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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4-29 (일) 10:59
분 류 마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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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제7강]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2012년 마가복음 제7강                                                                          원규연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말씀/막5:1-20
요절/막5: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고 있습니다. 더울 때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귀신들을 생각하면 조금 시원해집니다. 오늘 말씀에도 귀신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무려 6천 마리의 떼귀신이 들려 고통하던 한 영혼을 구원하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밝히 드러내십니다. 귀신들려 비참한 인생을 살던 한 사람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당하시는 예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들이 실제로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을 배우고 귀신들려 고통 가운데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역사에 귀히 쓰임 받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광풍으로 죽다 살아나 도착한 거라사 도시는 갈릴리 동 남편 해안가에 위치한 지역으로 유대 영토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와 로마가 차례로 침탈하면서 이 지역을 따로 떼어 데카폴리스라고 하는 열 개의 도시 연맹으로 묶어 식민지배의 전략적 요충지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이방지역이 되어버린 데카폴리스는 단순한 전략적 요충지였을 뿐 아니라 로마문화의 보급기지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로마 14군단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군대 문화와 이방 문화가 혼합된 이곳에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만나러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전날 저물 때 출발하여 밤새 큰 광풍을 만나 온 힘을 다 쓴 터라 이제 찜질방에라도 가서 피곤을 풀고 눈을 붙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으스스한 기운이 돌더니 갑자기 어딘가에서 괴성이 들렸습니다. ‘으아아아!!’ 예수님 일행에게 코뿔소 같이 달려오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광풍도 피했는데 이제 광인한테 죽는구나’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들 앞에 등장한 그 청년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손에는 끊어진 쇠사슬을 감고 있었고 팬티만 걸치고 나타난 그의 몸은 상처 투성이였습니다. 그는 귀신들린 청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귀신들린 이 청년을 쇠사슬과 고랑으로 묶어 사회와 격리시키고자 하였지만 어디서 난 괴력인지 번번이 쇠사슬과 고랑을 끊어 버렸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 스스로 무덤에 거하며 더 이상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거라사 주민들도 더 이상 관심 갖지 않았습니다. 고래고래 소리 질러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몸을 자해하건 말건 죽건 말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습니다.
 무덤에 거하며 미쳐 날뛰는 거라사 광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귀신의 세력에 점령당해 어둠속에서 서서히 미쳐가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갖지 못하고 어둠가운데 은밀한 방 문화를 만들어 죄를 즐기고 있습니다. PC방, 게임방, 전화방, 노래방, 비디오방, 안마방, 룸싸롱 등 무슨 무슨 방이 밤마다 불야성입니다. 요즘 양들은 무덤과 비교할 수 없는 깔끔한 원룸텔과 고시텔에서 거하고 있지만 인터넷과 자기세계에 갇혀 사람들과 관계성 맺기를 싫어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왔지만 한 학기 등록금만 수백만 원을 들여 졸업을 해도 정규직은 고사하고 88만원 인턴사원 들어가기도 빠듯한 현실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않고 터지는 정치인들의 비리소식, 스캔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건과 사고를 접할 때 점점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정말 이 세상에서 제 정신으로 살기 힘든 때가 오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이 거라사 광인을 먼저 찾아 오셨다는 것이 큰 은혜가 됩니다. 거라사 사람들은 이 청년을 묶어 놓고 가두고 버렸지만 예수님은 그를 구원하시고자 심방 오셨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가 왜 예수님께 달려 나아온 것입니까? 그의 영혼에는 무려 6천 마리의 떼귀신들이 들어와 그를 조종하였습니다. 웃다가 울다가 자기 몸을 돌로 치다가도 잠깐 제정신이 드는가 하면 또 다시 거품을 물고 쓰러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귀신으로부터 놓임 받을 수 있는 소망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멀리서 보고 달려와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안에 역사하는 귀신들과 이미 영적 전쟁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8절입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그러자 그 청년은 심히 괴로워 하였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예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청년안에 있던 귀신들이 발작을 일으키며 그를 괴롭혔습니다. 참 빛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 우리의 삶을 비출 때 어두움이 빛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처음 말씀이 부딪히고 우리의 죄가 하나하나 드러나면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을 몰랐을 때는 자신의 내면 문제를 모르고 살다가 말씀의 빛을 통해 자신의 병든 모습을 발견하면서 치열한 영적 전쟁이 시작됩니다. ‘술을 마시러 가야 되나? 말씀공부를 해야 하나? 여자 친구를 만나야 하나? 토요미팅에 가야 하나? 주일에 교회를 가야하나? 주말에 교외로 나가야 하나? 많은 고민과 번민 속에 괴로워 하다가 결연하게 목자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저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전 예전의 저의 모습이 좋답니다.’ 메시지를 남긴 채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탑니다. 이는 그에게 주님이 말씀으로 도전하였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 우리는 양들을 적극적으로 심방하여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와야 합니다. 그러면 빛의 세계를 맛볼 수 있습니다. 마음 가운데 광풍을 뚫고 나올 때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놀라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어둠속으로 숨고자 하는 양들을 다시 찾아 심방해야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어 예수님은 그 청년 안에서 역사하는 귀신의 정체를 분명히 드러내시기 위해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셨습니다. 왜 이름을 물으셨을까요?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이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순전하고 온전한 모습을 기억하고 그것을 되찾고자 하는 소망을 심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형상과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 때 행복합니다. 그런데 사단은 온갖 귀신들을 동원하여 우리가 원치 않는 죄악된 삶을 살게 만들고 후회스런 인생을 살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임하자 베테랑 검사앞에선 범죄자처럼 귀신들은 자포자기 상태로 순순히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었습니다.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던 귀신은 군대 귀신이었습니다. 군대는 무려 6000마리나 되는 떼 귀신을 의미합니다. 이 청년에게 왜 이렇게 많은 귀신이 들렸는지 알 수 없지만 처음엔 한 네가지 정도의 귀신이 들어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가 잘나간다는 예루살렘 K대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그의 장래는 탄탄대로 인 것 같았습니다. 첫 MT때 자매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동영상을 보며 갈고 닦은 셔플댄스를 추었지만 그는 결국 인기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마음만은 특별시였지만 하는 행동이 거라사 촌사람이었기에 예루살렘에 유학 왔을 때 촌티난다며 친구들에게 은근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는 키가 작고 뚱뚱한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폭발했습니다. ‘세상은 왜 이런 나를 싫어하는가?’ 자포자기 하며 술을 퍼마시다 어느새 쓰레기통 옆에서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는 점점 자신도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정욕귀신, 술귀신, 절망귀신, 강포귀신, 잠귀신, 자학귀신 등등.. 귀신은 한 마리 두 마리 점점 더 늘다가 어느 순간 떼를 지어 들어왔습니다. 이제 그는 본래 자신의 모습을 잃고 귀신의 세력으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우리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내면에 역사하는 귀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본래 자아를 찾아 주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 모습을 회복하고 선하고, 의롭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진실되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기 원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삶을 살지 못합니까? 현재 나의 모습에 절망하고 주저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회복할 수 있습니까?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자신을 살피고 진실되게 대답해야 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광풍을 뚫고 이 거라사 청년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서 어떠한 희생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가자’(막4:35) 하시며 이 귀신들려 죽어가는 청년을 만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제자들과 동행하시며 앞으로 이들이 어떤 역사를 섬겨야 하는지 현장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목자로서 양들을 돕고자 할 때 우리의 싸움의 대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하지 아니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에서 그 싸움의 대상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애쓰고 힘쓰되 혈과 육의 싸움을 하면, 즉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상황과 싸우면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 볼 때 귀신들이 뒤에서 비웃고 박수칠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닌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엡6: 12) 우리는 양과 싸우면 안됩니다. 때로 양들과 인간적인 싸움을 하다가 자신도 자학하며 나는 도저히 목자 체질이 아니라는 귀신의 교묘한 수에 말릴 때가 있습니다. 양을 잡고 배후에 역사하는 귀신의 세력을 간파하고 그 귀신들과 싸워야 합니다. 귀신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타락한 천사의 졸개들입니다. 이 귀신들은 자유자재로 우리 인간들의 마음을 교란시키고 미혹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귀신은 시기심, 정욕, 미움과 다툼, 거짓, 이단, 분열, 방탕함, 술취함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이 귀신들과 어떻게 영적인 싸움을 하십니까? 예수님은 그 광인을 향해 외치셨습니다. 8절을 다같이 큰 소리로 외치시겠습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님의 명령에 귀신들은 요동하였습니다. 귀신들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 때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갇힌 존재들입니다.(유1:6) 귀신들은 예수님의 말 한마디에 사라질 수밖에 없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귀신이 떠납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 만물, 세상 모든 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세우시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셨다고 분명히 나옵니다(막3:15).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100% 사용해야 합니다. 양들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귀신들에게 영혼이 점령당하여 무기력과 두려움, 음행과 어둠속에 거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이 때로는 부담스럽습니다.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과 같은 영적인 권세가 있다면 양들에게 당장 심방가서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외칠 때 서프라이즈하게 양들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 된다면 얼마나 믿음 생활할 맛이 나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섣불리 했다가는 양과의 관계가 깨지고 이상한 종교인이라며 인터넷 포털 싸이트 검색어 일순위에 오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겐 비록 예수님과 같은 어퍼컷 펀치는 없을지라도 말씀과 기도와 심방이라는 잽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기도하고 말씀을 가지고 심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를 선포할 때 우리가운데 양들 가운데 역사하는 귀신의 세력, 악의 세력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칠 것을 믿습니다(신28:7).
 이제 귀신들은 정든 거라사인을 떠나야 했습니다. 계속 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을 알았기에 돼지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이제 귀신은 돈귀신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시자 이천 마리의 돼지 떼에 들어간 귀신들은 돼지를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몰사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서 떼귀신 들렸던 사람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참으로 병들어 망가진 자를 위해서 큰 희생을 치루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우는 것은 영적인 전쟁에는 희생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기에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결국엔 십자가에서 벌레 같은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온전히 희생하심으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길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귀신들려 고통하는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쓰임 받을 수 있습니까? 첫째로,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영적인 가치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귀신들린 청년이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귀신만 쫓아 내주면 순결하고 능력있고 보배로운 사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 희생적인 사랑을 하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돼지 이천 마리를 희생하심으로 한 청년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양을 섬기고자 할 때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드릴 때 그 자체가 참으로 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받으시고 구원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돼지 치던 자들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돼지들이 순식간에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돼지주인들과 마을 사람들은 헐레벌떡 달려 나와 돼지들이 몰살되는 비참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앞에 귀신들려 날뛰던 청년은 어디가고 잘생긴 청년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귀신들린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짐으로 인해 한번 놀라고 자신들의 재산이 순식간에 날아간 것에 두 번 놀랐습니다. 그리고 긴급 회의를 하고 예수님을 그 지방에서 떠나가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들은 재물의 욕심에 눈이 가려 구원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리고 귀신에게 놓임 받은 그 청년은 예수님과 함께 하길 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예수님은 그를 거라사 지방의 복음의 일꾼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귀신들린 자를 구원하시고 새 삶을 살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과거 원망 귀신, 불만 귀신, 비교의식 귀신, 정욕 귀신, 두려움 귀신, 등등 6000마리는 아니지만 꽤 많은 귀신이 저에게 붙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극에 달해 있었고 집을 뛰쳐나오고 싶은 마음이 많았습니다. 음란과 정욕을 즐기다 자학하다를 반복하였습니다. 제가 신입생때 권다니엘 선교사님은 저와 같은 과 의대 형제들을 부지런히 심방오시고 때마다 말씀을 주시고 기도를 해주시며, 때로는 런닝 셔츠바람으로 같이 농구를 하고 같이 놀아주셨습니다. 저는 선교사님과 여러 목자님들의 심방과 기도와 주신 말씀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저를 괴롭히던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자유해졌습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이제 살만해지자 은혜를 많이 까먹고 만나기 부담스러운 양들을 찾지 않고 센터에 앉아서 찾아오는 괜찮은 양들만 감당코자 하였습니다. 캠퍼스 심방을 거의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고자 하는 소시민적 꿈이 꿈틀 거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알리라. 주님의 구원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주님께서 저를 얼마나 불쌍히 여기셨는지 되돌아보고 캠퍼스에 귀신들려 방황하는 양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하고 심방 가서 말씀을 주는 자가 되겠습니다. 제게 주신 캠퍼스 목자의 이름을 되새기고 믿음으로 살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귀신들려 본래 자아를 상실하고 영혼의 고통에 울부짖는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죽는 데까지 희생하심으로 우리와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하여 귀신들려 방황하고 죽어가는 캠퍼스 양들을 심방 가서 말씀으로 살리는 역사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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