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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1-11 (일) 12:25
분 류 열왕기상
첨부#1 2018년_열왕기상6강-1(최동진).hwp (64KB) (Down: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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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열왕기상 제6강] 금송아지를 만든 여로보암

 
 2018년 열왕기상 제 6 강                                                            최동진

금송아지를 만든 여로보암

 말씀 / 열왕기상 12:1-14:20
 요절 / 열왕기상 12:28,29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분열과 실패한 두 왕에 대한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없고 교만하여 말씀에 불순종하고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힘으로 제압하려 하다가 나라의 분열을 초래한 왕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이스라엘 열 지파를 다스리는 왕으로 세움 받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백성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한 악한 왕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I.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12:1-24)
  12:1절을 보십시오. 솔로몬 왕을 계승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된 르호보암은 왕으로 세움 받기 위해 세겜으로 갔습니다. 세겜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65km에 위치한 에브라임 산지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의 성읍으로서 북이스라엘의 중심지였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세겜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곳입니다.(창12:6) 또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에게서 산 밭이 있는 곳으로서 여기에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장사하였습니다(수24:32). 그래서 세겜은 요셉 자손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거기다 에브라임 지파인 여로보암은 왕국 분열 후 세겜을 첫 번 째 수도로 삼음으로 북쪽 열 지파의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왕위 즉위식을 갖지 않고 세겜으로 간 것은 북이스라엘 지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죽자 백성들은 애굽으로 망명을 갔던 여로보암을 불러들였고 그를 앞세워 르호보암에게 탄원을 했습니다. 그것은 부친 솔로몬 왕이 백성들에게 부과시킨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르호보암은 3일간의 시간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노인들은 나라의 원로들로서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백성들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될 것이라고 조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은 노인들의 지혜로운 답을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소년들과 의논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가장 풍요로운 시절에 권력층 가문의 자녀로 태어나 온갖 특권을 누리며 부족함 없이 자라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열정과 의욕은 넘쳤으나 경륜과 지혜가 부족한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대답은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10,11) 말을 함으로써 르호보암 왕의 교만을 부추기는 조언을 하였습니다. 이때 르호보암은 지혜로운 노인들의 자문을 버리고 교만하고 분별력이 없는 어린 자들의 자문을 따랐습니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요구에 포악한 말로 대답했습니다.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14).” 그가 왜 이렇게 자신을 아버지 솔로몬과 비교하며 과격하게 대답한 것입니까? 아마 국정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려면 집권 초기에 기강을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솔로몬이 다스릴 때에는 잠잠히 있다가 자기가 왕이 되자마자 그런 요구를 하는 백성들을 괘씸하게 여기고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함으로 누르고자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솔로몬 왕은 처음에는 백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잘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처음부터 노인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어린 친구들의 말만 들었습니다. 요즈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노인들을 무시하고 혐오하는 분위기가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인들에게는 오랜 세월 속에서 체득한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인들의 말씀을 잔소리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잘 들으면 백성들의 고충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백성들을 위한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르호보암은 많은 이방 여인들의 영향력을 받고 자라다보니 힘이 지배하는 이방 세계의 왕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그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이스라엘 왕국은 분열의 길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왕은 백성들에게 봉사하는 종으로서 하나님께 선택된 자입니다.(신17:15) 왕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여호와를 경외하고 율법과 규례를 지켜 행해야 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의 공의로 나라를 다스릴 때 온 이스라엘이 다윗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인정하고 존경하며 따랐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구체적인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교만하여 백성들을 무시하고 힘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의 마음이 그를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지파에 속하지 않은 백성들은 더 이상 다윗의 가문에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어졌고 결국 나라는 남북으로 나눠져 남쪽에는 유다지파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르호보암은 역꾼의 감독인 아도람을 보내어 백성들의 반발을 진압하고 강압정책을 밀어붙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온 이스라엘이 그를 쳐 죽였습니다. 그러자 르호보암은 황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습니다. 이때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로보암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상에서 이스라엘의 분열의 직접적인 원인은 르호보암이 백성들을 섬기고자 하기보다는 군림하고자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의 조언을 발로 차버리고 소년들의 아부성 권면을 받아들여 백성들에게 무례하고 교만한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분열의 근본적인 원인은 솔로몬의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교훈을 줍니다. 교회의 하나 됨은 예수님의 섬김과 온유의 마음을 배우고 품을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으로 우리의 멍에를 가볍게 해주셨습니다.(마11:28-30)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권면하였습니다.(엡4:2,3) 반면에 교회의 하나 됨을 파괴하는 것은 교만과 기득권에 사로잡혀 욕심을 부릴 때입니다. 죄는 분열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용서와 섬김은 분열된 모임을 하나 되게 합니다.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에서 용사 18만 명을 일으켜 이스라엘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려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스마야에게 임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았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려는 르호보암을 막으셨습니까? 동족끼리 전쟁을 하게 되면 쌍방간 모두가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또한 갈등의 불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둘이 합쳐지더라도 완전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거기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다윗의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보호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우상 숭배에 대한 징계를 통해 이스라엘이 다윗의 마음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양무리들을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교회가 하나 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임을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II. 여로보암의 죄(12:25-14:20)
  여로보암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열왕기상 11:26-2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여러 면에서 다윗과 비슷합니다. 그는 큰 용사였고 부지런한 자였습니다. 그는 다윗과 마찬가지로 평민출신이었지만 솔로몬의 인정을 받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에서도 가장 큰 지파인 요셉 족속의 역사를 감독하는 지도자로 세움 받았습니다. 또 그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스라엘 열 지파를 다스리는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만일 그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를 위해 견고한 집을 세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된 후 다윗과는 다른 길을 갔습니다. 여로보암은 왕이 된 후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여 수도로 삼고 부누엘을 건축함으로 외적에 대해 든든한 방어선을 구축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백성들이 일 년에 3차례 절기 때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내려가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방치해두다 보면 나라의 정통성이 남쪽 유다에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그의 리더쉽이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그가 왜 이런 근거 없는 염려를 하게 된 것입니까? 이는 그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었더라면 그런 염려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8-30절을 보십시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그는 벧엘과 단 두 군데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백성들에게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출애굽기 32장의 사건과 매우 비슷합니다. 아니 그보다 더 심합니다. 그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여호와께 대한 신앙을 버렸고, 백성들에게 우상숭배의 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그는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 나 외에 다른 신을 있게 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 1, 제 2계명에 불순종함으로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배반했고 백성들을 죄의 길로 몰고 갔습니다.
  그의 근본문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지 않는 불신과 계명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된 이후의 여로보암의 모습은 사울과 유사합니다. 사울 왕의 문제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5:24에서 사울은 선지자 사무엘에게 고백합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울이 두려움의 종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백성들의 말을 청종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입니다.(딤후1:7)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지 않는 자에게 사탄은 두려움을 심어 사람을 못 쓰게 만들어버립니다. 말씀 공부를 잘 하고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마음에 두려움이 들어오면 갑자기 마음이 완악해져서 불신과 인간적인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31-33절을 보십시오. 그가 범한 또 다른 죄가 나옵니다. 그는 레위인이 아닌 보통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고 초막절도 7월15일에서 8월15일로 바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기보다 백성들이 편리한 대로 자기 나름대로 했습니다. 이로서 그는 불경건한 왕의 전형으로서 모든 악한 왕들의 본보기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나름대로 행하면 잘 될 것 같지만 결국 사탄의 올무에 빠져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믿음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져 있느냐 세상욕심으로 채워져 있느냐,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자 하는가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하는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로마서 8:6절에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자기 생각이나 계획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애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참 자유와 은혜와 여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가 죄 많은 세상에서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사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3장1절을 보십시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이르러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 여로보암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이는 약 300년 후 요시야 왕에 의해 이루어질 일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왕하 24:15-20) 누구든지 시체를 만지고 정결하게 하지 아니한 자는 성막을 더럽히는 자로서 그 부정함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자로 여겨졌습니다.(민19:13) 그런데 제사장의 시체가 제단에서 불태워진다는 것은 그 제단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사마리아인들은 사람의 뼈가루를 성전에 뿌림으로써 성전에 대한 극도의 경멸을 표했다고 합니다. 선지자의 경고를 들은 여로보암은 회개하고 돌이키기는커녕 화가 나서 그 사람을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거두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말한 징조대로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의 손이 다시 성하기를 기도하였더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루어질 심판에 대해 경고하시고 한편으로 그 선지자를 보호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 젊은 선지자 자신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이유는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 가지도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처음 여로보암의 초청은 잘 피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심판을 받게 된 것은 늙은 선지지가 그를 속여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고 하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13:18). 늙은 선지자가 왜 젊은 선지자를 속여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요? 늙은 선지자는 자기도 하지 못하는 엄청난 사명, 곧 왕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 대단한 용기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기심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게 되고 사람들을 잘 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이 늙은 선지자의 모습은 당시 북이스라엘의 제사장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백성들로 하여금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리도록 하면서 자신들도 제사장이고, 자신들도 여호와를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함으로 백성들을 속이고 백성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젊은 선지자에게도 죄에 대한 책임이 분명 있습니다. 그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시험해야 했습니다. 요한일서 4: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아무 인격적인 관계성도 없는 늙은 선지자가 그런 말을 할 때 일단 의심을 하고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배고픔과 목마름을 참지 못하여 늙은 선지자의 집에 들어가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가 먹고 마신 것이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큰 죄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징계하셔서 사자에게 찢겨 죽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젊은 선지자는 두 번의 메시지를 전한 셈이 됩니다. 하나는 살아서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고, 또 하나는 불순종하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선지자라도 말씀을 듣지 않으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온 몸으로 전했습니다. 이는 그 시대 사람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반드시 들어야 할 가장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여로보암은 왕이라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가장 먼저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33,34절을 보십시오.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됨을 배웁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갈 6:7) 이 시대는 절대적 진리와 가치를 부정하는 다원주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의 삶의 절대적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진리로서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거짓 영들을 물리치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4장 1-20절에서는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죽게 되는 장면을 기록함으로써 이미 심판이 시작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는 선지자 아히야에게 아내를 변장하여 보냄으로 아이의 병에 대해 물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의 우상숭배의 죄를 통렬하게 책망하시고, 그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다 끊어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버림 같이 말갛게 쓸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읍에서 죽으면 개가 먹고, 들에서 죽으면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는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서 그가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에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서 장사지낼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대로 여로보암의 아내가 돌아가서 집 문지방에 이를 때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을 버리셨고 200년 후 B.C.722년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속히 망하게 된 것은 여로보암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나누시매 그들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았더니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몰아 여호와를 떠나고 큰 죄를 범하게 하매 이스라엘 자손이 여로보암이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드디어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내쫓으신지라. 이스라엘이 고향에서 앗수르에 사로잡혀 가서 오늘까지 이르렀더라.”(왕하 17:21-23) 우리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을 가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거나 자기 욕심을 좇아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현재 내가 과연 누구의 길을 가고 있는가 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사람들의 인정과 물질을 좇아 자기만을 위해 살다가 멸망에 이를 자를 구원하사 캠퍼스 목자로 세워주시고 하나님 안에서 생명의 열매 맺는 복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학창시절부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기초를 놓게 하시고 말씀 전파에 힘쓰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고 여러 모양으로 섬기며 가정 교회로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두 자녀를 세계선교의 씨앗으로 내보내게 하시고 세계선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섬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고, 하나님의 은혜로 특별한 어려움 없이 마음껏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씀 앞에서 돌아볼 때 현재의 상태에 자족하며 삶을 즐기려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들로 기쁨을 얻으려 할 때 신앙생활의 한계에 부딪치게 되고 자칫하면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 길로 가다가 죄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마음의 위로와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 받는 진정으로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가운데 자기에게로 향해있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켜 온전한 믿음의 길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이 없고 죄악된 이 시대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와 축복을 귀하게 여기고 믿음으로 잘 간직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주님의 종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결단이 필요합니다. 다윗의 길을 갈 것인가, 여로보암의 길을 갈 것인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사람들의 판단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지금도 살아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기준으로 삼아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그 후손들도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후손들을 위해서도 여로보암의 길을 가지 않고 다윗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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