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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1-05 (일) 13:22
분 류 고린도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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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고린도후서 제6강]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2017년 고린도후서 제6강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말씀/ 고린도후서 6:11-7:16
 요절/ 고린도후서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두 가지를 권면합니다. 하나는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라는 것입니다. 신자들도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분별력이 흐려지기 쉽습니다. 이는 우리가 날마다 실제로 겪는 문제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또 양들이 부딪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가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있는 갈등과 문제들을 통해 하나님과 그의 뜻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영적 성장의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6:11-7:4)
  11,12절을 보십시오. “고린도 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마음을 열고 입을 열어 이들과 진솔한 대화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영접 못하는 이유는 목자 바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심정이 좁아져 있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현재 바울의 마음은 결코 옹색하지 않은데 거짓 교사들에게 속은 그들이 마음을 닫고 있어 불신과 오해로 친밀한 관계에 금이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아버지가 자녀를 대하듯 권면하니 고린도 교인들도 영적 아버지인 바울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넓히라고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7장 2절에서는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다시 한 번 간절히 권면하였습니다. 사실 목자 바울은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한 적이 없고, 해롭게 한 적이 없고, 속여 빼앗은 적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들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마음으로 하나 되어 함께 죽고 함께 살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는 바울의 최고의 애정과 소망을 나타낸 고백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가 전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기쁨을 자신과 함께 누리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오해로 막힌 벽을 허물고 소통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사도 바울의 아비의 심정과 상한 목자의 심정을 통해 드디어 이들과 다시금 영적 관계를 회복하게 도우셨습니다.
  14절부터 바울은 성도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관용과 화해를 하도록 호소하였으나 세상의 죄악과 불의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사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믿지 않는 자들과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해야 한다면 신자들은 모두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고전5:10)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도들의 삶은 믿지 않는 자들과는 확연히 구별된 거룩한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믿지 않는 자들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까?
첫째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아야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멍에는 소나 나귀가 쟁기나 달구지를 끌 때 목에 거는 나무 막대기를 가리킵니다. ‘멍에를 함께 멘다’는 것은 ‘함께 일한다’, ‘함께 사귄다’는 뜻입니다.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게 하면 엄청난 고통을 줄뿐 아니라 밭을 제대로 갈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아예 이를 금지시켰습니다.(신22:10) 이는 ‘신앙의 혼합화’ ‘신앙의 세속화’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다보면 믿지 않는 자의 악영향을 받아 신자의 짠 맛과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믿음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다섯 가지의 질문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과 결코 멍에를 함께 멜 수 없음을 밝힙니다. 첫째,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할 수 있으며, 둘째,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셋째, 그리스도와 벨리알(사탄)이 어찌 조화되며, 넷째,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다섯째,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묻습니다. 바울은 ‘어찌’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반복함으로써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신자들은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거하실 성전으로서 하나님만 섬기는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외롭다고 해서,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 해서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 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멸망의 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이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관용을 배우도록 하였지만 세상 세력에 대해서는 근본 본질을 파악하고 섞이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아무리 다급하고 힘들어도 우상을 따라 살며 벨리알(사탄)과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후 곧 바로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잘 살아보려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좇았을 때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괴로움이 심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삿2장)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백성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16b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이 말씀은 레위기 26:12절을 인용한 것으로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광야 여정만 인도하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이스라엘 가운데 계셔서 그들을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늘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이 말씀 또한 호세아서 1:10절을 인용한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성결한 삶을 살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접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에 더하여 세속적인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과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18)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영적 신분과 정체성을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는 마치 배가 바다를 떠다니지만 바다 물속으로 빠져서는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구별된 삶을 통해 주님의 복을 받는 자들이 될 것을 믿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7:1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이는 외부로부터 오는 세상세력에서 구별된 삶을 살뿐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거룩성을 회복하여 성결한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점점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동성연애를 합법화하여 죄로 여기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 믿는 자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에 순종하기 위해 영적 투쟁을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의인 열 명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대도 세상이 악한 것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사라지는 것이 더 큰 문제요, 나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경외심을 가질 때 온갖 더러움을 멀리 할 것입니다.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 모든 것을 심판하실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순수한 삶을 살고자 할 것입니다. 이는 바로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 탓을 하며 세상과 편승할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에 힘쓰며 나의 죄와 싸우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라(7:5-16)
첫째, 위로의 하나님
  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바울은 자신의 눈물의 편지를 디도를 통해 전달하고자 그를 고린도로 파송하였습니다. 그러나 드로아에서 예정대로 디도를 만나지 못하자 그는 마게도냐로 돌아와서 그곳에서 디도가 고린도 교회 소식을 가지고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때 그는 육체가 편하지 못한데다 사방으로 환난을 당했습니다. 밖으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과 더불어 싸워야 했고 안으로는 고린도 교회 문제로 인해 염려와 두려움으로 힘들었습니다. 특별히 눈물의 편지를 가지고 고린도에 갔던 디도가 약정한 기일에 오지 않고 지체되자 그로 말미암아 온갖 염려와 두려움이 그를 엄습하였습니다. 드로아에 선교의 문이 열렸으나 고린도 교회 소식을 듣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을 어떻게 위로하셨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디도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고군분투 하는 바울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디도를 고린도에 보내놓고 염려로 불안해하였는데 이제 디도가 무사히 귀환하자 큰 위로와 기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동역자를 보내주심으로 그를 위로해주셨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디도가 안전하게 돌아왔을 뿐 아니라 그가 고린도 교인들에게서 위로를 받았고 또 고린도 교인들이 목자 바울의 방문을 간절히 바란다는 것과 바울의 눈물로 책망한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기 잘못을 애통함으로 회개한 사실을 통하여 바울은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양들이 목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고 목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 모든 위로의 역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6)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주를 위해 사는 종들을 때를 따라 항상 위로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때 환난과 어려움을 헤쳐 나가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도 아물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루신 구체적인 역사가 무엇입니까?
둘째,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바울은 자신이 눈물의 편지를 써서 고린도 성도들을 근심하게 한 것을 잠시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오히려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근심으로 그들이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책망이 담긴 편지를 받고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였을 때 그들에게 영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를 볼 때 잠시는 힘들지만 양들의 죄 문제가 해결되도록 죄 문제와 함께 씨름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목자와 양 모두에게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어려움에 부딪힐 것을 각오하면서 그들이 죄 문제를 회개하도록 근심하게 했습니다. 죄 문제를 발견하고 회개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1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자기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임을 깨닫고 그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전심으로 애통해 하며 어떻게 하면 다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수 있을지 그 길을 찾기 위해 근심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세상 근심’은 자기의 잘못을 정당화시키고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고자 인간적인 노력을 함으로써 생기는 근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자 하면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면 오히려 근심이 생깁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 있는 죄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영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음행사건, 파벌문제, 우상숭배, 거짓 교사들을 용납하고 다른 복음을 용납하는 등 여러 문제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죄에 대한 분별력이 없어 사탄에게 휘둘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이들이 회개하고 믿음을 새롭게 하도록 도전하고 책망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비로소 영적 눈을 뜨고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회개하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한 대표적인 예는 다윗 왕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정욕의 죄를 범한 다윗 왕을 찾아가 그의 죄 문제를 지적했을 때 다윗왕은 변명하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근심하며 침상이 젖도록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12:13)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구원을 베푸시고 그의 왕권을 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죄 사함의 은혜를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2)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여든 유대인들에게 베드로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책망하자 그들은 마음에 찔려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그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때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구원에 이른 자가 3천명이나 되었습니다.(행2:37-41)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회개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영적 근심을 꺼려하고 은혜만 받고 죄와 타협하며 부담 없이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죄와 싸우지 않고는 구원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십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6-19) 심령이 부요하여 자족하지 말고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고 촉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거룩한 근심이 없이는 날마다 영혼을 오염시키는 죄의 세력에서 정결케 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거룩한 근심을 잃어버리고 세상근심을 하면 사망을 이루게 됩니다.(10b)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얼마나 귀한 열매를 가져옵니까? 11a절을 보십시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고린도 성도들로 하여금 다시금 새로워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통해 분별력이 생기자 바울을 변호하고자 애를 쓰게 되었고, 죄에 대한 분노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 그 동안의 죄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두렵게 하였습니다. 목자 바울에 대한 태도가 변하여 이제는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복음을 지키고자 하는 열심도 생겼습니다. 더 나아가 고린도 교회는 죄악된 세력을 방관하였던 옛 자세를 벗고 죄를 징계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고자 변하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11b)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한 모든 노력에 감격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 자신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어지럽혀졌던 모든 문제들이 깨끗하게 정리되었을 때 기쁨을 누리는 것과 같이, 비바람으로 휘몰아치던 하늘이 맑고 평온한 하늘로 바뀌었을 때와 같이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이루신 깨끗케 하는 역사로 인해 너무나 평안하고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개인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그 시대를 살립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나라는 망했지만 바벨론 왕궁의 술 맡은 관원장으로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며 강대국의 특혜를 누리며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국의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이 불타고 남아 있는 자들이 환란과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울며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이 무너진 현실로 인해 심히 근심하고 슬퍼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섬기지 못한 백성들의 죄에 대한 영적인 거룩한 근심이었습니다. 그가 황제에게 목숨을 걸고 휴가를 신청하였을 때 특별 휴가와 함께 예루살렘 성벽재건에 필요한 재목과 군대 장관과 마병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절망 가운데 빠진 백성들에게 믿음과 소망을 심고 백성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을 때 십 수 년 동안 중단되었던 예루살렘 성 중건역사는 불과 52일 만에 끝마치게 되었습니다.(느6:15) 거기에 성경선생 에스라가 돌아와 수문 앞 광장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새벽부터 정오까지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쳤을 때 백성들은 다 함께 모여 금식하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느9:2)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Mother Barry 선교사님은 1960년대에 절망 가운데 있는 캠퍼스 젊은이들을 일으켜 세우려는 거룩한 영적 근심을 가지고 캠퍼스 선교를 시작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통해 UBF운동이 불같이 일어났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계승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생명을 살리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를 통해 나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며, 또 양들도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 믿음을 배우도록 도와야 하겠습니다. 현재 나는 어떤 근심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인가, 세상근심을 하는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통해 주님께 얼마나 간절하며, 얼마나 죄에 대해 분해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여 우리와 우리 모임이 깨끗하게 되고 이 시대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들로 성장하고 변화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통해 목자 바울을 향한 그들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나타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소원대로 바울도, 디도도 기쁨과 안심을 얻게 되고, 특히 디도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심정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셔서 큰 성령의 열매를 얻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시 한 번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합니다.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16) 바울이 단호하게 그들을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여 도울 때는 냉철하게 비판하는 것 같았으나 그의 마음으로는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와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양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돕되 변함없는 사랑과 신뢰와 아비의 심정으로 돕는 것을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애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통해 더욱 분명한 복음신앙을 가진 종들로 성장해 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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