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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11-07 (일) 11:23
분 류 이사야
첨부#1 2010년_이사야서_7-1.hwp (52KB) (Down: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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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사야서 제7강]한 왕의 통치와 성령 강림
2010년 이사야서 제 7강

한 왕의 통치와 성령 강림

말씀: 이사야 32:1-20
요절: 이사야 32: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이사야서 전반부를 마감해가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실 회복의 역사를 말씀해주십니다. 이는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는 한 왕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참된 지도자가 없어 주리고 목말라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공평과 정의의 한 왕을 보내주시고 성령을 부어 주셔서 광야가 아름다운 숲이 되는 소망의 역사를 약속해주십니다. 죄와 사탄의 종 되었던 데서 메시야의 통치를 받는 백성이 되고 성령을 통해 진정한 변화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메시야 예수님의 통치에 대한 진정한 희망을 소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공의로 통치하실 한 왕(1-14)
  1절은 “보라!”로 시작합니다. 이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주위를 환기시키는 감탄사입니다. 이제 타락한 지도자들과 이방나라가 행했던 불의한 통치는 척결되고 새로운 의의 왕국이 도래할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이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던 좋은 소식(good news)입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맺고자 하신 열매는 공의와 정의였습니다.(5:7)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사리사욕을 취하고 부자들은 가옥에 가옥을 연하여 짓고 토지에 토지를 넓혀 자기 배만 불렸습니다. 이들로 인하여 포학과 탄식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로 다스릴 한 왕 곧 장차 오실 메시야를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메시야는 공의로 심판하며 정직으로 판단할 것이며 공의로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을 것입니다.(11:4,5) 메시야가 다스리는 나라는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요 세상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할 것입니다.(사11:9) 최고 통치자가 공의로 다스리시면 방백들도 정의로 다스리게 됩니다. 사람의 행불행은 누구의 다스림을 받느냐에 달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불의한 사울 왕이 다스릴 때 백성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 하였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다윗 왕의 다스림을 받을 때는 평안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불행한 것은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요 거짓된 사탄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자기 힘을 믿고 살도록 하고, 죄의 본성대로 살도록 부추겨 성공할 것으로 속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죽음과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다스림을 받는 한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본래 이방인이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요,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는 외인이요 하나님도 모르던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이런 우리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으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무엇보다 우리는 이 은혜를 늘 기억하며 큰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공의와 정의의 왕을 통해 백성들이 받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이사야 시대 이스라엘은 애굽이나 앗수르 등 강대국을 의지하며 환난에서 구원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이용당하고 착취당하였습니다. 광풍과 폭우의 때 피난처가 없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광풍과 폭우는 예기치 않게 찾아옵니다. 잠언 1:27절을 보면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질병과 실패의 광풍, 사고의 폭우가 예기치 않게 찾아옵니다. 이런 환난의 날에는 세상에 그 어떤 것도 구원을 주지 못하고 피할 곳이 못됩니다. 오직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시는 한 왕만이 진정으로 광풍을 피하는 곳이요 폭우를 가리는 곳, 피난처요 안식처가 되십니다. 뿐만 아니라 사막과 같은 마른 땅에서 목을 추겨줄 시냇물이 되어 각종 목마름을 해결해주시고 곤비한 땅에 편히 쉴 수 있는 시원한 큰 바위 그늘이 되어 위로와 힘과 쉼을 주십니다. 이 메시야, 공의와 정의의 왕이 계시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니 그 안에서 행복하고 평안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요 위로자요 힘이 되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정욕을 좇아 살다 목말라 야곱의 우물물을 전전하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어주셨습니다. 간음죄로 잡힌 여인을 심판의 돌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불의한 통치 아래서는 약한 자는 늘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공의로 다스리시는 한 왕은 고아와 과부와 연약한 자, 없는 자들을 더욱 불쌍히 여기시고 보살펴주십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영접하고 주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참된 안식과 평안과 쉼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자유나 세상에 많은 소유가 행복을 줄 것으로 착각하지만 실상은 세상욕심을 좇아 사는 삶이 불행의 씨앗임을 알아야 합니다. 불의한 이 시대에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다스려주시는 공의와 정의의 왕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3-8절은 한 왕의 통치를 받을 때 백성들 가운데 일어날 변화의 역사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이사야 시대 사람들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였습니다.(6:9)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라도 하나님을 떠나 세상 죄에 사로잡혀 살 때 그들의 눈과 귀와 입을 막아 진리를 듣지 못하고 입을 열어 말을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의로운 왕, 공의로 통치하시는 왕을 영접할 때 백성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한 왕으로부터 얻는 지혜와 지식은 청년으로 하여금 행실을 깨끗하게 하고(시119:9), 자유와 참된 소망과 위로를 주고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이렇게 좋은 진리를 누가 얻을 수 있습니까? 한 왕의 통치 아래 있는 백성들이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르심 받은 제자들에게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들보다 먼저 온 많은 선지자들과 의인들이 보고자 하였으나 볼 수 없었던 것을 제자들은 직접 듣고 보고 깨닫게 되었으니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복 받은 자들임을 깨우쳐주신 것입니다.(마13:16,17) 더 나아가서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면 모든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깨닫게 하실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요14:26) 우리가 예수님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세계를 보고 듣고 깨닫게 된 것은 엄청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 전에 그들은 조급한 자의 마음을 가졌고 어눌하여 할 말도 할 수 없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식을 깨닫는 자가 되었고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한 숨만 쉬던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좋은 입이 되었습니다.(4) 5,6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한 왕의 다스림을 받을 때 백성들은 영적 분별력을 가지게 됩니다. 어리석은 자, 우둔한 자를 다시는 왜곡하여 존귀한 자라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말을 하기 때문이요,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그들을 멸망의 길로 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7) 그러나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며 항상 존귀한 일에 굳게 섭니다.(8) 이 얼마나 대조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까? 그런데도 악한 자들은 한 왕의 통치를 얽매이는 것으로 여기고 다스림 받지 않고자 합니다. 그러나 한 왕의 통치를 받을 때 지혜와 지식이 생겨 옳고 그름을 분변하여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9-12절은 안일하고 염려 없는 여인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 이스라엘의 게으른 여인들이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데 큰 장애물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안일하다(be complacent)는 것은 스스로 자족하여 더 이상 성장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염려 없다는 것은 믿음이 좋아서 염려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영적 안일에 빠져 현재 형편으로 만족하며 그럭저럭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who feel secure)는 뜻입니다. 이렇게 게으른 여인은 가정을 망하게 하고 사회를 병들입니다. 이사야 시대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사치와 게으름과 육신의 쾌락과 정욕에 빠져 있었습니다. 자매들이 이렇게 게으르고 염려 없이 병든 인생을 살아갈 때 일 년을 채 넘기지 못하여서 가난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포도 수확이 없고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큰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밭은 가시와 찔레로 가득하게 되고 궁전은 폐한바 되고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게 되어 짐승의 거처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는 역사에 돕는 배필의 역할을 감당하여 열국의 어미가 되는 것인데 그들은 소시민적 삶에 빠지도록 부추기는 악을 행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 시대 아내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3:3,4) 여인들은 내면을 가꾸는데 열심을 내라고 하십니다. 여인들은 깨어서 기도하기에 힘쓰고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이 될 때 아름답고 열매 맺는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섬김과 봉사에 힘쓰는 부지런한 믿음의 어미가 될 때 하나님의 복이 넘치게 됩니다. 여인들의 타락은 시대의 타락으로, 여인들의 헌신은 시대를 구원하는 역사로 직결됩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믿음의 여인들을 세워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캠퍼스의 자매님들이 믿음의 여인들이 되도록 역사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 가운데 더욱 많은 열국의 어미들을 세워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이 믿음의 여인들을 통해 형제들도 큰 복을 받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Ⅱ. 마침내 영을 부어주시리니(15-20)
  15절을 보십시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마침내’ 이는 기다리고 기다렸던 성령이 마침내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왕을 보내실 뿐 아니라 위에서부터 하나님이 거룩한 영을 소나기같이 부어주실 때 광야가 아름다운 옥토(fertile field)가 되고 옥토에는 울창한 숲으로 덮이게 될 것입니다. 불의한 지도자가 다스리는 유다의 현실은 광야와 같습니다. 광야에는 길도 없고 물도 없고 양식도 없습니다. 광야는 나그네의 무덤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면서 온갖 불의와 타락으로 멸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상숭배의 죄에 빠져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이런 현실이지만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에게 위로부터 거룩한 영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소낙비같이 임하셔서 강력하게 역사하실 때 근본적인 개혁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를 회복하고 인간의 죄악된 품성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힘은 성령의 역사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죄악된 이스라엘에 무서운 심판의 불로 징계하신 후 마침내 강력한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실 때 이들이 깨어나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광야가 옥토로 변하고 옥토에서 울창한 숲이 만들어지는 개혁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성령의 역사는 영적인 부흥과 변혁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공의도 가져옵니다. 미국에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산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에 의해 노예제도가 폐지되었고, 우리나라의 3.1운동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은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에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완전한 역전이요 근본적인 변화의 역사입니다. 스가랴서 4:6절은 말씀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의 능력과 지혜와 경험으로 되지 않는 일도 능히 해내십니다. 오늘날도 인간의 정책이나 제도로 사람과 시대와 역사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좋은 교육이 학생들을 정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좋은 말로 타이른다고 완악한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오로지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약속대로 마침내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셨을 때 원수들을 두려워하여 숨어 있던 제자들이 담대하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여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2:41) 성령께서 임하시면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됩니다.(행2:17) 성령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우준한 자에게 지혜를 주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벙어리의 입을 열어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광야와 같이 메마르고 황량합니다. 치열한 경쟁과 다툼만이 있는 삭막한 세상입니다. 메마른 광야에 가시나무가 가득하고 각종 독충과 독사들이 우글거립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사랑이 메마르고 젊은이들은 비전과 열정이 사라졌습니다. 경쟁에서 처진 젊은이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복음의 일군으로 부르심 받은 우리도 시대를 탓하며 자신도 고생만 하고 힘들다며 주저앉아 있습니다. 복음역사를 위해 부르심 받았지만 캠퍼스 양들을 돕기 힘든 자신을 바라보고 점점 무관심하고 무감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믿을 때 현재 상황이 광야와 같이 메마르고 척박하고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성령을 의지할 때 마침내 성령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성령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사도 베드로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자 양심에 찔려 우리가 어찌 할꼬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2:38) 가르쳐주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 우리는 일차적으로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육신의 일을 좋아하고, 자기를 아끼는 이기적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적인 일을 사모하고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삶을 살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얼마만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느냐 하는 것은 얼마만큼 하나님 말씀 앞에서 진실되게 회개하고 결단하고 순종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렇게 할 때 성령이 임하셔서 내 삶속에 역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내 속에도 성령의 열매를 맺혀 주실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 대적하며 공존할 수 없습니다. 육체를 가진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육에 속한 자기를 부인하는 투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진실되게 회개하고 기도하기에 힘쓸 때 성령께서 친히 광야를 아름다운 밭으로, 밭은 울창한 숲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1907년에 있었던 평양 대 부흥 운동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일어난 영적 대 각성 운동이었습니다. 성령께서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 부은바 되었을 때 평양지역 뿐 아니라 한반도 전역을 복음의 불길로 활활 타오르게 하였습니다. 당시 조선은 가난과 질병으로 시달림 받고 있었고 우상숭배를 죄로 여기지 못할 만큼 영적으로 무지하던 시대였습니다. 지도자들은 사색당파로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었지만 미신에 사로잡힌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영적 대 각성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평양대부흥운동이 있기 4년 전 원산 부흥운동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이 운동의 주역은 캐나다 남감리교 의료선교사 하디 의사였습니다. 그가 1903년 여름수양회 집회를 요한 1서 말씀으로 인도하며 자신이 먼저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해서 의사라고 하는 자부심과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교만한 죄인입니다. 나는 가는 곳마다 복음역사가 일어날 수 없는 원인이 한국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이 바로 저 자신의 교만의 죄 때문임을 말씀을 통해 발견하고 회개합니다.” 하디 선교사의 회개는 그곳에 모인 이들의 회개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조선인들은 죄가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디 선교사님의 진솔한 회개를 보고 죄가 무엇인가를 깨닫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디의 회개운동은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있었던 영적 대각성운동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영적 각성운동의 특징은 회개운동이었습니다. 이 회개운동은 말씀을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이 영적 대 각성운동은 잠자던 한국 백성들을 깨웠고, 한국교회의 성장을 주도하였습니다. 말씀 앞에서 진실되게 회개하는 교회로 인해 한국교회는 급속도로 성장하였고 100년 역사에 세계 강국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세상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는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딤후2:15)
 그런 다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20절을 보십시오.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우리는 우리의 사명지에서 묵묵히 복음의 씨를 뿌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무리들을 생명의 초장으로 모는 일입니다. 주님은 그런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다니엘 12:3절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역사를 맡기시며 그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가르쳐주셨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눅12:42) 우리가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봅시다. 수많은 영혼들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지치고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목마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의 탁류를 마시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죄와 사망권세의 가시에 찔려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구원의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단비가 필요합니다. 누가 이들을 의의 나라, 아름다운 밭, 울창한 생명의 숲으로 인도하겠습니까? 때를 따라 영의 양식을 공급해주고 공의의 왕 예수님을 전파하고 성령의 강림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고 목숨 바쳐 돕는 선한 목자가 복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귀한 생명의 잔치, 성령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구원역사는 성령님이 친히 이루어나가시는 역사입니다. 이 역사에 부르심 받은 우리가 광야와 같은 캠퍼스 분위기에 져서 시대 탓, 양 탓, 운명 탓을 할 것이 아닙니다. 회개운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 귀히 여기고 말씀으로 돕는 목자요 성경선생의 거룩한 직분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하는 성령을 보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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