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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9-30 (일) 12:48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8년_마가복음28강-1(이인구).hwp (64KB) (Down: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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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28강]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2018년 마가복음 제28강                                                           이인구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말씀/마가복음 16:1-20
요절/마가복음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인류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인간이 불과 문자를 사용한 것, 산업혁명, 제 1,2차 세계대전 등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이는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인류역사상 가장 큰 사건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로 모든 인간이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퀸네드라는 신학자는 “부활은 창조에 버금가는 세상의 가장 큰 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가복음의 마지막장입니다. 마가복음의 마지막장이지만 마지막이 아니라 복음역사의 시작을 선포하는 장입니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막1:1)”는 말로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이들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복음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제 마가복음 마지막 장에서는 부활의 복음을 영접한 제자들이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복음역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신앙을 덧입고 복음을 전파하는 제자들로 설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후 안식일이 지나고 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세 여인,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이모이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또 사도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인 살로메가 죽으신 예수님께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2일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때가 오후 3시였습니다. 오후 6시면 해가 지고 유월절이 시작되므로 장례치를 시간은 고작 3시간밖에 없었습니다. 온 몸이 찢어지고 만신창이가 된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고 손과 발에 박힌 대못을 뽑고 머리의 가시면류관을 뽑아드리고 온 몸의 매질과 채찍질당한 상처를 닦아 드리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더구나 충성을 맹세했던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당장 장사지낼 무덤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자신이 준비한 새 무덤에 장사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마27:57-60) 숨은 제자라며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와서 몰약과 침향을 주고 갔습니다.(요19:39) 그러나 너무 급박하게 장례를 치르느라 향품을 바를 시간도 없이 장례를 끝낸 것이 여인들의 마음에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안식일이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안식 후 첫날 새벽 여인들은 향품을 발라드리려 다시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무덤 앞을 군병들이 지킬 것이고 또 무덤을 막은 돌을 굴려줄 남자들도 없는데, 또 벌써 3일이나 되어 시체는 부패를 시작했을 텐데 여인들의 발걸음은 무모하고 무지해보였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해도 나의 왕처럼 거룩하고 고귀하신 예수님을 그렇게 비참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떠나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무모하고 무지하게 보이는 여인들의 행동은 예수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위기의 때, 고난의 때에 나타납니다. 어릴 때 아직 철이 없을 때 ‘사랑’하면 달콤함, 황홀함, 아름다움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 철이 들면 진실한 사랑은 아픈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여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했던 이들이었습니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는 그전부터 12제자들처럼 예수님과 동행했고 그림자처럼 뒤에서 온 마음으로 섬겼던 여인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사람으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때 만났습니다. 그녀는 과거 더러운 일곱 귀신에 들려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어둠 속에서 살면서 정욕, 시기심, 탐욕, 분노, 슬픔, 두려움, 허무 등 일곱 귀신들이 번갈아 가면서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형상을 잃은 그녀를 무시하고 더러워하고 피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녀와 함께 하며 딸처럼 사랑해주시며 공주처럼 소중히 여기시며 일곱 귀신들을 차례로 쫓아내주시고 많은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평생 자신을 자학하며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후 자신도 사랑 받을 만한 하나님의 귀한 자녀라는 자존감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세상에 마음을 열게 됐습니다. 그 후부터 마리아는 모든 진심과 열정을 바쳐 주님과 복음역사를 섬겼고 처음으로 인생의 기쁨과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예수님께서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위선적이고 거짓된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자신의 눈앞에서 처절한 고통과 수치 속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도 세상의 거짓과 불의 앞에서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 마리아에게 큰 두려움과 분노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또 지금까지 예수님께 드렸던 모든 열정과 사랑도 죽음 앞에서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사라졌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예수님 없이 또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매여 살 것을 생각하니 고통스러웠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뜻밖에도 무덤 앞을 막고 있던 큰 돌이 굴려져 있었고 무덤을 지키던 군사들도 없었습니다. 분명 무덤에 어떤 일이 일어났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믿음으로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웬일입니까? 무덤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고 대신에 흰옷 입은 천사가 말했습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6) 천사는 여인들이 인간적으로 실패한 예수님, 비참하고 억울하게 죽으신 예수님을 찾는 것과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음을 깨우쳐주었습니다.(눅24:5) 천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죽음의 권세가 예수님을 가둘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천사의 말에 몹시 놀라 떨며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막달라 마리아는 충격 속에서 예수님의 빈 무덤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천사의 말에도 예수님의 부활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가는 예수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강한 죽음의 세력이 막달라 마리아의 심령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죽음은 바로 코앞에 있지만 부활은 저 멀리 아련하게 느껴졌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마침내 빈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빛, 부활의 빛이 임하자 막달라 마리아를 얽매고 있던 죽음의 세력이 순식간에 물러났습니다. 마음속 죽음의 세력들과 함께 엉켜있던 부활의 소망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들었을 때 부활의 믿음으로 새겨졌습니다. 이로써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최후승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에게 왜 하나님을 믿지 않느냐 물으면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세상에서 악이 선을 이기는 상황을 방치하느냐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모든 악의 근원인 죽음과의 싸움에서 최후승리를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부활의 권능으로 세상의 마지막 날 결국 모든 죽음의 세력들을 진멸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부활신앙으로 자신을 따르는 신자들에게도 부활의 권능으로 인생에서 최후승리하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신앙이 있는 신자는 승리가 정해진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사 지금 세상이 잠시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고 또 신자가 가끔 그 세력에 넘어질지라도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할 때 결국 예수님처럼 최후승리 할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세상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헌신하고 희생해도 그 결과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른다면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최후승리가 보장된 삶을 살 수 있고 부활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또 복음역사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 바로 기쁨으로 슬퍼하며 울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그전에 제자들과 한 약속대로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을 기다리신다고 전했습니다. 갈릴리는 복음역사가 시작된 곳이고 제자들과 예수님이 처음 만났던 곳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제자들의 배신으로 사랑의 관계성은 끝이 났지만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다시 사랑의 관계성을 시작하시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과거 일곱 귀신들린 인생소감을 알고 있어서 그녀의 증거를 크게 신뢰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면 당연히 자신들에게 먼저 나타나셔서 알려주셔야지 어떻게 비참한 과거를 가진 여인에게 먼저 나타날 수 있는가 의심했습니다. 사실 복음역사 편에서는 별로 영향력 없는 막달라 마리아보다 수제자 베드로나 아니면 의심 많은 도마에게 먼저 나타나는 것이 복음전파에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왜냐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깊이 깨달았고 가장 깊이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 많이 사랑합니다. 또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부활을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믿음은 예수님의 구원의 사랑을 깨달은 이가 가질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심지어 불신자라도 부활을 원합니다. 하지만 원하는 것과 믿음은 다릅니다.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함께 즐겁게 하루를 놀았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는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내일이 뭐지?” 하루살이가 고민하다가 죽은 후 메뚜기가 개구리와 친구가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메뚜기는 찬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 개구리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그만 놀고 내년에 만나자!” 메뚜기가 놀라며 물었습니다. “내년이 뭔데? 아니 내년이 어디 있어?”
  세상에 속한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은 부활에 대해 영생에 대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고 이 세상이 전부이므로 썩고 무너지고 없어질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인도 구원받아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인간의 죽음이 막연한 상상이나 추상개념이 아닌 것처럼 부활도 상상이나 추상개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역사적 사실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추상이 아니듯이 우리의 구원과 영생도 추상개념이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가 죽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반드시 부활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신자는 부활신앙으로 세상에 매이지 않고 죽음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은 단지 나중에 죽은 후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는 것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세상을 살면서 죽음세력에 매이지 않고 부활 신앙으로 죽음세력을 이기는 삶, 세상에서 빛 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그것은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막달라 마리아의 증거를 들은 제자들 중 두 사람이 시골 엠마오로 가면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슬퍼하는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시면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부활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두 제자는 부활의 진리를 깨닫고 나서야 자신들을 가르치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깨닫게 됐습니다. 두 제자들은 즉시 부활의 믿음으로 남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11제자들은 두 사람의 증거를 듣고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 전부터 몇 번이나 자신이 그리스도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더구나 첫 부활의 증인인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만이 아는 약속대로 갈릴리에서 기다리신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못 믿는 것입니까? 아니면 안 믿는 것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침내 열한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14) 예수님께서는 식사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지만 많은 증인과 증거에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은 알아보는 개만도 못한 자들입니다.
  11제자가 믿지 못하는 이유는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예수님의 지적처럼 근본적으로 믿음이 없는 것과 완악함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못 믿는 것)은 믿음이 대단히 약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고 마음이 완악한 것(안 믿는 것)은 확실한 증거를 거부하는 딱딱한 마음입니다. 이런 이들은 마땅히 믿어야 할 것을 거절하고 오히려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을 믿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부활은 자신의 이성과 경험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의 이상한 소문(X파일)에는 근거를 알 수 없는 믿음을 가지고 떠벌립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많은 부활의 증인들의 증거입니다. 증인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부활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말씀 앞에서 교만하고 자기 생각이 강하면 부활신앙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10절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러 갔을 때 제자들은 슬퍼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슬퍼하고 있었을까요? 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3년 동안 따랐던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자신들의 꿈도 산산이 깨져버렸기 때문에 슬퍼했습니다. 무엇보다 목숨 바쳐 따르겠다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도망가 버린 비겁하고 비열한 자신들에게 절망하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설사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해도 위기 앞에서 예수님을 배신한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이 주는 실패와 패배감과 절망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배신과 불신에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억매며 불신하게 하는 사탄의 죽음의 세력과 싸우시고자 그들의 불신과 완악한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생명을 바쳐 이룬 복음의 사실을 모든 이들이 듣고 믿음으로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구원역사에 왜 믿음 없고 완악한 제자들을 쓰시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사실 단순히 복음전파만을 위해서라면 세상에는 제자들보다 더 뛰어나고 신뢰할 만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의 뛰어난 사람들보다 부족하지만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깨달은 사람들을 쓰시고자 하셨습니다. 죽음보다 강한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만이 부활신앙을 가질 수 있고 또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함으로 첫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를 비롯한 11제자는 아직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깨달은 것도 아니고 부활신앙을 가진 것도 아닌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거룩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보다 제자들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랑의 본질을 발견합니다. 바울은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7)고 말합니다. 즉 사랑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믿어주고 그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자주 예수님을 실망시켰습니다. 그 결정판이 예수님이 체포당하자 모두 도망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예수님은 그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그들을 신뢰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온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제자들이 인간적으로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부활의 믿음을 갖게 하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운데 쓰임받길 원하셨습니다. 부활신앙으로 그들이 살아나고 또 세상을 살리는 위대한 복음전파자로 인도하셨습니다. 세상역사는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비범한 역사입니다. 평범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이루어가는 역사입니다. 부활의 증인(복음 전파자)은 자신이 체험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증거하는 자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의 모든 것을 깨닫고 증거할 수는 없습니다. 거짓이 넘치고 미혹하는 세상에서 자신도 모르는 것을 증거하다 오히려 자신이 넘어지고 다른 이들을 실족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일생가운데 예수님께 받은 한 가지 구원의 은혜와 부활의 체험을 증거하는 것이 살아있고 진실하고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또 믿고 증거하는 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병든 사람들을 고치는 표적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시지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연약한 제자들이 위대한 생명구원역사에 계속하여 쓰임받도록 돕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않으셨습니다.(19)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신 구원역사는 제자들에게 맡겨졌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사랑과 부활의 체험을 일생 증거 하였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부활신앙으로 세상의 죽음에서 최후 승리할 것을 믿었고 예수님을 따라 부활의 생명을 얻고자 기쁨으로 자신의 일생과 목숨을 바쳤습니다.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부활신앙으로 복음을 증거해서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었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를 복음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었고 패배주의와 운명주의로 춥고 배고픈 대학생들을 목자요 선교사로 쓰임 받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에게도 부활신앙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 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최근 인본주의, 세속주의 신자들의 악영향가운데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고 갈수록 개인주의화 되는 세상에서 과거처럼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기가 쉽지 않아졌습니다. 더구나 가정을 이룬 이들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로 나갈 수도 없고 또 나이 많은 평신도 목자님들은 캠퍼스에 나가 아들 같은 학생들에게 다가가 전도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때가 예수님의 부활신앙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관계전도’란 말이 있습니다. ‘관계전도’는 말 그대로 가까운 친구나 동료나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입니다. 특히 전도의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을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사실 그 시초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처음에는 대중전도에 주력하셔서 오병이어 사건 때는 장정만 5000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점차로 대중전도보다는 복음이 필요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하셨습니다. 나중에는 제자들을 전도자로 훈련하여 세우는 일에만 전념하셨습니다. 12제자들도 관계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따른 이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된 사람은 안드레와 요한입니다. 이들은 본래 세례요한의 제자였는데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소개하자 곧바로 예수님을 따르게 됐습니다. 안드레는 자기 형 시몬 베드로를 초청했고 같은 동네 사람인 빌립을 전도했습니다. 빌립은 친구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또 요한도 자기 형제 야고보를 초청해 제자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때나 우리나라 경우도 처음에는 대중 집회를 통한 영혼구원역사가 크게 일어났지만 점차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관계전도로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또 종으로 횡으로 많은 관계들을 맺고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어떻게 보면 복음을 전하기에 참 좋은 때입니다. 내가 직접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해도 캠퍼스에서 한 외로운 이방 양을 만나 복음을 전해 예수님께 인도한다면 그가 장차 본국으로 돌아가 만민복음전파의 씨가 될 것입니다. 또 평신도목자도 직장일 때문에 한계가 있어도 학생양이나 자녀가 데려온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그들이 새로운 씨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부활신앙으로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신앙으로 천하를 섬기는 소망과 믿음으로 가을 학기 한 영혼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죄인이 인생의 환란가운데 부활신앙으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시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또 증거함으로 생명구원역사 가운데 쓰임 받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평신도로 살면서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의 말씀이 부담스럽고 마음에 다가오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뛰어야 하는 경쟁사회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고 배척하는 양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졸업 후 10년까지는 캠퍼스에 나가 피싱해서 양들을 만나 말씀공부 한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시대도 변하고 사람도 변해서 캠퍼스에서 모르는 양을 피싱하기도 힘들고 더욱 일대일 말씀공부로 연결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 외에 나에게 축복을 주는 말씀을 주로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때 부활신앙보다 부활신앙에 대한 지식만 남고 막상 세상의 죽음의 세력에 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감사하게도 제가 직접 양들을 피싱하지는 못했어도 다른 사람들이 피싱한 양들을 섬기고 목자님들을 말씀으로 섬기는 직분을 감당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현재 말씀공부 하는 안세권, 송준영 형제님들은 음악과 미술 쪽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제가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였으나 재능이 없어 포기했지만 이분들의 예술세계에 공감하며 복음을 전함으로 이분들이 음악과 미술 쪽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쓰임 받도록 도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와 특권을 주셨습니다. 제가 누구보다도 많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로서 부활신앙으로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구원역사에 일생 헌신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부활신앙을 주신 후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신자는 복음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특권과 또한 의무를 가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복음을 증거함으로 죽음권세로 어두운 시대 우리가 살아나고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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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2강]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 관리자 2019-02-10 833
575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1강] 우리의 사귐 서삼문 2019-02-03 1038
574 열왕기상 [2019년 열왕기상 제10강]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관리자 2019-01-27 1050
573 열왕기상 [2019년 열왕기상 제9강]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 관리자 2019-01-20 1113
572 예레미야 [2019년 신년말씀 제3강]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관리자 2019-01-13 1005
571 기타 [2019년 신년말씀 제2강] 성전을 건축하라 관리자 2019-01-06 820
570 요한복음 [2019년 신년말씀 제1강]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관리자 2018-12-30 914
569 누가복음 [2018년 성탄말씀 제3강]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느니라 관리자 2018-12-23 847
568 누가복음 [2018년 성탄말씀 제2강] 구원의 뿔 돋는 해되신 예수님 관리자 2018-12-16 1178
567 누가복음 [2018년 성탄말씀 제1강] 영원한 왕 예수님 관리자 2018-12-09 894
566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8강] 바알에게 도전한 엘리야 관리자 2018-12-02 1229
565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7강] 여호와 보시기에 관리자 2018-11-25 950
564 시편 [2018년 추수감사예배] 주의 은택을 감사하나이다 관리자 2018-11-18 964
563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6강] 금송아지를 만든 여로보암 관리자 2018-11-11 1035
562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5강]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난 솔로몬 관리자 2018-11-04 947
561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4강]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관리자 2018-10-28 956
560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3강]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 관리자 2018-10-21 1194
559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2강] 지혜를 구한 솔로몬 관리자 2018-10-14 978
558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1강] 왕으로 세움 받은 솔로몬 관리자 2018-10-07 956
557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8강]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관리자 2018-09-3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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