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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7-21 (일) 12:56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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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19강] 벧엘의 하나님

  2019년 창세기 제19강                                                            오정훈

벧엘의 하나님

말씀/창세기 27:46-28:22                                            
요절/창세기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흔히 꿈과 현실은 반대라고들 말합니다. 본문의 야곱도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지만 현실에서는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벧엘에서 만나주시고 그의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만난 하나님이시오 나와 함께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이 시간 인생의 시련과 고난 가운데 찾아오시는 벧엘의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므로 믿음을 새롭게 하고 이 하나님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7장46절을 보십시오. 리브가는 에서가 아내로 맞이한 헷 사람의 딸들로 인해 자신의 삶이 싫어졌다고 말합니다. 며느리들이 밥도 안 해주고 꾸미고 쇼핑만 하러 다녔기 때문이었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야곱마저 헷 사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면 삶의 기쁨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 합니다. 이는 동생을 죽이려는 에서에게서 야곱을 떼어놓고 또 야곱의 결혼문제도 해결하려는 리브가의 지혜였습니다. 이삭도 불신자 며느리들로 인해 심사가 불편하고 기쁨이 없었는데 리브가의 말을 듣고 나니 한시라도 빨리 야곱을 밧단아람에 보내야 되겠다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밧단아람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외삼촌 라반의 딸 중 한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신신당부하였습니다. 아마 이삭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어떤 사람과 결혼하는가가 인생에 매우 중요한 것임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 같습니다. 믿음 있고 내면성 있는 여인, 자신의 부족함을 감당해주는 여인과 사는 것이 축복인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인생에는 세 번의 중요한 만남이 있는데 첫째는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둘째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며 셋째는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좋은 아버지 좋은 영적 스승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최강대국이 되게 하는 이스라엘 역사상 전무후무한 임금이 되었으나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므로 축복을 빼앗기고 나라가 갈라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내면과 믿음의 세계가 중요함을 알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삭은 야곱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족속을 이루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사람을 얻는 것이고 그 사람들이 번성할 땅을 얻는 것입니다.

  28장6절부터는 에서가 본 것과 야곱이 본 것이 대조되어 나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에서가 보니 아버지가 동생을 그 먼 밧단아람으로 보내며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고 가나안 여인 중에서는 절대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8절도 보십시오.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에서는 아버지가 동생에게 신신당부하는 것과 또 자신의 가나안 여인들이 부모를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음식 잘하고 살림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요 영적인 가치관 내면성의 문제였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내면성이 없는 사람하고 살면 삶이 기쁘지 않습니다. 때마다 고추장찌개에 달걀조림 새싹비빔밥을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주어도 삶에 기쁨이 없게 됩니다. 에서는 사냥에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었지만 영적 센스는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인식,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삶을 보는 그런 영적인 눈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행한 것은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끝내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없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반면 야곱은 어떠하며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10절입니다.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하였습니다. 하란까지는 대략900km로 한 달 가량 소요되는 먼 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한 곳에 이르렀는데 이곳은 루스 곧 벧엘로서 야곱의 집에서 거의 96km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대략 2-3일 걸리는 곳이었는데 야곱은 이곳에 단 하루 만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신없이 뛰고 또 뛰어 도망쳐 온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너무 피곤하여 돌을 베개 삼아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집에서는 금이야 옥이야 부잣집 막내아들로 귀하게 자라던 그가 길에서 돌을 베고 자다니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더니만 장자권도 얻고 아버지의 축복도 받았지만 현실은 길바닥에서 자야하는 불확실함과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밧단아람으로 가는 것 말고 지금 당장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과 정반대로 현실이 불확실함과 고난으로 가득 찰 때 마음이 힘들고 연약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때 우리를 찾아오셔서 꿈을 통해 계시하시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우리 가운데 김반석 목자님 동덕여대 개척역사를 시작할 때 매우 막막하였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남자는 여학교에 들어갈 수 없어서 이들을 섬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반석목자님에게 기이한 꿈을 꾸게 하시고 이를 통해 놀라운 비젼을 주셨다고 하십니다. 곧 꿈에 반석목자님이 동덕여대 교수가 되어서 강의를 하는데 신기하게도 참새들이 와서 그 강의를 듣더니 곧 황금새가 되어 다 날아갔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런 꿈이 있을까요? 꿈보다 해몽이 더 중요합니다. 이 꿈은 참새 같은 자매들이 반석목자님의 말씀을 듣고 황금새 곧 선교사가 되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는 놀라운 꿈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동덕여대 개척으로 오늘 예배 참석한 알링턴의 홍모니카 선교사님, 멕시코의 박루디아 선교사님, 경성2부의 기둥 같은 김포인트 사모님, 또 프랑스로 갔다가 광운센터 스텝사모님이 된 막달라 목자님 등 참새 같은 자매들이 말씀을 받고 황금새가 되어 선교사로 나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시련 가운데 있을 때 우리에게 꿈을 통해 비전을 주사 새 힘과 희망을 주십니다. 사람들은 주로 길에서 돈을 계속 줍는 꿈을 꾸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런 개꿈은 꿔도 현실에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대한 꿈을 꿀 때 비전을 덧입고 하나님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야곱이 꾼 꿈은 정말 하나님이 주신 비전으로 가득 찬 꿈이었습니다. 12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고” 야곱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을 통해 세 가지를 보았는데 원문에는 모두 감탄사로 되어 있습니다. “보라, 사닥다리가!, 보라, 하나님의 사자들이!, 보라, 여호와께서!” 첫째로, 야곱은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닥다리는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것으로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 향하는 것임을 상징하여 줍니다. 현재 야곱은 외조부의 집으로 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외삼촌 집에서의 삶은 어떻게 될지, 누구와 결혼하게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았는데 자신의 삶이 그렇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그의 발걸음은 무겁고 두려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 그 꼭대기가 닿은 사닥다리를 보여주심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사닥다리를 오르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있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인생은 어떻게 보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번도 되어 보지 못한 어른이 되고 또 부모가 되고 그런 길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많이 하게 되고 두려움도 많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택하심 받은 자들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한 걸음 한 걸음 사닥다리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보통 내리막이라고 합니다. 체력도 내리막이고 즐거움도 내리막이고 소망도 내리막입니다. 그래서 나이 먹을수록 만사가 귀찮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택한 자들에게 말씀을 통해 비젼을 주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십니다. 젊은이들만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나이 먹은 사람들도 꿈을 꾸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 가운데 열심히 헌신하며 살게 하여주십니다. 이번에 여름수양회 앞두고 이종하 고영훈 목자들이 열심히 댄싱연습하는 것 보고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불타는 소망이 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갈수록 소망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시고 열심히 주와 복음 역사 섬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이 소망 가운데 현재 고난을 견디며 하나님께로 이르는 거룩한 순례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길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야곱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지만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사자들을 보내셔서 도와 주셔야만 가능함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날 때부터 에서라는 강적을 만났고 이제 조카를 마구 속이고 빼앗는 외삼촌 라반이라는 강적중의 강적을 만나게 됩니다. 거기다가 그 딸들 또한 만만치 않은 상대들입니다. 그가 이 험악한 세상, 무지막지한 사람들 가운데 짓밟히지 않고 어떻게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이는 여호와께서 그 사자들을 보내사 때마다 격려하시고 믿음 주시고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우리와 함께 하사 말씀주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므로 끝까지 믿음의 길 가도록 도우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셋째로, 야곱은 여호와께서 사닥다리 위에 서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13절입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이 하나님께서 야곱의 하나님이 되셔서 현재 그가 누워 있는 땅을 그와 그 자손에게 주시고 그 자손을 티끌 같이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야곱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삭을 통해 계승된 이 축복을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1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에게는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셨고 이삭에게는 ‘약속의 땅에 거하라’ 하셨는데 야곱에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이는 그가 아브라함 이삭과 비교할 때 영적으로 너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심히 자기중심적이고 축복에 눈이 멀어 팥죽으로 형의 장자권을 집어삼키고 순진한 아버지를 속인 자였습니다. 자기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라면 독사같이 집요하게 달려드는 이런 사람은 부담스러워 피하고 싶습니다. 좀 베풀 줄 알고 아량도 있는 사람과 같이 해야지 이런 사람하고 같이하다가는 눈뜨고도 코 베어 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과 함께 하사 그가 어디로 가든지 그를 지키시며 그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야곱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오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태어날 때도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 받았는데 이런 자신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감동을 받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엄청난 소원이 있어서, 인격이 훌륭해서 구원받고 택함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으로는 자격도 조건도 안 되고 소원도 없어서 은혜 아니면 구원받을 수도, 쓰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다만 일방적으로 손 내미시고 믿음의 삶을 살도록 지키시고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이른 것입니다. 야곱과 함께 하실 뿐 아니라 나와도 함께 하사 지키시므로 변함없이 믿음으로 살게 도우시는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 드립니다.

  야곱은 돌베개 베고 자다가 꿈에 놀라서 깨어 고백하였습니다. 16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그는 이제까지 하나님은 자기 아버지 이삭이 계신 곳에만 계신 분이시지 자신이 가는 곳에 함께하시는 분이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하나님이시지 자신의 하나님이라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형을 피해 도망가는 야곱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사 바로 여긴 계신 야곱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야곱은 비로소 신앙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얘기로 들려오는 세계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태신앙의 껍질을 깨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고 예배하고자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17,18절입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아무도 없는데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다 하며 돌에 기름을 붓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보든지 보지 않든지 하나님께 대한 인식이 생기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고 거듭났다는 증거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그 곳 이름을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 명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이곳은 도망치다 잠시 유숙한 이름도 없고 의미도 없는 곳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므로 이곳은 역사적인 곳이 되었습니다. 인생문제 해결을 위해 센터에 나왔는데 말씀공부 통해 하나님 만나고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게 되면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 되고 하늘의 문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전혀 몰랐지만 하나님은 그를 쭉 따라오고 계셨고 그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말씀합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13:5)” 우리 인생길은 언제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칠지 알 수 없어 때로 두렵고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없이 바로 여기서 나와 함께 하시므로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가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과연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시련과 고난 가운데 낙심하지 않고 힘을 내어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감당하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2절은 야곱의 서원기도입니다.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보통 절박한 취업문제, 장래문제, 건강문제 있을 때 서원기도 하라고 옆구리 찌르는 목자님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아무도 옆구리 찌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서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붉은 죽으로 장자권을 바꿔치기한 그의 기질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곧 그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지 않고 자기에게 딱 붙어 있으시게 할 것인가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안전을 지켜주시고 먹을 것 입을 것 의식주 해결해주시며 평안히 돌아오게 하시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을 섬기겠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 서원기도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에서와 외삼촌 라반으로부터 지켜주시고 먹을 것 입을 것 뿐 아니라 거부가 되여 평안히 돌아오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서원한 것을 잊어버리고 지키지 않지만 하나님은 서원을 들으시고 그대로 행하시고 인도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야곱은 어떡하든지 하나님을 자기에게 붙들어 놓으려 하였지만 결과론적으로 자신이 하나님께 붙들려 평생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약삭빠르고 만만치 않아 보이지만 사실 그런 야곱을 붙들어 매신 하나님이야말로 만만치 않으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서원기도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발목잡힐까봐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젊은 날 인생 문제 앞에 서원기도 함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문제로 또 어떤 사람은 자녀문제 취업문제로 절박함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때 신세한탄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소원 가운데 한나처럼 간절히 서원기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나의 간절한 서원을 들으시고 응답하시므로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고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소망하며 절실한 인생문제 앞에 서원기도 드리므로 나의 하나님을 만나고 이 하나님을 섬기는 복된 삶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치대 국가고시를 볼 때 상당히 불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6년 동안 배운 것 중에서 시험보기 두 달 전에야 알게 된 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시험 보는 날 일용할 양식 말씀이 계시록 16장 ‘진노의 일곱 대접’이었습니다. 저는 얼굴이 잿빛이 되었고 ‘이 진노의 일곱 대접을 받을 자가 내가 아니면 누구랴’ 생각하였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도우심과 목자님들의 기도로 합격에 대한 확신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합격자 발표가 미루어지고 두 번째 합격자 발표마저 연기되자 ‘뒤에서 3등 하던 내가 아니면 누가 떨어지랴’ 두려운 마음에 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믿음으로 결혼하겠다고 일단 서원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발표가 계속 두 번 더 미루어지고 기초 군사훈련 받으러 가기 전날에서야 결과를 알게 되면서 저는 피가 말라 선교사로 살겠다고 서원기도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무섭고 두려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를 기초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산신령처럼 살던 저를 결혼의 진리로 인도하시고 가정교회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2003년 미국 수양회 참석을 통해 선교사님들의 스피릿을 배우게 하시고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에 기초해 어떤 모양으로든지 쓰임 받고자 결단하게 하여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가지 역사를 섬기고 말씀역사에도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생각이 강하고 남과 타협할 줄 몰라서 함께 하기 힘든 저를 떠나지도 아니하시고 이날까지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믿음의 사람으로 연단하시고 저처럼 자기가 강한 야곱족속들을 감당하고 섬길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이제 축복만 누리면 되겠구나 생각할 때 저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식 문제를 통해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문제 가운데 있는 저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오 긍휼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제가 이 하나님을 의지해 다시 힘을 덧입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감당하길 기도합니다. 이번 수양회에 이 하나님을 의지해 사람들을 격려하고 세워서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벧엘의 하나님은 고난의 때 우리와 변함없이 함께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때로 현실은 약속과 정반대여서 절망스러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고 약속과 비젼을 주십니다. 이 하나님을 힘입어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거룩한 순례자의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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