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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2-10 (일) 12:35
분 류 요한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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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요한일서 제2강]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

  2019년 요한일서 제2강                                                           김반석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

 말씀 / 요한일서 2:3-27
 요절 / 요한일서 2:9,10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우리는 지난주 말씀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성도의 사귐에 대해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사귐을 가진 자들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이 시간 계명에 순종하여 형제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빛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Ⅰ. 하나님과의 교제의 구체적인 방법(3-11)
첫째, 계명을 지키라(3-6)  
3-6절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예수님을 아는 것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을 알려면 먼저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는 않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요 진리의 말씀이 그 사람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피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인격적으로 체험하게 된 실제적인 지식입니다. 이는 과거에 한 번 안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도 그 앎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내면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죄의 낙을 즐기며 이기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2:26). 말씀대로 행하지 않을 때 바리새인과 같이 이중생활을 하며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는 자는 예수님을 본받고자 하는 소원 가운데 기쁨으로 말씀에 순종하고, 거룩한 삶을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이때 어떤 은혜를 누리게 됩니까? 5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할수록 주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내면이 변화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여 넘어질지라도 실제 삶에서 말씀대로 행하고자 영적인 투쟁에 힘써야 합니다.
둘째, 서로 사랑하라(7-11)
그러면 우리가 힘써서 지켜야 할 계명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이 말씀은 새 계명으로도 볼 수 있고 옛 계명으로도 볼 수 있는 계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무엇일까요? 옛 계명은 십계명으로서 한 마디로 요약하면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신6:5,레19:18) 그러므로 사랑에 대한 계명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약 시대부터 있었던 옛 계명입니다. 그런데 8절에서는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쓴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3:34,35절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새 계명은 과거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을 통해 옛 계명을 실천하시므로 새로워졌고, 새로운 표준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새 계명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옛 계명과 비교해서 범위와 깊이에 있어서 차원이 다릅니다. 옛 계명의 사랑의 범위는 유대인에게 한정되어 있어서 죄인이나 이방인들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저주와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과 이방인, 더 나아가 모든 족속을 사랑하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이방인에게까지 전파되었습니다. 또한 옛 계명의 사랑의 깊이는 이웃은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는 차원입니다.(마5:43) 하지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마5:43,44). 사람들은 이기심 때문에 사랑해야 마땅한 대상조차 사랑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원수, 핍박하는 자들은 저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심으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이처럼 사랑의 계명이 새로운 계명이 된 것은 사랑의 본질이신 예수님이 성육신 하셔서 죄인들을 섬기시고,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사랑을 완성하심으로 사랑의 표준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9-11절은 빛 가운데 거하는 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9절 말씀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여기서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라는 뜻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강조한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 안에 산다고 하면서’라는 말씀입니다. 빛 가운데 있으면 당연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도 알고 하나님의 사랑도 압니다. 당연히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 사람은 지금까지도 어둠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즉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 삶에서 사랑의 실천이 없는 사람은 허울뿐인 신앙에 불과하고 실상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는 것입니다. 11절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면 영적인 분별력과 판단력을 상실하여 형제의 장점보다 약점을 보고 정죄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형제가 하는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듭니다. 말하는 것, 먹는 것, 걸음걸이, 잠자는 모습, 심지어 웃는 모습까지 밉게 보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죄인 줄 알고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지만 막상 그 형제를 보기만 하면 자신도 모르게 미운 감정이 되살아납니다. 형제를 미워하게 되면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사라집니다. 눈을 감아도 미운 감정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면 결국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미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빛을 차단하는 암막커튼과 같습니다. 마음에 미움의 커튼을 치고 있으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고 형제와의 교제도 막히게 됩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회개함으로 미움의 커튼을 걷어내야 하나님으로부터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빛을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형제를 사랑하는 자의 삶은 어떠합니까? 10절 말씀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빛 가운데 거하여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충만하여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어불성설입니다. 사랑과 미움은 정반대의 현상이므로 중간이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미워하는 것이요 실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랑은 성경지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였듯이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요일3:17절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자요,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요일4:20,21) 성도의 교제에 있어서 비록 미워하게 하는 자가 있을 수 있지만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그를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형제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형제를 섬기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의 죄악된 본성으로는 미운 짓을 하는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려면 나에게 베푸신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낮아져 섬기고자 투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이들은 잠시 후면 예수님을 팔고, 부인하고, 도망갈 자들로서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발톱을 뽑아버려도 시원찮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기심에 찌들고 죄로 병든 제자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영접하시고 섬김의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 하셨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형제의 연약함과 허물을 보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발을 씻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행위를 결정짓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사랑하면 어떤 모양으로든지 섬기는 행위로 나타나야 합니다. 현재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한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습니까?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물을 드린다면 하나님이 받아주시겠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먼저 형제와 화목하길 원하십니다.(마5:23,24) 우리가 지금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나를 섬겨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형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영접하고 사랑하고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형제를 사랑하되 내가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디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사 찾아오신 것입니다. 내가 아직 연약할 때에, 내가 죄인 되었을 때에, 주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하시고 나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5:6-10)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면 이 사랑이 내 마음에 늘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도 먼저 형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 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 형제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해주길 바라는 것은 철없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미움 받을 짓을 하면서 사랑받길 원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입니다. 하나님 역사를 섬기다보면 불화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때 시시비비를 가려서 상대방이 먼저 용서를 빌지 않으면 나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면 성령의 그릇이 깨져 동역할 수 없게 됩니다. 요한은 과거 성격이 불같아서 자신들을 영접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불을 내려서 멸해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하기도 했습니다. 수제자인 베드로와는 누가 크냐며 경쟁하던 자였습니다. 이런 그가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를 복음의 동역자로 영접하고 합심기도하며 복음전파 역사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은 아낌없이 주고도 혹시 부족한 것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무조건적으로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습니다.(행20:35) 우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되 먼저 사랑하기에 힘쓰므로 사랑의 열매 맺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Ⅱ.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경계해야 할 것(12-27)
첫째,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12-17)  
12-14절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갖는 성도들은 어떤 자인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성도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할 때 계속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12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로 본서의 수신자 전체를 가리킵니다. 진노의 대상이었던 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된 것은 일방적인 은혜요 축복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자학하고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여 실수할지라도 확신해야 할 것은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죄를 이미 다 용서해주셨고 현재 나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이를 믿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위로와 힘을 덧입고 주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13,14절에는 아비들, 청년들, 아이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는 교회는 다양한 계층과 세대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해줍니다. 13절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비들’은 교회 내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태초부터 계신 예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깊이 만나고 신앙적으로 성숙한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신앙경륜이 많아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영적인 지혜와 은사를 얻은 자들입니다. 아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섬기며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섬기기 위해 합심동역하고 기도하며 영적인 자녀들을 양육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현장에서 발로 뛰지는 않지만 성숙한 인격과 좋은 영향력으로 교회에서 영적 방향을 제시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청년들’은 교회에서 하나님 역사를 열정적으로 섬기며 사단의 세력과 앞장서서 싸우는 복음의 일군들을 말합니다. 청년의 특징은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강해질 수 있습니까? 사단과의 영적 싸움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입니다. 말씀의 무기로 무장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영적으로 강건하게 하시고 사단과 싸워 이기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요16:33b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죄와 사단 권세를 파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사단의 강한 세력이 나를 넘어뜨리려 해도 승리하신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붙들고 싸울 때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아이들은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아버지를 알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교회 내에서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잘 인도하지 않으면 각종 다툼의 빌미를 제공하여 온전한 사귐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영적 아비들로서 믿음이 어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귀히 여기고 잘 돌보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5-17절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갖는 성도들이 세상에 대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15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여기서 세상이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모든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세상에는 사랑할 만하고 소유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세상을 사랑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게 됩니다. 사단은 세상을 사랑하도록 유혹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결국은 없어지게 됩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듯이 세상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마6:24)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 심령에 하나님의 사랑이 풍성하게 됩니다. 둘째로, 세상의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6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이란 타락한 사람의 본성으로 육체적인 쾌락들을 탐닉하는 기질과 성향을 말합니다. 육신의 정욕은 생리적인 욕구가 아니라 죄성을 좇아 일으키는 욕망으로 육신의 쾌락을 자극하고 선동하여 감각에 지배되는 삶에 빠지게 합니다. 이것에 빠지면 식욕, 성욕, 수면욕, 낭비욕, 탐욕의 노예가 되어 무절제한 삶을 살게 됩니다. ‘안목의 정욕’은 눈으로 짓는 모든 죄를 말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그대로 뇌신경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자극도가 매우 강합니다. 해로운 광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끼듯이 안목의 정욕에 빠지지 않으려면 말씀의 안경을 착용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필터링을 할 때 마땅히 볼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무분별하게 보면 패가망신하게 됩니다. 하와는 계명의 말씀을 버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보다가 안목의 정욕에 빠져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그 열매를 따먹고 범죄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다윗도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다가 정욕의 죄, 살인죄 등을 지었습니다. 스마트폰을 소통하고 유익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사용하면 참으로 유익합니다. 하지만 음란사이트나 동영상을 보는데 사용하면 정욕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적으로 황폐하게 됩니다. ‘이생의 자랑’은 자신이 소유한 물질뿐만 아니라 명예, 권세, 업적 등을 통해 자기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야망과 허영심을 말합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인생목적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 셋째로, 세상의 것들은 다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의 것들은 일시적인 것들로 결국에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이 다 사라지게 됩니다. (약4:14) 우리의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아름다움과 영광은 들의 꽃과 같습니다(사40:6-8). 풀이 싱싱하고 꽃이 아름답지만 결국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듭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명예와 부와 권세도 하나님이 훅하고 불어버리시면 한 순간에 다 날아가 마르고 시들어버립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 셋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셋째는 주의 일을 행하는 자입니다. 역사 이래 모든 것이 바뀌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때가 되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둘째, 적그리스도를 피하라(18-27)
18절을 보십시오. 말세가 가까울수록 적그리스도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적그리스도는 당시 영지주의자를 비롯하여 예수님의 인성이나 신성, 성육신, 대속의 죽음, 부활승천 등을 부인하는 이단 사상, 자칭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참 말을 하는 것 같지만 모두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요12:44,45) 예수님은 이런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예고하시며 그들을 믿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4:23,24) 적그리스도에게는 미혹하는 영이 있어서 성도들을 미혹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사귐이 없는 거짓말쟁이들이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도 말고 멀리해야 합니다.(딛3:10) 무엇보다 처음부터 들은 복음과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이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셔서 구원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주시고, 끝까지 진리와 생명의 길을 가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설 명절 기간에 메시지를 써야 되자 처음에는 불평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명절 때는 추도예배 메시지도 쓰고 가족들도 섬겨야 하는데 “왜 하필 저란 말입니까?” 엎친 데 덮친다고 명절 기간에 친척뻘 되는 형의 죽음과 소꿉친구의 부친 별세 소식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고, 잔머리를 굴리며 모른 척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이 식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죄인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어떠한가를 되새기며 회개하고, 슬픔 가운데 있는 친구를 문상하여 하나님의 위로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도 영적인 아비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자 방향 잡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자에게 학생팀을 비롯하여 몇 명의 학생들을 말씀으로 섬기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한편으로는 감사하지만 이들을 영육 간에 섬기고 훈련하는 수고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제게 학생들이 지금은 비록 어리지만 장차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용사들로 성장하여 복음역사의 주역들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덧입혀 주셨습니다. 제가 안일하게 살고자 하는 자기를 날마다 부인하고, 아비의 마음으로 맡겨주신 성경성생의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여 학생제자양성역사에  역사에 쓰임 받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주님과 교제를 지속하려면 구체적으로 계명의 말씀에 순종하고, 서로 형제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되고, 적그리스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처음 들은 것을 굳게 붙들므로 주님 안에 거하며 성령의 열매 맺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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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3강]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3-24 1446
58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2강]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관리자 2019-03-17 1122
580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강]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3-10 1204
579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5강] 세상을 이기는 믿음 관리자 2019-03-03 1369
578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4강]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관리자 2019-02-24 1059
577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3강]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관리자 2019-02-17 1674
576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2강]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 관리자 2019-02-10 920
575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1강] 우리의 사귐 서삼문 2019-02-03 1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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