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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8-17 (일) 13:13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4_마태28강-1(한아브라함).hwp (55KB) (Down: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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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28강] 화 있을진저

2014년 마태복음 제28강                                                                한아브라함

화 있을진저

말씀/ 마태복음 23:1-39
요절/ 마태복음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참된 지도자 상을 가르쳐 주십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심하게 책망하시며 이런 지도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도자가 되도록 권면하십니다. 지도자가 경계해야 할 일곱 가지 화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또 화를 선포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듣는 자도 힘들지만 전하는 자는 더 힘든 것입니다. 누구나 복을 선포하기는 좋아하지만 화를 선포하는 것은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은 슬며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듯이 주님의 책망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겸손히 잘 배우면 한없이 유익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추상같은 책망 속에서도 주님의 안타까운 심정과 사랑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수님의 사랑의 책망의 음성을 잘 들음으로 우리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그들을 본받지 말라 (1-12)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특히 제자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당시에 영적 지도자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라 하십니다. 서기관은 율법을 해석하고 규례를 만드는 전문적인 율법학자들입니다. 바리새인은 헬라 정복당시에 헬라화 되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 구별된 거룩한 생활을 하려고 애쓰던 자들이었습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즉,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그들의 역할은 인정하셨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3절을 다시 보십시오. 첫째,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르친 모세 율법은 구구절절이 다 옳은 말씀이었습니다. 게다가 복잡한 율법조항을 만들어 이를 지키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짐을 지는 데에도 마땅히 앞장서야 했습니다. 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본이 되기는커녕 무거운 짐은 다른 사람의 어깨에 지우고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사람 앞에서 신앙생활 했습니다. 주님은 이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보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그들은 말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경문은 성구를 쓴 종이를 담은 작은 상자입니다. 이곳에 출애굽기 13:1-10, 13:11-16, 신명기 6:4-9, 11:13-21, 네 가지 성구를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을 아침기도 때 띠로 이마와 왼팔에 달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에는 아예 부적처럼 온종일 몸에 달고 다녔습니다. 사람들 눈에 잘 띄도록 넓고 길게 하였습니다. 옷술도 길게 하여 자신의 경건성을 사람들에게 과시했습니다.
  또한 높은 자리에 앉고자 했습니다.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하고 랍비라 칭함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목 말라했습니다. 하루라도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지 않으면 못견뎌했습니다. 참된 지도자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 사람에게만 잘 보이려고 하면 형식적이 되고 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누구나 어느 정도는 사람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을 받고자 애씁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전혀 되어있지 않으면서 다 된 사람인양 행동하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형식과 위선의 악영향은 유대교가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종교가 되게 했고 예수님을 배척하고 멸망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UBF 목자인 우리도 이런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1:1팀 수를 올리기 위해서 여러 양들을 만납니다. 전도지를 그냥 뿌립니다. 양들에게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해야 한다 가르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그렇게 행하고 있는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문제를 아시고 경고하십니다. 8,10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랍비라 칭함 받지 말라.” “지도자라 칭함 받지 말라”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진정으로 위대한 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진정으로 큰 자는 높은 위치나 타이틀, 뛰어난 스펙이 아니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임을 말해줍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자가 되기 위한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섬김과 겸손에 있습니다. 영화 벤허를 보면 말 경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벤허가 평소에 지극정성으로 말들을 섬기며 보살폈습니다. 이 말들은 주인의 빨리 달리라는 격려의 음성을 들으며 달렸습니다. 반면에 다른 경쟁자들은 채찍으로 후려치면서 빨리 달리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경주에서 누가 이겼습니까? 섬김과 격려를 받은 벤허의 말들이 이겼습니다. 세상에서는 큰소리치고 때려야 말을 잘 듣고 사회의 질서가 잘 잡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런 식으로는 안 됩니다. 사랑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임으로 격려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성장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사랑으로 섬기고 잘 격려하는 자입니다. 또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자가 위대한 자입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재주가 많아도 교만하면 하나님이 쓰실 수 없습니다. 모세가 40세에 자신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자만심이 충만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안 쓰셨습니다. 40년 후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자라는,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그릇이 되었을 때 그를 위대하게 하시고 쓰셨습니다.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아닌 자입니다. 하나님 없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백하며 동역자들을 업신여기지 않는 겸손한 종이 큰 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섬김과 겸손의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화 있을진저 (13-39)
  예수님은 계속해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일곱 번이나 “화 있을진저”하며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처음에 산상수훈에서 여덟 가지 복에 대하여 말씀하심으로 지도자의 내면성을 갖도록 격려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일곱 가지 화에 대하여 말씀하심으로 지도자가 경계해야 할 것을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화”는 curse 즉, 저주의 의미가 아니라 owe to입니다. 즉, 제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삶, 외식적인 삶을 계속 살다가는 멸망이요 심판이다”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오도록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화를 면치 못할 심각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첫째, 그들은 천국 문을 닫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지도자가 양들을 천국 문으로 인도해야 하는데 천국 문을 닫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니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 있을까요? 지도자인 이들의 외식하는 삶이 양들에게 악영향을 끼쳐서 신앙에 회의를 품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33가지 이유”라는 책을 보면 기독교 신자 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다고 합니다. 33가지 이유 중 5가지는 주로 교인들의 이중적인 면과, 지도자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고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도자 자신이 천국에 소망을 두지 않고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 때 자연히 이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선생은 양들을 가르칠 때도 세상의 성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구원과 천국 소망에 초점을 맞춰 가르쳐야 합니다. 스스로도 그런 삶을 살 때 천국 문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힘써 얻은 교인을 지옥자식이 되게 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는 열정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힘써 얻은 양들을 잘못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보다 지옥자식이 되게 하였습니다. 율법의 본질인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가르치기보다 자신들이 만든 잘못된 규범, 전통, 유전을 가르치고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지웠습니다. 자신들과 똑같이 외식하는 자들이 되게 했습니다. 양들을 구원 받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구원 그 이후의 삶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은혜 받은 후 그냥 내버려두면 십중팔구 잘못될 것입니다. 은혜 받은 양들에게 말씀을 잘 가르쳐서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영적인 세계에 깊이 들어가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1:1 말씀공부와 기도로 꾸준히 도울 때 지옥자식이 안되고 천국시민이 될 것입니다.
셋째, 그들은 물질주의의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래서 맹세할 때도 성전으로 또는 하늘에 두고 맹세했습니다. 어떠한 경우든 맹세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전으로 맹세한 것은 안 지켜도 되고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단으로 맹세하면 안 지켜도 되지만 제단의 예물로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바쳐진 물질을 취하였습니다. 물질이면 다 된다는, 물질이 중요하다는 이 물질주의, 배금주의의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화가 임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 깊이 들어온 물질주의의 악영향은 심각합니다. 교회가 과도한 교회 건축, 영리 사업 등으로 비판받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울 뿐입니다. 세상에서는 너도 나도 물질을 추구하지만 교회만큼은 물질추구보다는 영혼구원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겠습니다.
넷째, 그들은 율법의 정신을 버렸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당시 박하와 회향 근채는 향료로 쓰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집에 텃밭이나 화분에서 조금씩 재배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집 마당에 상추를 심었으면 상추의 십일조, 깻잎을 심었으면 깻잎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철저히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볼 때 이들은 참으로 경건한 자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잘 지키는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율법의 정신인 정의, 긍휼, 믿음을 버렸습니다. 이게 문제였습니다. 겉보기에는 훌륭한 크리스천인 것 같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빠져있습니다. 실제 삶은 거짓됩니다. 불의합니다. 사랑이 없고 비판적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형제에 대한 신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유익을 챙기는 데는 열심입니다. 형식만 남고 내용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처음 믿을 때는 구원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말씀으로 인한 감동이 심령을 뜨겁게 달굽니다. 10년, 20년, 30년 지나다 보면 신앙생활이 모든 것이 익숙해집니다. 형식화되기 쉽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낡은 부대가 되어 버립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신앙생활의 열매로 더 정직하고 사랑이 넘치고 신실한 삶의 열매를 맺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에 말씀으로 인한 충만한 성령의 역사, 회개의 역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덧 형식적이고 낡은 부대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우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깻잎의 십일조까지 드리면서 뇌물을 꿀꺽합니다. 남의 돈을 꿀꺽합니다. 왜 자매들이 교회에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냐 비판하면서 뒤로는 바람을 피워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에게 화가 있다 하십니다.
다섯 째, 그들은 겉만 깨끗이 하고 안은 더러운 채 버려두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게 하면서 안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한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척, 깨끗한 척 했지만 속은 탐욕으로 남의 것을 탐하며 절제할 수 없는 음란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우리도 속은 안보이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하고 잘 보이는 겉만 깨끗이 하기 쉽습니다. 겉을 예쁘고 화려하게 잘 꾸미던 한 여자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입 냄새가 심하게 났습니다. 겉을 아무리 꾸며도 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 가지 않았습니다. 속을 들여다보니 치아와 위에 염증이 심했습니다. 염증을 치료하고 속을 깨끗이 하니 냄새가 사라졌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런 기계가 나온다면 아마도 깜짝 놀랄 것입니다. 더럽고 추해서……. 그럴 수 없으니 다행입니다. 이처럼 속사람이 중요한 것이지요. 평소에 꾸며진 모습만 보다가 상대방의 더러운 속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때 우리는 깜짝 놀라며 실망하게 됩니다.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마음에서 온갖 더러운 것 음란, 강포, 시기, 미움, 살인 등의 죄가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의 거울로 항상 자신의 속사람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더러운 죄악을 회개함으로 말끔히 씻어야겠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여섯 째, 그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았습니다. 다섯 번째 화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것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당시에 가난한 자들이 장사지낼 때에는 길가나 밭에 시체를 파묻고 대신에 회를 칠했습니다. 무덤에 가면 불결하기 때문에 무덤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표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겉을 아무리 회칠 했어도 속은 시체라는 것입니다. 겉은 하얀데 속은 시커멓고 썩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불법과 외식이 가득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일곱 번째, 그들은 헛된 자기 의로 충만했습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조상들의 핍박으로 죽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새로 단장하고 의인들의 비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조상들과는 달라. 봐! 이처럼 우리는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존중하잖아?”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으로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존중하는 길은 그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비석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이 경고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 조상들처럼 살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헛된 자기 의로 충만했습니다. 구원의 여망이 이들에게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어떻게 책망하십니까. 32,3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성경에서 이보다 더 심한 책망이 있습니까? 결국 유대 사회가 부패하고 위선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유대 조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돌로 쳐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의인들도 핍박하고 죽였던 것입니다. 그 조상들의 죄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유전됩니다. 조상들의 죄 플러스 자신들의 죄까지 겸하여 받게 됩니다. 실제로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죄를 더하여 범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인류의 조상인 아벨의 죄에서 모든 선지자들과 의인을 죽인 죄까지 더 나아가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죄까지 모조리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성취되어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AD 70년 로마 침공으로 예루살렘에 모인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서로 죽이고 그 시체를 먹기 위해서 다투고 결국 다 죽게 되었습니다.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파괴되었습니다. 그것도 모른 채 이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미며 비석을 세우며 의로운 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런 끔찍한 비극을 맞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조상들 때부터 유전되던 죄의 사슬, 저주의 사슬을 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다시 화의 역사에서 복의 역사로 되돌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십니까? 울밑에선 봉선화와 같이 약하게 가난하게 이민족에게 두들겨 맞으며 슬프게 살았습니다. 요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 “명량”이 신기록 행진 중인데요. 당시에 사람들은 이런 영웅을 잘 알아보지도 못했고 잘 싸우도록 도와주지도 못했어요. 우상숭배, 귀신숭배하며 반만년을 어둡고 우울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잘 한 것이 있는데 백 년 전부터 바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 후로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역동적으로 변화 발전되었습니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까지 성장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잘나서 된 것이겠습니까?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에 걸맞도록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것 같습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을 믿고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제자의 삶을 산다면 화의 역사는 물러가고 이제부터 복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나로부터 나의 자녀들 더 나아가 후손들에게까지 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처럼 외식하고 형식적인 신앙에 머무르며 불신앙에 빠진다면 나의 죄 뿐만 아니라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조상들의 죄 까지 다 뒤집어쓰게 될 것입니다. 화의 역사가 후손에게까지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겠습니까? 복의 길을 가야겠습니까? 화의 길을 가야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특별히 경고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회개하기에 힘쓰고 형식과 위선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살며 성령으로 충만해야겠습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바로 선다면 우리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은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다 잘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실 때 유대사회는 희망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너무나 안타까우셨습니다. 목 놓아 우시며 부르셨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나님께선 수세기동안 선지자를 통하여 의인들을 통하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고자 했습니다. 암탉이 새끼를 딱 품고 깃털을 세우면 새끼를 노리던 독수리도 포기하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도대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이제는 어미 품을 떠난 병아리처럼 독수리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구나. 3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들에게 황폐하여 버려지는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함으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환영 받으시며 재림하실 때까지 다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의 재림 때 회복될 소망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는 많은 찔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센터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서 메시지 전하고 말씀을 가르칠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양들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가르치지만 정작 저는 제 자신을 더 사랑할 때가 많았습니다. 교만하고 이기적인 자로서 오늘 말씀에서 겸손과 섬김이라는 두 단어가 가슴에 꽂히게 되었습니다. 화 있을진저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회개하고 정신 바짝 차리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형식과 위선의 껍질을 벗고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고자 결단케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 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화의 역사를 끝내고 복의 역사를 써내려가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이 경계해야할 죄가 많음을 배웠습니다. 특히 외식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 알 수 있었습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겠습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죄의 모습이 나에게 있지 않나 살펴봐야겠습니다. 회개하고 마음을 깨끗이 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열매 맺는 축복받는 인생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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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 마태복음 [2014년 여름수양회 준비 특강(마태복음 제27강)] 잔치에 오소서.. 관리자 2014-06-29 3389
756 야고보서 [2012년 야고보서 제1강] 시험을 참는 자 관리자 2012-01-22 3368
755 베드로전서 [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1강]-산소망(시니어팀_이인구) 관리자 2009-11-09 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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