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3-25 (일) 12:34
분 류 고린도전서
첨부#1 2018년_부활절1강-1(이인구).hwp (64KB) (Down:72)
ㆍ추천: 0  ㆍ조회: 1114      
IP: 61.xxx.106
[2018년 부활절 제1강] 부활의 첫 열매

 2018년  부활절 제1강                                                                이인구

부활의 첫 열매

말씀/ 고린도전서 15:1-34
요절/ 고린도전서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어느 학교에 필립이라는 지적 장애를 가졌지만 예수님을 사랑해서 밝게 사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부활절 3일전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설명하고 계란을 하나씩 나눠줬습니다. 그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고 반이 열릴 수 있도록 된 모형인데 선생님은 부활을 나타내고 부활의 열매가 될 만한 것을 하나씩 담아 가져오도록 시켰습니다. 부활절날 아이들은 가져온 것을 하나씩 열어 보여줬습니다. 첫째 아이는 예쁜 꽃을 담아왔는데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나타낸다고 설명했습니다. 둘째 아이는 파릇파릇한 새싹을 담아왔습니다. 부활의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아이는 아름다운 나비를 담아왔습니다. 애벌레에서 다시 태어나는 생명이라 했습니다. 마지막 필립이 자기가 담아온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계란을 열었을 때 모두 긴장했습니다. 계란을 열었을 때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역시!’ 아이들은 그러면 그렇지 필립은 아무 것도 못 가져왔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때 필립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잖아요!”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무덤은 있으나 시체는 없습니다. 시체 없는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의 믿음은 예수님의 빈 무덤위에 세워졌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부활을 부인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와 의미에 대해 변증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신앙을 가짐으로 세상의 죽음의 세력을 이기는 생명력을 덧입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이 전한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헛되이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죽으면 음부에 들어간다고 믿어 육신의 부활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사두개인들은 영혼과 육체의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또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인들의 헬라철학은 영혼 불멸은 믿었으나 육신의 부활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상의 영향을 받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부활을 부인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신과 함께’ 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예전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이 영화는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저승 법에 의해 죽은 후 7번의 재판을 거치는 내용입니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7개의 지옥에서 7명의 지옥대왕의 재판을 무사히 통과한 자만이 환생(부활)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착하게 살면 환생할 수 있다.” 라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착하게 살면 구원받아 환생한다는데 그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초신자들은 영화를 보고 감동받아 ‘착하게 살아야지!’ 다짐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는 담담합니다. 이에 바울이 안타까움 가운데 논리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변증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첫째, 성경대로(3,4)
  죽음은 우리가 죽어보지 않아도 모두 죽기 때문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활은 경험도 없을뿐더러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전체의 주제와 방향은 결국 구원자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성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악된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와 한 제자의 배신 때문에 억울하게 죽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죽으시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메시아의 죽음은 창세기 3장15절, 창세기22장, 출애굽기 12장, 시편 22편, 이사야 53장, 다니엘서 9장26절, 스가랴 12장10절에 예언했으며 부활은 시편 16장10절, 이사야 53장10절, 호세아 6장2절, 요나 2장10절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처음 죄를 지을 때부터 구원자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
둘째, 증인들(5-11)
  부활에 대한 증거에는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12제자 그리고 500여 형제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고 그 중에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15장을 기록할 당시까지 태반이나 살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 마지막으로 바울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거자입니다. 사실 이들 이외에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부터 부활의 첫 목격자인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이 있었고 엠마오의 2제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여인들은 법적으로 증인의 자격이 없었고 엠마오의 2제자는 신상 파악이 안되므로 법적 증거를 위해 제외됐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부활의 증인들이 인간적 의리로 또 믿음이 좋아서 부활의 증인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도망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특별한 경험, 즉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고 이 세상의 삶 이후 또 다른 영생의 삶이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자신들도 부활함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예수님을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기록된 이들 외에 역사를 걸쳐 수많은 부활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지 못했어도 말씀을 들음으로 믿게 된 믿음의 산 증인들입니다. 그들 또한 연약하고 죽음의 세력에 매여 살았던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극적으로 변화된 자신들의 삶을 통해 세상가운데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칭 신자라고 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과 삶을 사는 이들은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와 증인들이 있음에도 여전히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은 인정한다 해도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인데 왜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입니까? 많은 이들이 세상의 거짓사상의 미혹을 받아 분별력을 잃었기 때문이지만 더 근원적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부활 후 하늘나라보다 지금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세상,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욜로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욜로(YOLO)는 You only live once라는 뜻으로 남보다 자신, 미래보다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고 추구하는 가치관을 말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 현재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번 사는 인생 네 마음껏 즐겨라!’ 입니다. 그래서 회사에 사표내고 세계 일주를 하거나 차살 돈은 없지만 고가의 자전거를 사서 놀러 다닙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매일 비싼 커피를 즐기고 한 달 번 돈으로 명품 옷을 사서 입습니다. 유통, 판매업체들은 이런 가치관에 편승하면서 ‘탕진잼’(탕진하는 즐거움)을 외치며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현재 더 많이, 더 빡빡 쓰도록 부추깁니다. 이런 세상의 가치관 속에서 예수님의 부활과 나의 부활이 너무 멀리 느껴집니다.
  바울은 그들 주장대로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If 라는 가정법을 써서 말했습니다.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신자의 전파하는 것도 헛되고 신자의 믿음도 헛것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 사함을 받았다고 믿었는데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신자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구원자가 아니고 우리도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부활이 없다면 처음 예수님을 만나 죄 사함 받았을 때의 눈물과 기쁨, 어려울 때 예수님이 주신 위로와 사랑, 예수님께 받은 비전 등 모든 것이 헛것이고 우리는 그동안 큰 착각에 빠져 살았던 어리석고 불쌍한 자가 됩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먼저 앞서 나가기 위해 열심히 뜁니다. 더 빨리 가기 위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열심히 뜁니다. 하지만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최선을 다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도 나는 자를 당할 수 없습니다. 타고난 능력자, 천재를 당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는 자 등에 타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소위 말하면 금수저를 넘는 다이아몬드 수저, 회장 아들, 조물주보다 높다는 건물주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신자는 어떻습니까? 평생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고 기어가는 자입니다. 다른 사람들 뒤에서(밑에서) 십자가를 지고 기어가는 이유는 그런 삶을 산 예수님처럼 다시 부활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한센병(문둥병)은 얼굴이 문드러지고 손발이 잘려나가는 가장 끔찍한 병입니다. 사람들은 한센인을 신조차 버렸다고 하여 소록도에 가둬놓고 사람들에게 가까이 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주의 섬 소록도에서 무려 43년 동안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두 명의 외국 수녀 간호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렛입니다. 그들은 1962년 각각 27살 28살에 소록도에 와서 약 반세기동안 문둥병 환자들을 섬겼습니다. 예수님처럼 그들의 상처를 만지며 마음의 상처까지 어루만졌습니다. 하지만 나이 70을 넘어 암에 걸렸습니다. 더 이상 소록도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되자 소리 소문 없이 편지 한 장만을 남겨두고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수녀의 귀향길에는 처음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헤어진 가방 한 개만 들려 있었습니다. 교회와 소록도 병원에서 평안한 노후를 보장해준다고 제의했지만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된다며 사양하시고 돌아간 오스트리아 수녀원에서 최저 생계비로 남은 인생을 살고 계십니다. 가장 젊고 아름다운 시절, 꽃다운 나이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가장 낮고 비천한 나병 환자들을 섬겼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머리 둘 곳 없이 살며 비천한 죄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 십자가의 삶을 따라 부활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그들 이외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삶을 따르다 죽은 수많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과 전쟁 중인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등 세계의 위험하고 어려운 곳에서 평생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하며 전도하며 살다 이름도 남기지 않고 죽은 수많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라면 이런 사람들의 인생은 너무나 불쌍할 것입니다. 억울할 것입니다. 그 능력 많은 사람들이, 그 예쁘고 멋있는 사람들이 누릴 것 다 누려보지 못하고 즐길 것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하고 주님을 위해 양들을 위해 일평생 희생만 하다 늙어버린 이들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있기 때문에, 부활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분들의 인생은 결코 불쌍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들의 삶은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But now!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모든 가정들을 다 불식시키고 분명한 사실, 진리를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첫 열매는 다음 열매의 보장이 됩니다. 어떤 나무에 첫 열매가 열렸다는 것은 그 다음부터 그 나무에서 자라난 싹들이 그와 똑같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첫 열매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고 어떻게 우리도 부활할 수 있습니까? 21-23절을 보십시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그 죄의 피를 물려받고 태어난 인류는 죄의 결과로 죽게 됐습니다. 우리가 갓 태어난 아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순수하고 해맑은 영혼 때문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자라면서 죄악된 환경 속에서 아담의 죄의 유전자가 발현될 때 죽음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좋든 싫든 아담의 죄의 피를 거부할 수 없고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첫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그 복음을 믿고 영접한 자의 모든 죄가 깨끗케 된 것입니다. 첫 열매인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에게 속한 자도 부활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에 속한(belong to)자입니다. 그리스도에 속한 자는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도 아니고 나는 자 등에 타고 있는 자도 아닙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에 속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에 속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요, 연합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3,4,5) 그리스도에 속한 자는 복음을 믿어 죄 사함 받은 후 예수님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며 연합한자를 말합니다. 포도나무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을 때 그 생명력을 받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안에 속할 때(거할 때)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올라가 우리가 잘 올라오나 아니면 미끄러져 내려가는가 바라만 보지 않으십니다. 부활 후 하늘에 올라가셨지만 곧바로 성령의 모습으로 믿는 모든 이들에게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오셔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마지막 부활 때까지 동행해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얼마 전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tv프로그램에서 놀라운 부부를 봤습니다. 나이든 그 부부는 매달 같이 등산을 하는데 항상 몸이 붙어서 등산을 합니다. 그 이유는 남편이 젊을 때 병으로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은 스스로 산에 오를 수 없지만 앞서가는 아내를 붙잡고 의지해서 한걸음씩 산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부부가 오랜 세월동안 일심동체로 한 몸이 되었을 때 건강한 일반사람들도 어려워하는 눈 덮인 겨울산도 도전하고 오를 수 있었습니다. 왜 위험한 산에 오르느냐 질문하자 이 노부부는 부부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할 때 얻는 기쁨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를 때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지만 함께 정상에 오른 후 얻는 성취감과 기쁨은 그 모든 고통을 뛰어넘고 더욱 부부가 사랑과 신뢰로 한 몸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 속한 신자와 함께 하며 마지막 부활 때까지 인도하십니다. 마지막 때뿐 아니라 지금도 세상에서 나를 얽매이는 죽음의 세력과 싸워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고린도전서15장 말씀은 바울이 불신자들에게 준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한 고린도 성도들에게 준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받아 신자로 사는데 왜 부활을 부인하는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사실 지금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부활신앙 없이 죄와 죽음권세에 매여 삽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것은 첫 열매되신 예수님께 속한 자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믿고 따르며 순종하는 삶,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죄와 죽음권세에 지배받지 않는 생명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 다시 세상의 죄와 죽음권세에 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중엔 내가 정말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을까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신자는 끊임없이 첫 열매되신 예수님께 속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설사 수시로 세상 죽음의 세력에 넘어질지라도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들고 다시 일어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자신의 자랑이 무엇인가 밝히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죽는 것이 그의 자랑이라고 말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돈과 명예를 자랑하고 힘과 미모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동안 주안에서 약한 것을 자랑하다가 이제 날마다 죽는 것을 자랑합니다. 이 말은 바울이 하루빨리 죽어 부활하기 위해 날마다 자살을 시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일 죽을 각오로 예수님을 따를 때 부활의 능력을 체험했다는 뜻입니다. 또 그가 예수님 안에서 부활신앙으로 살기 위해 날마다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그 제자들을 죽이려고 했던 자로 가장 가까이 사망 편에 선 자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후 남은 제자들을 소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밝은 빛에 바울은 사망의 어둠 편에 섰던 자신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의 빛 앞에서 회개하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게 됐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증거하며 많은 생명을 돌이켰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바울은 더욱 예수님을 닮고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 위해 매일 자신의 본성을 죽이는 고통과 투쟁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자기가 죽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력을 덧입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바울의 고백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진리였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 9;23,24)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외부에 있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부모님이나 친구나 스마트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 안에 있는 죄악된 본성 때문입니다. 내 안에 있는 탐욕, 거짓, 이기심 등 나만을 위해 살고 싶은 죄악 된 본성 때문입니다. 또 두려움, 슬픔, 무기력, 허무 등 믿음과 대적하는 본성 때문입니다. 신자가 부활신앙을 덧입기 위해서는 매일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죽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때 부활의 능력과 생명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악된 본성이 살아날 때 부활신앙을 잃게 되고 결국 죽게 됩니다. 부활신앙이 없어 미래가 보이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32)의 체념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 신앙이 없을 때 자기중심적이 되고 근시안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나를 위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내가 살기 위해, 빼앗기지 않기 위해 욕심 부리며 다른 이들에게 상처 주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합리적인 것이고 현명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속한 우리는 세상의 죄악된 가치관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생명은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 후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며 깨어 의를 행해며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신자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 손해 보더라도 부활신앙으로 다른 이들에게 양보할 수 있고 섬길 수 있고 또 희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가신 길이요 또 부활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름으로 진정한 부활생명을 얻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최근 병원 이전문제에 직원문제까지 겹치면서 개업 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다시 주일예배 메시지를 감당하게 됐습니다. 큰 부담이 되었지만 믿음으로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란 바람으로 메시지를 준비하는데 현실적으로 조금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힘들게 구한 직원은 한 달도 안 되어 또 그만두고 이전될 치과 인테리어는 큰 물질을 들였는데도 싼티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물질에 대한 손해의식으로 부활메시지가 써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말씀을 붙들면서 예수님 안에서 날마다 죽는 삶이 생명을 얻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그동안 안정된 삶 가운데 장차 부활의 소망보다는 세상의 즐거움과 만족에 빠져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실의 고난가운데 부조리한 세상을 깨닫고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고 붙들게 도와주셨습니다. 불안정하고 죄악된 세상의 기쁨을 구하기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 부활의 산 소망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죄악된 세상에 빠지지 않고 예수님의 가신 길을 따름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살면서 부활의 생명을 덧입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우리도 결국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게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 본성을 죽이고 예수님을 따름으로 부활의 생명력을 덧입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38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8강] 씨가 나서 자라되 관리자 2018-05-20 948
537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7강]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는 자 관리자 2018-05-13 963
536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6강] 열둘을 세우셨으니 관리자 2018-05-06 1060
535 누가복음 [2018년 누가복음 특강]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관리자 2018-04-29 913
534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5강] 어느 것이 옳으냐? 관리자 2018-04-22 1010
533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4강]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18-04-15 1022
532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3강]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관리자 2018-04-08 886
531 고린도전서 [2018년 부활절 제2강] 부활의 영광과 승리 관리자 2018-04-01 989
530 고린도전서 [2018년 부활절 제1강] 부활의 첫 열매 관리자 2018-03-25 1114
529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강]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관리자 2018-03-18 1197
528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강]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1 관리자 2018-03-11 1030
527 이사야 [2018년 새학기 준비 특강 제2강]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관리자 2018-03-04 1059
526 예레미야 [2018년 새학기 준비 특강 제1강] 희망찬 미래를 주는 것이니라 관리자 2018-02-25 1117
525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4강] 되살아나리라 관리자 2018-02-18 1141
524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3강] 마른 뼈들을 큰 군대로 관리자 2018-02-11 1552
523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2강] 나를 대신하여 깨우치라 관리자 2018-02-04 1391
522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1강]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말하라 관리자 2018-01-28 1749
521 에베소서 [2018년 신년 제3강]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관리자 2018-01-21 1647
520 에베소서 [2018년 신년 제2강]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관리자 2018-01-14 1069
519 이사야 [2018년 신년 제1강]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관리자 2018-01-07 1087
1,,,11121314151617181920,,,37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