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0-11 (일) 13:30
분 류 히브리서
첨부#1 2015_히브리서3강-1(최동진).hwp (29KB) (Down:283)
ㆍ추천: 0  ㆍ조회: 3341      
IP: 61.xxx.95
[2015년 히브리서 제3강]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
2015년 히브리서 제3강                                                                       최동진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

말씀 / 히브리서 3:1-4:13
요절 / 히브리서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지난 시간 우리는 예수님이 천사보다 우월하신 분이심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모세보다 우월하시며 여호수아보다 훨씬 우월하신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은 참 안식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엔가 쫓기듯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바쁘게 다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예수님의 우월하심을 우리의 마음에 새김으로 믿음의 중심을 끝까지 지키고 예수님이 주시는 참 안식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6)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당시 히브리 성도들은 핍박과 조롱을 받으며 마음이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들인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특별히 구별된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크리스찬이 된 것은 자의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주권 가운데 된 것으로서 상황에 따라 변개될 수 없는 절대적이고 영광스러운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힘써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1b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믿는 도리’란 ‘우리의 신앙 고백의 대상’이란 뜻입니다.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인류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전권대사이십니다. 대제사장은 인간들의 죄를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 기도함으로 거룩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케 하는 중보자입니다. 우리는 사도요,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신앙 고백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저 보고 듣는 대로 느끼고 감각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심지어는 신앙생활도 말씀에 기초해서 깊이 생각하기보다 느낌에 기초해서 보고 듣는 대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머리로만 알고 깊은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을 수 없습니다. 신앙이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해 현실의 어려움이나 죄의 유혹 앞에 쉽게 흔들리고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지만 심령에 기쁨과 감격이 없고 무덤덤한 이유는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은 영어로는 “fix your thoughts on Jesus”입니다. 이는 모든 생각을 예수님께 고정시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초점을 예수님께 두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하며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확립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함으로 예수님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생명의 진액을 공급받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승리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모세와 예수님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를 세우신 하나님께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했습니다. 여기서 집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권속 즉 한 집안 식구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뜻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얼마나 신실했습니까?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의 특권과 영광을 거절하고 노예백성 이스라엘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기 위해 완악한 바로와 10차전에 이르는 대 혈전을 치뤘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앞에서 위기를 만났지만 하나님의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홍해를 무사히 건너고 뒤쫓아 오던 애굽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킴으로 바로의 세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기 위해 인도해냈다며 모세를 원망하고 대적했습니다. “배가 고프다, 물이 없다”고 끊임없이 불평하며 모세를 향해 돌을 던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노예근성에 찌든 백성들을 끝까지 참고 섬겼습니다. 심지어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다가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이스라엘을 진멸하려 하실 때에도 모세는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실지언정 이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간절히 중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모세를 가리켜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민12:7)”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들은 모세를 어떤 선지자보다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보다 훨씬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 종으로서 신실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습니다.(5,6a)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본체가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시지만 하늘나라의 모든 영광과 존귀를 버리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로 병든 인생들을 섬겨주셨습니다. 마침내는 친히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인생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인류 구원 역사를 완성하시기까지 하나님께 충성하셨습니다. 모세가 집이라면 예수님은 그 집을 지은 설계자요 건축자이십니다. 집이 아무리 훌륭하고 멋이 있어도 그 집을 지은 건축자보다 존귀할 수는 없습니다. 모세가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계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모세는 장차 올 인류 구원 역사의 모형으로서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하였지만, 예수님은 인류 구원역사의 원형이 되시며 집을 맡은 아들로서 충성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이 모세보다 훨씬 존귀하시고 더욱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신실하심으로 믿는 도리를 완성하시고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우리의 생각을 이 예수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6b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으라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소망을 확신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의 집, 그의 권속’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예수님을 믿고 믿음 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열심히 전도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마치 천성을 향해 가는 천로역정과도 같습니다. 믿음의 길을 가려 할 때 여러 가지 힘든 일을 만나게 됩니다. 조롱당하고 핍박받고 환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과연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이 잘 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쉽고 편한 넓은 길로 가는 것을 볼 때 꼭 이렇게 좁고 험한 길로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허영시장을 지나가다가 세상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마음에 들어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의 유혹과 환난이 몰아친다 할지라도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9:62절에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살기로 결단했으면 딴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생각을 고정시킴으로 한 눈 팔지 말고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3:7-4:13)
  저자는 예수님이 본질적으로 모세보다 더 존귀하신 분이심을 증거한 후 이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구약의 실례를 들어 말해주고 있습니다. 7-11절은 시편95편 7-11절을 인용하여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가지 못하고 도중에 하차한 자들의 문제에 대해 말해줌으로써 현재 박해로 인해 믿음이 흔들리는 히브리 성도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시편 95편에서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신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이후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속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매일을 새로운 오늘이라 생각하고 날마다 그 날에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지 못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날까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출애굽기17:7에 보면 르비딤에서 물이 없자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며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출애굽기14장에서 그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고 15장에서는 마라의 쓴 물이 단물로 바뀌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16장에서는 만나로 먹여주시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불신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힘든 현실로 인해 화가 나고 마음이 완고해져서 막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처럼 믿음의 뿌리가 약했고 소망의 확신과 자부심이 없었습니다.
  10절을 보면 그들은 틈만 나면 사탄의 유혹에 미혹되어서 죄에 빠졌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간 사이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출32장).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며 바알브올 우상을 섬겼습니다(민25장). 사탄은 이렇게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것으로 유혹합니다. 편한 것을 좋아하는 안일한 본성은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을 거역하고, 완고하고, 마음이 미혹된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노하심으로 그들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출애굽 했다고 다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민수기13,14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가데스바네아에서 생긴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열 두 지파 가운데 믿음이 좋은 지도자를 뽑아서 가나안 땅을 정탐케 했습니다. 12 두령들은 40일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돌아와 보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정탐을 했는데 열 두령의 보고와 갈렙과 여호수아의 보고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열 두령은 그 땅의 견고한 성과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인 그곳 백성들을 보고 겁에 질려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열 지도자들의 불신에 찬 보고가 백성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매우 컸습니다. 그들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밤새도록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었습니다. 그들의 불신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실족시키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불신하는 이들에게 진노하사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광야에서 유리하다가 엎드러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확신 있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민14:7-9)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안식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성도들이 조상들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고 경고합니다. 악한 마음이란 살인이나 도둑질 등 윤리적인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아니하는 마음이 악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악한 죄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집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 참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매일 피차 권면해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는 광야와 같은 불신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고 죄의 유혹도 많습니다. 세상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육신의 정욕은 가장 이기기 힘든 죄의 유혹입니다. 혼자 있으면 이런 유혹을 이기기가 더욱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모여서 파차 권면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권면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살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다보면 서로의 힘든 형편을 너무 잘 이해하고 신앙적인 권면보다 인간적으로 서로 동정하고 위로하며 인간적인 교제만 나누기 쉽습니다. 그러면 피차 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광야와 같은 험한 세상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어려운 현실에 도전하고 믿음으로 살도록 피차 권면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서로 힘과 위로를 얻고 은혜가 차고 넘치는 참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처음 확신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출애굽 하여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만 해도 그들은 순수하고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그들은 형편없는 노예백성이었던 자기를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로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을 확신했습니다.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을 확신했습니다. 히브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알기 전 어려운 율법을 암송하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힘들고 고단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통해 구원 받고 자신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을 영접함으로 기쁨과 확신에 넘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힘든 현실과 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처음 가졌던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니 옛 생활이 그리워지고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모두 예수님을 처음 만나 구원 받았을 때의 기쁨과 감격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 은혜를 감당하려 할 때 부딪치는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학과공부만 감당하기도 힘든데 신앙생활을 하나 더해야 하니 고생스럽게 생각됩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즐기며 사는 세상 사람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롭게 부딪치는 현실 문제에 구원의 기쁨도 점점 희미해지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로 만족하지 못하고 플러스 알파를 통해 만족과 기쁨을 얻고자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파가 점점 더 커지면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작을 잘 해도 끝까지 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구원의 감격과 확신을 끝까지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끝까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자가 마침내 그리스도와 함께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을 완고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완고하다는 것은 고집이 세어 도무지 뉘우치지 않는 돌 같은 마음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권면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합니다. 마음이 강퍅하여 회개하기를 싫어합니다. 이렇게 완고한 마음은 안식을 얻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모세를 따라 출애굽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이 완고하여 순종하지 않은 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엎드러져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15-19)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를 돌아보고 살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으로 결부시키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들어도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영접하고 마음을 겸손케 함으로 순종하며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축복하시고 믿음대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사회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지치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잘 쉴 수 있을까에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는 ‘안식’이라고 하면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직장마다 주 5일 근무가 거의 자리 잡아가고 있고 국가적으로도 대체공휴일이다 임시공휴일이다 하면서 쉴 것을 권장합니다. 그러나 육신이 잘 쉬어도 믿음이 없어 걱정과 근심, 긴장과 불안, 죄의식과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까? 참된 안식은 영혼의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이 안식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옵니다. 4장4절을 보십시오.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6일간 창조의 역사를 끝내고 제 칠일에 안식하셨습니다. 이것이 안식의 원형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피곤해서 쉬신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날로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기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날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날로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안에서 교제를 나누는 날입니다. 이렇게 할 때 참된 영혼의 안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안식을 얻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큰 착각이었습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거기에도 참 안식이 없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안식은 단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성을 맺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자행자지했을 때는 안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살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심으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방황하다가 하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게 된 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아니고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다” 가인이 쉼이 없는 방랑자가 된 것은 그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발하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이 온갖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갖가지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그 마음에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만이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10) 그런데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은 이 안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신 그 안식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장벽을 허시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불순종하고 반발하면 마음에 안식이 없습니다. 참 안식에 들어가려면 말씀에 순종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합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암덩어리를 피한방울 내지 않고 섬세하게 도려내어서 완전하게 회복시킵니다. 말씀은 또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12) 말씀 앞에 나아갈 때 MRI로도 찾아내지 못하는 우리의 영혼과 뼛속깊이 숨겨져 있는 죄까지도 낱낱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내면의 모든 죄를 파해쳐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삶을 변화시키고 인격을 변화시킵니다.(13)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마음에 능력으로 역사하여 그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자기중심적인 자가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불순종과 반발심이 가득한 사람이 순종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우리의 죄악된 내면에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할 때 타락한 본성이 변화되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과거 세상에서 지치고 피곤한 삶을 살던 저를 캠퍼스 시절 찾아오사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참 안식을 주시고 기쁨과 생명력 충만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공부만 하기도 벅찬 학생시절에도 캠퍼스 양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바쁘게 지내면서 실제적인 믿음을 배우고 믿음의 승리를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졸업 후에는 조금 편해질 줄 알았는데 직장과 가정에서 더 많은 역할과 믿음의 투쟁을 감당해야 했고 나이를 먹을수록 감당해야 할 짐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평신도로서 메시지를 감당하는 것은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낮 시간에는 직장에 메여 있고 저녁시간에도 각종 모임을 섬겨야 하고 주말에도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메시지를 감당하려 하면 밤을 세워야 하는 날도 많아 신앙생활이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가끔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푹 쉬어보는 것이 저의 소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 때에는 모처럼 실컷 잠도 자면서 쉴 수 있었지만 그것이 저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지난주에는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로 환자가 늘어나 병원일도 많아졌는데 메시지 준비까지 하려하니 힘든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감당하는 가운데 저의 내면 깊이 숨어 있는 안일한 본성을 회개하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힘을 주심으로 지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말씀 안에 진정한 쉼이 있음을 알게 하시고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시고 하나님 안에 진정한 안식을 통한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안식을 사모하고 말씀의 은혜를 끝까지 붙들고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참 영혼의 안식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을 초청하여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누구든지 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갈 때 주님께서 주시는 영혼의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저희가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진정한 안식을 사모하고 끝까지 말씀을 굳게 붙들고 순종함으로 이 참된 안식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81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4강]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리스닝 2010-08-29 3215
680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9강]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관리자 2015-07-19 3211
679 고린도전서 [2011년 부활절수양회 제2강]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 - 최바울.. 관리자 2011-04-24 3210
678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4강]포도원의 노래 리스닝 2010-10-03 3210
677 마가복음 [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주제1강] 열둘을 세우신 예수님 관리자 2010-10-31 3209
676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21강] 진리의 왕 관리자 2015-08-09 3206
67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31강] 장사하라 관리자 2011-11-20 3206
674 요한계시록 [2008년송년감사예배]처음 행위를 가지라 사무실 2008-12-29 3199
673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8강] 하늘에서 양식을 내리리니 관리자 2009-05-31 3198
672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2강]변화의 능력자 예수님 리스닝 2010-03-08 3197
671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23강]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라 관리자 2014-07-13 3196
670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7강] 무엇으로 사는가 관리자 2011-05-01 3191
669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2강]참된 믿음 리스닝 2010-08-15 3191
668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2강] 주는 그리스도 관리자 2012-06-03 3186
667 이사야 [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준비특강]율법을 제자들에게 봉함하라 관리자 2010-10-10 3186
666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최바울) 리스닝 2010-04-11 3185
66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5강]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관리자 2011-10-09 3180
664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5강] 셋을 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3-04-21 3173
663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22강] 언약의 피 관리자 2012-08-19 3159
662 마태복음 [2009년마태복음제42강]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관리자 2009-03-13 3159
12345678910,,,4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