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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4-11 (일) 16:08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부활절_수양회_1강_최바울.hwp (52KB) (Down:272)
ㆍ추천: 0  ㆍ조회: 2671      
IP: 61.xxx.74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최바울)

2010년 부활절 수양회 주제1강                                         최바울

다 이루었다

말씀: 요한복음 19:1-42
요절: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Happy Easter!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 우리의 주요 그리스도가 되심을 찬송합니다. 얼마 전 해군 천안함 침몰 사고의 수습작전 중 한주호 준위가 구조업무를 하다가 순직했습니다. 그분은 배 안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서 하루 잠수 이틀 휴식의 잠수 수칙을 어긴 채 삼일 연속 잠수를 강행하다가 숨지고 말았습니다. 한 준위의 죽음이 빛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바다에 던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 권세의 심연에 빠져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던지셨습니다. 이로 인해 고난과 슬픔과 수치의 상징이었던 십자가가 영광과 승리와 기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도 고난과 슬픔과 수치의 십자가 대신 승리와 영광과 기쁨의 십자가가 세워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배반자 유다의 제보로 대제사장들이 보낸 군인들과 그 부하들에게 체포되신 예수님은 안나스와 가야바가 주도하는 공회에서 불법적인 철야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심문 후 그들은 예수님께 신성 모독죄를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로서 사형집행권이 없었습니다. 이때 종교지도자들은 로마 총독 빌라도의 손을 빌어서 예수님을 없애고자 로마법으로 고소를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죄 없으신 예수님과 이 예수님을 어떻게든 없애고자 하는 간악한 종교지도자들 사이에 서게 되었습니다. 진리와 이 진리를 대적하는 세력 사이에서 빌라도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됩니까? 빌라도는 심문을 통해 예수님에게 아무런 죄가 없음을 확인한 후 예수님을 석방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리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자 빌라도는 무리들의 동정심을 이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한 모습으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계산 가운데 빌라도는 십자가형이 언도되기도 전에 불법적으로 예수님을 데려다가 군인들로 하여금 채찍질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다시 1절을 보십시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당시 로마법에 따라 가해지는 채찍질은 가죽채찍 끝에 짐승의 뼛조각이나 쇳조각을 매달아서 사용하였습니다. 채찍을 한 번 후려치면 채찍에 맞는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채찍 끝에 달리 뼛조각이나 쇳조각이 살에 파고들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 더 컸습니다. 몸과 얼굴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휘둘러진 채찍이 지나간 자리마다 살점이 뜯기면서 혈관이 터지고 피가 솟구쳤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채찍을 120대나 맞으셨습니다. 잔인한 로마 군병들의 인정사정없는 채찍질로 인해 예수님은 빌라도의 의도대로 차마 눈뜨고 볼 수없는 처참한 모습이 되셨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예수님께서 이렇게 채찍에 맞아 고통 가운데 있게 된 것은 우리의 죄악을 대신 감당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두려움과 염려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평화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음의 상처와 육신의 질병 가운데 있는 우리를 치료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죽음에 이르는 채찍질로 고통을 받으심으로 우리 모두가 살점이 뜯기고 영혼이 뜯기는, 죄가 주는 고통 가운데서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채찍질한 로마 군인들은 이제 예수님을 희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고소된 것을 꼬투리로 예수님의 왕권을 조롱하고 농락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이렇게 채찍질과 희롱으로 초주검이 되신 예수님을 다시 유대인들 앞으로 나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그 처참한 모습을 보게 하였습니다. 4b,5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빌라도의 선언이 무엇입니까?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이 당시 최고로 발달되었던 로마법과 그 집행관에 의해서 선포된 것입니다. 이후 빌라도는 무리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우리도 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 아무런 죄도 없이 인생들의 어둠과 혼돈, 연약함과 상처, 무지와 위선, 미움과 교만을 대신하여 고초를 당하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런 예수님이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은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이들은 못 박으라 소리 질러 선동했습니다. 빌라도가 볼 때 예수님은 너무나 의연하시고 진정 유대인의 왕으로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놓아주려하자 이들은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고발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므로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재판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존재가 너무나 신비했습니다. 그가 쓴 「빌라도의 보고서」에 보면 예수님 앞에 섰을 때에 두 무릎이 떨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마저 꿈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마 27:19). 빌라도는 이 일 담당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재판을 해 보았지만 이런 재판은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로부터냐?” 그러나 예수님은 대답해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빌라도의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입을 열기 위해 위협하면서 권위를 부렸습니다.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10).”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당히 대답하셨습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11).” 지상의 모든 권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세우시고 그에게 일정한 권한을 주셔서 일하게 하십니다.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도 자기 스스로 예수님의 목숨을 빼앗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권한을 주시기 때문에 가능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실지라도 그것은 빌라도의 권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행2:23). 우리는 각자 하나님이 정해주신 대로 사명인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생 하나님께서 하라고 맡기신 일을 하면 다른 사람이 우리를 해하지 못하고 질병과 불의의 사고가 우리를 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권세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고 일생동안 두려움 없이 의와 성결로 하나님이 주신 신자의 길, 목자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놓으려고 힘썼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빌라도의 마음을 아는 듯 소리 질렀습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12).”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약점을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빌라도는 정치가로서 유대에서 민란이 일어난다거나 가이사의 충신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의 장래가 없었습니다. 그가 유대인들의 협박을 받을지라도 의로운 길을 간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옷을 벗을 각오로 올바른 길을 가야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는 유대인들의 협박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인재라도 진리가 없을 때에는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 결정적인 순간에 진리 편에 서지 못합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반역에 동조하는 것이요 그러면 당신이 십자가에 처형될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협박에 그는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끌고 재판장에 들어와 재판 석에 앉아 다시 한 번 유대인들에게 말합니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 그러나 이미 폭도가 되어버린 이들은 사정없이 외쳤습니다.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는 말합니다.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빌라도는 예수님이 진리의 왕이심을 느꼈기에 어찌하든지 놓으려 했으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쇄기를 박아 버립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그들이 내뱉은 이 말은 아주 무시무시한 것으로서 하나님과 시내 산에서 한 언약을 파괴하는 말입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유일한 왕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가이사가 왕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 아니라 가이사가 왕이라 하며 하나님의 백성임을 스스로 부정하였습니다. 이로써 이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를 믿는 자를 새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억지 주장에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에 언도하고 내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의 죄 패에 기록된 죄목이 무엇입니까?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이는 죄목이 아니라 신분일 따름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시기에 죄패에 신분만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는 세계어를 대변했는데 이는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란 뜻입니다. 히브리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로마인이든지, 종교성이 풍부한 사람이든지, 철학과 사상에 심취한 사람이든지, 육신적이 사람이든지, 아무든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만왕의 왕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고로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높이 들려서 만왕의 왕이 되시고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시고자 들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는 영광으로 가는 십자가, 영광스러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영광의 십자가를 유대인의 왕으로서 당당히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들려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시고자 달리셨습니다. 당시 십자가는 생각조차 하기에도 끔찍한 것이요, 고통과 저주와 실패를 상징하는 것이요, 가장 악랄한 죄인을 처형하는 사형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평화와 행복과 승리를 주는 영광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사함과 영생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도 요한은 십자가를 영광을 위해 들리시는 것으로 보고 당당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십자가를 너무 고난, 고통 측면에서 바라보고 슬퍼하며 울면 안 되겠습니다. 십자가는 울 것이 아니라 들려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길로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제사로 드려지고 있음을 감격 가운데 말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월절 어린 양을 준비일 정오부터 잡았습니다. 미리 준비하여 두었다가 성전에서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12시에 죽여 잡는데, 지금 성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제 육시 정오에 예수님이 십자가 형을 언도 받으시고 장차 유월절 어린 양으로 준비되고 계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발견하고 감격합니다. 구약 율법의 어린 양 속죄제사가 이제 영원하신 속죄제물인 예수님의 어린 양으로 대체되어 제사 드려지고 있습니다. 구원역사의 모형이었던 구약의 유월절 어린 양이 이제 실체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피를 흘리고 영원한 희생제물로 준비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요한은 얼마나 기쁘고 감격했는지 십자가 사건을 영광의 사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감격적인 사건으로 힘있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했던 모형을 완성하여 그 피를 믿는 자마다 단번에 영원히 죄가 사해집니다. 이 피를 바르기만 하면 그토록 인간이 풀 수 없었던 죄 문제가 해결되고 죽음 문제가 해결 됩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리시고 그 피를 하나님이 보심으로 인간의 죄와 사망문제를 그냥 없던 것으로 넘어 가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모든 백성의 근본 문제를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사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사망 문제를 십자가에 높이 달리사 피를 흘리심으로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십자가 위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에 관한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고 계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흠 없이 드려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엄청난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어머니 마리아를 챙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를 자기 혈육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십자가 곁에 남아 있던 요한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후에 예수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의 남은 것을 살피셨습니다. 그것은 시69:21절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예수님은 이 말씀을 성취하시고자 “내가 목마르다” 외치셨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신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여 예수님의 입에 대었습니다. 예수님은 시편 말씀대로 신포도주를 받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은 지상에서 아니 십자가에 들려서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사명이 완수됨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하라고 주신 모든 사명을 다 완수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모든 사명을 다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일을 다 성취하셨고 구약의 모든 말씀을 다 성취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러자 그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제사로 모든 피를 흘리시며 온전히 드려졌습니다. 그런데 유월절 어린 양은 다리하나 꺾이지 않고 온전히 드려졌는데 오후6시가 되면 유월절이요 안식일이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말해 시체를 치워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그들의 다리를 꺾어 죽여서 내렸습니다. 예수님의 차례가 되었는데 이미 죽었기 때문에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옆구리를 찔러 죽음을 확인했습니다. 옆구리를 찌르니 물과 피가 나왔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몸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다리도 꺾이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한 희생제사가 되었습니다. 이로서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한 출애굽기 12:10절 말씀이 성취되었고,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한 스가럇 12:10절 말씀도 성취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무엇을 배웁니까?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하면 패배, 수치, 고난, 멸시, 천대를 생각합니다. 십자가는 죽는 것이므로 패배로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십자가 처형을 끔찍이도 싫어했고 저주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습니다. 슬픔과 실패로 내려가는 고통과 슬픔의 십자가는 강도가 지는 십자가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들려서 만인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올라가는 영광의 십자가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광의 십자가, 당당하게 유대인의 왕으로서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을 기록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생명을 살리는 캠퍼스 복음역사를 섬기는 우리에게 큰 힘을 줍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고난이나 수치가 아니라 영광을 얻는 일임을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십자가를 통해 영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영광의 십자가로 보일 때우리도 예수님처럼 당당하고 의연하게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캠퍼스 목자로서 져야 할 사명의 십자가를 예수님처럼 당당하게 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길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다 이루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시면서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은 여한이 없다, 후회가 없다는 말씀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모두 완벽하게 다 완수했기 때문에 감사하고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다 못 이루었다, 잘못 살았다.” 등 후회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 완성하였다, 성취하였다.”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다 이루기 위해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캠퍼스 목자로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인격의 열매를 맺으며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것입니다. 우리도 죽을 때 이렇게 “다 이루었다”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승리의 외침을 부르며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길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핵심 내용이 무엇입니까? 구원역사의 완성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100% 모든 일을 다 완성하셨습니다. 그의 피로 우리 죄를 완벽하게 용서하셨고, 우리 죄인을 완벽하게 의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완벽한 화목제물, 회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조금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에 이르기 위해 채워야 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유월절 어린 양의 공로로 100%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 은혜를 풍성히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더 이상 정죄의식이나 사단의 고소에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더 뭔가를 해야 한다는 율법의식이나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의 구원은 완벽하게 완성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풍성하신 다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살길 기도합니다.

 슬프고 고달픈 십자가, 부담스러운 십자가가 아니라 승리와 영광의 십자가를 바라보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1993년 밀알동산 여름 수양회에서 죄인의 정욕 무절제 무기력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높이 다셨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정결케 하신 후 목자의 삶을 살면서도 때로는 빌라도처럼 무엇이 진리를 알면서도 진리편에 서지 못하고, 군병들처럼 양들에게 동역자들에게 무자비하게 굴기도 하고, 유대인들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생활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선교사로 갔다가 두려움 때문에 도망 왔을 때에도, 금융위기를 핑계로 복음역사를 팽개치고 치과 일에 몰두할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한번 다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변개치 않으시고 죄인이 회개하고 다시 믿음으로 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구원으로 인해 죄인의 영혼이 때마다 죄사함 받고 다시 목자의 삶을 살아가게 됨을 감사 찬양드립니다. 그런데 요새 여기저기서 들리는 죽음의 소식으로인해 저의 마음에도 죽음권세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죽음권세는 사명인에게 허무와 두려움을 심습니다. 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말씀을 붙들지 않고 보험을 들었습니다. 여기저기 보험을 들어놓자 조금 안심이 되는 듯 했지만 보험 몇 개가지고 죽음권세를 극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시는 예수님의 의연함과 당당함을 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죽음은 인간으로서 극복할 수 없는 한계이지만 예수님처럼 말씀을 경외하고 말씀을 이루어드리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슬프고 한 많은 인생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 뿐 아니라 아름다운 죽음 또한 맞이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죄인이 죽음권세가 득세하는 이 때에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예하고자 하는 소원가운데 십자가를 지되 십자가로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믿고 죄인도 십자가를 짐으로 죽음권세를 이기고 사명인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구원과 죄사함을 주시는 유월절 어린 양이십니다. 우리가 봄 학기 영광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을 체험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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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7강]한 왕의 통치와 성령 강림 관리자 2010-11-07 2651
579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 제12강] 자기 옷을 지키는 자-고영훈 휴화산 2010-01-14 2651
578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3강]죄사함과 사랑 관리자 2011-06-26 2646
577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7강]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관리자 2012-04-29 2643
576 시편 [2013년 추수감사절] 새 노래를 내 입에 두셨으니 관리자 2013-12-01 2642
57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2강]비천함을 돌보신 주님 관리자 2011-03-20 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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