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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18 (일) 12:34
분 류 창세기
첨부#1 2019년_창세기22강-1(오정훈).hwp (29KB) (Down: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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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22강] 벧엘로 올라가라

  2019년 창세기 제22강                                                            오정훈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창세기 34,35장
 요절/창세기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흔히들 말하기를 화장실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합니다. 급할 때는 간절히 하나님을 찾지만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겜에 머물러 자기중심적으로 실길 원치 않으시고 벧엘로 올라가길 원하십니다. 거기서 절박하고 간절할 때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지켜주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섬기길 원하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세겜에 머물러 있는 자기중심적 신앙에서 돌이켜 벧엘로 올라가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악취를 풍기고 있는 야곱(34장)
34장1,2절을 보십시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습니다. 거칠고 말도 안통하는 10명이나 되는 오빠들하고 노는 것은 너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디나는 그 땅 딸들은 무엇을 입고 어떻게 사는지 보려고 놀러 나갔는데 거기서 그만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야곱이 이곳 세겜에 처음 왔을 때 디나가 6-7세 정도였는데 이제 어엿한 처녀로 자란 것을 보면 야곱이 이곳에서 10년 이상 머문 곳으로 보입니다. 야곱은 왜 서원한대로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세겜에서 이렇게 오래 머물러 있었을까요? 세겜은 북쪽으로는 에발산, 남으로는 그리심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요단강과 서로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고대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팔레스틴의 다른 지역과 달리 물이 풍부하여 거주지요 또 목축하기 좋은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 집에서 노예처럼 살다가 그곳에서 벗어나고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을 짓누르던 형 에서와의 문제도 해결되자 모든 긴장이 풀어져지게 되었습니다. 외삼촌도 없고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세겜은 물 좋고 양치기도 좋은 천국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곳 세겜에서 편히 쉬면서 여생을 보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디나 사건이 터지므로 세겜은 천국이 아니라 야곱에게 있어서 아주 뼈아픈 곳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을 때는 필사적으로 하나님을 붙들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었지만 그런 문제가 해결되고 더 이상 하나님을 붙들지 않았을 때 안전하고 풍요로워 보이던 세겜 땅은 더 위험하고 무서운 곳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모든 문제들은 간절함이 사라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 하나님을 붙들지 않을 때 시작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세겜은 디나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 자신의 아내로 얻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야곱과 그 아들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그 딸이 치욕을 당했음을 들었으나 아들들이 들에 있으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습니다. 잠잠하였다는 것은 문제 일으키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서 그곳에서 계속 살고자 한 것을 말합니다. 야곱은 인간적으로는 안정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스피릿을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반면 아들들은 어떠하였습니까?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습니다(34:7). 그래서 하몰이 디나를 세겜의 아내로 주고 서로 통혼하자고 하였을 때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거짓말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할례의 고통으로 괴로워할 때 그들을 몰살하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하몰과 세겜은 이를 좋게 여기고 지체하지 않고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받게 하였습니다. 정말 세겜이 디나를 사랑하긴 했던 모양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제 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의학적으로 볼 때 할례를 행한 후 삼일 째가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라고 합니다. 타이레놀이라도 몇 알 먹었으면 그렇게 아프고 괴롭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 약이 없었기에 고스란히 그 고통을 다 겪어야 했습니다. 바로 이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각 칼을 가지고 몰래 성읍을 기습하였습니다. 그들은 칼로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특히 하몰과 자신들의 동생을 욕보인 세겜을 처단하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양과 소와 나귀 뿐 아니라 들과 성읍과 집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약탈하고 자녀와 아내들까지 사로잡아 와버렸습니다. 분노와 살기로 가득하여 사람들을 몰살하고 노략질까지 한 그들은 그곳 추장 세겜과 별로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야곱은 이런 시므온과 레위에게 분노하여 말했습니다. 30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시므온과 레위가 거룩한 언약이 담긴 할례로 세겜 사람들을 속여서 죽이고 노략한 것은 악취가 나는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모든 문제의 원인 제공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 걸치며 살아온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그가 벧엘로 올라가서 서원을 지키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지극히 자기중심 세상적인 삶을 산 것이 문제였습니다. 야곱의 걱정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밉보여 자신의 재산을 잃고 자신의 집안이 망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30절을 보면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전부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살므로 가나안에 악취를 풍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세겜은 하나님과 멀어진 곳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과 멀어져 별문제 없이 지내길 소망합니다. 그러나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듯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면 반드시 틈이 생기게 되고 그 틈을 비집고 마귀가 역사하게 됩니다. 물질과 정욕 세상쾌락의 유혹이 파고 들어옵니다. 여기에 마음을 빼앗기면 점점 자기중심 세상중심이 되어 악취를 풍기고 비극과 불행의 씨앗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할 때 세상유혹을 이기고 믿음의 길 진리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절박했던 때 나를 만나주시고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므로 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삶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벧엘로 올라가라(35장)
세겜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진퇴양난에 빠진 야곱에게 하나님은 어떤 방향을 주십니까? 다 같이 35장1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을 피해 먼 곳으로 가라고 하시거나 그들을 막아주겠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가 처음 서원했던 곳으로 올라가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현재 일어난 불행의 본질이 디나나 추장 세겜 혹은 아들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야곱이 서원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문제임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서원을 드린 그곳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 대한 서원을 지키라 하십니다. 처음 가졌던 간절한 마음과 믿음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위기의 때 어디로 가야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처음 만나 주신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 부르심의 은혜.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영화의 첫 장면은 주인공이 기찻길 위에서 서서 “나 돌아갈래!” 외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돌아갈 수 있습니까?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돌아갈 수 있습니다. 처음 받은 감격과 처음 받은 은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로 돌아가서 위기의 때에 문제 이면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관계성을 회복하게 되면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씩 해결하여 주십니다. 야곱은 이 말씀을 듣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2절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야곱은 그 식솔들에게 세 가지를 결단하게 하였습니다. 첫째,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 야곱의 가족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이방신들도 섬겼습니다. 현실적인 축복 곧 돈 건강 성공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여호와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이방신들이 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내 라헬은 그 집에서 나올 때 아비의 드라빔을 훔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때마다 늦은 비 이른 비를 주시고 이를 통해 곡식의 풍성함과 우리의 넘치는 양들을 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축복 물질주의에 매여 이방신상을 섬기는 마음을 회개하고 이것들을 버림으로서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섬기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둘째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 이는 목욕하여 몸을 씻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세상 죄에 찌든 내면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혹자는 34장1,2절에서 디나가 세겜 사람들의 딸들을 보러 갔다는 것을 우스개소리로 디나가 세겜 클럽에 갔다가 부끄러운 일을 당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세속문화 육신주의에 많이 노출된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겉만 씻을 것이 아니라 회개하므로 내면의 더러움을 씻어 정결한 하나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옷을 바꾸어 입는다는 것은 삶의 방식, 삶의 패턴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 의복이 확 바뀌게 되는지 아시나요? 네 군대 가면 옷이 확 바뀌게 됩니다. 이제까지 입던 민간인 복장은 박스에 넣어서 택배로 고향에 붙이고 군대에서 나누어준 군복을 입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이 바뀌면 옷이 바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백성도 의복을 바꾸어 입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 자유라는 이름으로 짧고 노출이 심한 정욕과 쾌락의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은 이런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의와 거룩함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가치관을 바꾸고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 부흥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3절입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야곱은 자신의 환난 날 응답하시며 이제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 하나님을 섬기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마치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결단하였듯이 야곱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완전히 결단하였습니다. 이에 그들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었고 야곱은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그것을 다 묻어 버렸습니다. 묻었다는 것은 완전히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책상서랍이나 옷장에 넣어두었다가 나중에 생각날 때 다시 꺼내는 것이 아니라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넣어서 쓰레기 매립장에 묻히기까지 철저히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귀고리는 우상 숭배의 목적으로 착용하는 경우가 많아 귀고리에 우상의 모양이나 주문을 새기고 이를 통해 악귀를 좇아내고 행운을 불러온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세겜은 상수리나무의 폐허라는 뜻이 있는데 야곱이 세겜의 세속주의에 물들어 살 때 그의 삶이 폐허가 되기 직전까지 갔지만 이제 이방신상들을 묻으므로 새로운 출발의 근거지가 되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순종해서 벧엘로 올라가자 사면 고을들로 두려워하게 하시므로 감히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세겜의 학살 사건은 가나안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를 유발하기 쉬웠으나 하나님께서 오히려 두려운 소식으로 들리게 하시므로 ‘정말 조심해야겠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뼈도 못추리겠구나’ 두려움을 느끼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거의 30년 만에 벧엘로 돌아온 야곱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7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야곱은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습니다. 엘벧엘은 벧엘의 하나님이란 뜻으로 야곱 자신의 신앙의 변화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처음 만난 곳도 벧엘이었는데 그때는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자기 필요를 위해서 기도하고 자기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자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세겜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과 고통을 당하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벧엘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벧엘의 신앙은 이제는 하나님의 뜻과 소망을 따라 살겠다는 성숙한 신앙의 결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야곱은 벧엘에서 시작하여 엘벧엘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간절한 인생문제 절박한 문제가 있을 때는 하나님께 나와서 매달리며 기도하지만 막상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다시 문제가 생겨서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신앙이 세겜에 머무르지 않고 엘벧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간절하고 절박한 때 나와 동행하시고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며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창세기 저자는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밧단아람을 출발한 것은 오래 전이었지만 세겜에 온 것은 돌아온 것으로 보지 않고 서원한대로 벧엘에 왔을 때 돌아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에게 복을 주시고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부르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이 그의 이름이 될 것이라 하십니다. 이제는 정말로 남과 싸우고 속이고 빼앗는 자연인 야곱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영적인 사람 이스라엘로 살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1,12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말씀을 야곱에게 주시므로 그를 축복의 계승자로 세우셨음을  확증하여 주십니다. 그로 인해 한 백성이 나오고 왕들이 나오게 됩니다.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가족은 70인이었지만 400년 만에 200만 명이라는 큰 백성이 되어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간적이던 야곱을 통해 다윗 히스기야 요시야 같은 위대한 왕들이 나오게 됩니다. 야곱은 이에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그 위에 기름을 부으므로 서원을 온전히 이루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겜에서의 디나 사건은 뼈아프고 고통스러운 사건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야곱과 그의 가족이 새롭게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에 때로 부끄럽고 통탄할 사건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나오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신앙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어찌하든지 벧엘로 인도하사 믿음으로 살게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이 하나님을 힘입어 자기중심적인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어찌하든지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엘벧엘 신앙으로 나가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을 통해 세겜에 안주하지 말고 벧엘로 올라가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거기서 절박하고 간절한 시절 저를 만나주시고 함께 하여 주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기쁨과 감사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사실 저는 이번 주 메시지를 끝으로 더 이상 말씀을 전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고 짧은 고별인사말씀까지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는 몹시 절망하고 비통해마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주가 쓰시겠다’ 하시는 말씀에 의지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쓰임 받았지만 이제는 좀 쉬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어서 십자가를 내려놓을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치열한 삶을 살던 야곱이 세겜에서 평안을 누리고자 한 것처럼 저도 좀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어오니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세상정욕과 물질주의가 저를 끌어들여 주인처럼 군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40-50대가 빠져든다는 유투브에 빠져 탁구동영상, 세계남자창던지기 대회 동영상, 한국육상의 떠오르는 샛별 양예빈 선수 동영상 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십자가를 벗게 되면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등산할 생각을 하니 입가에 미소로 절로 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세겜에서 안일하게 거할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허리와 등이 뻣뻣한 증상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등과 허리가 많이 뻣뻣해서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아 늘 피곤하였습니다. 효성스러운 큰 아들이 매일 15분씩 안마를 하고 두드려주지만 그래도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축구라도 한 날에는 근육이완제를 먹고 자야 겨우 피곤이 풀리곤 하였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과거 허리병으로 고생하던 저를 찾아오시고 인생의 절망과 운명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간절하고 절박한 시절 저를 외면치 않으시고 만나주시고 이날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오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좀 살만해지니까 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안일과 세상정욕에 빠져 세겜에 머물며 악취를 풍기고 있었던 것을 깨닫고 깊이 회개합니다. 제가 세겜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벧엘로 올라가 절박했던 시절 만나주신 나의 하나님을 힘써 섬기길 기도합니다. 십자가 벗을 생각만 하지 않고 절제와 의로 옷 입고 말씀묵상과 기도에 힘쓰므로 사람들의 내면을 살피고 세우는 역사를 계속해서 섬겨나가는 종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6절부터는 야곱 가정에 일어난 슬픈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벧엘을 떠나 헤브론으로 향할 때 라헬이 난산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토록 원하던 아들을 다시 낳을 수 있게 되었지만 난산이 심하여 그 기쁨도 채 누리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숨을 거두면서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 ‘슬픔의 아들’이라 지었습니다. 야곱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그의 아내 라헬의 죽음은 야곱에게 너무나 쓰라리고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런 극심한 슬픔 가운데서도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가 아니라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베냐민이라 지었습니다. 오른손은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함을 상징하는 것으로는 야곱은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베냐민을 통해 영예로운 일을 하실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라헬은 에브랏 곧 베들레헴에 장사되었고 거기에 묘비를 세웠으니 지금까지도 그 묘비를 ‘쿠벳 라힐’ 곧 라헬의 묘비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거기 장막을 쳤는데 큰 아들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아버지 야곱의 권위와 명예를 짓밟는 수치스럽고도 패륜적인 범죄행위였습니다. 야곱은 이 르우벤의 패륜적인 범죄행위를 알고서도 침묵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이는 고통과 치욕의 침묵으로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하고 고통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야곱은 이 무서운 범죄에 대해 침묵하므로서 아들의 죄를 묵묵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일어날 아들들의 죄악을 감당해야하는 야곱의 고통과 하나님의 연단을 암시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임종시에 이에 대해 르우벤을 저주하고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버림으로 이에 합당하게 보응합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마침내 기럇아르바 곧 마므레 수풀에 있는 헤브론에 이르렀는데 이삭의 나이 180세였습니다. 이삭이 나이 많고 기운이 다하여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지내었습니다.
야곱의 후반부 인생은 사람들로 인한 고통과 아픔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런 슬픔과 고통을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묵묵히 감당하므로서 변화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사랑하던 것, 자랑하던 것 하나하나 내어놓게 됨으로서 자신의 삶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나그네 삶임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세상의 악함과 사랑하는 사람의 죄문제로 인해 심히 상처받고 고통 받을 때도 있습니다. 또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이때 야곱과 같이 시련과 아픔을 묵묵히 감당하며 그 동안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성숙한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회전하는 그림자와 같은 세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거룩한 순례자요 나그네로 하나님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세겜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위험한 곳입니다. 우리가 안일하게 세겜에 거하지 않고 절박한 시절 만나주시고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벧엘로 올라가길 기도합니다. 거기서 하나님 중심의 엘벧엘의 신앙을 회복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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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22강] 벧엘로 올라가라 관리자 2019-08-18 1722
602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21강]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관리자 2019-08-11 984
60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20강] 야곱에게 열두 아들을 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8-04 992
600 요한복음 [ 2019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관리자 2019-07-28 912
599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9강] 벧엘의 하나님 관리자 2019-07-21 1226
598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8강]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 관리자 2019-07-14 1350
597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7강] 약속의 땅에 거주한 이삭 관리자 2019-07-07 1104
59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6강] 이삭의 결혼 관리자 2019-06-3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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