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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1-03 (일) 12:40
분 류 로마서
첨부#1 2019년_로마서제6강-1.hwp (28KB) (Down:61)
ㆍ추천: 0  ㆍ조회: 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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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로마서 제6강]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

2019년 로마서 제6강
말씀 / 로마서 4:1-25
요절 / 로마서 4:13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기독교 진리에서 가장 많이 공격받는 것 중의 하나가 ‘믿기만’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어떻게 믿기만 하면 구원 받아?’ ‘믿기만’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관계에서 ‘믿기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믿었는데 상황이 달라지거나 허물과 실수가 드러나면 ‘믿기만’하는 것은 바보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처음 믿은 그대로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황금보다 소중한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러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고자 기도합니다.

4장 본문은 거의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는 혈통으로 조상이면서 신앙의 모델이었습니다.(1)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느냐, 아브라함은 이러했습니다!’ 그러면 논쟁 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무엇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까!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2) 우리 보기에 훌륭한 점들이 많습니다. 말씀을 좇아 용기 있게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조카를 구하려고 전쟁까지 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십일조를 드리고 나머지는 모두 양보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것들에 향해 ‘아브라함, 의인! very good!’, 아브라함의 한 일을 자랑하고 칭찬하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성경이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겨졌습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가나안 생활 10년이 지나도록 자식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아브람은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도대체 내게 무엇을 주시려는 것입니까? 저, 지쳤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니 다메섹 엘리에셀로 후계자를 삼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1-5) 보통사람 같으면 더 크게 불평하기 쉬웠습니다. ‘하나님, 절 놀리시는 겁니까! 엄청난 거 약속하지 마시고 손에 잡히는 확실한 것을 지금 주십시요’ 그런데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으니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아멘’ 아브람이 공을 세웠을 때에는 가만히 계셨던 하나님이 불평과 원망을 내려놓고 말씀을 믿자, 그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믿음을 그리 중요하게 보십니까! 4,5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사나니” 일하는 자와 믿는 자가 대조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신앙은 일하는 신앙, 우리 성도들의 신앙은 믿는 신앙으로 비유합니다. 일이란 보상을 바라고 하는 행위, 혹은 보상을 기대할만한 행위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않고 보수로 여깁니다. 월급 받으면서 ‘아니, 저 같은 자에게 왜 이리 많은 돈을 주십니까! 사장님은 언제 부자가 되시려고요...’ 이리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직원이 있다면 무조건 붙잡아야 합니다. ‘이번 달에는 저번보다 업무가 많았는데, pay가 똑같네요? 사장님은 돈도 많으면서 이것밖에 안줘요?’, 요구하고 투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유대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와 같습니다. 율법을 지켰으니까 그에 대한 보상으로 구원받는 것을 당연시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수고와 보상, 불순종과 심판의 원리가 지배하는 긴장과 두려움의 관계입니다.
반면 일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고 하는 분으로 믿는 것은 은혜와 신뢰의 관계를 말합니다. 일하지 않았는데도 예쁘게 봐줄 것이라 믿을 수 있나요? 회사에서는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아들이 자기 빨래도 안하고 방청소를 하지 않고 엉망으로 해놓고 나갈 때가 있습니다. ‘방도 더럽고 옷도 안치웠는데, 큰일났다. 엄마에게 맞아죽겠는데...’ 벌벌 떨고 있는 아들이 있습니까! 있을 수 있지요? 혹시 있다면 심각한 것입니다. 번번이 그러면서도 빨래걱정, 방청소 걱정하지 않는 것은 그런 자신을 감당해줄 엄마의 사랑을 믿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이게 사람이야? 짐승이지!’ 퍼붓지만,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서 밥을 준비하고 옷을 준비하고 멋진 아들로 세우려는 엄마로 믿기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그의 의로 여기십니다. 우리는 보이는 열매로 당당해지고자 합니다. 간혹 본국에 오신 선교사 중에 제자양성을 이룬 것도 없고 눈에 보이는 열매도 없으니 동역자들 보기가 민망하여 센타에 오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 마음은 그러하지만, 하나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을지라도 주님을 사랑하여 선교지에 남아 충성하는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만큼 중요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6) 7,8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워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시편 32편 다윗의 시를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 32편에서 다윗은 죄로 인한 고통과 용서받는 기쁨을 노래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불륜을 저질렀는데, 아이가 생겨버렸습니다. 그러자 불륜의 흔적을 지우려고 우리야를 치열한 전쟁터에 보내어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과부가 된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남편을 잃고 어려움에 빠진 여인과 그의 가족을 돌보아주는 모습으로 범죄를 은폐하고 살았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책망했습니다. “양 99마리를 가진 부자가 양 한 마리를 가진 사람의 양을 빼앗아 잔치를 벌였는데, 당신이 바로 그와 같이 악한 죄인입니다.” 그때 비로소 다윗은 입을 열어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습니다.(삼하11,12장)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짜르지 않으시고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법적으로 따진다면 사울보다 훨씬 악한 죄를 지었습니다. 사기꾼, 살인범, 가정파괴범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용서를 받은 것입니까! 오른팔 같은 충신을 죽였으니, 최소한 오른팔이라도 짤라내야 했습니다! 밧세바를 보고 음욕을 품은 눈을 하나쯤 빼낸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회개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윗 정도 되니까 용서받는 것 아닐까요?’ 말합니다. 어느 정도 기본이 되어있는 사람이 믿음으로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할례받은 사람이 회개해야 용서받을 수 있다’라는 유대인들의 주장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합니까! 9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행복은 할례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무할례자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할례받은 사람이었지만, 아브라함은 할례 없는 상태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10) 이는 할례를 받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며, 할례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을 인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11) 인친다는 것은 잊지 않기 위한 표시입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구원의 은혜도 잊고 부르심도 잊고 엔트로피 법칙처럼 영적 무질서도가 증가합니다. 주일예배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 ‘그래! 이제부터 믿음으로 살아야지!’ 굳게 결심했는데, 저기 저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딴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remind 시켜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받은 바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말씀을 공부하고 소감을 쓰고 일용할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공부와 소감쓰기가 구원의 조건이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감을 쓰지 않더라도 변함없이 영적인 생각을 하고 말씀을 기억하며 살 수 있다면 굳이 소감 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할례가 그와 같습니다. 할례 같은 신앙적인 전통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잊지 않기 위한 외부적인 자극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올바른 관계. 신뢰의 관계 그 자체입니다. 아브라함은 할례자나 무할례자 모두에게 믿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자취를 남겼습니다.(12)  

1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세상에서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율법으로 말미암는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도저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파기해야만 합니다.(14)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 민족마저 율법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갔다가 거기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심판받아야 마땅하였는데, 다만 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회개함으로 용서받고 회복되었습니다. 여호수아, 사사기, 열왕기서에서 이스라엘은 수없이 범죄하고 떠났다가 전쟁 같은 위기를 만나 겨우 돌이키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받아주시고 구원하는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역사서를 읽다보면, ‘하나님,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반복하여 죄를 짓고도 다시 돌아오는 뻔뻔한 이스라엘을 왜 구원해주시는 것입니까! 율법으로 따지면 진노를 받아야 마땅했습니다.(15)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남은 자들을 통한 은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이든지 비이스라엘 사람이든지 믿음으로 사는 자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믿는 모든 자들의 조상입니다.

1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죽음은 세상에서 당하는 가장 큰 아픔이요 절망입니다. 마귀는 죽음 같은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의심하게 하여 어둠에 빠뜨리고자 합니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만날 때마다 염려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마귀의 공격에 무너지게 됩니다. 많은 축복을 받을지라도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사명을 감당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이는 체질문제, 상황문제가 아니라 믿음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붙들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 낯선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고난을 견디었습니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불합리해 보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는 믿음이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일군으로 살게 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처음 창조하실 때, 세상은 캄캄하고 혼돈하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자 공허한 흑암가운데 빛이 생겼습니다. 하늘에 궁창이 있으라 하시니 궁창이 있었습니다. 땅에 생물이 있으라 말씀하시자, 각종 생물이 생겨나서 아름다운 자연세계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지금 없는 것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없는 것들을 얼마든지 있게 하십니다. 없던 건강을 있게 하시고 없는 능력을 있게 하시고 없던 사람을 있게 하실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지금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있게 될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지도자의 꿈은 없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는 보이지 않고 인간의 죄악만 가득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성추행범의 누명을 쓰고 감옥으로 추락할 때에는 진실도 사라지고 정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때가 되자 주권과 섭리를 드러내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온  거기에 하나님의 큰 그림이 있었습니다. 요셉을 총리로 세우고 형들을 회개시키고 병든 가족을 치유하여 이스라엘 번영의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떠했습니까! 골고다 십자가에는 어떠한 공의나 자비도 없었고 조롱과 멸시와 끔찍한 고통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심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십자가에 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끝까지 말씀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며 완전한 신뢰입니다. 멕시코의 빠블로박 선교사는 “체념이 우리 마음을 지배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우리 스스로에게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중단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끝까지 신뢰하라. 박수산. p18) 나이문제, 건강문제, 돈문제, 스펙문제, 즉 사람 문제를 따지며 거기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준비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령 박사는 그의 저서 ‘우물을 파는 사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까지 자꾸 정보를 구할 뿐, 생명을 구하지 않는다. 정보를 구하기보다 생명을 구하러 교회에 가는 사람은 나날이 드물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쓰디쓴 현실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이 문제, 저 문제, 정보와 지식은 아무리 분석하고 높이 쌓아갈지언정 머릿속만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믿음이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내 영혼 깊숙이 한 말씀을 깊이 새김으로써 믿음의 기둥을 심어야 합니다. 죽었다고 자포자기할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새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일어서고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래전 윤선 동역자가 캠퍼스에서 한 사람을 향해 가리키며 ‘목자님, 저 사람 만나러 가요!, 저 사람 소원 있어요’라고 말했을 때, 동역자를 향해 화를 냈던 기억이 납니다. ‘에너지를 낭비하지 맙시다! 정말 저 사람은 아니야!’, 제가 그렇게 아니라고 외면했던 사람이 몇 년 후 변화되었고 지금은 본이 될 만한 목자로 살고 있습니다. 동역자는 저보다 몇 배 탁월한 목자이지만, 탁월함으로 그를 살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때 그는 확실히 죽어 있었고 영적 소원이 없었습니다. 다만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던 소원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다만 동역자에게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일들은 몇몇 사람들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운데 죽은 자와 같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절대로 이 곳에 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없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 없는 자들을 믿음 있는 자로 부르시고 영적으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서 있고 앞으로도 설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거나 세상을 이길 만큼 독한 체질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체면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캠퍼스를 개척하고 세계선교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것입니다.(18) 아브라함은 “네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했습니다.(19)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음위에 견고하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20) 또한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것이 능히 이루어질 것을 확신했습니다.(21) 우리가 감히 하나님이라면,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에 감동받지 않겠습니까! 어떤 처지, 어떤 문제를 만나더라도 변함없이 믿음위에 서 있는 것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부모가 자녀에게 제일 감동받을 때가 언제입니까! 자녀가 100점 맞아올 때입니까! 물론 그때도 감동받지요. 그런데 아무리 공부 잘하고 세상에서 잘 나가면 뭐합니까!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로 알고 있다면, 자식농사 실패한 것입니다. 초가삼간에 살아도 자기 부모 세상에서 최고로 믿어주고 따르는 자식이 제일 빛나는 자녀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십니다. 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요. 창세기15장에서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을 칭찬하기 위해서만 기록한 것이겠습니까!(23) 동일하게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를 위해서도 기록한 것입니다.(24)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이성, 우리의 경험, 우리의 상식과 충돌하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믿는 것입니다. 2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오셨고 하나님 말씀대로 죽으셨고 하나님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대로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 날에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을 누릴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믿음 갖기를 원하십니다. 현실문제가 쌓일수록, 장래 방향으로 고민할수록 문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문제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갖고자 기도해야 겠습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시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에게 ‘믿기만’하는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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