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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5-20 (일) 12:59
분 류 마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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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제10강] 마음을 깨끗하게

2012년 마가복음 제 10 강                                                              박엘리야

마음을 깨끗하게

말씀/ 마가복음 7:1-23
요절/ 마가복음 7: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제가 볼 때 우리 나라는 선진국이 된 것 같습니다. 시민들은 교통 질서를 준수하고 거리는 깨끗합니다. 길에 휴지를 버리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교통 신호등을 무시하고 빨간 불에도 횡단 보도를 건너 갑니다. 길을 걸어가다가 혹은 차를 타고 가다가 휴지를 버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도시가 지저분합니다. 그런 곳에 살다가 깨끗한 서울에 오면 편안하고 좋은 느낌을 갖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깨끗한 환경을 넘어, 깨끗한 마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우리가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함을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가 우리의 마음이 부패하고 더러운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더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힘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자 자신의 생명을 드리셨음을 깨닫고 깊히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저희가 아름답고 순결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1-13)

 1절을 보십시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님께 모여들었다가 예수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때가 묻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서 맛있게 먹고 있다가 바리새인들에게 딱 걸렸습니다. 제자들도 전에는 손을 잘 씻었는데, 예수님을 따라 다닌 후로는 잘 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닮아서 많이 자유로와졌고, 손 씻지 않고 먹는 것이 보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모든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위생 상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 상의 문제였습니다. 이는 ‘장로들의 유전’이라 하여 오래 전부터 지켜 내려오는 생활화된 종교 의식이었습니다. 바람과 먼지가 많은 팔레스틴 땅에서는 고대로 부터 식사 전에 손을 닦거나 몸을 씻는 것이 관례이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이나 근동의 국가들에서는 대부분 스푼이나 포크 등과 같은 식사 도구 없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것이 관습이었기 때문에 손 씻는 일은 꼭 필요하였습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습이 포로 귀환 시대 이후에 와서 의식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유대주의자들에 의해 종교적인 규례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장로들의 유전’이라는 이름으로 후손들에게 교육되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식사하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이방인들과 자주 부딪칠 수 있는 시장과 같은 장소에서 돌아오면 목욕을 하거나, 손을 씻었습니다. 이는 시장에서 묻었을 지도 모르는 세상의 더러운 것으로 부터 자신을 깨끗히 하려 하는 정결 예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열심히 닦았습니다. 이는 물을 마시는 잔이나, 포도주, 식초 등을 담는 주발이나, 구리로 만든 놋그릇 취사 도구들이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 주로 만들어 졌으므로 부정하다고 여겨 사용 전에 깨끗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손을 씻지 않은 채 음식을 먹고 있는 제자들을 보았을 때,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요.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오히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6절과 7절을 보십시요.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예수님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시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과 9절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은 잘 저버리는도다” 하시며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시고, 그 증거로 ‘고르반’을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앙의 진정성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여러 사람 앞에서 “고르반!”, 즉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 라고 맹세하고 예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고르반’ 으로 바쳐진 물건은 비록 자신의 집에 소유하고 있더라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목적 이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본래 ‘고르반’의 계명은 창조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 –인간 –만물 ’의 질서 가운데 ‘하나님 우선’ (God first)의 질서를 지키고자, 때로는 부모를 공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섬겨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믿음이 사라지고 습관적으로, 전통으로만 ‘고르반’ 계명을 지키고자 할 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좋은 신앙이 변질되어 갔습니다.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변질되기 마련입니다.
10절에서 13절까지 에서 예수님은 ‘고르반’의 위선을 지적하십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고르반’의 좋은 신앙이 변질 되자 부모를 봉양하는 일이 부담스러워질 때에 부모를 섬기지 않아도 된다는 데 이용하게 된 것입니다.
자녀들은 늙으신 부모님의 노년에 필요한 도움을 드리고, 돈도 드리고 자주 찾아 뵙기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부모님께 드릴 돈을 ‘고르반’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놓고 부모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하여 부모 섬기는 것을 뒤로 미루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먼저라고 말하며, 부모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부모에게 드릴 것은 부모에게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것이었습니다. 늙으신 부모님을 잘 모시고 필요한 도움을 드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잘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왜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고르반’하며, 드리지 않았을까요?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부모에게 마음이 없었다고 볼 수 있읍니다. 부모님께 마음이 있었다면, 그래서 어찌하든 부모님을 돕고자 했더라면 섬기고 도와드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부모님으로 부터 멀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하나님으로 부터도 마음이 멀리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정해주신 부모를 공경합니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는 사람의 뜻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모를 통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절대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불가결의 사항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이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도 부모를 잘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부모를 잘 섬겨서,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Ⅱ.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7:14-23)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은 그 겉 모양은 거룩한 척했으나, 실상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불순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15절과 16절에서 그들의 내면의 문제에 대해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제자들은 이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8절, 19절을 보십시요.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외적인 것이나, 사람의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먹은 음식은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때로 청결하게 조리되지 못한 음식을 그런 줄 모르고 먹을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음식도 위액의 강한 소화력으로 처리된 뒤 창자를 통해 다시 몸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정말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20절에서 23절을 보십시요.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심으로 당시 외식주의자들과는 달리 외적인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안으로부터, 즉 마음과 의지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밝혀주셨습니다. 진정한 더러움은 육체적 혹은 물질적인 외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영적인 타락으로 인해 마음이 더러워 지는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레위기 11장에서 15장에 걸쳐서 말한 바 무엇이 부정한 것이며, 또 어떻게 정결케 될 수 있는 가 하는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신 것입니다. 레위기에서는 주로 외적으로 나타난 더러움과 그 현상들, 그리고 그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정결법에 대해 말했다면, 마가복음 7장 20절, 오늘 요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외적인 더러움을 넘어, 보이지 않는 내적인 더러움과 그 근원인 마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요절 말씀인 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예수님에 의하면 참으로 더러운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지 않는 의식적이고 습관적인 정결 예법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정결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으로 구약의 정결법의 정신을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정결법에 기초하여 더욱 세세한 ‘장로들의 유전’ 들을 만들어서 전통으로 삼아 열심히 손과 발을 씻고 그릇을 닦았습니다. 이런 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씻고 닦으므로써, 외적인 더러움 만을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고자 힘썼습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자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으로 부터 분리되려 하는 것이 그들을 깨끗하게 하여주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전통을 지켜나가면서 자신들은 깨끗하고 의롭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음란, 도적질은 자기들에게는 없고, 세리나 창녀들, 혹은 이방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실 때 음란, 도적질은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라고 하던 사도 바울도 자기 안에 있는 탐욕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점검해보면 살인하는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질투하는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의 잘 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배가 아픈 그런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이 바로 내 속에 있지 않습니까? 우리 각자는 먼저 자기 안에 있는 더러움, 악함을 보고,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자기 안에 있는 더러움을 씻어내고자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안의 더러움보다는 자기 밖에 있는 더러움에 대해서 말합니다. 사람들은 지도자들의 부정 부패를 말하지만, 정작 각자 자기 안에 있는 부정 부패는 잘 보지 못합니다. 또 우리는 이 사회가 음란하다 말하고 도덕적 타락을 걱정합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 안에 있는 타락이나 문란에 대해서는 크게 마음 쓰지 않습니다. 자신을 더럽게 하는 것이 바로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자기 안에 음란이 있다는 것, 자기 안에 도적질이 있다는 것, 자기 안에 탐욕이 있다는 것을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다른 사람의 문제 때문에 열을 받습니다. 관계와 소통이 어려워집니다. 단지 외부로부터 자기를 지키려고 하다 고립되고 외로워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한 위선적 행동입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열심이 있는 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비극적인 사실입니다. 설사 자기 문제를 알았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노력이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울어도 안되고 혈서를 쓰면서 작심해도 사흘을 못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의 위선의 껍질을 벗겨내십니다. 사람들의 문제를 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안에 있는 더러움을 보게 하십니다. 무엇을 깨끗하게 씻어내야 하며, 또 어떻게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자신이 그 모든 마음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 주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짐승을 죽여 그 피로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해 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는 그 효과가 일시적이고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의 모든 더러움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의 제단에 자신의 보배로운 피를 뿌리심으로 온전하고도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히 9:12)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그의 피가 우리를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로 하여금 참된 회개를 하게 도우십니다.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에서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거룩한 순례자의 인생, 사명인의 인생을 살게 합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요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듭나지 못하여 깊히 고뇌하던 중에 어느 날 밤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으로 그와 밤이 맞도록 대화 하셨고 십자가의 비밀을 알려 주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4,15) 그는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았고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과 십자가의 은혜가 심각한 영혼의 병을 앓고 있던 니고데모를 구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기 전, 죄와 사단의 종이 되어 초대 교회 성도들을 무참히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교만과 영적 무지는 그의 눈을 가렸고,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며 영원한 멸망의 심연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귀한 피를 쏟으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사 부활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메색 도상에서 빛으로 임하셔서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예수님은 그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시고 이방인을 위한 택한 그릇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의 삶을 밤 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별과 같이 되게 하셨습니다. 젊은 시절에 성 어그스틴은 패륜아요, 탕자였습니다. 더러운 죄악과 욕정들은 그를 끝없는 방탕과 방황의 수렁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는 고백록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나는 언제까지 내일, 내일 하여야 하는가? 왜 지금은 안 되는건가? 나는 왜 나의 추한 죄를 청산하지 않는가? 나는 내내 울면서 이렇게 자문했습니다 .....” 그러던 그가 32세의 어느 날, 로마서 13장 13절, 14절 말씀을 받음으로 그의 위대한 생애가 시작 되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베드로 전서 1장 18절, 19절, 23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의 더러운 마음을 정결케 할 수 있도록 새롭고 산 길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저는 중, 고교 시절에 장차 신실하고 순결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그런 소박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 삶을 산다면 참 만족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대학 진로에 대해서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분명한 방향을 갖지 못하고 있던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한의대를 추천하는 학교 선생님의 권유를 받아들여, 1979년 경희 한의대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 생활을 하면서, 분명한 진리를 모르던 저는 대학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세상의 정욕과 육신의 쾌락을 쫓다가 죄의 종이 되어 갔습니다. 본과 1학년 때 아버지와 이모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저는 사망이 쏘는 독화살을 맞아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허무와 죽음의 두려움에 떨며 학과 공부를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성경 선생을 보내주셔서, 1984년 여름 수양회로 초청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그 수양회에서 크신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위해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고, 저의 더러운 내면을 눈과 같이 희게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도 흠모하는 선교사의 비젼을 주셔서 한의대 개척 역사에 쓰임 받게 하시고, 1991년에 브라질 개척 선교사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지난 21년 동안의 선교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부족하고 무지한 저와 함께하셔서 도와주시고 연단하시며 영육 간에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배우게 인도하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붙들게 하셨습니다. 제가 일생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주님의 뜻을 섬기는 종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 본국을 방문하도록 하셨을 때 저는 그 뜻을 다 알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서 제임스 목자님과 서 경희 사모님 그리고 여러 동역자들을 뵙는 것 이 외에도 어떤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저는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를 향한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문제에서 저의 문제를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전혀 보지 못한 채, 씻지 않은 손으로 밥 먹는 제자들을 더러운 놈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실 때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저도 유대인들과 같이 나 자신과 나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보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문제로 인해 제가 어려워 지곤 하였습니다. 그들의 아름답지 못한 행동에 대해 분노하고 또 그로 인해 관계가 어려워지고 한계적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좁고 편협한 자신의 내면에 대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고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말씀을 준비하면서 또한 김요셉 선교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저의 문제를 보게 하셨습니다. 저의 체질이 연약함과 저의 죄성을 깊히 인정하고 사죄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그 때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말씀을 주셨습니다. 제가 그 동안 저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문제들을 보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문제도 모른 채, 답답하고 피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안에서 더러운 것이 나오고, 내 안이 문제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나의 마음의 문제를 정확히 알고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덧입는 가운데 해결함을 받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외식의 죄와 싸우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의 말씀에 힘써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된 우리는 이제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전심으로 진리의 말씀을 공부하고, 날마다 회개하는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지, 정, 의가 움직이는 근원입니다. 특히 생각하는 곳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영적인 생각을 하고, 복음적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심령에는 알 수 없는 기쁨과 힘과 생명과 평강이 깃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저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허락하여 주셔서 성숙한 주의 종들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함께 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의 삶을 살며, 캠퍼스의 방황하는 양 무리들의 목자요 성경 선생으로 귀하게 쓰임 받는 인생을 살도록 도와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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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1강] 이 말을 하였으니 관리자 2012-05-27 2664
587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5강]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관리자 2011-10-09 2661
586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9강]생수의 강 리스닝 2010-05-02 2661
585 시편 [2011년 추수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관리자 2011-11-27 2654
584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7강]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관리자 2011-07-24 2654
583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5강]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리스닝 2010-09-05 2654
582 신명기 [2014년 신명기 제1강] 올라가서 차지하라 관리자 2014-09-14 2652
581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0강] 마음을 깨끗하게 관리자 2012-05-20 2651
580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 제12강] 자기 옷을 지키는 자-고영훈 휴화산 2010-01-14 2651
579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7강]한 왕의 통치와 성령 강림 관리자 2010-11-07 2650
578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3강]죄사함과 사랑 관리자 2011-06-26 2646
577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7강]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관리자 2012-04-29 2643
576 시편 [2013년 추수감사절] 새 노래를 내 입에 두셨으니 관리자 2013-12-01 2641
57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2강]비천함을 돌보신 주님 관리자 2011-03-20 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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