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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2-22 (일) 12:46
분 류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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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성탄 제2강] 왕이요 목자이신 예수님

2019년 성탄 제 2강
말씀 / 마태복음 2:1-12절
요절 / 마태복음 2:6절

왕이요 목자이신 예수님

“또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Merry Christmas! 저희에게 구주 예수님을 보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성탄의 은혜와 기쁨이 우리 각 사람에게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동방박사들이 맞이한 첫 번째 성탄절입니다. 박사들은 많은 고난을 겪었음에도 매우 크게 기뻐하며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 우리도 왕이요 목자이신 예수님을 경배하고 기뻐하는 복된 예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나셨습니다. 헤롯왕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너무 안 어울리는 조합처럼 보입니다. 에돔 사람 헤롯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낙하산을 타고 유대인의 왕이 되었습니다. 권모술수가 뛰어나서 밖으로는 로마의 지지를 끌어오고 안으로는 성전을 확장하여 유대인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권력의 경쟁자가 될 것 같으면 누구라도 가차없이 숙청했습니다. 아내도 죽이고 처남, 장모, 아들까지도 죽이는 살모사같은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돈과 권력으로 제사장들과 유대 기득권층을 구워삶아 40여 년 동안 장기집권을 이루어낼 만큼 노련한 정치9단이었습니다.  
헤롯같은 사람이 세상을 주도하면, 세상은 혼란스러워집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은 어디에 있는가? 회의와 불신의 의문부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들을 파고듭니다. ‘헤롯왕이 다스리는 이런 시대라면 그리스도가 온다고 할지라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절망이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갑니다. 한편에서는 헤롯을 욕하면서도 다른 편에서는 헤롯처럼 되고 싶어하는  ‘리틀 헤롯’들이 생겨납니다. 예루살렘은 점점 무늬만 신자들이 늘어만 갑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가? 성탄의 메시지는 유대인이 아닌 멀리 동방에서 온 박사들에 의해서 선포됩니다. 2절을 박사 스피릿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유대인의 왕’이란 ‘유대인가운데 태어나신 세상의 구원자, 만민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동방은 ‘동아리방’이 아니라 페르시아를 의미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이면 동방의 왕을 찾아야지, 왜 머나먼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을 찾는 것입니까! 만약 그들이 동방의 왕으로부터 참된 희망을 보았다면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면서까지 유대인의 왕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사들은 세상 왕의 한계를 알았습니다. 세상 왕은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왕립대학에 입학시켜 줄 수 있고, 군 면제를 시켜줄 수 있고 공무원으로 채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말에 껌벅 죽는 이유입니다. 정치현장을 겪어본 박사들은 권력의 힘을 누구보다 피부로 느꼈을 것입니다. 왕의 말을 따라 인생역전이 되기도 하고 한순간에 끝없이 추락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부와 권력은 사람의 겉모습을 바꿀 수 있어도 영혼의 안식과 평화를 주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줄 수 없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최고의 왕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반복하여 외쳤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만이 평강과 안식을 주고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어떻게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게 되었을까요! 당시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아마 박사들은 동방 전역에 널리 퍼져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통해 민수기 24장17절을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 일어나서 ...” 하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진리가 소중한 줄을 알지만, 진리를 향해 자기 인생을 쏟아 붓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박사들은 별을 찾고 하늘의 징조를 살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한 해를 보내고 10년을 보내고 젊음을 보내었습니다. 오랜 세월 기다림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별 찾기를 포기하고 별 볼일 없는 인생으로 돌아가 버린 동료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럴지라도 본문의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을 만나고 싶은 열정으로 견디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말씀으로만 들었던 그 별이 밤하늘에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메시야가 탄생했음을 알리는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박사들은 너무 기뻐 서로를 부둥켜안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박사! 최박사! 저기를 보시게, 그 분의 별이 나타났어!, 그래 정말이구만! 홍박사, 내 죽기 전에 그 분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 헛되지 않았구먼! 자! 어서 출발하세!’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하지 않으시고 간절히 찾는 자를 주목하시고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의 주인공을 만나 경배하기 위해 즉시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내비게이션도 없이 오직 별의 인도함을 믿고 길을 나서야 했습니다. 남들이 다 자고 있을 때에 움직이고 남들이 움직일 때에 잠을 자는, 세상 문화를 거스르는 생활은 외롭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영하로 떨어진 겨울밤의 행군은 늙은 박사들에게는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주기도 했습니다. 산을 넘고 물을 지나 강도와 짐승과 질병의 위험을 겪었습니다. 그럴지라도 별을 따라가는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고난을 넘어섰기에, 동방박사들의 외침은 누구보다 우렁차고 힘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박사들의 힘있는 메시지는 헤롯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는커녕 소동케 했습니다. ‘소동’이란 당황하며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했는데, 왜 소동하는 것입니까! 헤롯왕은 원래 그런 인간이었으니까 소동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이 소동하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헤롯에게 그리 실망했으니 오히려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에 대해 두 손 들고 환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모습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만약 오늘 천사가 우리에게 내려와서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내일 재림하실 것이라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기쁨으로 맞이할까요, 소동할까요! 평소 예수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아무리 놀라운 하늘의 메시지를 들을지라도 기쁨을 얻기보다 소동하게 됩니다.

4절을 보십시오. 헤롯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놓고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는가를 묻습니다. 그러자 저들이 즉시 대답했습니다. “유대베들레헴입니다.”(5)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습니다. 소원이 없으면, 바로 옆에서 엄청난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모든 것을 투자하여 참여하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텅텅 남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대 선지자 미가의 예언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 동방박사들을 위한 성탄메시지가 되었습니다.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베들레헴은 유대에서 가장 작은 고을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다스리는 사람이 나옴으로써 더 이상 작은 고을로 취급받지 않게 됩니다. 지도자가 유명할수록 그를 배출한 고을도 유명해집니다. 유대의 가장 작은 고을이었던 베들레헴을 아시아의 동쪽 여기 있는 우리에게까지 알려지게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분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 분은 전쟁영웅이나 탁월한 사상가나 전무후무한 정치가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말씀합니다. 다스리면서 목자이신 분, 왕 목자가 나신 것입니다!
누구의 다스림을 받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베트남 축구는 박항서 감독의 다스림을 받음으로써 60년만에 동남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했습니다. 개를 정말 잘 알고 사랑하여 ‘개통령’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인이 개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서 나쁜 개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개는 두려움으로 짖는 것인데, 주인은 사나와서 그런 것인 줄 알고 더욱 격리시킴으로써 더 짖게 만듭니다. 개는 관심 받으려고 물어뜯는 것인데, 주인은 물어뜯는 개에게 더 관심을 보여줌으로써 계속하여 무는 개로 남게 합니다. 그런데 나쁜 개처럼 보였던 개가 개통령의 다스림을 받자 좋은 개처럼 변화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처음부터 나쁜 인생을 살려고 태어난 인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만 인생의 주인을 잘못 만나서 병들고 어그러지고 상처받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헤롯대왕처럼 죄성으로 충만한 사람의 다스림을 받다보면 같이 사나와지고 같이 욕심에 이끌려 살게 됩니다. 사람의 인정이나 정욕에 지배당하면 원치 않게 이중생활을 하게 되고 육체의 욕망을 따라가게 됩니다. 염려나 허무의 죄에 점령당하면 무기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원망과 쓴뿌리를 내뱉게 됩니다.
예수님은 나쁜 인생을 다스려 좋은 인생으로 만들고자 이 땅에 오신 목자이십니다. 요한복음 10:14,15절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선한 목자 예수님은 양을 아시고 저마다 합당하게 다스리십니다. 사람들은 사마리아 여인을 그저 끼 많은 여인, 부정한 여인으로만 알고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심을 바쳐 경배할 대상을 찾고 있는 갈급한 영혼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랜 시간 그녀와 씨름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경배의 대상이심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문제 여인이었던 그녀가 온 동네로 달려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거룩한 여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거라사 지방의 사람들은 거라사광인을 쇠사슬로 꽁꽁 묶어 더 이상 말썽을 피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최선으로 알았습니다. 그럴수록 거라사광인은 더더욱 반항적이 되고 통제불능의 상태로 치달았습니다. 예수님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심으로 어둠의 세력을 폭로하시고 싸워주심으로 그를 온전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렸던 청년을 거라사 지방의 선교사로 세워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세리 레위를 양심도 없고 영혼도 없고 오로지 돈만 아는 돈벌레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독과 불안에 떨며 어쩔 수 없이 세관에 앉아있는 가난한 영혼임을 아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초청하심으로 예수님안에서 성마태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목자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어떤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사람의 영혼 깊숙한 생각과 뜻을 드러내십니다. 그를 통해 어둠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시고 길 잃은 자들에게 길을 보여주십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의 반대는 삯군입니다. 삯군은 평소에는 양들을 위하는 척 하지만 이리의 공격으로 손해를 보거나 위험에 빠질 것 같으면 양들을 버리고 도망칩니다. 그와 같이 세상 지도자들은 겉으로는 백성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백성들을 위해 손해보거나 고난받아야 할 때 도망치고 뒤로 물러섭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의지하는 것들도 그러합니다. 당장에는 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내 영혼의 보호막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자기목숨까지 희생하시는 목자이십니다. 처음 이 땅에 오실 때부터 그리하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말구유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병든 자들을 섬기시고 제자들을 섬기시고 하나님의 뜻을 섬겼습니다. 마지막에는 인생들의 허물과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죄인들을 영원한 심판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목자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분의 다스림을 받기만 하면 구원과 영생을 얻고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그를 향하여 기도하고 그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 것처럼, 목자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기만 하면 누구나 시절을 따라 풍성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누구의 간섭을 받는 것도 거부하고 자기 보기에 좋은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문화가 대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자리에 있든지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변화가 없고 성장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생각과 감정과 마음 속 깊은 죄성이 다스림을 받아야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상처와 어둠이 역사하는 현장을 보면 자기 감정과 유익을 좇아 자기 좋은 대로 달려가는 사람들만 있습니다. 가정이 그러하면 부모도 불행하고 자녀도 불행하게 됩니다. 아무리 똑똑한 지성인이라도 목자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교만과 욕심과 정욕에 휘둘려서 죄 아래 살게 됩니다. 장막에 다스리는 목자가 없으면 불평과 인간적인 갈등의 근원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목자가 되기를 열망합니다. 그 해답은 내가 먼저 예수님의 양이 되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시편 23편에서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3) 다윗은 자신을 양으로, 하나님을 목자로 증거합니다. 양은 목자를 졸졸졸 따라가며 목자가 시키는대로 순종합니다. 다윗은 무서운 생존의 위기를 만날 때, 끔찍한 죄를 짓고 파멸을 눈 앞에 두었을 때, 왕이요 목자이신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을 다스려주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지사 의의 길, 평강의 길, 풍성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성탄절이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이유도 그러합니다. 우리의 왕이요 우리의 목자가 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이기고 내 안의 죄성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주시고 악한 세상에서 보호하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다스려주시는 목자님이 오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슬픔과 죄악이 휩쓰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왕이요 목자로 오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7절을 보십시오. 헤롯은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습니다. 그리고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를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주어 경배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8) 목자 예수님의 탄생이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자기 영광과 현실의 유익을 고집하는 자들은 더더욱 완악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순수한 박사들은 헤롯의 말을 영접하고 그대로 갑니다.(9) 그때였습니다.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더니 아기 있는 곳에 머물러 섰습니다.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것은 얼마나 크게 기뻐하는 것일까요! 집값이 올라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험에 합격하여 많이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을까요! 별은 우리를 예수님에게 인도하는 통로입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말씀이나 기도 혹은 목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언제 매우 큰 기쁨으로 와 닿습니까! 건강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을 때 기쁜 것처럼, 때로는 뼈져린 실패의 과정을 지나면서 기쁨으로 와닿기도 합니다. 밤마다 별이 떠올라 인도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별을 잃어 헤매이다보니 별의 인도함 받는 것이 놀라운 은혜였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가장 큰 기쁨의 비결은 순수하게 경배하는 믿음을 가질 때입니다. 박사들이 고생고생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곳 분위기는 기대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헤롯왕과 종교지도자들은 기뻐하기는커녕 무겁고 심각한 얼굴로 소동했습니다. 백성들은 피곤과 생활의 염려에 사로잡혀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박사들은 외쳤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메시야를 경배하러 갑시다! 누구 함께 하실 분!!” ‘우리는 하도 많이 들은 이야기라서요 이젠 지겹고요 그저 그래요’ 박사들이 세상의 인정이나 다른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면, 온 몸에 힘이 빠지고 회의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동방에서 보던 별이 베들레헴 귀족의 집이 아닌 어느 초라한 마굿간 위에 머물렀을 때, 제일 크게 실망하고 실망했을 것입니다. 순수하게 경배하려는 처음 목적을 놓치지 않아야만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황금은 왕에 대한 충성을 상징하는 예물입니다. 유향은 대제사장의 기도, 몰약은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실 구주를 상징합니다. 박사들은 인생문제 해결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이요 중보자요 구원자를 만나 경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박사들은 경배하고 떠나갔지만, 그들의 믿음은 살아있어 오늘 우리에게까지 영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힘든 시대일수록 현실 문제 해결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위를 바라보고 순수하게 경배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보이는 현실은 끊임없이 우리를 압박하여 기쁨도 빼앗고 믿음도 빼앗고 의무감이나 형식주의에 빠뜨리려고 공격합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경배하는 한가지 목적을 놓치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지 기쁨을 얻고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세상을 헤쳐 나갈 용기와 지혜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저것 복잡하게 계산하기보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한가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이 21세기 박사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경성 박사로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도 박사, 내 옆의 동역자도 박사, 우리의 양들과 자녀가 모두 박사로 살도록 격려하고 기도하고 섬기는 한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구주 성탄의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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