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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0-28 (일) 12:44
분 류 열왕기상
첨부#1 2018년_열왕기상4강-1(이인구).hwp (31KB) (Down: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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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열왕기상 제4강]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2018년 열왕기상 제4강                                                         이인구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말씀/열왕기상 8:1-9:9
 요절/열왕기상 8: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오늘 말씀은 성전건축 후 성전 봉헌식 하는 내용입니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에서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가운데 백성들을 위해 7가지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전이 어떤 곳이고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마침내 성전이 완공된 후 성전 봉헌식을 할 때 솔로몬왕은 먼저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 시온에서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언약궤를 옮기는데 엄청난 준비를 했습니다. 온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족장들을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소집하고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7월 절기 즉 장막절기간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도착한 후에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언약궤를 메어 옮겼습니다. 솔로몬 왕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많은 양과 소로 제사를 드리는 가운데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성전의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로 옮겼습니다. 언약궤의 크기는 큰 사과박스 정도(125cm x75cm x75cm)로 요즘이면 번개택배로 순식간에 옮길 수 있고 당시에도 건강한 장정 한명이 나귀를 끌고 충분히 옮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약궤는 단지 사과를 담은 사과박스도 아니고 돈을 담은 사과박스도 아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인 십계명 두 돌판을 담은 거룩한 상자입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십계명 두 돌판을 받은 후 하나님의 지시대로 만든 것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출25:16)과 하나님의 임재(출25:22)를 상징합니다. 즉 영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출애굽 후 40년의 광야 생활동안 이스라엘백성들은 항상 언약궤를 넣은 성막을 중심으로 생활했고 가나안땅에 입성한 후 실로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제사장의 죄악으로 인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한 후 약탈당했습니다. 언약궤가 블레셋에 있는 동안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그들에게(독한 전염병으로 수많은 이들이 죽는) 큰 재앙을 내리셨고 그들은 두려움가운데 벧세메스로 옮겼습니다.(삼상6장) 벧세메스 사람들이 겁 없이 언약궤 안을 호기심으로 들여다보다가 70명이 죽음을 당해 기럇여아림으로 보내져 20년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 후(사사기시대가 끝난 후) 사울왕은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 없이 살아서 언약궤를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왕이 된 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언약궤를 자신의 성 안으로 옮기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하나님과 늘 함께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선한 의도였지만 옮기는 방법이 잘못 되서 옮기는 동안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한 일군이 죽게 되고 언약궤는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집니다.(삼하6장) 오벧에돔의 집에 3달을 머무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 집에 큰 복을 주시자 다윗은 자신의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레위사람을 택하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옮기는 방법으로 자신의 성으로 옮기는데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신자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자기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신앙생활 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위한 행동이라도 하나님께서 막으신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멈춰 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그동안의 실수의 역사를 돌아본 후 모든 준비를 하고 율법에 규정된 대로 언약궤를 옮겼습니다. 언약궤를 성전에 옮긴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 구름이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언약궤가 중심이 된 성전을 기뻐하셨습니다. 성전은 7년 동안 온갖 아름답고 귀하고 비싼 재료로 지어졌지만 언약궤 없는 성전은 주인 없는 빈집, 폐가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견고하게 지어져도 무의미하며 온갖 정성과 열의를 다 쏟아 부어도 공허한 곳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는 성전은 사람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박물관이나 사람들의 친목도모를 위한 사교 장소에 불과합니다. 언약궤안의 두 돌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과 세운 언약의 말씀으로서 이스라엘이 이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약속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성전인 사람에게도 말씀이 없으면 영혼 없는 육체요 결국 죽어 부패할 흙에 불과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할 때 솔로몬의 기도가 울러 퍼졌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캄캄한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12,13) 하나님이 캄캄한데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이성 너머에 계신 분으로 인간의 지각이나 판단으로 깨달을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맨눈으로 캄캄한 밤하늘을 보면 작게 보이는 별 이외에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그 어둠 뒤편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광활한 우주가 펼쳐져있습니다. 하물며 이 세상과 수많은 생명들과 우주를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그 모든 존재보다 더 크고 높고 깊은 존재이십니다. 얼마 전 우주의 비밀을 많이 안다는 스티븐 호킹박사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마지막으로 저술한 책 ‘어려운 질문에 대한 간략한 답변’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인생의 가치관을 밝히고 있습니다. “신은 없다. 누구도 우주를 주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외계의 지적 생명체들은 존재한다.” 또한 그는 “수백 년간 나 같은 장애인은 신이 내린 저주 속에 산다고 믿어 왔지만 모든 것은 자연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자만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의견에 과학적으로 반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의 모든 노력과 의지와 열정의 결론으로 그는 결국 모든 것이 무의미한 허무한 죽음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명철로 시대를 밝힐 수 있었지만 결국 교만으로 스스로 죽음의 어둠과 혼돈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책의 마지막장에서 호킹 박사는 “어떻게 미래를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발을 내려다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을 기억하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창15:5) 스티븐 호킹박사처럼 하나님 없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혼돈과 공허 속에 살다 죽을 것인가 아니면 아브라함처럼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비전으로 살 것인가는 진정 지혜로운 자의 선택입니다. 진정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고 부족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힘써도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또 설사 하나님께서 다 보여주신다 해도 온전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겸손하게 믿음으로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조금씩 그 뜻을 보여주시고 비전을 갖게 도와주십니다.
  솔로몬은 넘치는 감사가운데 백성들에게 성전건축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습니다.(15) 다윗은 힘들었지만 기쁨으로 옮긴 하나님의 언약궤를 보며 내면에 심히 안타까워했습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삼하7:2) 하나님은 이런 다윗의 진심을 기뻐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아닌 그 아들이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왜냐면 다윗이 정복전쟁으로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었습니다.(대상22:8) 성전은 만민에게 하나님의 평화를 베푸는 거룩한 곳이기에 피를 흘린 다윗이 적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아들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놓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솔로몬왕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성전을 완성하고 언약궤를 위한 처소를 예비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10번째 아들로 도저히 왕이 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로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으로 세움 받은 후 하나님께서 거할 성전을 지었음을 감사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27) 솔로몬은 어떤 인간보다 지혜로운 자이지만 그 지혜로도 하나님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고 제대로 모실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부족한 자신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성전건축역사에 써주신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솔로몬은 봉헌사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친히 주관하셔서 당신의 계획을 뜻대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상역사는 인간들의 계획과 의지에 따라 움직여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움직여집니다. 물론 인간은 자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의지를 가집니다. 그 의지로 문명을 발생시키기도 하고 문화와 역사를 창조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이고 강한 의지와 열심으로도 자신의 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솔로몬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개척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고 고백했습니다.(잠16:9)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찾고 그 뜻에 자신의 삶을 맡기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뜻처럼 자신의 기분대로, 내키는 대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언약에 기초하여 이루어집니다. 솔로몬은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사는 신자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23) 하나님은 친히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아브라함에게도, 죄악된 이스라엘 노예백성과도 언약을 세우시고 반드시 그 언약을 이루어나가셨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하나님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스라엘의 왕위가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확실히 지켜주실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인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을 밤낮으로 지켜주시며 그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신자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과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소통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그 뜻을 찾고 그 뜻에 순종할 힘과 지혜를 덧입고 동행하며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성전에서 또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간구함을 들으시도록 간구했습니다.
  솔로몬은 구체적으로 백성들을 위해 7가지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첫째,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솔로몬은 백성들이 이웃에게 죄를 범해 성전의 하나님께 나올 때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시도록 간구했습니다. 악한자의 죄를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는 의롭다 하시며 그 의로운 행위대로 보상해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나도록 간구했습니다. 예전에 한 군인이 많은 시민들을 죽이고 대통령이 되면서 내세운 구호가 ‘정의사회구현’이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힘(권력, 돈)이 정의이며 아름다운 것이고 선한 것입니다. 한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세상의 진정한 정의에 목말라했던 사람들은 기대감으로 그 책을 보았지만 ‘정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며 더욱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상대적이고 이기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정의는 사람에 따라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민족의 위대한 독립투사가 다른 민족에게는 원수일 뿐입니다. 진정한 정의는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왕이었지만 백성들을 공평과 정의로 판단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속해있고 자신은 그 대리인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편에 속한 것이 정의(공의)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정의입니다.
둘째 기도부터는 하나님께 범죄하여 인생의 고난을 당한 경우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한 경우, 주께 범죄하여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경우, 주께 범죄하여 기근이나 전염병 등 재앙이나 질병이 생긴 경우, 주께 범죄하여 포로로 잡혀간 경우 그리고 죄가 죄인지도 모르는 이방인들이 드리는 기도 등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다윗을 통해 명확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이스라엘의 왕위가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반면에 불순종하면 경고하신 대로 심판과 멸망이 따를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약속입니다. 그런데 왜 솔로몬은 백성들이 언약을 지키지 않았을 여러 경우를 고려해서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까? 솔로몬 당시 이스라엘은 다윗의 활발했던 정복역사 때문에 그 지역에서 최강대국이 되었습니다. 당시 애굽은 21왕조시대로 국내적 혼란으로 세력이 매우 미약해 쇠퇴단계였고 또 앗수르도 국내의 혼란으로 아직 대제국으로서의 세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때 팔레스틴 지역의 대부분의 약소국들은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조공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황금시대를 앞두고 또 성전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오는 기쁜 날에 솔로몬왕은 왜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까? 이것은 마치 보험회사와 고객들이 계약을 맺을 때 계약서의 가장 뒤쪽에 계약해지조건이라는 아주 작은 글씨로 쓰여진 부분을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범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46)을 알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결국 하나님께 범죄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사는 광야시대와 사사기 시대 때 끊임없이 반복해온 역사였습니다. 역사를 기초한 확률로 분석해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솔로몬은 그때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났다 해도 인생의 환란가운데 회개하고 다시 돌이켜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애타는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간청하는 것입니다. 죄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다시 회복시켜주실 것을 간청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해 축복을 받은 인물의 기준으로 항상 다윗을 내세우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같이 그 백성들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영원히 축복을 주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완벽하게 말씀에 순종했던 사람이었습니까? 신앙초기 때는 사울에게 쫓기는 많은 환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목숨 바쳐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많은 축복을 받고 통일왕국의 왕으로 세움 받고 나라가 견고하게 설 때 다윗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죄에 빠졌습니다. 군사들이 목숨 걸고 전쟁할 때 왕으로서 나태와 안일에 빠져 목욕하는 충신의 아내를 범했습니다. 또 그 죄를 감추고자 충신 우리아를 전쟁에 나가 죽게 하고 그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그 죄는 사울의 범했던 죄보다 더 큰 죄일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에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회개하고 일평생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죄의 대가로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자신에게 반역해 쫓겨 갈 때도 또 평생을 함께 했던 측근들이 자신을 배신할 때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신하지 않고 평생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며 살고자 힘썼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생 쌓은 많은 업적보다 죄에서 돌이킨 그의 회개의 열매를 더 기뻐하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백성들이 죄악 속에서도 다시 돌이킬 때 다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회복시켜주실 것을 기도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회개하지 않은 백성들을 무조건 용서해 달라 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애통히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온 백성들의 어떤 죄에도 용서해 달라 기도했습니다.
  솔로몬은 만약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서 패한 후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부르며 성전에서 기도하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사해주셔서 고향으로 돌아오도록 기도했습니다.(33,34) 또 만약 백성들이 주께 범죄하여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을 때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사하시며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고 주의 땅에 비를 내려달라 간구했습니다. 당시 비는 실제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었습니다. 죄 가운데 생활고에 빠질 때 하나님께 나아와 회개할 때 어떤 길로 가야(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가르쳐달라 간구했습니다.(35,36) 또 만약 기근이나 전염병 등 재앙이나 질병이 생길 때 백성들이 재앙의 원인을 깨닫고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갚아 달라 간구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내면의 생각을 다 아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공의로 대하시면 백성들이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 것이라 기도했습니다.(37-40) 또 만약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의 소문을 듣고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심으로 그들이 주의 백성처럼 살도록 간구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이 이스라엘의 것만이 아닌 세상 모든 백성들에게 열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임을 깨닫고 있었습니다.(41,42)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약 하나님께 반복적으로 범죄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떠나 적의 포로 된다 할지라도 그곳에서 드리는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달라 간구했습니다. 한번 두 번 죄를 짓고 떠났다가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수 있지만 끊임없이 반복해서 죄에 빠져 아예 하나님을 떠나 사단의 포로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그때에도 백성들이 포로된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성전을 향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들을 용서하시며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들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도록 기도했습니다. 왜냐면 그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철 용광로 같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된 조상들을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인도하신 것처럼, 세상가운데 그들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기업을 삼으신 것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용서하시고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달라 기도했습니다. 끊임없이 죄를 범하는 이들을 용서하는 것은 다시 회개한다 해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용서한다 해도 다시 죄를 범할 가능성이 크기 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택해 새로 시작하는 것이 더 현명해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공의로 죄에 빠진 백성들을 벌주시며 연단하시지만 그것은 최후 심판이 아니라 그들을 다시 돌이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연단하시며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솔로몬은 기도를 마치고 수많은 소와 양들을(소22,000마리, 양12만 마리) 희생제물로 바치며 14일 동안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며 온 백성들과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 기쁨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면의 솟아나는 기쁨입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솔로몬의 기도처럼 하나님께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며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성전에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솔로몬이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순종하면 다윗과 맺은 언약처럼 솔로몬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기 하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만약 솔로몬과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한 성전이라도 던져버려 세상에서 비웃음과 이야기 거리로 전락하게 만들 것이라 경고하셨습니다.
  솔로몬의 마지막 기도는 약 400년 후 현실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말기부터 시작된 우상숭배의 죄는 갈수록 커져 솔로몬 아들 르호보암 때 나라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쪼개졌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 다시 돌아오기를 수없이 반복하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에 멸망되고 남 유다는 B.C. 586년 바벨론에 멸망당해 포로백성이 됩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죄와 멸망의 시작은 솔로몬이 초기의 믿음을 버리고 말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수많은 이방여인들과 결혼해 그들이 가지고 온 우상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믿음의 길을 따라 신앙의 길을 출발했지만 끝까지 다윗의 믿음의 길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하나님과 언약을 지키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통한 언약을 기억하시고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열왕기말씀은 포로시대 때 쓰여진 역사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영접한 저자가 기록한 이 역사서를 통해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절망에서 일어나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를 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다시 그들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회복시켜주시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죄인에게 말씀을 통해 자신에게 눈을 돌려 시대를 바라보고 섬기는 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평생 죄에 빠져 방황하며 자기 인생하나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을 때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말씀을 증거하며 섬기는 삶을 살게 도와주셨습니다. 그때 어렵고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안정되고 견고한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신앙생활 중에 기도가 많이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매일 정해진 신앙스케줄을 따라 살지만 기도를 위한 시간을 제대로 할당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기도할 것은 많지만 막상 기도하지 않아도 삶은 돌아가기 때문에 시간될 때 가끔씩 기도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 깨닫게 됩니다. 제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그냥 맡기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깨달으며 하나님 마음을 덧입고 역사를 섬기는 종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 인생의 안정의 때가 오히려 영적위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기도하며 깨어서 사단의 유혹을 깨닫고 피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세우신 성전에서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승리의 인생을 사는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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