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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5-13 (일) 13:01
분 류 마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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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7강]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는 자

 2018년 마가복음 제7강                                                          이인구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는 자

말씀/ 마가복음 4:1-20
요절/ 마가복음 4: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오늘 말씀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인생의 열매를 맺는 비밀을 가르쳐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지만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고 또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비유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다 나온 비유로 우리는 거의 매년마다 듣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다 안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재미있게 전하나 보자!’ 하며 팔짱끼고 있다가 졸기 싶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나의 생명을 살리고 인생의 열매를 맺는데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비유의 말씀을 예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영접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받아 인생에서 결실하는 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따뜻한 봄날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나가시자 큰 무리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무리는 어찌하든지 예수님께 가까이 오고자 미는 바람에 예수님은 바다에 떠있는 배에 올라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닷가 육지에 있는 무리들에게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무리들 중에는 인생의 문제 앞에서 갈급하게 나온 이들도 있었지만 친구 따라 얼떨결에 온 사람도 있었고 부모의 강요에 마지못해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간절한 심정으로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듣고자 하는 이가 있는 반면 마음은 벌써 콩밭에 가있거나 심지어 감동적인 메시지 앞에서 습관적으로 조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들으라!’ 예수님께서는 파도치고 갈매기가 끼룩거리는 어수선한 가운데 무리들에게 생명의 비유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렸는데 4종류의 밭에 떨어졌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딱딱한 길 위에서 굴러다니다가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곧 싹이 나왔지만 해가 돋은 후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 죽었고,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뿌리를 내리고 어느 정도 성장했지만 함께 자란 가시가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뿌리를 깊이 내리고 무성하게 결실하여 30배 60배 100배나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 끝에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를 떴습니다. “목수이신 예수님이 농사짓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은 한계가 있어! 열매를 맺는데 그 중요한 비료이야기도 빼먹으셨잖아!” “나는 어부인데 예수님이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말씀을 전하니 오늘 큰 것을 낚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는 말씀이네!”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을 귀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하나님께서 두 개의 귀를 만드시고 입을 하나밖에 만드시지 않은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귀는 귀걸이나 안경을 걸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듣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런데 들어도 단지 소리를 듣는 것과 그 의미를 듣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특히 말씀을 듣는 것은 영적인 귀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 누구나 영적 귀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어려운 인생과 하나님나라의 진리를 누구나 다 아는 자연을 빗대어 하신 말씀으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소원을 가지고 들어야 그 온전한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심오한 말씀입니다. 아이큐 2자리 수 아이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이지만 또한 우주의 법칙을 가장 많이 안다는 스티븐 호킹 박사도 알 수 없는 심오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말씀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인생과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거부하는 교만하고 세속적인 인간은 도저히 깨닫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11)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셨습니다.(12)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간절히 찾고 구하는 사람은 결국 그 비밀을 깨닫게 도와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말씀을 하신 후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을 문제의식을 가지고 생각해보도록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다 풀어 설명한 후 달달 외우도록 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하셨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AI 인공지능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단순 주입식 교육, 단순 암기교육으로는 인공지능로봇의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예수님의 비유교육방법은 지금도 최고의 교육방법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에 많은 이들이 떠났지만 12제자와 소수의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와 비유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영적 소원이 있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알기 위해 찾고 질문하는 것이 인생의 진리와 비유말씀을 깨닫기 위한 첫 걸음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찾는 그들에게 비유의 뜻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씨는 말씀을 뜻합니다. 장미꽃 씨에는 장미꽃의 모든 유전자의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작은 꽃씨 속에 장미꽃의 색깔과 모양과 크기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하나님나라의 모든 정보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인생의 길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뿌리신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처럼 그 자체에 생명력이 있어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씨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환경이 잘 마련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열매는 말씀을 듣는 우리의 마음 밭에 따라 달라집니다.

첫째, 길가와 같은 마음 밭 (15)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은 말씀을 들을 때 무관심과 편견으로 말씀에 대해 전혀 반응이 없는 영적 사막과 같은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우이독경’ 소귀에 경 읽기처럼 말씀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람이거나 말씀이 한귀로 들어갔다가 다른 귀로 그냥 나오는 터널 같은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의 씨는 딱딱한 마음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단에게 뺏겨버립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종교지도자들이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말씀을 많이 알았고 또 지킨다고 자부했던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교만과 자기 의와 편견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살아 역사하십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인간적 지식의 한계 안으로 또 자신이 지키는 율법 안으로 하나님을 한정시켰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란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강도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자신의 집을 초청했습니다. 자신의 침대에 뉘어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를 잘라버리고 침대보다 작으면 몸을 늘려서 침대에 맞춰 죽였습니다. 하지만 나중 그는 더 강한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를 만나게 됩니다. 테세우스는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침대보다 큰 프로크루스테스를 머리와 다리를 잘라 처치했습니다. 이처럼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이 정한 율법의 틀 안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끼워 맞추려고 했고 맞지 않자 잘라버리려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 거부했습니다. 그들의 딱딱한 마음은 단지 말씀을 모르는 것을 넘어 완악한 마음으로 거부하고 배척하면서 사단 편에 서게 했습니다. 이런 길가와 같은 완악한 마음 밭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을 때 내면은 더욱 딱딱해져 어떤 말씀도 들어올 수 없고 결국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단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이들이 열매를 맺으려면 그 내면을 강한 힘으로 갈아엎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본래 교만과 자기 의로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강한 빛으로 임해 그 완악한 내면을 갈아엎은 후 그는 예수님을 좇아 가장 많은 열매를 맺은 거목이 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돌밭과 같은 마음 밭 (16,17)
  돌밭과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이의 좋은 점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말씀을 즉시 기쁨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말씀공부가 이렇게 기쁜데 내가 왜 진작 말씀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소감발표를 하며 목자를 감동시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보다 그냥 느낌이 좋으니까 받아들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느낌이 안 좋아질 때가 문제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받을 때도 ‘곧’ 받지만 떠날 때도 미련 없이 ‘곧’ 떠납니다. 이들은 쉽게 뜨거워졌다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신앙인’입니다. 최근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자란 영상세대는 깊이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싫어합니다. 한 번의 컴퓨터 클릭이나 한 번의 스마트폰 터치로 모든 정보를 순식간에 볼 수 있고,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물어보면 모든 것을 다 알려주는데 굳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들에게 말씀은 머리의 이성과 감성을 자극하지만 가슴이나 손발까지 내려오지 못합니다. 말씀이 잠시의 기쁨과 은혜가 되지만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되지 못합니다. 어떤 학자는 이 시대의 가장 큰 불행은 사람들이 피상적이 되고 가볍게 변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마음 밭을 가진 이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내면의 감추어진 돌 때문에 말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의 환란이나 핍박의 때에 뿌리 없는 문제가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환난이나 핍박을 해가 돋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햇빛은 식물성장에 없어서는 안 될,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것처럼 환난이나 핍박도 신앙성장에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환난이나 핍박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붙들고 있는 세상의 헛된 소망을 벗어버리게 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갖게 합니다. 환난이나 핍박은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게 하고 내면을 강하게 하여 거목으로 자라게 합니다. 그러므로 환난이나 핍박이 문제가 아니라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이들에게 뿌리는 내리지 못하게 하는 내면에 깊이 감추어진 돌이 무엇입니까? 세상적 가치관(물질주의, 쾌락주의), 인본주의, 인간적 자신감, 욕심, 이기주의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어떤 돌도 깰 수 없는 돌은 없습니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도 틈이 생기고 그 틈사이로 하나의 씨가 떨어지면 그 씨의 생명력은 바위를 쪼개 뿌리를 내립니다. 우리의 내면에 단단한 죄악의 돌이 숨겨져 있다 해도 매일 말씀의 씨를 뿌리면 어느 순간 씨의 생명력은 돌을 깨뜨리고 부서뜨려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따랐지만 내면에 인간적 자신감과 욕심(야망)의 돌이 숨겨진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십자가의 환란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변하지 않는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랑의 힘은 베드로 내면의 헛된 인간적 자신감과 욕심의 돌을 깨뜨렸고 베드로를 반석위에 뿌리는 내린 소나무처럼 오직 예수님만 따르는 종이 되게 하였습니다.

셋째,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 밭 (18,19)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자는 말씀을 받으면 싹을 틔우고 뿌리도 내리며 어느 정도 성장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시떨기도 함께 자라나 그 기운에 막혀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영적 생명을 빼앗는 세 가지 가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첫째: 세상염려의 가시.
  세상염려는 결핍에서 옵니다. 사람들은 현재 먹고 살면서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합니다. 그것은 몇 천년 전 초가집에서 풀을 먹고 살 때도 그랬고 현재 아파트에서 고기를 먹고 살면서도 똑 같은 염려를 합니다. 신자가 사명의 십자가를 진다해도 세상 먹고 사는 문제가 없어지거나 줄어들지 않습니다. 어떻게 신자가 세상 염려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옛날에 사소한 일에도 늘 걱정을 하며 사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세상의 모든 염려를 벗은 듯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친구들은 어쩐 일인지 그 비밀을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 대신 걱정해줄 사람을 고용했어. 매달 100만원만 주면 모든 걱정에서 자유야!’하며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친구들은 그 사람의 가정형편을 아는 터라 매달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건 그 사람이 걱정할 문제라네.” 우리는 이 황당한 이야기에서 신자가 걱정에서 벗어날 비밀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대신 걱정해줄 사람에게 맡기는 것처럼, 신자는 하나님께 나의 염려를 맡겨야 합니다. 신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며 지켜주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세상염려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교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들의 백합화도 공중의 새도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키우시는데 하나님께 택함 받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를 당연히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채워주십니다. 신자는 나의 모든 세상염려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사실 세상염려를 보면 실체가 없는 막연한 세력일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의 걱정은 자신의 과거나 다른 이들의 실패와 고난 속에서 생긴 막연한 가능성입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염려의 95%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했습니다. 설사 5% 때문에 고난과 환난이 닥친다 해도 신자에게는 믿음의 뿌리를 더 깊게 하는 햇빛일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늙어서까지 자식이 없는 인생문제로 염려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나안에 왔지만 세상 왕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내를 누이라 속여 몇 번이나 뺏겼습니다. 하지만 그가 부족한 자신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는 방패요 상급되신 하나님을 깨닫고 믿음으로 인생을 맡겼을 때 수많은 별들의 아버지요, 믿음의 조상으로 설수 있었습니다.
둘째: 재물의 유혹의 가시
  재물의 유혹은 물질에 대한 욕심에서 나옵니다. 이 가시는 인류역사를 통해 사단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물질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신자가 물질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 십자가, 희생, 헌신이 부담스러워집니다. 하나님 안에서 감사가 없고 상대적인 빈곤감에 시달립니다. 이 가시는 물질의 작은 쾌락을 미끼로 자신의 노예로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자는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신자는 물질을 선하게 잘 사용함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이삭은 약속의 땅에서 많은 위기에 빠졌습니다. 가뭄의 때 우물 때문에 주위사람들과 갈등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생명 같은 우물을 두 번이나 양보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방 왕 아비멜렉이 두려워할 만큼 더 풍요롭게 하고 더 강하게 축복해주셨습니다.
셋째: 기타 욕심
  명예욕, 권세욕, 정욕, 식욕 등 인간의 탐심 속에는 많은 가시가 있습니다. 최근 많은 정치인들이 비리로 감옥에 들어가고 많은 유명인들이 미투 운동으로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가 보게 됩니다. 가시는 자라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초기에 빨리 뽑아야 하고 수시로 뽑아야 합니다. 더구나 가시나무는 뿌리가 깊고 다른 나무뿌리와 얽혀있기 때문에 많이 자란 가시나무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자기가 뽑히는 큰 희생과 고통이 따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으면서 가시는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지만 좋은 씨는 가꾸어야 자라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면 정원이 못쓰게 되는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정원사는 그냥 놔두면 잡초와 가시가 무성히 자라 자연히 못쓰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도 가꾸지 않고 그냥 놔두면 자연히 온갖 죄악된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어 못쓰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밭도 방치하면 자연스럽게 가시밭이 됩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핍박에도 믿음을 지켜 왕으로 세움 받았습니다. 하지만 축복가운데 안일에 빠져 정욕의 죄를 짓고 또 그 죄를 덮기 위해 살인죄까지 지었습니다. 다윗이 첫 죄악의 가시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았을 때 가시나무의 뿌리는 평생 그의 인생의 뿌리까지 얽어맸습니다. 첫째 아들이 다윗 같은 정욕의 죄를 지은 후 살해당했고 셋째 아들은 다윗을 반역했고 많은 측근들이 다윗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영접해 온전히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많은 환난 속에서도 그를 지키고 인도해주셨습니다. 환난 속에서 추악한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마침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의 조상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넷째, 좋은 마음 밭 (20)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자는 말씀을 듣고 받아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결실을 맺습니다. 이 열매는 먼저 나의 내면에 맺혀지는 성령의 열매를 말하고 또 나를 통해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는 생명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그럼 씨 뿌리는 농부가 처음부터 좋은 마음 밭에만 뿌리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될 성싶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을 골라서 말씀의 씨를 뿌리면 훨씬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좋은 마음 밭은 없습니다. 또 마음 밭은 바뀔 수 있습니다. 만약 마음 밭이 혈액형처럼 타고나 바뀌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냥 타고난 마음 밭으로 살다 열매 없이 죽을 수밖에 없고 예수님이 이 비유를 전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로 인해 길가 같은 돌밭 같은 가시밭 같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말씀의 씨를 뿌리는 예수님을 통해 좋은 마음 밭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좋은 마음 밭은 처음부터 타고난 때 묻지 않은 순결한 땅이라기보다, 수없이 갈아엎고 돌을 깨어 부수고 가시나무를 뽑는 많은 수고를 한 땅입니다. 많은 수고 후 눈물로 씨를 뿌린 땅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 마음 밭이 될 수 있습니까?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20)
첫째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비유에서 듣는다는 단어는 무려 10번이나 나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구약시대 때 하나님께서는 꿈이나 환상 같은 직통계시를 통해 택한 자들에게 그 뜻을 보여줄 때도 있었지만, 복음이 완성된 현재에는 성경말씀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신자는 성경말씀을 과거의 역사나 이야기가 아닌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또 간절한 심정가운데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심정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들을 때 하나님께서 그 뜻과 인도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마디 말씀이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이 말씀을 나에게 주었다는 객관적 증거가 있습니까? 그것은 말씀을 간절히 듣고 찾고 구하는 이는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지만 뉴튼만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뉴튼이 평소 만유인력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찾고 구하던 중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평범한 것에서 위대한 진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처럼 신자는 평소 문제의식을 가지고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한마디 말씀을 통해 그 뜻과 인도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평소 꾸준히 문제의식을 가지고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매일 한 마디 말씀이라도 묵상하며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의 생명력은 나의 죄악된 본성을 갈아엎고 깊이 박힌 돌을 부수고 얽매이는 가시들을 뽑아 많은 열매를 맺을 좋은 밭으로 만들어 줍니다.  
둘째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누가복음의 씨 뿌리는 자 비유에서는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한다”(눅8:15)고 했습니다. 즉 말씀을 받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은 듣고 실생활에서 순종할 때 온전히 깨달을 수 있고 또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6장 33절은 삶의 모든 염려와 걱정 근심을 몰아내고 실제생활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런데 이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인생을 책임져주시고 넘치도록 축복해주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듣고 지키며 순종하도록 하신 이유는 하나님과 관계성을 회복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로 인해 떠난 우리를 다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시고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결국 무너질 세상이 아닌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열매는 외적 소유나 성취가 아니라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말씀을 잘 듣고 받으면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위해 살 때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고 또 진정한 인생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듣고 받아 우리의 죄악된 마음 밭을 바꾸고 열매 맺는 인생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올 초 건물주가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는 통보에 치과이전을 고민하는 중 이사야 54장 2절을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예전에 주로 팀이나 요회 배가역사를 위해 기도할 때 붙들었던 말씀인데 이 말씀이 제 심령에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20년 만에 병원이전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준비하면서 많은 문제들이 터졌습니다. 실장위생사와 한 직원이 싸워 그만둔 후 2달 동안 5명의 직원들이 바뀌게 됐습니다. 또 새로 갈 건물은 원래 계약과는 달리 좁은 평수로 이전하게 됐고 예전 건물주는 과도한 철거비와 원상복구비를 요구했습니다. 또 급하게 진행된 인테리어까지 저급하게 진행되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됐습니다. 스트레스 가운데 내가 잡았던 말씀이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인가? 분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과정가운데 저의 세상염려와 재물의 유혹의 가시를 발견하게 도와주셨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사는데 이런 작은 고난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심하는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또 다시 얻은 생명을 하나님보다 물질에 매여 살았던 자신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 후 어두운 현실에 매이기보다 말씀을 붙들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도록 노력하게 됐습니다. 더욱 충실히 말씀을 준비하게 됐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과 지혜와 능력을 덧입게 됐습니다. 이제 병원이전도 하나님의 은혜로 잘 마무리 되면서 앞으로 영적인 장막 터를 넓히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먼저 제 자신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덧입고 말씀의 씨를 뿌리는 생명구원역사가운데 더욱 힘쓰는 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좋은 마음 밭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가꾸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열매는 얼마나 말씀을 잘 듣고 받느냐에 따라 달려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내가 어떤 밭인가 발견하고 말씀의 권능으로 좋은 마음 밭으로 가꾸어서 30배,60배,100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인생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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