바울은 헛되고 거짓된 철학을 분별하여 세상의 헛된 것을 좇지 않고 예수님 안에 깊이 뿌리박음으로 굳게 서라고 권면하십니다. 이 시간 영향력 있는 믿음의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1-7)
 1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1)”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 교회는 에바브라가 개척한 교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곳 성도들을 위해 얼마나 힘쓰는지를 그들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서 ‘힘쓴다’는 것은 영어의 agony에 해당하는 말로써 몸부림치는 고통의 절정, 필사적인 사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고뇌하며 겟세마네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던 모습을 기록할 때에도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눅22:44)  당시 골로새 지역에는 갖가지 철학이나 이단 사상, 유대의 율법주의들이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칫 호기심에 이끌려 이런 저런 말을 듣고 배우다 보면 미혹되기 쉽고 복음 진리를 상실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그들을 늘 생각하며 영적으로 죽어가는 양들을 위해 안타깝고 간절한 마음으로 힘써서 기도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첫째, 마음에 위안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단순히 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주고 힘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그들을 위해 얼마나 애써 기도하고 있는가를 알므로 그들이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어 이단 사상의 공격으로 인한 힘든 상황에 대처하기를 원했습니다.
둘째, 사랑 안에서 연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성품이며 기독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 상대방을 존중하고 서로 낮아져 섬기고 희생하기에 힘쓸 때 사랑이 풍성한 공동체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런 모임에 이단의 세력이 발을 붙일 수 없게 되고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모임이 됩니다.
셋째,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이란 그리스도에 대해 어설프고 막연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조금의 회의나 의심도 없이 완전하고 확실하게 아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알고 있다면 마음에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예수님이 나의 구주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모든 상황이 좋을 때는 확신이 들어서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지 할 것 같다가도 좋지 않을 때는 내가 너무 유별나게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완전한 확신이 없을 때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다가 사람들의 말에 쉽게 미혹되어 넘어지게 됩니다. 또 실제 생활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핍박당할 때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골로새 성도들이 이단에 미혹된 것은 이런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어떤 불이익과 핍박과 조롱을 당하든지, 심지어는 목숨의 위협을 받을지라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 소원이 없는 자에게는 감추어져 있고, 영적 소원을 가지고 간절히 찾는 자에게는 열려 있는 공개된 비밀이십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영적 소원을 가지고 찾는 자만이 이 비밀을 깨달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b)”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로서 알면 알수록 신비스러운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3). ‘지식’은 ‘그노시스’로서 진리를 이해하는 힘이라면 ‘지혜’는 ‘소피아’로서 그 진리를 논리화하여 그것들의 관계를 추구해 나가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지혜와 지식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질서를 세우시고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고 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가고 계십니다. 그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삶의 의미와 목적이 있고  참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 안에 참 평화와 희망이 있고 시들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가득한 하나님의 비밀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도 ‘교묘한 말’ 즉 그럴듯하게 들리는 거짓 이론으로 그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4). 바울은 비록 몸으로는 그들을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이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공격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6,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원문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할 때 ‘주’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만이 나의 영혼을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할 유일한 주요 그리스도가 되심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이르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는 분으로서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요14:6) 사도 베드로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로 인한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을 얻으려면 예수님을 나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이제는 과거의 삶, 세상과 자기가 주인이 된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에 대해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가르쳐주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4,5,7)”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말씀을 붙들고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실생활에서 예수님을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과거 그들은 예수님 밖에 거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세상 가치관대로 살면서 죄악된 열매를 맺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이 구원을 받고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된 것이야말로 그 어떤 은혜 중에서도 큰 은혜입니다. 예수님 안에 행하는 삶을 통해 어떤 열매를 맺게 됩니까?
첫째로, 그 안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바울은 먼저 식물의 비유로 권면합니다.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크게 성장하고 열매를 맺으려면 뿌리가 얼마나 깊이 박혀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멋있는 나무라도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얼마 못가 시들어 죽고 맙니다. 또 뿌리가 깊이 박히지 않으면 비바람이 불 때 넘어지게 됩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해도 성장이 없고 삶의 열매가 없는 이유는 예수님 안에 뿌리박지 않고 예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 걸쳐놓고 신앙생활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뿌리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예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다가 모든 것을 다 잃고 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과 롯은 같이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아브라함은 말씀에 깊이 뿌리내린 생활을 했고 롯은 말씀에 뿌리 내리지 않고 세상과 양다리 걸치고 자기 유익을 좇아 신앙생활 했습니다. 그 결과 롯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죄의 열매만 남기는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말씀에 뿌리 내리기 위해 손해도 보고 아픔도 겪었지만 믿음의 거목으로 성장하고 생명의 열매 맺는 복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열매 맺는 인생을 살기 위해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고 예수님을 배우고자 투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3:10,1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되 예수님의 인격과 그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권능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에게 깊이 뿌리를 내렸을 때 기독교 역사에 길이 빛나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기초로 견고한 인생의 집이 지어지게 됩니다. 집을 짓는 데에는 기초가 중요합니다. 기초가 든든하지 못할 때 태풍이나 지진이 나면 무너지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가장 견고한 기초가 되십니다.(고전3:11)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아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짐이 심하다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아서 인생에 비바람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마7:24-27) 이는 인생의 집을 견고하게 지어 나가기 위해서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를 두고 인생의 집을 지은 자는 환란이나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나 죽음의 풍랑이 몰아칠 때 결코 넘어지지 않고 견고히 설 수 있습니다.
셋째로,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섬으로 감사함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의 본성은 가만히 있으면 감사보다 불평이 절로 나옵니다. 불평할 때 사탄의 시험에 들게 됩니다. 불평은 자신도 불행하게 만들고 주위 사람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감사는 자신도 행복하게 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합니다. 누워서만 지내는 중증 뇌성마비 환자들은 앉을 수만 있어도 행복해 합니다. 앉아서만 지내는 환자는 자기 스스로 밥을 떠먹을 수만 있어도 행복해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감사할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현재 살아 숨쉬며 두 손과 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감사함 없이 무덤덤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8). 감사하되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를 넘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받은 바 말씀을 기초로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고 영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받은바 은혜에 뿌리 내릴 때 예수님께 대한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매 순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II.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주의하라(8-23)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침투하여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단의 정체를 파헤치면서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하신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8).” 사도 바울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주의하라고 경계합니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란 영어로는 ‘hollow and deceptive philosophy’로서 ‘헛된 속임수인 철학’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철학(philosophy)이란 말은 philo(사랑)+sophy(지혜)로서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철학은 인간의 이성을 사용하여 참된 지혜를 추구하며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가 생각하도록 해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철학을 인본주의의 도구로 이용하였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고, 하나님을 부정하고 우주와 인간에 대해서 그럴듯한 이론들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철학자들은 궤변과 같은 언어유희에 빠져 화려하고 멋있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헛된 속임수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 내의 유대 율법주의와 영지주의 모두 전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에 기초를 두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리일 수 없습니다. 세상의 초등학문이란 알파벳 문자의 ABC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모든 일의 초보적 원리를 뜻합니다. 이는 철학이나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천사숭배, 금욕주의 같은 것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 초등학문에는 당시 최고의 과학으로 여겨졌던 점성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사람의 행불행이 별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황제들도 별의 충고를 받지 않고는 한 발짝도 내디디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한마디로 별의 노예였습니다. 별의 지배를 받을 때 운명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왜 그리스도만을 따라야 합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영지주의자들은 육은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올 수 없다고 생각하여 성육신의 진리를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셨습니다. 사도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의 모든 것을 보았을 때 감격하여 외쳤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그 충만이 성도들에게도 임하여 예수님 안에서 충만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노래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37).” 우리를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로서 천사들을 포함해서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는 유일하고도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여질 수 있습니까? 11,12절을 보십시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할례와 육신의 할례를 대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할례는 손으로 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할례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할례입니다. 육신의 할례는 육체의 일부분을 자르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할례는 육체의 전부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으로서 육의 모든 정욕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육신의 할례는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장차 올 그리스도의 할례의 모형이요 그림자였습니다.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셨기 때문에 육신의 할례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할례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연합하게 됩니다. 이로써 우리는 부활의 새 생명과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역사가 무엇입니까? 13-15절을 보십시오,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우리는 본래 유대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육체의 무할례자들이었습니다. 구원 받을 꼬투리가 조금도 없고 예쁘게 봐줄 이유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하셨습니다. 나아가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깨끗이 지워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법조문으로 쓴 증서는 모세의 율법과 그에 따르는 모든 규례들을 가리킵니다. 율법 아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께 빚진 자가 되며 율법은 채무 증서와 같이 우리의 죄를 고발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범한 죄를 낱낱이 기록하고 우리를 거스르고 대적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저주스러운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우리의 채무를 대신 갚으시고 우리의 죄의 기록을 흔적도 없이 완전히 지워버리셨습니다. 옛날에는 법적인 선고가 무효가 되었을 때 게시판에 고정시켜 못을 박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를 거스르고 대적하고 고소하는 율법의 기소장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여기서 통치자들과 권세는 사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왕 노릇 해왔던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셨습니다. 무장해제 시키고 포로로 사로잡으시고 영광스러운 승리의 개선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로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완전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로,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유대교의 율법주의자들은 먹고 마시는 것과 각종 절기와 안식일을 잘 지켜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로서 오실 그리스도를 위해 예비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오신 후로는 이런 것들은 아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 같은 것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막7:14-23) 또 성령께서는 율법주의에 매여 있던 베드로에게 율법에서 금한 온갖 부정한 음식들을 보여주시면서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고 하심으로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셨습니다.(행10:9-16)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로, 천사숭배사상을 경계해야 합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당시 천사 숭배자들은 사람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직접 섬기는 것은 교만한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역할을 하고 있는 천사를 숭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겸손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천사숭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겸손을 꾸며낸 것이었습니다. 또 그들은 그 본 것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주관적 체험을 앞세웠습니다. 나아가 이들은 육신의 생각, 즉 타락한 본성과 감정에 따라 그것마저 헛되이 과장했습니다. 그들은 겸손한 척 하였지만 실상은 헛된 환상으로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되신 예수님은 몸인 교회의 각 지체들이 균형있게 성장하고 활동하도록 양육하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온전히 연합하여야 합니다.
셋째로, 금욕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금욕주의자들은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기 위해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며 세상의 초등 학문의 지배에서도 벗어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한 때 쓰이고는 폐기될 사람들의 명령이나 가르침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지혜롭게 보이고 좋아 보이지만 육체의 죄의 소욕을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에는 조금도 유익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서 나온 것으로서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참된 만족과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랑과 은혜와 생명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젊은 날 예수님께 인생의 기초를 놓고 예수님 안에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깨닫고 깊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과거 세상 가치관을 좇아 세상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자기만을 위해 살던 자였습니다. 캠퍼스 시절 진료봉사 동아리에서 활동도 하며 나름대로 의미있고 고상한 삶을 살고자 애를 썼지만 어디에서도 참 만족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기심으로 병들고 지치고 피곤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저를 일방적으로 찾아오사 나의 그리스도가 되어주시고 예수님 안에서 새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부족하지만 예수님 안에 거하며 예수님께 인생의 뿌리를 내렸을 때, 때마다 진리의 말씀을 공급해 주시고 세상 죄의 유혹에서 지켜주시고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저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셨습니다. 갈수록 복잡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우리를 현혹시키는 것들이 많은 이 시대에 말씀에 더욱 깊이 뿌리 내림으로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지키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가 넘치게 하시고 생명의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이 구원을 주는 대단한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그리스도의 충만함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공허한 것들에 불과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믿는 자에게 완전한 승리를 주신 예수님 안에서만이 참 자유를 누리며 진정한 기쁨과 만족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박고 우리 인생을 주와 복음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는 가운데 생명의 열매가 차고 넘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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