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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5-19 (일) 12:40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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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10강] 아브람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

  2019년 창세기 제10강                                                          고영훈
           
아브람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

말씀 / 창세기 13:1-14:24
요절 / 창세기 14: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우리는 누구나 자기 인생이 복을 받고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지만 그 비결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본문에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복과 승리를 얻고자 한 롯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복과 승리를 얻은 아브람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승리를 주실 때 그것이 진정한 복이요, 진정한 승리가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복과 승리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복과 승리를 얻은 아브람과 같은 삶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아브람과 롯의 선택과 가치관(13장)
  13:1,2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아브람은 기근을 피해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애굽에 내려갔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잃을 뻔하였던 아내도 되찾고, 가축과 은금도 많이 얻어서 돌아왔습니다. 아브람은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현실 문제를 친히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애굽에서 출발하여 네게브를 지나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쳤던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은 그가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입니다. 아브람은 이곳에서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찬송할 때 감회가 새로웠을 것입니다. 기도 한 마디 없이 애굽으로 내려갔던 죄,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죄, 불신자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죄들을 깊이 회개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바로를 벌하시고 도리어 은금과 가축을 많이 얻어서 무사히 돌아오게 하신 은혜에 감격했을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아브람은 처음 사랑을 회복하였고, 다시는 나름대로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고자 굳게 결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근과는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브람과 롯의 소유가 점점 많아지자 그들이 거하는 땅은 좁고 양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목초지를 서로 차지하고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문제 앞에서 아브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8,9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 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은 이방인들이 보는 앞에서 친족끼리 다투기보다 땅을 나누어 분가하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아브람은 땅을 나눌 때 우선권을 양보하였습니다. 목축을 주업으로 하는 그들에게  있어 좋은 목초지를 양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있어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친아버지를 일찍 여윈 롯을 데리고 다니는 아브람은 삼촌이요, 족장으로서 얼마든지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우선권을 조카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는 롯을 데리고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말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와! 이 얼마나 놀라운 내면성입니까! 아브람이 이처럼 현실문제 앞에서 통 크게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축복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복으로 삼으셨고, 반드시 축복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양보를 하고, 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얼마든지 채워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애굽에 갔다 온 체험을 통해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잃더라도 하나님만 붙잡으면 된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만 소유하고 있으면 항상 넉넉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아브람의 양보에 롯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삼촌이 먼저 양보를 했으면 조카는 어떻게 화답하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아닙니다. 삼촌, 찬 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삼촌이 먼저 좌하시면 제가 우하고 , 삼촌이 우하시면 제가 좌하겠습니다”라고 최소한 한마디라도 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삼촌의 제안에 ‘아싸’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바로 욕심을 차렸습니다. 삼촌의 양보에 롯은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들어 평소에 눈여겨 보아왔던 요단 지역을 바라보았습니다. 소알 땅까지 물이 넉넉했는데, 그 땅은 마치 에덴동산처럼 풍요롭게 보였습니다. 그 땅에 대한 롯의 평가는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입니다. 애굽 땅은 얼마 전 기근 때문에 삼촌과 함께 약속의 땅을 떠나 내려갔다가 고생하고 돌아온 곳입니다. 그런데 요단이 애굽 땅과 같았다는 말은 그가 잠간 갔다 온 애굽 생활의 풍요로움과 인간 중심의 애굽 문화에 이미 동화되었음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애굽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던 아브람과 훈련 없이 경험삼아 지내다 온 롯은 애굽 사건을 통해 배운 바가 서로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롯의 마음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있지 않고 이미 애굽에 가 있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남았고, 롯은 떠나서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물렀습니다. 그래도 롯이 처음부터 ‘내가 소돔성안에 들어가 소돔 사람처럼 살아야지~’라고 방향을 잡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돔 지역 근처의 도시에 머물러 살다가 조금씩 장막을 소돔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돔성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집도 사고 주민등록증도 발급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죄악된 소돔성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어 살았습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으면서 동시에 애굽 땅과도 같은 곳을 찾았던 롯의 신앙은 하나님도 믿으면서 세상의 물질과 향락도 동경하는, 하나님과 세상에 양다리 걸치며 사는 자의 가치관을 보여 줍니다. 이런 가치관으로 살았을 때 롯이 얻은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물이 넉넉한 요단 들을 얻었고, 도시 문명의 편리하고 향락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반면 이 선택으로 그가 잃은 것은 무엇입니까? 늘 그의 곁을 함께 하며 그 영혼을 돌봐주고 섬겨주던 목자를 잃어버렸습니다. 또한 아브람 곁에서 배웠던 영적인 가치관을 잃어 버렸습니다. 영적 분별력과 죄에 대한 경계심을 잃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자세를 잃어 버렸습니다. 롯은 처음 요단 들로 나아갈 때 자신이 아브람처럼 꽉 막혀 있지 않고 신앙과 세상에 대해 지혜롭고 유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호와의 동산 같으면서 동시에 애굽 땅과 같은 곳은 없습니다. 그는 이 선택으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복들을 하나씩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땅을 선택하는데서 아브람과 롯의 가치관이 잘 드러났습니다. 롯은 결정적인 순간에 세상 가치관에 따라 방향을 정하였습니다. 그의 가치관은 사람보다 물질을, 자기 유익을 중요시하는 물질주의 가치관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가치관이었습니다. 반면에 아브람은 물질보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에 머물렀습니다. 물질은 좀 손해보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을 잃지 않고자 했고, 당장 눈에 보이는 유익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가치들을 더 중요시 했습니다. 이 선택을 통해 아브람과 롯의 인생은 완전히 갈리게 되었습니다. 이 선택을 통해 롯은 하나님이 주신 복들을 까먹고 믿음도 조금씩 잃어버리다가 죄의 열매만을 남기며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선택을 통해 아브람은 하나님이 주신 복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믿음이 자라나게 되고 이후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약하고 부족하여서 평소에 롯처럼 선택하고 롯의 길을 갈 때가 있지만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만큼은 아브람의 가치관으로 믿음의 결단을 하게 하셔서 아브람의 길을 가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승리의 길임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롯이 떠나가 버린 후에 아브람이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현재 자식이 없는 아브람은 롯을 아들처럼 여기고 장차 후계자로 까지 생각했는데 떠나가니 외롭고 울적했을 것입니다. 서운하고 손해의식도 들었을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죄악 된 소돔 쪽으로 떠나가는 롯이 염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복잡하고 착잡한 마음 중에 있는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 오셨습니다. 14-17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자기 힘으로 복을 얻고자 세상으로 떠난 롯과 달리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남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이 직접 땅과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두 가지 훈련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라보는 훈련’과 ‘두루 다녀보는 훈련’입니다. 먼저 아브람으로 하여금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롯과 롯이 차지한 땅만 보지 말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실 더 넓은 땅을 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또한 좁아터진 자기 장막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종과 횡으로 약속의 땅을 두루 다녀 보도록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자꾸 바라볼 때 그 땅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실제로 두루 다녀볼 때 내 땅이라는 확신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고 해도 바라보지 않고 두루 다녀보지 않으면 내 땅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캠퍼스를 약속의 땅으로 주셨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동서남북 전 세계 캠퍼스를 사명의 땅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땅을 방치하고 좁은 자기 장막에만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허락하신 캠퍼스를 자주 바라보고 종과 횡으로 두루 두루 밟고 다니므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종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브람으로 하여금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다녀보도록 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현재 아브람의 힘든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자녀 한 명 주시거나 롯에게 양보한 만큼의 땅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힘든 때 일수록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내면의 그릇을 키워 가셨습니다. 지금 간장 종지만한 그의 그릇에는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큰 복을 조심스럽게 부어주셔도 감당치 못하고 넘쳐버리게 됩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복이 큰 만큼 힘든 현실 앞에서도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바라보는 훈련을 통해 그의 믿음의 그릇이 커지도록 인내하시며 도와주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II. 진정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14장)
  14:1-4절을 보십시오. 바벨론을 근거지로 한 북쪽의 4왕국과 소돔 고모라 지역을 근거지로 한 남쪽의 5개국 간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남쪽의 다섯 왕들이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13년째 배반을 하자 북쪽 네 왕들이 보복전쟁을 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싯딤(염해)골짜기에서 전쟁을 벌였는데 결과는 북쪽 연합군의 승리였습니다. 그들 왕에게 소돔 고모라의 모든 재물을 다 빼앗기고 이 와중에 롯도 사로잡혀 가게 되었습니다. 롯은 애굽 땅 같은 소돔에 이민 오면 점점 부자가 되고 세상에서 성공하여 잘 먹고 잘 살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전쟁 때문에 지금까지 모아 왔던 재물마저 다 빼앗기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자신까지 포로 신세가 되 버렸습니다. 이 때 롯은 땅을 치고 탄식했을 것입니다. ‘왜 하필 소돔 땅에 전쟁이 일어났는가? 왜 내가 속한 이 나라가 전쟁에서 지고 말았는가?’ 롯의 경우처럼 사람의 인생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인도해 주시도록, 잠언 16:25에 보면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하였습니다. 멀리서 눈을 들어 바라볼 때는 소돔 땅이 지상낙원처럼 보였습니다. 마냥 좋은 기회의 땅이요, 행복이 보장된 희망의 도시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 곳은 사망의 땅이요, 죄악이 가득한 곳이요, 무시무시한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롯과 같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7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롯과 같이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유익에 기초해서 선택할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선택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이 전쟁터에서 도망한 한 사람이 아브람에게 이 모든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아브람은 롯을 구출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건 전쟁을 시작합니다. 집에서 길리고 훈련한 318명을 거느리고 그돌라오멜 동맹군을 단까지 쫓아갔습니다. 아무리 훈련된 종들이라고 해도 남쪽 헤브론에서 북쪽 단까지 200km가 넘는 먼 거리를 좇아가 강대한 연합군을 공격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한 일입니다. 어쩌면 이 전쟁에서 패하여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한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주저하거나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빼앗긴 아비의 심정으로 온 힘을 다해 추격전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로 밤에 야간기습작전을 벌였습니다. 아브람은 그돌라오멜 대군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습니다. 아브람이 어떻게 이렇게 용감하게 목숨을 건 전쟁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롯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사실 롯은 좋은 양이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잘 따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은혜를 배반하고 자신의 욕심을 좇아서 떠나버린 얄미운 양이었습니다. 이런 롯의 행위를 생각하면 괘씸한 마음이 듭니다. 이번 기회에 고생 좀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버려두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조카 롯을 자식처럼 사랑했습니다. 어떤 위험과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구하고자 했습니다. 롯이 자기 죄 문제로 훈련을 받을 때는 받더라도 일단 목숨은 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아브람에게서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실 그는 애굽 땅에 내려 갈 때만 하더라도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일 만큼 두려움이 많은 자였습니다. 하지만 조카 롯이 포로로 사로잡혀 언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려움을 모르는 용사로 변했습니다. 마치 목동 다윗이 곰이나 사자가 양들을 물고 갈 때 달려가서 그 입을 찢고 양들을 구해낸 것처럼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달려가서 롯을 구했습니다. 아브람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조카 롯에 대한 목자의 심정 때문입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듯이 한 영혼에 대한 목자의 심정은 사람을 강하고 위대하게 만듭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살고자 할 때는 두려움 많은 소시민적인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에게 사로잡힌 영혼들을 구원하고 돕는 인생을 살고자 결단 할 때 두려움을 극복하고 위대한 인생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도 아브람의 목자의 심정을 배워서 롯과 같은 양들까지도 순수하게, 끝까지, 희생적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브람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그를 맞이하는 두 왕이 있었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아브람은 전쟁의 당사자인 소돔 왕을 만나기 전에 이번 전쟁과는 상관이 없는 살렘 왕 멜기세덱을 먼저 만났습니다. ‘살렘’은 평화라는 뜻이고,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멜기세덱은 출생이나 기원이 전혀 알려지지 않는 사람으로 왕이면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한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가 하나님의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보고 있습니다(히7:17). 그러면 소돔 왕을 만나기 전에 아브람이 멜기세덱을 먼저 만난 데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까? 19,20절을 보십시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멜기세덱은 아브람으로 하여금 승리의 날에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아브람은 지금까지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출발하였지만 이번처럼 큰 업적을 이룬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드디어 그도 믿음의 조상다운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애굽에서 처음 실수했을 때보다 약속의 땅에서 처음 승리했을 때 더 위기감을 느끼시며 다급하게 멜기세덱을 보내심으로 아브람을 도와주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어린 단계에서는 실패의 때보다 성공의 때에 자기 자랑하다가 더 실족하기 쉬운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아직 믿음이 어려 전쟁에서 이긴 후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자기가 잘 해서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기 쉬웠습니다. 교만에 빠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 자랑하기 쉬웠습니다.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성은 끊어져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멜기세덱을 통하여 그가 승리의 날에 교만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멜기세덱의 카운셀링을 받은 아브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람은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아브람이 십일조를 드린 것은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음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뒤이어 소돔왕은 아브람을 어떻게 맞이하였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이 말이 아브람에게 왜 유혹이 될까요? 일단 그동안 전쟁을 치루느라 손해 본 물질을 당시 통용되던 정당한 방법으로 다 메우고도 남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소돔 왕의 제안에는 단순히 물질문제 이전에 영적인 문제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를 부인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다음에 소돔 왕이 무슨 청을 해오면 거절할 수 없게 됩니다. 사탄은 실패의 때보다 승리의 때에 더 강력하고 교활하게 역사합니다. 아브람은 사탄이 소돔 왕을 통해 던지는 미끼를 덥석 받아먹지 않고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2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아브람은 소돔 왕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지 않고자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가지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부자가 되는 것이 오직 하나님께 달린 것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러면 아브람이 이렇게 소돔 왕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어디서 왔을까요? 22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그는 바로 직전 멜기세덱과의 일대일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영적 분별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말씀공부는 영적인 세계를 알게 해주면서 동시에 세상이 얼마나 죄악 되고 무서운가도 알게 해 줍니다. 멜기세덱을 통해 아브람은 천지의 주재이시며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소돔 왕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를 풍족하게 하심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람을 통해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롯처럼 좋은 땅을 남보다 먼저 선점하는 것도 아니요, 눈부신 업적을 이루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도 아니요, 많은 물질을 얻어 부를 축적하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승리는 오히려 좋은 땅을 양보하여 사람을 얻는 것이요, 많은 물질 대신에 하나님이 주실 복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부신 업적을 이루기보다 보이지 않게 자기 죄 문제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것이요, 보이지 않게 한 양의 죄 문제와 씨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기까지 섬기는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승리는 실패의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드는 것이요, 승리의 날에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 후에도 이기게 하신 하나님과 일생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역사에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 아무 소망 없던 자에게도 찾아오시고 진정으로 승리의 인생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치대의 아브람과 같은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제가 1983년 봄에 처음 센터에 나오니 한 아브라함 목자님과 의대 선배님들만 몇 분 계시고 치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목자님들은 저에게 치대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저는 치대 선배나 동기도 한 명 없어 외롭고 힘들었지만 조상으로서 믿음의 중심을 지키며 때마다 주시는 훈련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앞으로의 진로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제주도 고향에서는 제가 졸업하면 당연히 제주로 내려와 치과의원을 개업할거라고 여겼습니다. 사실 천혜의 관광도시 제주는 보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아 보였습니다. 부모님이 넓은 건물에 치과를 차려 줄 것이고 아는 치과 환자도 많고 골프나 낚시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오름 산악회에 가입하여 한라산을 비롯하여 오름들을 오르며 즐거운 생활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게 고향은 영적으로 보면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입니다. 일단 장손으로서 집안의 제사를 맡아 섬겨야 했고 불신 친척들의 대소사를 보며 어울려 지내야 하고, 고등학교 동창회, 치과대학 동창회 등에 참석하며 물질적이고 쾌락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으므로 자연히 하나님과는 관계성이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말씀을 통해 이 사실을 직시하고, 졸업을 앞두고 저를 부르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게 되었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네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을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 저는 롯과 같은 죄악된 길을 가지 않고 아브람과 같은 믿음의 길을 가고자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졸업하고 남기 힘든 경희의료원 치과병원 보존과 수련의로 남게 하시고 약속의 땅 회기동에 남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결혼을 결단했을 때 승원 동역자와 아브라함과 사라와 같은 치대 조상의 가정을 세워 주셨습니다. 저희 가정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사명을 절대적으로 감당하며 살아 왔을 때 치대가운데 믿음의 후손들과 타 단대의 믿음의 후손들까지 땅의 티끌같이 많이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제가 약속의 땅에 머무르며 믿음의 중심을 지켰을 때 불신 집안에 핍박이 그치고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으며 저의 집안에도 복음이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제가 과거에 롯과 같이 잘못된 선택을 하였다면 서서히 믿음도 잃어버리고 구원도 받지 못하는 비참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지금까지 허락하신 땅에서 믿음의 중심을 지키며 사명을 열심히 감당할 때 진정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 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제가 계속하여 아브람과 같은 믿음의 인생을 살아 나가므로 저와 저의 가정을 통하여 많은 캠퍼스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복을 넘치도록 받는 진정으로 승리하는 인생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요, 승리의 근원이십니다. 모든 축복과 승리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진정한 복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가 진정한 승리입니다. 우리는 아브람과 같이 하나님이 축복의 근원이요, 승리의 근원임을 늘 고백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복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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