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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5-12 (일) 12:49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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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9강]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2019년 창세기 제9강                                                            김반석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말씀/창세기 11:27-12:20
요절/창세기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시작된 죄는 급속도로 성장하여 노아시대에 이르러서는 죄악이 극에 달해 육체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홍수 심판으로 쓸어버리시고 노아의 가족을 통해 새로운 인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새로운 방법으로 만민 구원역사를 이루고자 아브람 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믿음의 조상이요, 만민 구원역사에 복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구원역사에 쓰시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이 시간 나에게도 소망 가운데 찾아오셔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깊이 듣고 순종하므로 복의 인생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너는 복이 될지라(11:27-12:3)
11:27-32절은 데라의 족보로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등장 배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라의 고향은 ‘갈대아인의 우르’인데, ‘갈대아’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남쪽에 위치한 비옥한 지역으로 대표적인 성읍이 ‘우르’입니다. 이곳은 고대 문명의 중심지로 상업, 천문학, 점성술의 발달과 함께 우상숭배로 인한 육신주의와 음란문화가 성행했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 우상의 종류가 3천개 이상이었는데, 데라는 이곳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수24:2). 데라는 3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장남인 하란은 롯을 낳고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차남인 나홀은 형 하란의 딸 밀가와 결혼을 했고 막내인 아브람은 이복동생 사래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임신을 하지 못하여 자식이 없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자식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는데 자식이 없는 것은 저주스런 일로 아브람 가정은 심각한 인생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데라는 아브람과 며느리 사래, 장손인 롯을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다가 연로하여 피곤했는지 하란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하란은 북부 메소보다미아의 중요한 상업 도시였으며 갈대아 우르와 마찬가지로 달신을 섬기던 곳이었습니다. 데라의 이름은 ‘머뭇거리다’는 뜻입니다. 그는 가나안 땅으로 가기를 머뭇거리다가 하란에서 죽었습니다. ‘하란’은 ‘열매가 없다’는 뜻으로 아브람의 인생은 열매가 없었습니다. 75세가 되도록 자식도 없이 쓸쓸하게 살다가 흙으로 돌아갈 허무한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에게 소망을 두시고 찾아오셔서 명령과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① 거룩한 명령(12:1)
12장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여기서, ‘이르시되’의 시제는 과거완료형으로 아브람이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행7:2)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을 하란에서 거듭 되풀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을까요? 고향은 친척들과 아버지의 집이 있는 곳입니다. 부모님의 풍성한 사랑과 친척들과 끈끈한 정이 있습니다. 살기에 편하고 익숙한 곳이요 안정된 직장이 있는 곳입니다. 아브람은 이곳에서 사람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성을 맺고 75세가 될 때까지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복음역사를 섬기면 좋을 것 같은데 왜 이런 부담스런 명령을 하시는 걸까요? 이는 영적으로 좋지 않은 환경으로부터 떠나서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아브람이 살던 곳은 각종 죄의 온상지였습니다. 아버지 데라도 우상숭배자였고 우상판매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여기서 계속 살았으면 아버지의 가업을 승계하여 죄와 타협하며 우상을 숭배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람이 이런 죄악된 환경에서 떠나지 않는 한 믿음의 조상으로 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릴 수 없습니다. 변화되기를 원하고 새 인생 살기를 원한다면 믿음으로 떠나는 용기와 도전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손해와 아픔을 감수하더라도 과감하게 떠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곳으로부터 떠나야 하고 어느 곳으로 가야 할까요?
첫째, 믿음으로 사는데 방해가 되는 환경과 분위기, 좋지 못한 습관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한마디로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기분 전환으로 가볍게 시작한 게임에 점차 중독되어간 어떤 형제가 있었습니다. 시험공부를 해야 된다는 것은 알지만 그 세력이 너무 강해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시험을 망치고 큰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회개하고 게임으로부터 떠났을 때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학과공부에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영적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들로부터 과감하게 떠나야 합니다. TV, 스마트폰, 영성을 떨어뜨리는 문화생활에서 떠나야 합니다. 나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나 모임으로부터도 떠나야 합니다. 인본주의․육신주의․물질주의 가치관으로부터도 떠나야 합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의 교육을 위해 나쁜 환경에서 떠나 세 번 이사함으로 성인으로 불리는 맹자를 낳았습니다. 맹모삼천지교는 인간의 성장에서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떠나는 것은 손해를 보거나 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출발이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승리하는 삶을 사는 기초가 됩니다.
둘째, 하나님이 보여주고자 하시는 땅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가 가야 할 구체적인 장소나 방향을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과 섭리가 있는 땅입니다. 비록 이해가 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있었지만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히11:8) 이는 아브람이 자신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좇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떠나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사람이나 물질, 타이틀 등 세상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있으면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됩니다. 기도와 말씀을 멀리하게 되고 자기생각에 기초해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와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고 의지하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상주시는 분이십니다.(히11:6) 오직 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믿음을 배우게 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게 됩니다.

② 거룩한 약속 (12:2,3)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실 때 아무 보장도 없이 부담스런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는 자식 한명 없는 아브람에게 있어서 너무 비현실적인 말씀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이 순종하여 떠나기만 하면 그렇게 만들어주시겠다고 친히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람에게 임한 일방적인 은혜요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과 축복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첫째, 큰 민족을 이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큰 민족’이란 단순히 영토, 인구, 경제력 등 외적인 규모에서 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요,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따르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전세계 인구의 약33%가 기독교인을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대로 아브람을 통해 큰 민족을 이뤄주셨습니다.(KCM세계종교지도2012년)
둘째, 이름을 창대하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람의 이름을 유명하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호사유피인사유명(虎死留皮人死留名)이란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유명하게 되고자 애를 씁니다. 그래서 유명관광지에 가보면 아무개 언제 왔다 감이라는 낙서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를 위해 유명하게 되고자 하는 노력은 마치 바벨탑을 쌓아 자기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다가 흩어짐을 당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유명하게 되고자 애를 쓰다가 오히려 악명을 떨치고 역사적으로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유명해지려면 하나님이 유명하게 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무명의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아브람을 신앙의 롤모델로 삼아 자신의 이름을 아브라함 링컨, 한아브라함, 송아브라함이라고 짓기도 합니다.
셋째, 복이 되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복덩이요, 축복의 물줄기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75세가 되도록 자식하나 없는 아브람이 복이 된다니! 너무 허황된 소리처럼 들립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복을 주신 것입니다.(창1:28)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천지만물의 주인으로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고, 그를 통해 이 복을 만민이 누리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세계 3대 폭포중의 하나인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50여 미터의 높이에서 초당 7,000톤의 어마어마한 물을 쏟아 붓고, 그 물이 흐르고 흘러 온타리오 호수를 이루고, 다시 그 물이 흐르고 흘러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폭포수는 신재생에너지로 활용되어 북미 대륙에 막대한 전력을 공급하기도 합니다. 나이아가라폭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오대호 중에 제일 큰 슈피리어호(Lake Superior)를 비롯하여 미시간호, 휴런호, 이리호(Lake Erie)로부터 끊임없이 물이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이아가라폭포가 끊임없이 물을 공급받고, 쉬지 않고 물을 흘러 보내는 것과 같이 아브람을 축복의 물줄기요 통로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고, 하나님의 복을 세상 만민에게 나눠주는 복덩이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부귀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일의 삶속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인생을 즐기는 것을 통해 작은 행복을 얻고자 합니다. 그래서 욜로(YOLO), 소확행(小確幸)에 삶의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UN에서 발표한 2019세계행복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54번째로 행복한 나라로 조사됐습니다. (1위는 핀란드, 2위는 덴마크, 3위는 노르웨이, 일본은 58위, 중국은 93위) 그러나 이것은 GDP, 사회적 지원, 기대수명, 부정부패 등을 포함하는 변수를 토대로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행복의 절대적인 조건이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복은 상대적이고 일시적이고 한계적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말하는 모든 복을 다 소유해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죽는다면 참으로 비참하고 허무하고 불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복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차원의 복이 아니라 내면적이고 영적인 복을 말합니다. 즉 죄로 인해 죽고 심판받아 영원한 형벌에 처할 인생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주는 구원 역사에 쓰임 받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8복도 천국, 구원,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상급 등에 관련된 것으로 영적인 복에 대한 내용입니다. (마5:3-12)
자기 혼자 즐기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통장의 잔고나 사회적인 지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자기의 것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봉사하는 삶을 살 때 참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혼자 구원받고 자기만을 위한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이 은혜를 나누는 삶을 살 때 영혼의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그 사람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역사에 쓰임 받는 삶을 살도록 기도와 말씀으로 섬기는 삶,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복을 나눠주는 삶을 사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그에 합당한 상급을 주시고,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영광에 참여하게 하실 것입니다.(단12:3) 이런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요 가치 있는 삶입니다.

이상에서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소망의 하나님이시요 참된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람은 우상숭배 가문 출신으로 나이도 많아 소망 두기 힘든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에게 소망을 두시고 찾아오셔서 부르시고 키우셔서 그를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얻게 하셨습니다.(창22:18) 하나님은 흙수저와 같은 아브람을 영적인 금수저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세상에서 누가 나를 쓰기 위해 불러준다면 자존감과 행복도가 상승됩니다. 하물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인생처럼 영광스럽고 복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이들이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랐을 때 사도로 성장하여 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위대하고 영광스런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해 영광스럽고 복된 삶을 산 증인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누구나 소망이 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현실이 어렵다고 절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난 주 챔피언스리그에서 리버풀은 바르셀로나를 4:0, 토트넘은 아약스를 3:2로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토트넘은 추가시간으로 5분이 주어졌는데 4분 45초부터 마지막 공격을 하여 정확히 5분에 모우라가 골을 넣어 암스테르담의 기적을 낳았습니다. (모우라의 헤트트릭)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그 인생에도 역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동일한 소망을 갖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연약한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아무리 부족할지라도 부르심에 순종하기만 하면 나를 복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서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고, 내가 속한 가정과 캠퍼스와 직장에서 하나님의 복을 나눠주는 복덩이의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대학에만 붙게 해주시면 신앙생활 잘 하겠다는 저의 서원기도를 받으시고 은혜를 베푸사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1학년 때는 UBF로, 2학년 때는 CCC에서 말씀공부 하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하지만 틀에 박힌 듯한 답답한 신앙생활은 내 체질이 아니라며 세상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졸업 후 ROTC장교로 군복무 할 때는 사단장 표창을 받는 등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았지만 영적으로는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제대 후 발령 받은 학교에서 한 목자님을 예비하사 86년 가을 창세기 아카데미로 인도하시고, 서제임스 목자님과 역사적인 1대1을 하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겨울 방학 때 교회의 부흥회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변화되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러자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위가 좋지 않아 약을 복용하면서도 끊지 못하던 지긋지긋하던 술과 세상에서 즐기던 쾌락과 잔재미들로부터 떠나게 되었고, 세상 가요도 부르지 않고 찬송가나 복음성가만 부르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명 중심의 목자의 삶이 심히 부담스러워, 붙잡히지 않고자 잔머리를 굴리다가 십자가 없이 편하게 신앙생활 하고자 다시 교회로 갔습니다. 어떤 자매는 그때 저를 보고, ‘혹시 붙잡힐까봐 저 눈 돌아가는 거 좀 봐’ 라고 생각했답니다. 그 자매가 바로 지금의 제 동역자입니다. 저는 아기자기하고 소시민적인 삶을 추구했기 때문에 캠퍼스 목자로서 소망을 두기 힘든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죄인을 포기치 않으시고, 1987년 밀알동산 여름수양회로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말씀을 통해 안일하고 소시민적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캠퍼스 목자의 삶을 살고자 믿음의 결혼을 결단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2개월 뒤에는 절대적인 믿음과 충성심이 있는 아름다운 믿음의 여인을 예비하사 목자의 가정을 이루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했을 때, 하나님은 저를 직장과 가정, 캠퍼스의 복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직장에서는 기독학생반을 섬기고 수요예배의 메신저, 교사성경공부 모임의 인도자로 세우사 복을 나눠주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부모님과 장모님을 비롯하여 외조모, 숙부 등 친척들도 복음을 영접하게 하시므로 가족 복음화 역사에도 쓰임받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임에서는 경희의대 요회와 간호대, 동덕여대 그리고 일본선교사로 5년간 오사카 역사를 섬기게 하시고, 귀국 후에는 약대 역사를 섬기며 복덩이로 살게 하셨습니다. 일생 뺀질거리며 죄의 열매만 맺고 심판받았을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소망가운데 부르셔서 키우사 복의 인생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 찬송합니다. 제가 이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날마다 자족하는 마음과 안일과 물질주의로부터 떠나 말씀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복을 나눠주는 복덩이의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Ⅱ. 아브람의 신앙생활(12:4-9)
첫째, 말씀을 따르는 생활(4)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아브람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를 수 없는 이유를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우상숭배 가문으로 나이도 75세입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영접하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좋긴 좋지만 지불해야 할 댓가가 너무 크다고 불평하거나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구원역사의 복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깨달았습니다. 현재는 비록 부족하지만 장차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루실 엄청난 비전을 심령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도 없었지만 오직 약속의 말씀을 믿고,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장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여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단순히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하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신앙생활은 자기 열심, 경험에 기초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낙오될 것 같고, 손해볼 것 같은 두려움으로 말씀을 따르는 삶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따라 살 때 결코 손해를 보거나 망하지 않습니다. 아브람을 보십시오, 그가 말씀을 따라 살았을 때 하나님의 약속대로 큰 민족이 되었고, 유명하게 되었고, 복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따라 살아서 패배자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삶은 가장 복되고 가장 안전하며 최후의 승리가 보장된 삶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먹고 그 말씀을 따를 때 매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일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영접하고 회개하고 따를 때 1주일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연요절을 따를 때 1년을 승리하고, 인생요절을 따를 때 일생(평생)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되어 하나님 나라까지 안전하게 인도해줍니다.
둘째, 감사의 단을 쌓는 생활(5-9)
아브람이 아내 사래와 조카 롯을 데리고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갔을 때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믿음으로 결단하고 떠나왔다고 격려하고 환영하는 무리들이 마중 나왔습니까? 아닙니다. 함의 후손인 가나안 사람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텃세를 부렸을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해서 왔는데 비전과 현실이 다를 때 불평이나 원망하기 쉽습니다. 손해의식과 회의적인 생각으로 절망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어떤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까? 7a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붙들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고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브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Ⅲ. 아브람을 보호하신 하나님(10-20)
아브람이 신앙생활 출발 후 만난 첫 시련은 심한 기근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아직 믿음이 어리고 연약하여 먹고 사는 심각한 현실 문제 앞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지 못했습니다. 약속의 땅을 떠나 먹을 것이 풍족한 애굽으로 갔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니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미모의 아내 사래를 빼앗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잔머리를 굴려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여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사래의 미모에 매료된 애굽 사람들이 사래를 바로의 궁으로 데리고 가므로 소중한 아내를 잃게 될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좇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취할 때 실패하고,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려 사래에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 아브람은 바로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의 연약함과 허물을 친히 감당해 주셨습니다. 아브람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는 체험을 하고 한 단계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와 함께 하시고,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보호하시며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낙심하고 절망에 빠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어리고 연약하여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필요할 때 불러서 쓰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가차 없이 잘라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에서처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한번 부르신 자를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눈동자처럼 보호하시고, 복의 인생이 되도록 키우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을 때 위로와 힘이 되고,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브람 한 사람을 부르시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소망 가운데 키우사 결국 약속의 말씀대로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구원 역사에 복덩이로 쓸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망을 영접하고,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고, 복을 나눠주는 복덩이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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