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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4-01 (일) 12:32
분 류 고린도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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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부활절 제2강] 부활의 영광과 승리

 2018년 부활절 제2강                                                           최동진

부활의 영광과 승리

말씀/ 고린도전서 15:35-58
요절/ 고린도전서 15:57,5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지난 시간 우리는 부활의 확실성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생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부활합니다. 이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밝혀낼 수 없는 비밀에 속한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여기에 대해 확실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가 입게 될 부활의 몸이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현재의 모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스러운 모습임이 분명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영광스러운 부활에 대한 소망을 충만히 덧입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I. 영광스러운 부활(35-49)
  35절을 보십시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고린도 성도들 중에는 영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서 육체의 부활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썩어서 형체가 없어지거나 화장을 하는 경우 한 줌의 재만 남게 되는데 어떻게 다시 살 수 있습니까? 젊을 때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입니까,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입니까? 성형수술을 한 사람은 성형수술 전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입니까, 성형 수술 후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입니까? 현재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한다면 부활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질문을 하는 자들을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연의 법칙을 비유로 부활의 진리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첫째로, 씨는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씨는 땅에 뿌려져 죽어야 새 싹이 나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게 됩니다. 우리 몸도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죽음은 부활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창조주로서 능히 부활의 몸을 입게 하십니다.
둘째로, 씨를 뿌릴 때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작은 알맹이를 뿌릴 뿐입니다. 씨는 그 생김새가 다 비슷비슷합니다. 작고 보잘 것 없습니다. 씨만 보면 어떤 나무나 꽃이 피어날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씨를 땅에 뿌리면 그것이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꽃으로 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체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고 잘 생긴 사람도 있고 개성있게 생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 결국은 땅에 심기고 죽을 씨앗에 불과합니다. 씨앗이 잘생기면 어떻고 못생기면 어떻습니까? 좀 작으면 어떻고 뚱뚱하면 어떻습니까? 어떤 몸으로 심든지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형체를 주실 것입니다. 거룩한 믿음으로 섬기는 삶을 산 사람은 거룩한 믿음이 형상화 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은 천군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에 애쓰고 투쟁한 만큼 열매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그 열매는 부활의 영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입게 될 부활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열심히 씨를 뿌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육체라고 다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공중의 새는 하늘을 날기에 적합한 육체를 가졌고 물고기는 물에서 살기에 합당한 육체를 가졌습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습니다. 그 형체들마다 각각의 영광이 있는데 그 영광이 다 다릅니다. 태양처럼 강렬하게 빛나는 영광이 있고, 달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영광도 있으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영롱하게 빛나는 별들의 영광도 있습니다. 이 땅에도 스타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스타, 아이돌 스타에 열광합니다. 그러나 그런 스타는 아무리 많은 인기와 부귀영화를 누려도 그 영광이 하늘의 별의 근처에도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하였습니다.(단12:3) 미세먼지가 자욱한 날에도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캠퍼스에 올라가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 목자님들이야 말로 진정한 스타입니다. 부활의 때에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으로 나타나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아멘!
  사도바울은 장래 부활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이 땅의 모습과 대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42-44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첫째,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날 우리는 몸이 우상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모를 가꾸는 데에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합니다. 남자들은 초코렛 복근에 조각 등근육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합니다. 여자들은 44사이즈의 옷을 입기 위해 폭풍 다이어트를 합니다. 그러나 젊은 날의 아름다움은 한 때뿐이고 세월이 지나면 다 망가져 버립니다. 세상의 인기나 명예도 그 영광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결국은 모든 것이 다 썩어서 없어지고 맙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은 본질적으로 썩을 것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 것들은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때 우리는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쇠하여지지도 아니하며 영원히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둘째,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욕됩니다. 욕되다는 것은 불명예, 수치, 치욕을 뜻합니다. 요즈음 들풀처럼 번지고 있는 me too 운동을 보면 사람이 죄의 유혹 앞에 얼마나 약하고 욕된 존재인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고 싶으나 죄의 욕망,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혀 욕된 길로 행하게 됩니다. 거룩하게 살고 싶으나 더럽고 추한 정욕의 죄에 빠져 행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때에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살게 됩니다. 더 이상 죄가 사람의 몸을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의 종노릇 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거룩한 소원을 좇아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셋째,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현재 흙으로 지음 받은 우리의 몸은 연약합니다.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병에 잘 걸립니다. 작은 바이러스에만 감염 되어도 앓아눕습니다. 젊을 때에는 강철 같이 건강하던 사람도 나이를 먹을수록 아픈 곳이 늘어나게 되고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이제 막 캠퍼스 생활을 시작한 형제 자매님들은 실감이 안 나겠지만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이 모든 인류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많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구글에서는 ‘벌거숭이 두더지쥐’를 연구하여 인간수명을 500세까지 연장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벌거숭이 두더지쥐’는 보통 35년 정도 산다고 합니다. 이는 2~3년 정도 사는 보통의 설치류와 비교해볼 때 10배 이상 더 사는 것입니다. 이런 두더지 쥐의 노화 유전자를 찾고 그 작동 원리를 밝혀내어 사람에게 적용시키면 800세까지 사는 것도 가능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2017년 통계에 의하면 평균 수명에 비해 건강 수명은 15~20년 정도 짦아 인생 말년에 오랜 기간을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치매, 중풍, 기타 노인성 질환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오래 산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때에 강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병들지 않는 몸, 죽지 않는 몸, 하루 종일 탁구를 쳐도 지치지 않는 몸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21:3,4절은 말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넷째,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육체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장차 부활하게 될 때 신령한 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육체를 ‘묻는다’ 하지 않고 ‘심는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왜 바울은 ‘심는다’고 했을까요? 심는 것은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씨를 묻는다 하지 않습니다. 씨는 심는 것입니다. 바울도 육신의 몸을 입고 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존재였습니다.(롬7:18,19) 그는 죄를 짓는 자신의 몸을 가리켜 사망의 몸이라고 말했습니다.(롬7:24)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 썩을 몸을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에 쓰지 않고 은혜의 복음 전하는 데에 전부 드렸습니다. 그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죽을 것도 각오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전 생애를 예수님을 알아가고 나타내는 데에 심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의 존재는 영광스럽게 되었으며 많은 영적 열매들을 맺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죄악 되어서 육체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욕심대로 살다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또한 육체는 약하여서 온갖 병에 걸려 고통합니다. 몸은 아무리 아껴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사그라들어 결국 죽어 한줌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 육의 생명을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 안에 심으면 장차 영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이 썩을 생명을 심으면 썩지 않을 생명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이처럼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가는 세상에 소망을 두기보다 영원한 것을 위해 심을 줄 아는 가치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씨를 심으면서 당장에 열매를 보기를 원합니다. 내 눈으로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지 못하면 실망하고 손해의식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이 땅의 열매는 결국 다 썩고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 후 얻게 될 영광은 이 땅에서 얻을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영광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해야 할 것은 부활 후에 얻게 될 영원한 영광입니다. 장차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바라보며 날마다 예수님 안에 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45-49절을  보십시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바울은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을 대조하여 육의 몸과 신령한 몸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심으로 생령(a living being)이 되었습니다.(창2:7) 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로서 한계적이고 욕된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 났기 때문에 아담의 형상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는 썩고 더럽고 쇠하고 연약한 몸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아담의 후손으로만 산다면 우리 인생은 결국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생명을 살려주는 영(a life giving spirit)이십니다. 예수님은 신령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됩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강하고 영광스러운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

II. 최후의 승리(50-58)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설명합니다. 50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사람은 죽으면 살과 뼈는 썩어져 없어집니다. 결국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혈과 육의 몸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삶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지구에서 살도록 만들어진 몸으로 달에 가기 위해서는 우주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우주복을 입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과정을 거쳐 하나님 나라에 맞는 부활의 신령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일은 언제 어떻게 일어납니까? 51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바울은 성도들에게 비밀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비밀이란 사실이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것입니다. 비밀은 아무에게나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 비밀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만 가르쳐주는 아주 특별한 비밀입니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비밀을 듣고 있습니다. 이 비밀은 우리의 이성과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비밀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날 때 우리가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지 아니할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하늘의 형상을 입고 나팔수들과 천사들을 대동하고 구름타고 오십니다.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시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시고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을 쥐시고 해처럼 밝은 광채와 함께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실 것입니다. 그 날에 자기 이름이 불리어지는 사람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 날에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서 하늘에 들려올라가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이름이 불리어지지 않는 자는 슬피 울며 바깥 어두움에 쫓겨나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이 날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아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요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우리는 부활의 비밀스러운 소망을 간직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부활의 몸을 입게 될 이 영광스러운 소망에 대한 확신을 말합니다. 53절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집에서,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더 안락하고, 즐겁고 화려하고 멋있는 삶을 살아갈까에 관심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정이나 평가, 인기에 목을 매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주님의 재림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때 내가 과연 들림 받을 수 있을까? 내 이름이 호명 될 것인가? 그리고 주께 어떤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있어야 합니다. 그 때 어떤 말씀이 이루어집니까? 54절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이 말씀은 이사야서 25:8절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는 말씀의 성취인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고 있지만 썩을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사망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삼켜 버림으로 사실상 이 세상에서 왕 노릇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나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죽음 권세 앞에서는 굴복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생들이 결국은 죽음에 삼킨 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의 그 날에는 사망이 예수님에게 삼킨 바가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삼켜버리셨습니다. 바울은 호세아 13:14절을 인용하여 죽음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노래합니다. 55,56절을 보십시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부활의 예수님으로 인해 죽음은 패배자가 됩니다. 죽음은 죄의 독화살을 쏴서 인생들을 괴롭힙니다.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죽음이 쏘는 독화살에 맞으면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짓게 됩니다. 율법은 그를 죄인으로 정죄하고 죽음을 당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율법도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몸으로 부활할 때에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율법도 필요 없게 됩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가 죄와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된 것은 우리 대신 사탄과 피 흘리기까지 싸워주신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최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5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첫째로,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부활이 없다는 자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들고, 나도 세상과 좀 타협해서 인생을 즐기며 여유롭고 멋있게 살아보고 싶은 유혹이 들어 올 때가 있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온통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붓고 미래를 준비하는 친구들을 볼 때 내가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탄의 속임수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신앙에 뿌리를 견고하게 내리고 부활의 믿음과 소망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그날에 우리도 부활하여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믿고 소망 가운데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본성적으로 자기 일에 관심이 많고 자기 일에 힘을 씁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자기 기업을 세우기 위해 전 인생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세상일들은 지내놓고 보면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장차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데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으로 사는 자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일이란 주님의 뜻을 좇아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몰라 사탄에게 종노릇 하며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보람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섬기느라 많은 수고와 아픔을 감당합니다. 우리 사모님들은 비가 오나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나 상관하지 않고 변함없이 양들을 섬기기 위해 캠퍼스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섬겨도 변화될 줄 모르고 떠나가는 양들을 볼 때 내가 드린 모든 시간과 물질과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확신있게 증거합니다.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가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모든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린 모든 헌신과 수고를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다 받으십니다. 주님을 위해 드린 진심과 수고와 헌신은 하나님 나라에 차곡차곡 쌓여서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더 좋은 것으로 다 갚아주십니다. 또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도 생명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믿음으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과거 이 썩을 세상에서 썩어 없어질 것들을 소망하며 살다가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던 저를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 가운데 주님의 일에 힘쓰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캠퍼스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기도하며 시간과 물질을 드리며 캠퍼스 생명 구원 역사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수고를 해도 눈에 보이는 열매가 맺혀지지 않을 때 그동안 주님을 위해 드린 모든 세월과 수고가 헛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는 주변 동료들과 비교할 때 내가 너무 대책 없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주의 일에 열심을 내는 삶이야말로 가장 대책 있는 삶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다 언젠가 쇠하고 썩고 없어집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죄의 세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이 땅은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의 삶 가운데 많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상급이 보장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제가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부활의 열매에 대한 소망을 굳게 붙들고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한 번 뿐인 인생을 예수님 안에 뿌리고 심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살면서 죄의 소욕에 시달리며 세상 유혹 앞에 흔들리기 쉽습니다. 좋아 보이는 것들이 많은 세상에 속아 헛된 것을 좇아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심겨질 때 죄의 세력을 이기고 생명력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마지막 날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우리 모두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부활의 복음 위에 굳게 서서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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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7강]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는 자 관리자 2018-05-13 963
536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6강] 열둘을 세우셨으니 관리자 2018-05-06 1060
535 누가복음 [2018년 누가복음 특강]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관리자 2018-04-29 913
534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5강] 어느 것이 옳으냐? 관리자 2018-04-22 1010
533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4강]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18-04-15 1022
532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3강]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관리자 2018-04-08 886
531 고린도전서 [2018년 부활절 제2강] 부활의 영광과 승리 관리자 2018-04-01 990
530 고린도전서 [2018년 부활절 제1강] 부활의 첫 열매 관리자 2018-03-25 1114
529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강]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관리자 2018-03-18 1197
528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강]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1 관리자 2018-03-11 1030
527 이사야 [2018년 새학기 준비 특강 제2강]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관리자 2018-03-04 1059
526 예레미야 [2018년 새학기 준비 특강 제1강] 희망찬 미래를 주는 것이니라 관리자 2018-02-25 1117
525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4강] 되살아나리라 관리자 2018-02-18 1141
524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3강] 마른 뼈들을 큰 군대로 관리자 2018-02-11 1552
523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2강] 나를 대신하여 깨우치라 관리자 2018-02-04 1391
522 에스겔 [2018년 에스겔 제1강]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말하라 관리자 2018-01-28 1749
521 에베소서 [2018년 신년 제3강]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관리자 2018-01-21 1647
520 에베소서 [2018년 신년 제2강]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관리자 2018-01-14 1069
519 이사야 [2018년 신년 제1강]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관리자 2018-01-07 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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