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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4-21 (일) 12:37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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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7강] 노아와 맺은 언약

     2019년 창세기 제7강                                                              오정훈

노아와 맺은 언약

말씀/창세기 7:1-9:17
요절/창세기 9: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요즘 버닝썬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고 더 많은 은밀한 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죄가 쌓이고 쌓이면 하나님은 무섭게 진노하사 심판하여 버리십니다. 동시에 변함없이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 새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배우고 죄가 가득한 세상에 무지개를 주시므로 세상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마지막 남은 때를 준비하는 주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철저한 하나님의 심판(7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하나님은 노아와 그 온 집이 방주에 들어가라 하십니다. 이는 노아가 음란하고 강포한 그 시대에 오직 말씀을 좇아 의롭게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셨기 때문입니다. 보셨다는 것은 이제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의 삶을 다 지켜보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 지켜보고 계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두렵고 떨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은 CCTV, 블랙박스가 곳곳에 있어 사람들을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패러디해서 요즘 학교의 급훈으로 쓰이는 것 중 하나가 ‘엄마가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엄마가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있으니까 졸지 말고 딴 짓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무도 안본다고 생각하고 은밀하게 죄를 짓습니다. 나만 알 것이라 생각하지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스마트폰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말 믿음으로 사는지 아니면 믿음으로 사는 척 하는지 다 아십니다. 척하면 척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의식할 때 노아와 같이 음란하고 불의한 세상에 마음 뺏기지 않고 말씀을 좇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7:2,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둘씩 방주로 이끌어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하십니다. 정결한 짐승, 부정한 짐승 이들 모두 세상에 필요하고 이들 모두를 보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4절입니다.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칠일 후면 하나님은 세상에 사십 일간 비를 내려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릴 것이라 하십니다. 지난주 예배 때만 해도 120년의 기간이 남았었는데 이제 일주일 만에 칠일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는 세월이 살 같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좀만 더 있다가, 나중에 믿겠다 하다 보면 칠 일 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7장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의 삶의 특징은 한마디로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입니다. ‘다 준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노아는 장장 120년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는 취미삼아, 적성에 맞아서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에 자신의 인생을 전부 걸어야 하기 때문에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바쁘고 또 힘들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기 때문에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 믿음을 체험하므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노아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고 그는 이런 믿음의 순종을 통해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6절입니다. 홍수가 땅에 있을 때 노아의 나이 600세였습니다. 노아와 아들들 그 아내와 며느리들이 다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한명의 이탈자도 없이 온 가족이 다 방주에 들어간 것을 보면 노아의 경건한 삶이 온 가족에게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합니다. 한 사람의 믿음의 삶이 온 가족에게 영향을 미쳐 모두 구원받게 하는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이것이 음란하고 죄악된 시대에 끝까지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됩니다.
7:8,9,14,15절. 모든 생물이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암수 둘 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또 재난이 닥치면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동물들의 본능을 따라 가장 안전한 방주로 나아온 것이 분명합니다. 다 들어가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노아가 방주를 짓는 동안에는 ‘이 사람이 뭐하나?’ ‘이게 뭔가’ 하고 와서 누구나 구경도 하고 안에도 들어갈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시는 순간 이제 아무도 그 문을 열 수 없고 그 안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생각에 내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믿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에 때가 있듯이 구원에도 때가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은혜 주실 때 믿고 방주에 올라타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손을 내미실 때 튕기지 말고 영접하므로 구원의 은혜를 덧입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성경은 홍수가 시작된 정확한 날짜를 기록함으로서 이것이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물폭탄 정도가 아니라 양동이보다 더 두꺼운 빗줄기가 땅에 쏟아졌고 땅속과 바닷 속의 깊은 샘들이 터져 해일이 범람하고 쓰나미가 들이닥쳐 온 세상을 뒤덮었습니다. 물이 많아져 배수량이 3만 톤이 넘는 거대한 방주가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방주가 떠다니게 되었습니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도 그리운 금강산도 백두산도 잠기고 마침내 천하의 높은 산도 다 잠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물이 더 불어서 최고로 높은 산보다 십오 규빗(7.5m) 더 오르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하루에 얼마나 쏟아지면 사십 일 만에 이렇게 온 천하가 다 잠기게 되는 것일까요? 세상에는 이런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사람들이 꼭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계산해 봤는데 현재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산을 기준으로 생각할 때 최소 하루에 222m의 비가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시간당 계산하면 9.2m정도입니다. 시간당 강수량이 9m를 넘으니까 불과 몇 시간도 안되어 대부분의 인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수영 못하는 사람들은 곧 바로 죽고 수영 좀 한다는 사람들도 조금 버티다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7:21,22,23절을 보면 ‘다 죽었으니’, ‘다 죽었더라’, ‘쓸어버리시니’ 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정말 다 죽었습니다. 공중의 제왕 독수리도 용감한 사자도 재난을 먼저 알고 피한다던 쥐와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바퀴벌레들도 다 죽고 말았습니다. 특히 심판이 어디 있느냐 하며 하나님을 조롱하던 자들, 목자 속 썩이며 뺀질거리던 자들, 자기 잘난 맛에 큰소리치며 살던 자들 모두 물을 먹고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23절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은 세상에 죄가 넘쳐나면 반드시 쓸어버리십니다. 고압분사기로 묵은 때, 찌든 때를 쓸어버리듯이 세상의 죄악을 쓸어버리십니다. 소돔 고모라와 가나안이 악으로 가득 찼을 때 하나님은 유황불로, 또 이스라엘로 그곳을 쓸어버리셨습니다. 세상에 악이 넘치면 하나님은 홍수와 불 전쟁 등의 재난으로 쓸어버리시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23b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여기서 ‘오직’ 이란 말씀이 중요합니다. ‘오직’ 무엇이라는 말씀입니까? ‘오직’ 방주 안에 있던 노아와 그 가족만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때 내가 얼마나 잘나고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인가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만이 구원과 심판을 결정짓습니다. 인간적으로 부족하고 능력이 없더라도 방주 안에 있으면 무서운 심판을 피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는 최후의 날을 대비하여 만든 피난처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최고라고 여겨지는 곳은 1960년 미국 정부에 의해 설계된 캔자스 주에는 서바이블 콘도라고 합니다. 가장 비싼 방은 22억 정도 하는데 핵폭발을 견딜 수 있도록 9m두께의 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핵전쟁이 일어나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생존하도록 의료 문화 교육 등의 모든 시설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이 콘도 안에 있으면 최후의 심판을 피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날에는 모든 것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되고 맙니다. 9m가 아니라 90m벽으로 둘러싸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방주 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경외함으로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은 세상에 넘쳐나는 무서운 홍수를 보며 자신들이 방주를 짓고 방주에 탑승하게 된 것 하나만큼은 자신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신의 한수였구나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가끔 믿음으로 살다가 회의가 들면 내가 그때 왜 아카데미에 참석해서 이렇게 되었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왜 청운관에서 고승원 사모님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피싱되어서 이렇게 되었다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을 구원으로 이끈 우리 생에 임한 가장 탁월한 신의 한수임을 믿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인생 사실 별것 없습니다. 부러워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불의한 세상에서 구원받은 것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이 세상은 이제 물이 아니라 불로 심판받기로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 최후의 심판날까지 방주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므로 심판을 이기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종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4절입니다.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하나님의 진노가 땅에 넘쳤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진노하시면 아무도 그 앞에 설 수 없습니가.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해 그 진노를 누그러뜨리십니다.  

2. 인생들을 기억하시는 하나님(8장)
8장1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므로 물이 줄어들었고” 기억하사 이 말은 ‘자카르’로서 ‘마음에 깊이 새겨서 기억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거대한 세상에 비하면 물 위에 떠 있는 방주 하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근데 하나님은 이를 기억하셨습니다. 가끔 보면 지갑도 잊어버리고 안경도 잊어버리고 자동차 키도 있어버리는 건망증이 심한 분들이 있습니다. 아주 심한 경우는 휴대폰을 들고 있으면서 휴대폰이 어디 있나 찾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십니다. 때로 시련과 고난이 쉬이 끝나지 않아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있는 나를 기억하시고 그날을 감하여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막13:20) 이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자들을 기억하사 땅위에 바람이 불게 하시므로 물이 증발되고 줄어들게 하셨습니다. 3절 보십시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세상을 뒤덮어서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은 그 물도 줄어들어 홍수가 난지 딱 다섯 달째인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현재 터키와 아르메니아 경계에 있는 아라랏산은 대아라랏산과 소아라랏산으로 되어 있습니다. 많은 고고학자들의 발굴과 목격자들에 의하면 소아라랏산 정상 부근에 방주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5절입니다. 물이 더 줄어들어 열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십일이 지난 11월10일 노아가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놓았습니다. 까마귀는 폭풍우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체를 뜯어먹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까마귀는 노아가 왜 자신을 내보냈는지 까먹고 시체만 뜯어먹고 가고 오기만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비둘기를 내놓아 물이 줄어들었는지 알고자 하였습니다. 비둘기는 온순하고 깨끗한 새로서 시체 위에 절대로 앉지 않으며 귀소성으로 보낸 자에게 돌아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날에 비둘기가 발붙일 곳이 없어 방주로 돌아왔고 칠 일이 지나서 다시 내보내자 저녁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왔습니다. 감람나무 새 잎사귀는 새로운 생명의 표시요. 새로운 희망의 싹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라나는 형제자매들이 이 시대 새 감람나무 잎사귀요 이 시대 희망입니다.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내보냈는데 비둘기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물이 줄어든 것이었습니다. 8:13,14입니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어보니 정말 지면에서 물이 걷힌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달 스무 이렛날에 땅이 마르게 되었습니다. 홍수가 나서 땅이 마르기까지 자그마치 일 년하고도 한 달 열흘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들과 그 안에 있는 짐승들에게 다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왔을 때 세상의 모습이 어떠하였을까요? 상상을 초월하는 홍수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산산이 부서진 집들과 그 가운데 죽어 나뒹구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시체들로 세상은 지옥을 방불케 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무서운 심판에서 구원받을 것을 생각할 때 노아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드린 제사의 향기를 받으시고 심중에 이르셨습니다. 8:21b절입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인간이 어려서부터 악함을 아셨습니다. 애들은 순진무구해 보이지만 그렇게 순진하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가 안보면 동생들을 꼬집고 밀치고 넘어뜨리는 악함을 보입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이 선생님 말씀을 안 듣고 대들고 폭력과 괴롭힘이 도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아담의 원죄가 사람들 내면에 어려서부터 살아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의 목적은 창조의 본 모습을 회복하는 것인데 어려서부터 악한 인간에게 그런 회복의 소망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더 이상 전과 같이 모든 생물을 인간의 죄로 인해 멸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물로 쓸어버린다고 인간의 죄악이 씻겨나가지 않고 오직 불로 태워야만 죄악된 본성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하나님 아들 예수님을 준비하고 보내십니다. 그때까지는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쉬지 않게 됩니다.  

3.무지개 언약을 주시는 하나님(9:1-17)
9장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 그것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마음이십니다. 하나님은 땅의 모든 동물과 바다의 물고기를 인간의 손에 붙이셔서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산 동물을 인간들의 먹을거리로 주십니다. 아마도 궁창 위의 물이 다 쏟아지면서 자외선 등에 노출됨으로서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분과 단백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사실 어려서부터 생각하는 바가 악하여 싹수가 노란 인생들이 죽을 먹든 밥을 먹든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다 신경 쓰시고 배려해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우리가 좋아하는 삼겹살과 갈비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기를 먹게 되었다고 흥분해서 피 채 먹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이는 모든 생명이 그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도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생명의 소중함, 존엄성을 마음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11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은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 가족이 완전히 변화되어 새로워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 또한 어려서부터 생각하는 바가 악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질상 조만간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온 세상을 심판하신다면 심판의 역사는 끊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계속되는 심판으로 인간과 이 세상은 견디지 못하고 결국 다 파멸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악된 인간을 참으시고 마지막 심판 때까지 인내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심판받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그 앞에 겸비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마 노아와 그 가족들 마음속에도 죄가 얼마나 무서운 심판을 가져오는가 트라우마처럼 깊이 박혔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죄인이 아니면 좋겠지만 죄인이기 때문에 비만 오면 또 쓸어버리시는 것이 아닌가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심판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구원하시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영원한 언약을 세우십니다. 1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하나님은 다시는 세상을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의 표시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시겠다 하십니다. 구름이 땅을 덮을 때 무지개가 나타나면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물이 다시는 모든 육체를 멸하지 않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무지개는 과학적으로 볼 때 태양 맞은편 구름 가운데 있는 물방울이 빛을 받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 무지개는 히브리어로 ‘케쉐트’로 직역하면 활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도 레인보우(rainbow) 곧 비로 만든 활이라는 뜻입니다. 흔히 신의 활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이는 하나님이 땅을 향해 겨누지 않으시고 자기 자신을 향해 활을 겨누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를 잡기 위해 또 나를 심판하기 위해 활을 겨누고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자신에게 활을 쏘아 자신을 희생하시므로 인생들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빨주노초파남보 영롱한 빛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무지개’를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노라면, 내 가슴은 뛰누나/ 나 어렸을 적 그러하였고/ 나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거니/ 나 늙어진 뒤에도 제발 그랬으면/그렇지 아니하면 나 죽으리.” 안타깝게도 요즘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으로 무지개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심령도 죄로 오염된 세상에서 살면서 은혜가 많이 식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기를 향해 활을 쏘시고 아들을 보내시므로 구원의 무지개를 완성하셨습니다. 구름너머에 있는 무지개가 죄의 세계에서 고통하는 인생들에 대한 배려와 긍휼이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심판의 두려움에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어려서부터 악하여 심판받아 마땅한 인생들을 길이 참으시고 자기를 쏘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사랑을 인하여 깊은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세상의 죄악과 싸우며 마지막 심판을 예비하는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고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철저한지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살아남는 사람은 똑똑하고 능력 많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방주 안에 있는 사람임을 배우게 됩니다. 사실 30년 전 신입생 성경학교에 아무도 저를 초청해주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소원을 주셔서 자기 발로 참석하게 하시고 이를 꼬투리로 이날까지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여러 번 죄악의 물결에 빠져 떠내려갈 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잊지 않고 기억하사 성령의 바람을 불게 하시므로 방주 안에 거하는 삶을 살도록 은혜 주셨습니다. 제가 이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방주 밖을 살피며 새 희망의 씨앗인 캠퍼스 영혼들을 물어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방주 밖으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뜻을 까먹고 세상 정욕과 쾌락만 뜯어먹고 돌아오길 잘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방주 밖이나 안이나 그게 그거라며 방주 밖의 삶을 동경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 차이도 없어 보이지만 방주 밖은 죄악의 물결만이 넘실거리는 곳이요 마지막 날에는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부러워하지도 말고 아쉬워하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방주를 예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만이 죄악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길이요 세상을 구원하는 역사에 쓰임 받는 길임을 믿습니다. 제가 세상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으로 방주 짓는 삶을 힘들어 하던 것을 회개하고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므로 방주 안에 힘써 거하며 새 희망의 씨앗인 캠퍼스 영혼들을 물어오는 역사에 부족하지만 쓰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고도 철저합니다. 그 누구도 이 심판을 피할 수 없고 오직 방주 안에 있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에도 다만 그 피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방주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마지막 심판 때까지 무지개 언약으로서 우리를 보존하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죄와 싸우는 거룩한 믿음의 삶 사는 종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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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9강]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관리자 2019-05-12 1004
588 누가복음 [2019년 부활절 수양회 제2강] 청년아 일어나라 관리자 2019-05-05 1285
587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8강] 바벨탑 관리자 2019-04-28 1483
58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7강] 노아와 맺은 언약 관리자 2019-04-21 1010
585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6강] 홍수 심판과 구원의 방주 관리자 2019-04-14 1096
584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5강] 가인에게 표를 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4-07 1187
583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4강]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3-31 998
582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3강]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3-24 1448
58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2강]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관리자 2019-03-17 1123
580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강]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3-10 1207
579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5강] 세상을 이기는 믿음 관리자 2019-03-03 1372
578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4강]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관리자 2019-02-24 1060
577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3강]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관리자 2019-02-17 1675
576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2강]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 관리자 2019-02-10 922
575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1강] 우리의 사귐 서삼문 2019-02-03 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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