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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11 (일) 12:42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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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21강]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2019년 창세기 제21강                                                              김반석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말씀 / 창세기 31-33장
 요절 / 창세기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은 고향을 떠나기 전 형과 아버지를 속여 장자권과 하나님의 축복의 계승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 밧단 아람에 왔을 때는 빈손이었지만 20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사랑과 물질과 12명의 자녀를 얻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얻었으므로 행복해야 했지만 태산과 같은 문제 앞에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그에게는 지금까지의 축복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축복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시고,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이 은혜는 존재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영적인 자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야곱과의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31:1-55)
1,2절을 보십시오. 야곱의 소유가 많아지자 외삼촌의 아들들이 노골적으로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외삼촌의 안색도 예전과 같지 않아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무슨 방향을 주셨습니까? 3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이제 야곱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잠16:9)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통해서라도 돌이키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영적 방향을 잡도록 도와주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20여 년 전에 했던 서원기도를 기억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했습니다. 6-13절은 야곱이 아내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동의를 얻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을 온 힘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하지만 라반은 사위인 야곱을 대우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속이고 품삯을 여러 번 변경했습니다. 라반이 야곱과 품삯을 정할 때 야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하나님은 야곱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튼튼한 양들을 몰아주시므로 물질의 축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8-12,30:31-43) 야곱은 아내들에게 악덕고용주와 같이 갑질하는 라반의 태도와 계약 변경 내용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뜻임을 강조했습니다(13). 야곱의 말을 들은 아내들은 자신들이 출가외인 취급 받은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였습니다(14,15). 그리고 야곱이 번성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축복과 섭리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 야곱의 제안에 적극 동조하겠다고 했습니다(16).
아내들의 동조까지 얻은 야곱은 지체하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라반이 알면 반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양 떨 깎는 날을 D-day로 잡았습니다. 드디어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간 틈을 타서 야곱은 가족들과 모든 가축과 소유물을 이끌고 몰래 떠났습니다. 이때 라헬은 아버지의 드라빔(가족의 수호신)을 도둑질 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3일 후 라반은 야곱이 도망한 것을 알고, 사람들을 거느리고 7일 길을 추격하여 마침내 야곱에게 이르렀습니다. 격분한 라반은 야곱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라반의 꿈에 나타나셔서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24) 라반은 하나님의 경고에 두려움을 느끼고 야곱을 해칠 수 없게 되자 드라빔을 야곱이 훔쳐 간 것으로 생각하고 책망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라헬이 드라빔을 훔쳐온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것을 훔친 자는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라반은 의기양양하여 쥐 잡듯이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라헬의 속임수로 찾지 못했습니다. 이에 야곱은 분노하였고, 그동안 라반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섬겼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상해 주기는커녕 계약을 위반하며 갑질한 라반의 잘못을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자신을 보호해주시고, 어젯밤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라반을 책망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42).
라반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야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자 야곱에게 딸들과 손자들을 보호해 줄 것과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에 야곱이 돌기둥을 세우고, 형제들에게 돌무더기를 이루게 하여 증거를 삼았습니다 (47-49). 그리고 화해와 우정의 표시로 희생 제사를 드리고 잔치를 벌여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서원기도 대로 밧단 아람에서 야곱과 함께 하사 그를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고, 때가 되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Ⅱ. 야곱의 이름을 바꿔주신 하나님(32:1-33:20)
32장 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을 하나님의 군대라 명명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두 군대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그와 함께 계시며 지켜주시겠다는 약속대로 두 군대나 되는 천사들을 보내셔서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보호를 완전히 믿지 못한 야곱은 형 에서가 지금도 자기에 대해 분노와 적대감을 갖고 있는지 사람들을 보내어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이 돌아와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오는 중이라고 전하자 야곱은 사지가 떨렸습니다. 방금 전에 하나님이 천군천사를 보내셔서 보호하고 계신다는 증거를 보았음에도 에서가 자기를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야곱은 주저앉지 않고 살길을 모색했습니다. 에서가 와서 공격하여 한 떼를 치면 한 떼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들과 모든 소유를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는 다급해져서 하나님을 찾았고,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9,10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야곱은 벧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조상들의 하나님을 의지해서 기도했습니다. 이는 조상들에게 언약을 기초로 신실하게 행하셨던 것처럼 자기에게도 그렇게 해주시도록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고, 은혜를 베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과거 벧엘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을 때 땅과 수많은 후손을 주겠다는 약속도 하셨습니다.(22:17, 28:14)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언급하며 에서가 자기를 죽이게 되면 하나님과의 언약도 이뤄질 수 없게 되니 에서로부터 구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11,12). 기도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이렇게 기도한 후에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략을 세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자 했습니다. 먼저 무려 580마리(7억원 이상)나 되는 가축들을 예물로 택해 세 때로 나누고, 서로 거리를 두게 했습니다. 이는 예물의 양이 많아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림과 동시에 세 번에 걸쳐 선물을 나누어줌으로써 에서의 감정을 완화시키고, 시간을 벌고자 하는 야곱의 술책이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작전 계획을 세우고, 물질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자신의 뜻대로 된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20b에 보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계획을 갖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그 결과는 ‘혹시’ 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 받는 결과를 낳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이 있습니다. 야곱의 두려움의 원인이 겉으로는 에서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20년 전에 에서를 속여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여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챘던 죄의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두려움, 불안, 염려, 스트레스, 근심 등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 문제로부터 벗어나고자 운동, 맛 집이나 유명관광지 탐방, 취미생활 등에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며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합니다. 만일 이런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기쁨이 넘치고 평안하게 잘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죄는 시간이 지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죄 사함을 받아야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21-24a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준비한 예물을 종들에게 맡겨 보냈는데 20년간 수고하여 얻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과 염려에 시달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밤에 일어나 처자식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너가게 하고, 홀로 남았습니다. 얍복은 원어로 “야보크”로서 “비워짐”이라는 의미입니다. 양파 껍질을 하나씩 하나씩 벗기면 아무것도 남지 않듯이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둘러싸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벗기면서 자신을 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은 피땀 흘려 모은 소유가 자기를 보호해주고,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물질도, 처자식도 그 무엇도 자기를 보호해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풍부한 인생 경험과 지혜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총동원하였음에도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의지하던 것들을 모두 벗겨내니 오직 자기 자신만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의지와 성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에서와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코너에 몰리게 되자 비로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두 손 들고 하나님께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좀 살려 주십시오!” 야곱은 하나님께 눈물로 통곡하며 필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호12:4) 하나님은 이렇게 홀로 남은 야곱을 불쌍히 여기사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종합격투기를 하듯이 야곱과 싸워주셨습니다. 야곱은 이 사람을 에서가 보낸 자객이나 강도로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싸웠습니다. 20년간 양을 치면서 맹수들을 쳐부순 실력을 발휘하여 잽과 니킥을 날리며 선제공격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요리저리 피하며 테이크 다운을 시도했습니다. 서로 조르기, 관절기, 어퍼컷 등 필살기를 동원하여 오랜 시간 공방전을 펼쳤지만 좀처럼 승패를 가릴 수 없었습니다.
25a절을 보십시오.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사람은 도저히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야곱에게 져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저희 가정은 반석이와 바울이가 어렸을 때 ‘천만원 게임’이라는 것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반석이는 게임을 하다가 지기라도 하면 울고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바울이는 이런 형을 불쌍히 여기고 일부러 져주곤 했습니다. 게임은 항상 반석이가 이길 때까지 해야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와 동역자는 밤늦게까지 하는 것이 귀찮아서 바울이와 사인을 주고받으며 “그래. 네가 이겼다, 잘했다.”며 빨리 져주었습니다. 그러면 반석이는 마치 자기가 잘해서 이긴 것 인양 좋아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말씀에 기초해서 끈질기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야곱에게 져주신 것입니다. 그를 다만 긍휼히 여기시고, 기도에 응답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져주신 결정적인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고통과 모욕을 온 몸으로 감당하시며 져주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다 주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얍복 나루에 나가 간구할 때, 하나님은 외면치 않으시고 져주셔서 구하는 바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들을 만납니다.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내면의 죄 문제를 비롯하여 자식문제, 건강문제, 물질문제, 직장문제, 양문제 등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태산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나가 기도의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때로는 금식기도를 하면서 울부짖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이요 합리적 이성주의자로 불리는 이어령 교수는 과거 기독교에 대해 독설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검사로 잘 나가던 딸이 암에 걸리고 실명위기에 처했습니다. 지성으로도 과학으로도 딸의 병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딸이 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자기가 가진 모든 능력(글 쓰는 것과 입담)을 하나님을 위해 쓰겠다고 서원기도 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야곱과 같이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나가 기도의 싸움을 싸웠습니다. 그런데 수개월 뒤 놀랍게도 딸이 회복되었고, 이어령 교수는 세례를 받고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성에서 영성의 세계로 들어와 복음전파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얍복 나루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도의 장소입니다. 나를 변화시켜 주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문제를 해결 받는 축복의 장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을 잘 배워 얍복 나루에 나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기도의 씨름에 힘쓰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25b절을 보십시오.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런데 하나님은 졌다고 하시면 되지 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불구자가 되게 하셨을까요? 너무 심하게 하셨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허벅지 관절은 척추와 엉덩이를 연결해주는 뼈입니다. 이는 몸의 중심부로 힘과 생명을 상징합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자기의 재능, 소유, 의지와 성실, 강한 인간성을 의지하고 살아왔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치시므로 이제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강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살짝만 건드려도 순식간에 다 어긋나 버립니다. 하나님이 치시면 건강, 재물, 명예, 권세 등 소유한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이를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서 완전히 나타나게 됩니다.(고후12:9) 더 많이 깨어지고 부서질수록 하나님은 나를 더 강하게 해주십니다. 나를 내려놓고 비우면 비울수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허벅지 관절을 의지하는 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먼저 내면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물만 닦아 주시고 은혜만 베푸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허벅지 관절을 치셔서 항복시키시는 분이요,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보다 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씨름이 밤새도록 계속되어 날이 새려고 하자 하나님은 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다고 필사적으로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그는 허벅지 관절을 맞고 나서야 비로소 영적인 눈을 뜨게 되었고, 자신과 씨름한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기가 받은 소유의 복이 진정한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진정한 복이 따로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축복을 받고자 다리를 절며 질질 끌려가면서도 절대로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태어날 때 형의 발꿈치를 꽉 붙잡고 나온 것처럼, 젖을 먹던 힘을 다해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는 야곱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돌아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야곱입니다.”라고 진솔하게 대답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지금까지 남을 속이고 빼앗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삶을 살았다는 진실된 죄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사기꾼과 같은 삶을 살던 야곱의 이름을 어떻게 바꿔 주셨습니까? 다 함께 2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자기의 본성을 따라 속이고 빼앗는 삶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존재로 변화되길 바라셨습니다. 존재의 변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시는 진정한 복이었습니다. 아브람과 시몬, 사울은 하나님을 만난 후 아브라함, 베드로, 바울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승리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씨름을 통해 강한 자아가 깨졌습니다.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을 복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소유는 가지면 가질수록 번뇌만 더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참된 복은 존재의 변화, 내면의 변화입니다. 존재가 변화될 때 분명한 가치관이 생기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게 됩니다.
또한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생각에 묶여 있던 삶에서 벗어나 영적인 것, 한층 더 가치 있는 인생을 추구하게 됩니다. 얼마나 소유했느냐 보다 어떤 삶을 살고 있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예수님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까 보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살 수 있을까에 집중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통해 내면이 성숙해지고,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야곱의 달라진 모습이 어떠합니까? 29-31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지만 죽지 않고 생명이 보존되었으므로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절뚝거리며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습니다. 비록 다리는 절었지만 하나님을 만난 그의 내면은 아침 해와 같이 밝고 희망찼습니다. 내면의 죄로 인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강이 임했습니다. 야곱은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므로 자연인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었습니다.
33장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에서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에서를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습니다(4). 살기등등했던 에서의 태도가 이렇게 바뀐 것은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야곱을 영접하게 하신 은혜의 역사입니다(10b). 사람과의 갈등문제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성으로부터 해결됩니다. 각자가 하나님을 깊이 만날 때 위로부터 평화가 임하고, 다른 사람과도 화목할 수 있습니다. 에서와의 문제가 해결된 후 야곱은 얍복 나루에서 16km정도 떨어진 숙곳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가족들이 거할 집과 가축을 위해 우릿간을 지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수년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세겜 사람들로부터 밭을 사서 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이스라엘의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지만 서원을 지키기 위해 벧엘로 가지 않고, 여기서 안주하고자 했습니다. 결국 34장에서 딸 디나가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고, 시므온과 레위는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비극적인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결론입니다. 야곱은 정말 변화되기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을 20년 이상 인내하시며 키우셔서 마침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형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나듯이 겸손하고, 화평의 사람, 가진 것을 베푸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자기를 의지하던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과 삶이 이렇게 변화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소망을 영접하고, 얍복 나루에 홀로 남아 자기를 비우는 기도의 씨름을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영적 이스라엘로 변화되는 축복된 삶을 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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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6강] 이삭의 결혼 관리자 2019-06-3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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