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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7-07 (일) 13:16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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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17강] 약속의 땅에 거주한 이삭

 2019년 창세기 제17강                                           최바울

약속의 땅에 거주한 이삭

말씀 / 창세기 25:1-26:35
요절 / 창세기 26:3,4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오늘 말씀은 믿음의 2대 조상 이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네 명의 믿음의 조상 중에서 이삭에 관한 분량이 가장 적고 그나마도 아브라함의 아들이나 야곱의 아버지처럼 조연으로 등장하고 맙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이삭의 인생을 굴곡 없는, 평탄한 인생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의 인생이 순탄했을까요? 아니면 순탄해 보이는 것일까요? 사건 사고의 풍파에도 그의 인생이 순탄해 보이는 것은 그의 믿음이 함께 요동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문제 앞에서 조급해하기보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대세를 따라 살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사람들과 유익을 놓고 갈등하기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바라며 믿음으로 양보했습니다. 꼼수, 잔머리, 처세술, 내적인 갈등, 계산 이런 것들과 거리가 먼 그의 인생은 단순해보이고 순탄해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삭의 이런 깊은 우물과 같은 믿음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기도하는 이삭(25:1-34)
25:1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늙어서 기운이 다할 때까지 힘써 개척자의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이 죽어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이삭이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물줄기도 이삭에게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복을 주셨다는 말씀이 무색하게 이삭의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25:20,21절을 보십시오. 이삭은 사십 세에 아리땁고 튼튼한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는데 그 가정에 아이가 없었습니다. 이는 1-18절의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후손들이나 이스마엘 후손들과 대조가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무관한 이복형제들의 집안에서는 해마다 아이들이 태어나 그 수가 늘어 가는데, 정작 약속의 자녀요 축복의 계승자 이삭의 가정에는 늘 두 부부 뿐이었습니다. 여름휴가철이면 버스를 대절해야하는 그 집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티스 자리도 다 못 채우는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이 씁쓸했을 것입니다. 천만인의 아버지요 어머니가 되라는 결혼요절과 달라도 너무 다른 이런 현실에 절망했다면 조급한 마음에 아브라함처럼 첩이라는 인간적인 방법을 쓰기 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이삭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는 가장 확실한 비결은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삭도 그렇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20년 동안 줄기차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삭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의 심판과 축복에 오차는 있어도 오류는 없다고 했습니다. 시기는 달라도 반드시 임해야 하는 사람에게 틀림없이 임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원하는 때와 시기적으로 오차가 생기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뜻과 오묘한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개척자 아브라함의 수고와 헌신 덕분에 믿음의 터전이 견고한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에게 자식문제를 빼놓고는 믿음 훈련 받을만한 꼬투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그냥 자식만 주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20년간 자식문제로 훈련하시며 하나님의 약속이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이런 연단을 통해 이삭을 기도의 사람, 인내의 사람,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셨습니다. 야고보서 1:3,4절은 말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혹 다른 사람에게는 주시고 나에게는 안 주시는 것이 있거나 주실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 안 주시는 것이 있다면 오류가 없으신 하나님을 믿고 나와 하나님 사이의 때의 오차를 인내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을 받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나 자신도 기도의 사람, 인내의 사람, 하나님의 쓰실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더 크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삭의 낙망치 않는 기도의 응답으로 마침내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 좁은 뱃속에서부터 치고 박고 싸웠습니다. 이 때 리브가는 애들은 다 싸우면서 크는 거라며 나름대로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 그 뜻을 물었습니다. 리브가가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두 아이에 두신 놀라운 계획을 말씀해 주심으로 리브가의 기도를 장차 구원역사의 흐름을 이어가는데 귀하게 쓰셨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나님의 계획은 쌍둥이를 주시는 것인데 그 중에서 동생을 이삭의 계승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배 속의 야곱이 뭐가 이뻐서 선택을 받았을까요? 물론 조금 자라서는 에서보다 요리를 더 잘하기는 했습니다. 또 한 번 시작하면 포기를 모르는 근성도 있었습니다. 관찰을 통해 유전법칙을 깨달을 만큼 눈썰미도 좋고 머리도 비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택하심은 인간의 재능이나 조건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에서의 떡잎 색깔을 보고 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일방적으로, 절대적으로 택하셨습니다. 로마서 9:11절은 말씀합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24절을 보십시오. 해산할 기한이 차자 리브가가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지었습니다.(25)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야곱이라 이름 지었습니다.(26)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으로서 거친 들에서 살아가는 들사람이 되었습니다.(27) 그는 남성호르몬이 많이 나오는지 온 몸에 털이 북슬북슬하고 근육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상남자였습니다. 반면 야곱은 매끈매끈하고 성격도 조용했고 주로 장막에 거하면서 어머니 심부름도 하고 팥죽을 쑤며 부엌일을 도와드렸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내 리브가로부터 '하나님의 택하심은 야곱에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현실과 맞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힘센 사냥꾼 에서가 계승자가 되어야 가나안 땅에서 기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에서의 가치관은 어떠했습니까? 29절을 보십시오. 하루는 야곱이 장막에서 죽을 쑤고 있는데 에서도 그날따라 사냥에서 죽을 쑤고 돌아왔습니다. 피곤한 에서가 동생에게 팥죽 한 그릇 달라고 하자 야곱은 기다렸다는 듯이 ‘형, 내 팥죽하고 형의 장자의 명분하고 바꾸지 않을래?’ 물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제안에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장자의 명분을 어떻게 사고 팔겠는가! 동생! 치사해서 팥죽 안 먹고 만다.’ 하면서 따끔하게 혼내야 했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배고파서 당 떨어져 죽게 된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은 당장의 배고픔을 한방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귀한 아이템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지금 당장의 허기진 그의 배를 채워주지 못하는 장자의 명분은 별 쓸모없고 무가치해보였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표류한 북한 어선을 발견하지 못한 군인에게 군인의 명분을 잊고 경계를 소홀히 했다고 비난합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명분이 있습니다. 목자의 명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명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당장 나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주신 명분을 팔아버립니다. 그것도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껏 연애하지 못할까봐, 마음껏 술 마시지 못할까봐, 주말에 어디 놀러가지 못할까봐’처럼 한 끼 팥죽 같은 작은 즐거움 때문에 영적인 명분을 팔아버립니다. 저는 이번 여름수양회를 앞두고 수양회 첫날 목요일 근무를 할 것인가 첫날부터 휴가를 내고 양들과 함께 갈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하루 문을 닫을 때 포기해야 하는 물질이 아까워서 매년 수양회 첫날에도 일하다가 밤늦게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2:16절은 명분보다 유익을 앞세우는 자를 망령된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분을 지키기 위해 당장 눈앞의 작은 유익을 손해보고 눈앞의 작은 즐거움을 인내하고 견디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인내한 자들을 하나님은 장자에게만 주시는 축복,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신령한 축복을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분을 귀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가지고 지극히 작은 것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큰 축복을 잃어버리는 어리석고 망령된 자가 되지 않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2.그랄에 거하는 이삭(26:1-14)
26장 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이삭이 살고 있는 유대 남부 지역은 연중 강우량이 400mm 밖에 되지 않습니다. 1년에 이른 비와 늦은 비 딱 두 번 비가 오는데 그마저도 오지 않으면 흉년이 들게 됩니다. 그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나일강 덕분에 물과 먹을 것이 풍부한 애굽으로 피신을 갑니다. 이삭도 100년 만의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남으로 남으로 가다가 그랄까지 왔습니다. 한 발짝만 더 가면 애굽 땅인 이곳에서 하나님은 무슨 방향을 주셨습니까? 2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왜 이런 방향을 주셨을까요? 이는 하나님의 테스트입니다. 지금 이삭이 거주하고 있는 땅은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언약의 땅입니다. 이곳은 앞으로 뭇별과 같은 자손을 낳아야 하는 땅이고 그 자손들로 하여금 믿음의 역사를 이어가게 해야 할 사명의 땅입니다. 그 약속의 땅, 사명의 땅을 떠나지 말고 어찌하든지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흉년이라는 현실입니다. 언약도 좋고, 사명도 좋지만 일단 사람이 먹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모든 일이 잘 되고 풍요로울 때는 딴 데 가라고 해도 안가고 열심히 사명을 감당합니다. 풍년의 때에 약속의 땅에 남아있으라는 것은 테스트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흉년이 되자 이삭은 두 갈래 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남아있을 것인가? 잠시지만 힘든 현실을 피해 떠날 것인가?’ 믿음인가 현실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문제해결인가?’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도 흉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일자리 얻기가 힘들어 물질적으로 궁핍해지면 일자리 많은 곳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양이라도 잘 되면 좋은데 양도 없이 몇 년째 흉년이 계속되면 다 팽개치고 애굽으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좀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약속의 땅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3-5절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말미암아 천한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나님께서 이삭이 이 땅에 유할 때 주고자 하시는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동행하심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겠다는 것은 믿음으로 남도록 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형통케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삭에게 가나안의 모든 땅을 주시고 그의 자손을 하늘의 뭇별처럼 번성케 하시겠다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구체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축복은 가나안 땅과 뭇별과 같은 자손 곧 강대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창18:18,19).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처럼 이웃나라의 복을 빼앗는 패권국가가 아니라 천하 만민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복의 근원이 되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강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먹고 마시며 아무 생각 없이 생활인으로 살아가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문제에만 일주일 내내 붙들린 채 하나님의 나라나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신자들은 이 땅에서 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배 속에서부터 택하시고 약속에 땅에 남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저희에게 주신 구체적인 약속의 땅은 캠퍼스입니다. 캠퍼스는 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할 수 있는 아름답고 광활한 땅입니다. 이 땅에는 무수한 하나님의 자녀들과 추수할 일꾼들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할 잠재적인 일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캠퍼스 사명의 땅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그 땅이 죄악으로 심히 오염되어 있다 할지라도, 각종 우상숭배와 정욕의 죄로 넘쳐나 소망이 없어 보이더라도 결코 떠나서는 안되는 사명의 땅입니다. 사실 캠퍼스가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양들의 마음도 더불어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 땅을 떠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라고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몸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이 땅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임에 주신 고귀한 사명인 일대일 제자양성과 평신도 자비량 선교 운동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끝까지 지켜나가야 합니다. 주는 정신을 지키고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복음주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나가야 합니다.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낮아짐과 희생을 배우는 말구유 정신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저희들이 흉년이 찾아와도 끝까지 약속의 땅, 사명의 땅에 거주하는 믿음과 순종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흉년의 때에 그 땅에 거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이삭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이는 이삭의 위대한 순종입니다. 그는 한 번도 하나님과 아버지에게 반발하거나 쓴 뿌리를 품은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 번제단에서 칼로 내리 치려고 했을 때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리브가와 결혼할 때도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이번에도 이삭은 굶어죽을 각오로 순종했습니다. 이삭도 순종하고자 할 때 마음에 갈등과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홀몸도 아니고 사랑하는 아내 리브가와 쌍둥이 아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그랄은 살기 좋은 땅이 아닙니다.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여야 할 정도로 치안이 불안한 살벌한 땅입니다. 시기심 때문에 이삭의 생명줄 같은 우물을 메워버리는, 경쟁과 다툼이 심한 땅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가 이처럼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랄에 거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굶어 죽었습니까? 아니면 생활보호대상자로 근근이 목숨만 부지하며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은 치안이 불안했던 이곳에서 기이한 방법으로 이삭 가정의 신변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깡패 같은 블레셋 사람들이 무서워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는데 하나님이 관음증이 있었던 아비멜렉 왕에게 이삭과 리브가가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을 들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부부인 것을 알게 하시고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만방에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신변보호명령과 접근금지 명령을 공포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12-14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이삭은 본업이 농업이 아니고 목축업입니다. 지금은 흉년의 때로서 날고 기는 농부들도 힘들어 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유독 씨 한번 뿌려본 적 없고 땅 한번 갈아 본 적 없는 이삭이 농사로 100배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본업인 목축업에서도 성공해서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아졌습니다. 믿음으로 남고자 결단할 때만 하더라도 굶어죽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런 인생 역전이 벌어지게 되었습니까? 12b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하나님이 그 인생을 복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넘치는 복을 받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분야에서도 그동안 미처 몰랐던 재능들이 발휘되어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교수님이고 원장님이신 목자님들이 여름 수양회에서 이스라엘 춤을 추며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됩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자녀들과 가축들과 토지소산이 다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남는 자에게 백배의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3.우물을 파는 이삭(26:15-35)
15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흉년의 때에 인생역전에 성공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삭을 시기한 그랄 사람들은 좋은 우물로부터 이삭의 복이 나온다고 여기고 우물만 메우면 우물과 함께 이삭도 망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삭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결코 우물을 양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복의 근원은 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로 인해 현재의 우물이 메워지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또 다른 우물을 파기 위해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싸우지 않고 우물을 양보하고 다른 곳에서 새 우물을 팔수록 애굽에서 멀어지고 약속의 땅에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우직하게 우물을 파다보니 여차하면 애굽으로 갈 수 있는 약속의 땅 끝자락 그랄에서 에셀나무와 함께 아브라함의 신앙의 뿌리가 심겨져 있는 브엘세바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23) 24절을 보십시오. 그 밤에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움을 떨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임마누엘의 축복과 함께 자손에 대한 번성의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위하여 처음으로 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종들은 거기서도 우물을 팠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았고 이삭은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팠습니다. 이삭이 판 우물에서 나온 생수는 메마른 땅을 적시고 목마른 인생들의 목을 축여주었습니다. 믿음의 후손들 뿐 아니라 오다가다 들르는 나그네들, 심지어 짐승들도 마셨습니다. 오늘날 캠퍼스 땅은 메말라 있고 캠퍼스 지성인들은 진리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아모스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우물은 그 파는 깊이에 따라 얕게 판 우물이 있고 깊게 판 우물이 있습니다. 얕게 판 우물은 파는데 힘이 덜 들지만 수질이 좋지 못해서 먹지는 못하고 주로 농업용수로 쓰입니다. 깊이 팔수록 지표면의 오염물질이 적어지기 때문에 식수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기근의 때에 우리들의 수고롭게 파는 말씀의 우물은 우리를 살리고 양들을 살립니다. 이번 여름수양회 말씀을 맡은 종들의 수고로 목마른 인생들의 영혼에 생수와 같은 말씀이 임해서 해갈되는 역사, 생명이 소생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이 깊은 우물과 같은 빼어난 성경선생이 되어서 캠퍼스 곳곳에 생수를 흘려보내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갑자기 주일말씀을 전하라고 하셔서 심히 부담이 되었지만 이삭에 관한 말씀이라고 하셔서 다소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이삭의 믿음에 경외심이 들었습니다. 저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산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저의 믿음은 작은 풍파에도 요동치기를 잘했습니다. 건강이 좀 나빠지면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죽음권세에 떨었습니다. 환자가 좀 줄면 이러다 망하는 게 아닌가 염려에 빠졌습니다. 양들의 표정이 좀 어두워 보이면 저러다가 도망가는 게 아닌가 눈치를 살폈습니다. 산처럼 무겁고 싶은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니 나뭇잎처럼 가볍게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사명의 땅 끝자락, 한 발자국만 더 가면 애굽인 그랄 땅까지 떠내려 와 있었습니다. 발은 간신히 그랄에 붙이고 살았지만 마음과 눈은 사명도 없고 십자가도 없는 애굽 이 곳 저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말씀하십니다. 약속의 땅, 사명의 땅에 거주하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은 아무 자격 없는 자를 복중에서부터 택하시고 믿음의 조상들이 인생을 바쳐서 닦아놓은 기초 위에서 순탄하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신 분입니다. 자식하나 없이 25년 넘게 신앙 생활하던 자에게 드디어 조금씩 믿음의 후손들을 허락하신 분입니다. 제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어서 가물어 메마른 땅이 된 캠퍼스에서 마음이 멀어지고 하나님 없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가까이 갔던 것을 회개합니다. 흉년의 때에도 약속을 믿고 사명의 땅에 남은 자에게 백배의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캠퍼스 땅에 남아서 힘써 말씀의 우물을 파는 자가 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삭의 삶은 순탄했던 것이 아니라 순탄해보인 것이고 순탄해진 것입니다.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이삭이 그랄에 가주하였더니.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이 짧은 한 문장 한 문장 속에 군더더기 없는 이삭의 위대한 믿음과 내면성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삭의 기도와 순종과 인내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번 여름 수양회를 통해 흉년의 때이지만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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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5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0강]네 종류의 밭의 비유 관리자 2020-07-19 993
65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9 강]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관리자 2020-07-12 856
64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8강]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관리자 2020-07-05 940
648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7강]쉬게 하리라 관리자 2020-06-28 864
647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6강]전도 여행 보내신 예수님 관리자 2020-06-21 833
646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5강] 내가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관리자 2020-06-14 820
64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4강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20-06-07 985
64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3강]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0-05-31 913
64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2강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관리자 2020-05-24 1149
64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1강]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관리자 2020-05-17 893
64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0강]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관리자 2020-05-10 939
64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9강]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관리자 2020-05-03 891
63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8강]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늘 아버지 관리자 2020-04-26 881
638 마태복음 [2020년 부활절 특강]그가 살아나셨느니라 관리자 2020-04-19 998
637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7강]너희도 온전하라 휴화산 2020-04-12 866
636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6강]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휴화산 2020-04-05 1113
63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5강]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20-03-29 984
63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4강]다만 그를 섬기라 관리자 2020-03-22 856
63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3강]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관리자 2020-03-15 1049
632 로마서 [2020년 로마서 제19강] 복음의 동역자들 관리자 2020-03-0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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