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5-27 (일) 12:20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2_마가복음_11강_(강갈렙)-1.hwp (26KB) (Down:231)
ㆍ추천: 0  ㆍ조회: 2665      
IP: 61.xxx.183
[2012년 마가복음 제11강] 이 말을 하였으니

 2012년 마가복음 11강                                                                  강갈렙

이 말을 하였으니

말씀: 막 7:24-37
요절: 막 7: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안녕하십니까? 강 갈렙 목자입니다. 아름다운 크리스챤 이름 중에 이해가 되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아마도 갈렙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왜냐면 히브리어 원어로 갈렙은 개를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부르자면 개똥이입니다. 저는 이를 알고나서 잘 이해를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준비하는 가운데  일생 교만치 않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삶을 살도록 주신 것을 영접케 되었습니다. 성경의 갈렙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믿음의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40년 주기로 한마디씩 일생 위대한 두 마디를 남겼습니다. 나이 40에 가나안 정탐후 두려워 떠는 백성들앞에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외쳤습니다. 그 후  80의 노년의 나이에도 헤브론을 개척하고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하며 약속된 기업을 차지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한 이방 여인의 아름다운 믿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인의 겸손과 믿음의 말은 예수님을 감동시키고 귀신들린 딸이 구원받는 역사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이 시간 말씀 통해 예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과 겸손을 배우게 하시며 병든 영혼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덧입게 도우시길 기도합니다.

1.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축복하신 예수님(24-30)

2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예수님은 갈릴리 사역을 마치시고 구원역사 완성을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시기 전 제자들과 조용한 시간을 갖고자 이방 땅 두로 지경으로 가셨습니다. 두로는 갈릴리 서북쪽에 위치한 시리아 지역의 항구도시입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한 집에 들어가셨으나 예수님께 대한 소문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중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인이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듣고 와서 그 발아래 엎드려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었습니다. (25,26)  헬라인은 헬라 문명을 꽃피운 사람들로서 다른 민족을 야만인 취급하며 문화적인 우월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수로보니게 사람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문화적, 민족적 배경을 가진 여인이 유대인 예수님 앞에 나아와 엎드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아래 매달려 간구하였습니다. 무엇이 이 여인으로 하여금 이렇게 하도록 했을까요?
더러운 귀신들린 딸에 대한 어미의 애타는 심정 때문이었습니다. 엄마는 딸이 조금만 아파도 안타까워 견디지 못합니다. 아들이라면 좀 지저분해도 괜찮으니 건강하고 씩씩하게만 자라다오 하지만 딸은 외모뿐 아니라 마음도 아름답고 행실도 아름다운 자가 되도록 애지중지 키웁니다. 이 어머니도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신념으로 사랑하는 딸에게 미술, 피아노, 발레, 예절 교육 등 어느 면에도 빠지지 않는 아름다운 딸로 자라도록 온갖 배려를 아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잘 자라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혀 추하고 상스러운 욕을 하며 덤벼들고 소리를 지르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밤이면 거라사 소녀가 되어 뛰어 다니며  발작하고 울부짖으며 광기를 부리다 정신을 잃곤 하였습니다. 예전의 아름다운 딸의 모습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 여인은 이상하게 변해버린 딸을 고쳐보고자 유명한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가기도 하고 온갖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런 딸을 바라보는 어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행복했던 가정은 웃음이 사라지고 근심과 슬픔과 고통으로 엄마는 밤을 새우고 식음을 전폐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절망스러운 것은 딸을 고칠 길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듣게되었습니다. 거라사 지방의 떼귀신 들려 울부짓던 청년도 구원해 주셨고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추하고 절망적인 삶을 살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나았다는 신기한 소문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자기 딸도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민족적인 자존심, 적대감정 다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간구하였습니다. “내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세요. 제발 저의 딸을 구해주세요.” 여인의 기도는 참으로 간절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그의 절규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뜻 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아니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평소 자비롭고 온유하신 주님이 귀신들린 딸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여인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씀으로 고쳐주실 줄 알았는데 이 말씀은 그의 가슴을 서운하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자녀’는 선민 이스라엘과 제자들, ‘개’는 이방인 여인을 가리키는 말씀인 것을 볼 때 여인이 어떻게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개는 부정하고 추한 짐승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벧후 2:22)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육신적으로 사는 이방인들을 개 취급하며 무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상 만민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마저 이방인들을 개 취급하며 은혜를 베풀 수 없다 하시니  반발심이 생겨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배척당해도 참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나를 이해하시고 귀히 여기시며 받아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마저 우리를 무시하고 배척하신다면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는 여인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가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신 것은 그의 믿음을 견고케 하여 그에게 가장 큰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여자는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여인의 대답을 통해 여인의 겸손과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 주여 옳소이다 ( yes, Lord! )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인정하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옳으심을 인정하였습니까? 먼저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은혜받기에 자격없는 자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조금도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이방 여인이라면 “뭐 나더러 개라고, 그래 나는 개다. 개 맛 좀 봐라”하고 ‘왕왕!’ 짖으며 이판사판으로 예수님께 달려들어 개처럼 물어뜯으며 개판을 칠 수도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딸 고치러 왔다가 자신마저 귀신들리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네 주님 제가 개 같은 자입니다. 수로보니 개 같은 여인입니다. 라며 자신이 개와 같이 비천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힘든 말씀이었지만 ”주여, 옳소이다“ 영접하였습니다. 다음에는 하나님이 그의 택한 자녀를 먼저 먹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옳은 것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는 유대인과 비교하며 하나님의 주권에 반발하거나 시기하거나 예수님이 틀렸다고 주장하며 대들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무시받는 고통 중에서도 옳은 것을 옳다고 인정하는 참된 지성과 겸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을 겸손히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열왕기하 5장을 보면 나아만 장군이 나옵니다. 그는 아람 왕의 군대 장관으로 크고 존귀한 자였으나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가 문둥병을 고침받기 위해 선지자 엘리사에게 왔을 때 엘리사는 사환을 통해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는 말만 전했습니다. 당시의 요단강 물은 깨끗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나아만 장군은 심히 자존심이 상해 화를 내고 돌아가고자 하다가 종의 말을 듣고 나서 자존심을 꺾고 겸손히 순종하였을때 문둥병이 깨끗이 낫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존심을 꺾지 못해 진리의 세계, 은혜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그 문턱에서 넘어집니다. 그러나 범사에 하나님의 말씀이 옳고 훈련하심이 옳고 자격없는 자라고 깨우치심이 옳음을 인정할 때, 즉 우리가 자존심을 꺾고 조금만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의 무한한 은혜의 세계, 축복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둘째, 개들도 아이들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인이 모욕적인 말에도 요동하지 않은 것은 예수님께 대한 깊은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모질게 대하셨지만 예수님의 참된 사랑을 느끼며 믿었습니다. 절박한 간구를 외면치 않으시고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믿음이란 어떤 경우에나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사랑을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7-19을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11:17-19)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도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사랑을 의심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인의 간구에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2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의 말에 크게 감동을 받으시고 곧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것도 부스러기 은혜가 아닌 자녀들에게 주시는 동일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말은 내면의 생각과 가치관과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에서 나온 믿음의 말은 생명을 살리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양들의 구원을 위해 힘쓰며 하루빨리 이들을 변화시켜 주시길 간구하지만 더디 응답받거나 구원의 소망이 아예 안보이는 것 같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멸망킬 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수로보니게 여인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간절히 주님께 나가 기도함으로 양들을 살리는 목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이 말을 축복하셧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2.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신 예수님(31-37)

 3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두로 지경에서 나오셔서 다시 갈릴리 호수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쳐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듣는데서 나옵니다. 그런데 그는 귀가 먹어 말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의 음성도 친구의 음성도 들을 수 없고 또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본인도 답답하겠지만  주위 사람들이 더 답답해서 예수님께 데리고 나온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성을 맺지 못하고 자기 속에 갇혀 삽니다. 다른 사람들을 쉽게 오해하고 감정대로 행합니다. 사람은 남의 말을 듣고 또 나의 뜻을 말하며 교제할 때 행복해집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말에 감동받고 도전을 받으며 위로를 주고받는 가운데 사랑의 공동체가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기도로써 우리의 내면의 소원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큰 복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하나님께 나의 소원과 내면의 문제를 말씀드리며 교제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자기 세계에만 갇혀 있으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꽉 막혀 답답함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들을 귀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시고자 하십니다.
33,34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한목소리로 읽어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예수님은 특이한 방법으로 고치셔서 그가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에 대해 느끼게 하시고 예수님의 치료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 것은 이 사람을 통해 그 시대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귀먹고 진리가 없으니 말도 더듬는 자들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그랬고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귀먹고 어눌한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한 목자의 심정에서 나온 탄식의 기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세계에 대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먹은 자와 같았습니다. 자기 생각과 현실 문제에 매여 세상을 사랑했고,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에 얽매어 정작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방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님이 숨어 있는 곳까지 찾아왔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말씀 듣기를 싫어하였을 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자부심만 있었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으로 살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에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고자 하는 죄악된 모습을 잘 예언하였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4:3,4)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말, 자기의 사욕을 만족시켜주는 말만 듣고자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히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 때 말씀을 듣지 못합니까?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세상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또한 현실문제로 깊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명령하십니다. “에바다!” 이는 열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강력하게 임했을 때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게 되었습니다. ‘혀의 맺힌 것이 풀렸다’는 것은 사단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혀를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러나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됩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모르고 영적인 세계가 이해되지 않아 답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캠퍼스에는 올라가지만 막상 양이 지나가도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말 더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을 불쌍히 여기사 고쳐 주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귀와 혀를 열어주사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담대하게 전하는 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에 우리 가운데 “에바다”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통해 저의 믿음을 점검케 도우시고 수로보니게 여인의 겸손한 믿음을 덧입도록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러시아에서 비자문제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저는 선교지에서는 그래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 가운데 살았는데 막상 치열한 경쟁사회인 한국에서 새로 시작할려니 취직하기에는 나이가 들고 훌쩍 커 버린 많은 자녀들를 부양해야 한다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력이 녹슬어 쉽게 짤릴 자였지만 겸손히 간구했을 때 한참 나이어린 띠동갑 원장에게서도 배우게 하시며  나가라는 은근한 눈치에도 눈치코치 없이 두눈 딱 감고 다니게 하사 양식을 얻게 도우시고 한국 치과계에 적응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페이닥터를 써 주는 데가 없어 절망스러웠지만 겸손히 주님께 나아가 간구했을 때  어려운 치과 경기에서 자금도 없는 가운데 아무도 인수코자 않는 한적한 치과를 발견케 하시고 인수하게 하사 원장도 되게 하시고 이 날 이때까지 먹이시고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통하여 캠퍼스 양들을 먹이고자 겸손히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과거 말귀를 잘못 알아들어 어디에도 관계성을 잘 맺을 수 없는 자였습니다.  목자님은 시험도 안보고 하숙방에 드러누워 있던 저를 끌어내어 공부케도 하시고 교수님께 같이 찾아가 욕도 함께 얻어먹으며 은혜를 간구하는 모습을  하셨고 저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 말씀 공부에서 잘 깨달을 수 없을 지라도 함께하며 환부를 드러내 고쳐주심으로 저의 심령에 은혜를 받게 하시고 믿음이 생기고 말씀을 듣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문제 많은 양들 보면 제가 바로 이들의 조상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님이 제게 주신 은혜를 늘 기억하며 이들의 문제를 안고 주님께 겸손히 나아가 믿음으로 간구하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겸손한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믿음과 겸손의 말로 간구하여 귀신들려 고통하는 캠퍼스 영혼들을 살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94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강]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관리자 2013-03-24 2670
593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최바울) 리스닝 2010-04-11 2669
592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6강] 섬기러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12-07-01 2668
591 누가복음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3강 리스닝 2010-04-01 2666
590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7강]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관리자 2014-03-16 2665
589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1강] 이 말을 하였으니 관리자 2012-05-27 2665
588 느헤미야 [2011년제자수양회 제2강]위기를 극복한 지도자 느헤미야- 노아자.. 리스닝 2011-06-13 2665
587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5강]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관리자 2011-10-09 2661
586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9강]생수의 강 리스닝 2010-05-02 2661
585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5강]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리스닝 2010-09-05 2655
584 시편 [2011년 추수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관리자 2011-11-27 2654
583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7강]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관리자 2011-07-24 2654
582 신명기 [2014년 신명기 제1강] 올라가서 차지하라 관리자 2014-09-14 2652
581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0강] 마음을 깨끗하게 관리자 2012-05-20 2651
580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7강]한 왕의 통치와 성령 강림 관리자 2010-11-07 2651
579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 제12강] 자기 옷을 지키는 자-고영훈 휴화산 2010-01-14 2651
578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3강]죄사함과 사랑 관리자 2011-06-26 2646
577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7강]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관리자 2012-04-29 2643
576 시편 [2013년 추수감사절] 새 노래를 내 입에 두셨으니 관리자 2013-12-01 2641
57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2강]비천함을 돌보신 주님 관리자 2011-03-20 2641
12345678910,,,39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