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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2-08 (일) 12:42
분 류 로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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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로마서 제10강]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삶

2019년 로마서 제10강      
말씀 / 로마서 8:1-17
요절 / 로마서 8:14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삶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독일 경건주의의 아버지 야곱 스패너는 “만일 성서를 반지에 비유한다면, 로마서는 반지에 박힌 보석이며, 로마서 8장은 그 보석에서 가장 반짝이는 부분이다.”라고 했습니다. 8장 말씀이 우리에게도 반짝이는 빛으로 다가오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을 인식하는, 신인식이 매우 중요함을 말씀합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생명을 주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말씀을 통해 성령을 따라가는 믿음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러므로 이제’, 이는 1-7장 전체를 받습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문제 제기되고 설명되고 확증되었으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은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죄함이 없었다. 정죄함이 없을 것이다.’ 과거나 미래형이 아닙니다. 이전에 정죄하지 않았으니 지금 잘해보라는 말씀이 아니며, 지금 하는 것 봐서 앞으로 정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지금 정죄 받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이나 구원받은 후에나, 정죄의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SNS를 통해, 때로는 양심을 통해, 때로는 사탄 마귀를 통해 정죄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열정적으로 목자생활을 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이전에 목자다웠는가? 지금 목자답게 살고 있는가? 앞으로 목자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우리 영혼에 가시처럼 날카롭게 파고드는 질문입니다. 어떤 시기에 파고드는 정죄의 소리는 끔찍한 고통과 함께 살 소망까지 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정죄하고 나 스스로 자신을 정죄할지라도 결코 정죄하지 않는 한 분이 있습니다.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너는 나에게 가장 소중하다! 나는 너를 여전히 아끼고 사랑한다!”
왜 그렇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죄와 사망의 법의 지배를 받았지만, 이제는 성령이 주관하는 생명의 법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법이 달라지면 적용도 다릅니다. 예를 들어 7080 시절에는 아기를 많이 낳으면 정죄 받았습니다. 둘 낳으면 짐승, 셋 이상이면 아메바라고 놀림 받았습니다. 아파트 분양이나 직장의 승진에서도 자녀가 적은 사람이 유리했습니다. ‘인구 과열로 나라가 위기에 빠질 것이다’라는 법의 적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아기를 많이 낳는 사람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최고의 애국자입니다. 분만 비용도 지원받고 장학금이나 입시지원에서 여러 가지 혜택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법이 들어서면 동일한 사건이라도  완전히 다르게 적용됩니다.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생명으로 이끌어가는 성령의 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이전에는 죄를 지으면 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덧입는 통로로 바꾸어 주십니다.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도록 바꾸어 주십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것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의 통로가 되고, 승리와 성공은 하나님의 강하심을 드러내는 감사의 통로가 됩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이끌기 위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연약하여 육신을 입은 자들을 성결의 세계로 끌고 가기에는 무능했습니다. 은혜도 약하고 진리도 약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율법과 차원이 다른 그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의 세계로 내려오심으로써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체험하십니다. 그 몸으로 육신을 입은 자들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담당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육신을 따르지 아니하고 영을 따라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십니다.(4) ‘율법의 요구’란 율법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궁극적인 목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14절에서 고백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나 홀로 외로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좋은 날에도 함께 하시며 어려운 날에도 함께 하십니다. 변화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예수님 알기 전에는 죄를 짓는 것이 즐거웠는데, 예수님 알고 난 후에 죄를 지으면 불편하고 힘들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고통하고 나와 함께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영혼의 위로와 감동을 받도록 도와주고, 자기를 비운 사람에게는 거룩한 소원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나를 연결시켜 주십니다. 회개의 믿음을 주시고 감사의 자리로 이끌어 가십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영적 감각을 갖도록 도와주십니다. 은사를 부어주기도 하십니다. 찬양 팀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찬양의 은사를 부어주시고 성가대에게는 특송의 은사를 부어주십니다. 율법이 연약하여 육신을 가진 자들에게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성령께서는 하나하나 이루어 가사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빚어가십니다. 천로역정을 보면 사탄 마귀가 신자의 영적 생명을 상징하는 난로의 불을 끄고자 찬물을 마구 끼얹는데도 불이 꺼지지 않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탄이 박해나 유혹같은 치명적인 무기로 신자들을 공격하는데도 실족하지 않는 모습을 말합니다. 크리스챤이 신기하여 난로 뒤로 돌아가 보니 예수님이 난로 뒤로 끊임없이 성령의 기름을 붓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성령이 육신을 가진 우리와 함께 하사 세상을 이기고 강건한 주의 백성으로 살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인식하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가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5,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무엇을 따르느냐에 따라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결과도 완전히 다름을 말씀합니다. 육신을 따른다는 것은 몸이 원하는 대로, 현실 문제를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육신이 무엇을 원합니까! 성경은 이것을 세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1서2:1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정욕을 즐기며 욕심을 채우고 자기를 높이고자 움직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사망의 열매로 끝을 맺습니다.
반면 영을 따르는 자들은 영의 생각을 합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분이시며 은밀하시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성령은 폭군처럼 군림하지 않고 부드럽고 예민하시며 선한 것을 좋아하시며 성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애를 쓰십니다. 영의 생각은 그와 같이 겸손하며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선한 것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앞세우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일까?’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르느냐 영을 따르느냐는 조금 더 고상하게 사느냐, 덜 고상하게 사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망이냐 생명이냐, 영벌이냐, 영생이냐, 생과 사를 가르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출발이 중요합니다. 백두산 천지의 물방울이 동쪽 라인을 타고 움직이면 두만강을 타고 동해로 가고, 서쪽 라인을 타고 흘러가면 압록강을 타고 서해에 이르게 됩니다. 이처럼 무엇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그 결과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신앙생활 초기에는 별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1년, 10년, 20년이 지나면,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망과 생명이 다른 것처럼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7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더러 할 수도 없음이라” 사람들 대부분 겉으로 보여지는 행위나 결과에 주목할 뿐,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대해 크게 문제의식을 갖지 않습니다. 속으로는 오만가지 불평과 원망과 더러운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욕심대로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인격을 형성하고 삶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영의 생각보다 육신의 생각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육신의 생각으로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심각하게 여기고 처음부터 물리치지 않으면 어느 순간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말렸습니다. “주여,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가시려고 합니까! 절대로 안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감동받지 않고 오히려 심하게 책망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맞서고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8)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8:34) 하나님의 영을 따라가려면 부지런히 육신의 소욕을 부인해야 합니다.(9) 누군가 ‘성령의 뜻이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면 자기의 본성과 어긋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표시는 십자가 목걸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 분의 음성에 순종하는 믿음에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우리 몸은 죄 때문에 점점 늙고 때가 이르면 죽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영은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게 됩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줍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셨듯이, 우리에게 역사하사 몸의 부활을 이루어주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11) 우리도 예수님처럼 강하고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닙니다.(12) 우리가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마치 공짜로 얻은 것 같기에 그 가치의 소중함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마치 고생고생 알바하여 번 돈은 함부로 쓰지 않지만, 공돈처럼 생긴 돈은 아주 쉽게 팍팍 사용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빚진 자로되 구원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면 안됩니다.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면 반드시 죽습니다.(13) 구원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부르심과 소망을 잃어버리고 세상 풍조에 떠내려갑니다. 우리는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데이빗 브라운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당신이 죄를 죽이지 않는다면 죄가 당신을 죽일 것이다.” 사람마다 죽여야 할 몸의 행실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교만의 행실을 죽여야 하고 어떤 이는 비교의식과 시기심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사람들의 인정이나 세상 잔재미를 죽여 할 사람도 있습니다. 다가오는 2020년 전국 학생연합수양회는 메인 주제로써 ‘내 안에 있는 죄 죽이기’를 잡았다고 합니다. 특별히 나태, 분노, 정욕의 행실에 대해 다룬다고 합니다. 성령을 따라가는 생활은 신유나 방언이나 예언같은 특별한 은사를 추구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가치 없다고 부정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만 성령의 핵심 사역은 죄의 소원을 따라가고 싶은 몸의 행실을 죽이고 영적 생명을 잃지 않게 하려는 거기에 있습니다.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영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 그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종의 관계였습니다.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은 주인의 매가 무섭기 때문이요 먹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편의점 주인의 아들은 얼마든지 음식을 꺼내어 먹을 수 있지만, 알바생은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먹어야 합니다. 그와 같이 이전 우리에게 하나님은 지옥에 보내지 않고 심판이나 내리지 않으면 다행인 분이었습니다.(15)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자리로 이동한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아무리 혼날지라도 근본적으로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들에 대해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때,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친 적이 있었는데, 제 마음에서 어찌 자녀를 쫓아낼 수 있겠습니까! 아마 아들도 자기가 쫓겨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고, 저 분 왜 또 저러시나! 저러다 조금 지나면 화가 풀리겠지!’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신분은 그렇게 바뀌었는데, 실제 관계성은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마치 갓 입양하여 양자로 들어간 아이는 아빠, 엄마로 부르기까지,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살기까지 많은 도움과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성령은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증언하신다는 것은 알도록 깨우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증언하십니다. 목자를 통해서 증언하십니다. 축복과 기도의 체험으로 증언하십니다. 심지어 고난을 통해서도 증언하십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있는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해결하기 힘든 인생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장래 염려와 고민으로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을 맞이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어떤 위로나 카운슬링도 도움 되지 않는 깊은 절망을 만나기도 합니다. 우리 영의 깊은 탄식과 아픔을 누가 알고 누가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인간적으로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때, 이상하게도 하나님을 향해 가난하고 순수하고 뜨거운 영혼으로 새로워지는 손길을 체험합니다. 극한 고난 속에서 죽어있던 영을 깨어나고 강건케 되는 역사를 체험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증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입을 열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하고 하늘의 위로와 평안을 덧입게 하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23:4) 고백을 나의 고백삼아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1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부자아빠를 둔 자녀에게 가장 큰 특권은 상속 받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세종시와 그 주변의 땅값이 오르자, 충청도 지역에 효도열풍이 몰아쳤다는 보도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김장철에는 김장일, 농번기에는 농사일, 생일날, 명절날 빼먹지 않고 배우자와 자녀들을 다 동원하여 경쟁적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가 인터뷰를 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습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고생하는 부모님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어 감사하지요.’ 제가 보기에는, 현재의 고난보다 장래 상속 받을 소망이 훨씬 큰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아들들의 지혜가 그러한데,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상속보다 오늘의 축복에 더 민감할 때가 많습니다. “기말고사에서 눈감고 찍은 시험문제 다 맞게 하셨어요! 그냥 족보만 공부했는데, 거기서 다 나왔어요, 하나님 아빠 최고!!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사랑이 확실하게 마음깊이 다가옵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한발 앞서가게 하는 오늘의 축복을 원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일들은 회전하는 그림자 같아서 어제의 축복이 오늘의 아픔이 되기도 합니다. 반면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숙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어제까지는 앞서가는 길로 보였던 것들이 오늘에는 한참 뒤처지는 길이 되기도 하고, 오늘 낙오하는 길처럼 보였던 것들이 내일이 되면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보지 못하기에 당장의 결과에 예민해지고 눈물 흘립니다.
성령은 이 땅의 결과에 매여 있는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를 위해서  성령은 때로 우리를 탄탄대로 꽃길로만 인도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십자가 고난의 길로 가게 하십니다. 그를 통해 세상에 붙들린 우리 영혼을 깨뜨려서 그 나라를 소망하는 자리로 이끌어 가십니다.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희생하게 하심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릴 소망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 앞서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가이사의 궁전이 아닌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호산나!’ 환호하는 무리들의 요구에 맞추어 헤롯 궁전으로 진군하지 아니하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못박히는 길을 가셨습니다. 극한 고통과 모든 이들의 조롱과 멸시가운데에서 끝까지 내려오지 않고 죽음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18) 고난은 영광에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No cross, No crown, No pain, No gain” 희생과 고난을 통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고난이 있다는 것은 영광을 준비하시는 성령의 손길이 있다는 사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든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며 몸의 행실을 죽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 굳게 서서 아빠 아버지의 사랑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은 그들과 함께 하며 생명을 주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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