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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5-20 (일) 12:40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8년_마가복음8강-1(최동진).hwp (64KB) (Down: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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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8강] 씨가 나서 자라되

 2018년 마가복음 제8강                                                            최동진

씨가 나서 자라되

말씀/ 마가복음 4:21-34
요절/ 마가복음 4: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열매를 맺는 비결이 마음 밭에 달려 있음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열매 맺는 데에 씨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씨에서 어떻게 열매가 맺혀지며 얼마나 크게 성장하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씨가 땅에 심겨져서 곡식이 될 때까지 그 과정은 신비에 속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뿌려진 씨는 스스로 자라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들을 귀를 주셔서 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고 열매 맺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등불의 비유(21-25)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가르치시는 궁극적인 목적과 또 말씀을 들을 때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말은 곡물의 부피를 측정할 때 쓰는 그릇이고, 평상은 침상을 말합니다. 당시 낮에는 등을 말로 덮어두거나 평상 밑에 두었습니다. 이는 누가 발로 차서 등을 넘어뜨리거나 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그 등을 꺼내어 등경 위에 두어 방 전체를 환하게 비추게 하였습니다. 이 비유에서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가르치시는 목적은 숨기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밝히 드러내고자 하심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빛을 비추심으로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은 어둡습니다. 어두움에 있는 자들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과 방향을 알지 못합니다. 인생의 참된 희망도 알지 못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력이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들에게 빛이 됩니다. 말씀의 빛이 비출 때 어둠은 순식간에 물러가고 새 세계가 전개됩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둠을 밝히고 인생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줍니다. 아브람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따라갔을 때 복의 근원이요, 열국의 아비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의 빛의 인도하심을 따라 갈 때 인생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되고 진정으로 가치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도 세상의 등불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숨기고 감추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22절을 보십시오.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숨기는 것은 드러내고자 함이요 감추는 것은 나타내려 함입니다. 새 번역 성경에는 “숨겨 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진리를 은폐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밝히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복음은 보배와 같이 귀한 것이어서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감추어져 있습니다. 복음의 비밀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즈음 대학생들은 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니면서 말씀을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23)” 말씀하십니다. 이는 더욱 마음을 써서 들음으로 그 의미를 깊게 되새겨 보란 말입니다. 영적 소원을 가지고 감추인 보배를 간절히 찾는 자(잠2:4), 또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하게 찾는 자(마11:25,26)가 말씀에 감추어진 놀라운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로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맡기신 것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나타내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내 안에 모심으로 시대의 악영향을 물리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늘 동행함으로 나의 삶을 통해 예수님이 드러나고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을 들을 때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스스로 삼가라는 것은 영어로는 ”Consider carefully"로서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에 보면 가나안 입성을 앞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 말씀을 손목에 매고 이마에 붙이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도 말씀을 기록해 두도록 하였습니다.(신11:18-20) 이는 자연스럽게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늘 말씀과 동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복을 감당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컴퓨터가 인간의 생각을 대신해주기 때문에 생각할 일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답을 찾을 수 있고 웬만한 궁금증은 즉석에서 다 해결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스스로 생각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볼 때도 깊이 묵상하고 스스로 깨닫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말씀이 마음에 꽂혀서 자신을 감동시키고 변화시켜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다보니 영적인 깨달음도 점점 무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비밀스러운 것이어서 아무런 노력 없이 그 심오한 뜻을 깨달아 알 수 없습니다. 소가 여물을 먹고 되새김질 하듯이 말씀을 되씹으며 생각하고 반복해서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한 편의 소감을 쓰더라도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듣고자 투쟁할 때 말씀의 깊은 세계를 체험하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더욱 선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심령에 새겨짐으로 영적으로 날로 성장하게 됩니다. 생각하지 않는 자는 시간이 지나도 성장이 없고 오히려 처음 가졌던 순수하고 진실된 믿음마저 퇴보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가르치시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제자들로 하여금 그 뜻을 생각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말씀은 헤아리는 만큼 받을 수 있습니다. 헤아린다는 것은 영어로는 ‘measure'로서 ‘측정하다’, ‘재다’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는 깊은 바다와 같아서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같은 말씀이라도 우리의 믿음의 분량만큼, 영적 소원만큼, 투자하는 정성과 수고만큼 받고 더 받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나의 상식과 경험으로 말씀을 헤아리면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소원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헤아리는 자는 많은 것을 받고 덤까지 얹어서 더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신 후 먼저 그 뜻을 설명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묻기까지 기다리셨다가 그들이 물을 때 설명해 주셨습니다. 세계의 노벨상 수상자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유태인의 힘도 그들의 교육 방식에 따른 결과입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탈무드를 통해 세상을 살아나가는 철학에 대해서 배우는데 스스로 읽고 스스로 말하며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한다고 합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때도 2명이 책에 대해 아주 시끄럽게 토론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토론하고 떠들면서 그곳에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 과정은 더디고 힘들지만 여기서 세계를 움직이는 창의력과 응용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 공부하는 기초공부 문제지를 보면 생각하도록 요구를 받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기보다 지금까지 배워 왔던 것에 기초해서 정답만 말하며 단답식으로 풀 때가 많습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공부한 말씀이라 다 안다는 생각으로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말씀공부가 끝날 때도 있습니다. 소감을 쓸 때에도 과거 학생 때에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밤을 지샐 때가 많았지만 요즈음에는 느낌이 오는 대로 순식간에 소감을 끝내는 날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같은 말씀이라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알고자 하는 탐구심을 가지고 말씀을 대할 때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이 말씀이 우리 시대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 캠퍼스에, 또 내 가족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내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가 생각하며 말씀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이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반응에 따라 영적으로 부해질 수도 있고 가난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전파할수록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적대감이 더해가는 상황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도 부푼 꿈을 안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말씀을 안 받아들이고 반발하는 무리들을 볼 때 말씀역사에 대해 회의가 들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자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대부분의 사람이 말씀을 거절하고 들으려 하지 않는 캠퍼스를 생각하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자는 더 깊은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고 구원의 길로 나아가게 되지만 교만하여 말씀을 안 받아들이는 자는 멸망의 길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생각할 때 귀한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죄의 길에서 떠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주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맡기신 사명에 충성하는 가운데 시대를 밝히는 등불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II. 자라나는 씨의 비유(26-29)
  예수님은 이제 자라나는 씨의 비유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뿌리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일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의 씨를 뿌리는 성경 선생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성경 선생이 말씀의 씨를 뿌리지 않는다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좀 고생스럽더라도 열심히 말씀의 씨를 뿌릴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비록 당장에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또 우리 세대에 열매를 맺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요4:37,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열매를 거두는 것은 누군가가 과거에 씨를 뿌린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매에 집착하지 말고 열심히 말씀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씨는 그 자체에 생명력이 있어서 씨를 뿌리기만 하면 반드시 자라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능력으로 이루시는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씨가 자라는 것과 같이 말씀의 씨도 그 자체에 생명이 있어서 자랍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면 처음에는 전혀 자라지 않는 것 같지만 때가 되면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은 신비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말씀의 씨를 뿌렸기 때문에 내가 사람을 키우는 것처럼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은 뿌려진 씨가 잘 성장하도록 물을 주고 가꾸며 환경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씨를 뿌렸다고 바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씨가 성장하여 열매를 맺기까지는 단계가 있습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농부는 씨가 자라는 과정을 알고 때에 맞춰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해충도 잡아주고, 비료를 주면서 기다립니다. 우리는 말씀의 씨를 뿌린 후 양들이 빨리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성장이 조금 더디다 싶으면 노심초사하며 잠을 설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성장하는 데에도 과정과 단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장 속도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충실한 열매 맺는데 있어서 조급함은 금물입니다. 조급한 마음은 불신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각 단계에 맞게 섬세하게 돌보며 기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돌보듯이 양들이 건강하게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 적절하게 말씀의 영양을 공급해 주면서 자고 깨고 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열매가 익으면 추수를 하게 됩니다. 열매는 농부가 일 년 내내 땀 흘려 수고한 모든 노력의 결정체입니다. 한 알의 밀을 심으면 하나님께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농부는 추수할 때를 생각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한 농부가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농부는 추수할 때를 놓치지 말고 곡식이 익으면 즉시 추수해야 합니다. 농부가 게을러서 제 때 추수하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도둑들이 다 빼앗아 가 버리거나 다 떨어져버리거나 썩어서 못 먹게 되어버릴 것입니다. 지금 캠퍼스에는 거짓 사상과 이단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양들의 생명을 탈취하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대에 우리를 캠퍼스 밭에 추수할 일꾼들로 불러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부려 먹고자 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함으로 추수하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모두가 유능한 성경선생이 되어 더 늦기 전에 캠퍼스에 나아가 말씀의 낫으로 열심히 추수함으로 추수하는 기쁨을 누리고 생명 구원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III. 겨자씨 비유(30-34)
  예수님은 계속해서 겨자씨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30-32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겨자씨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땅에 심긴 후에는 다른 모든 풀보다도 커져서 3m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큰 가지를 내어서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작고 미미한 것에서 시작하지만 자라서 후에는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처음에는 말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천하를 호령하던 로마 제국과 비교해 볼 때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점점 자라나 마침내는 거대한 로마 제국을 정복하고 온 세계를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겨자씨 한 알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학식이나 배경이나 모든 면에서 내세울 것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말씀을 잘 깨닫지도 못하고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이 수제자들만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을 때 한 사람이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어린 아이 하나를 제자들에게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17:14-20) 예수님이 우리에게 큰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그 안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12명의 제자들을 시대를 섬기고 세상을 변화시킬 자들로 비전을 두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인간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임 받을만한 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갈릴리 어부 출신들이었고, 창기와 같이 취급 받던 세리 출신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인의 마을을 지날 때에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멸하기를 바라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보좌 좌우편 자리에 앉기 위해 어머니를 앞세워 청탁을 할 정도로 세상 타이틀에 집착하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앞두고도 누가 크냐며 경쟁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마음에 믿음의 씨를 심으셨습니다. 그러자 겨자씨와 같던 이들이  조금씩 변화되면서 점점 자라나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넘어 마침내 온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이렇게 실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작은 것에서 시작하지만 자란 후에는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평양대부흥운동도 그런 역사입니다. 1903년 여름 여자 선교사들이 중심이 된 원산의 조그만 성경공부 모임에서 이 모임의 강사였던 하디선교사가 한국인 회중 앞에서 자신의 교만과 실수를 공개적으로 자복하였고, 그것이 ‘회개의 본’이 되어 한국 교인들의 공개 자백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이는 평양대부흥운동의 기폭제가 되었고 성령의 불길이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UBF 복음 역사도 처음에는 겨자씨와 같이 작고 미미한 일대일 성경공부 모임에서 시작되었으나 거기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점점 자라나 이제는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큰 모임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겨자씨와 같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경성  UBF 역사도 서제임스 목자님과 당시 경희의대 본과 3학년 학생이었던 한아브라함 목자님과 역사적인 만남으로 이루어진 1대1 말씀공부로부터 시작되어 수많은 후배들이 나아와 말씀을 듣고 제자로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이제는 주일예배 200명을 바라보는 큰 모임으로까지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겨자씨 역사는 지극히 작고 미미한 저에게도 임했습니다. 당시 대학 동기생들 중에 우리 모임에 한 번이라도 안 나와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심히 부족한 저에게 들을 귀를 주심으로 저의 심령에 말씀의 씨를 심어주시고 이곳에 뿌리 내리게 하시고 그 씨가 저의 심령에서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어느 덧 30년이 되기까지 경희대와 가톨릭의대 가운데 말씀의 빛을 비추고 1대1말씀의 씨를 뿌리게 하시고 세상에서 힘들고 지친 많은 영혼들이 말씀의 그늘에 나아와 쉼을 얻는 데에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제가 이런 삶을 살고자 한 것도 아니었고 제가 이런 삶을 살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 속에 심겨진 말씀이 저를 변화시키고 하나님 안에서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 동역자님들을 보면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수고를 많이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가 드리는 1대1이 이 거대한 세상에서 보잘 것 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말씀에는 생명력이 있어서 스스로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변화 될 것 같지 않던 이동원 형제님의 심령에 말씀의 싹이 나서 자라게 하시고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양들의 심령 가운데에 조금씩 싹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은 미미하게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새들이 깃들일 큰 거목으로 성장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루실 놀라운 비전을 바라봄으로 겨자씨와 같은 말씀의 씨를 무시할 것이 아니라 계속 뿌려야 하겠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말씀의 빛을 비춤으로 어둠 가운데 방황하는 영혼들을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어두운 시대에 말씀의 등불을 밝히 밝히기를 원하십니다. 때마다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귀를 가지고 주의 깊게 듣고 헤아리는 가운데 말씀에 담긴 보화를 발견하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뿌리는 말씀의 씨가 스스로 자라나 싹이 나고 자라나 열매가 맺혀질 것을 믿고 말씀의 씨를 뿌리기를 기도합니다. 겨자씨 한 알과 같은 말씀의 씨가 자라나 싹이 나고 새들이 깃들일만한 거목으로 성장하는 생명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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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5강]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관리자 2018-07-08 1150
544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4강] 이 말을 하였으니 관리자 2018-07-01 932
543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3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관리자 2018-06-24 1079
542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2강]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관리자 2018-06-17 885
541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1강] 둘씩 둘씩 보내시며 관리자 2018-06-10 890
540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0강]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관리자 2018-06-03 1141
539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9강] 그가 누구이기에 관리자 2018-05-2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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