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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4-08 (일) 12:39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8년_마가복음3강-1(오정훈).hwp (55KB) (Down: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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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3강]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2018년 마가복음 제3강                                                             오정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말씀/마가복음1:29-45
요절/마가복음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어릴 적에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던 것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근대화시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전도하시므로 죄인들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이 시간 예수님의 이 분명한 사명관과 정체성을 배우므로 캠퍼스 복음 전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종들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병든 인생들을 고쳐주시는 예수님(29-34)
29절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회당에서 나와 곧’ 이란 말씀은 조금도 쉬지 않으시고 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아마도 시몬과 안드레가 집에 무슨 일이 있어서 예배에 나오지 않아서 심방가신 것 같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아니나 다를까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열병은 고열을 동반하고 목숨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중한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에 자주 발생하던 말라리아 같은 병으로 생각됩니다. 지금도 아프리카로 여행 가려면 미리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어야 할 만큼 중한 병으로 여깁니다. 이런 열병에 걸렸으니 온 식구들이 걱정하고 본인의 고통은 매우 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은 가끔 왜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을까 도저히 알 수 없는 질문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대개는 사위 시몬이 잡으라는 고기는 안 잡고 예수님 따라다닌답시고 집에 십 원 한 푼도 안줘서 딸을 힘들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딸 고생시키는 사위를 보면 열불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스마트 폰만 보는 아이, 집에 와서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심부름만 시키는 남편을 보면 열불이 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열병에 걸려 안식일에 참된 안식과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시몬의 장모를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31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은 말씀을 하시거나 열병을 꾸짖지 아니하시고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므로 열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전에 회진을 돌 때 기계적으로 환자를 체크만 하지 않고 모든 환자의 손을 잡아주며 ‘얼마나 아프십니까?’ 위로해주는 의사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손만 잡아줘도 고통 속에 있는 환자가 위로를 받아 절반은 나은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이런 사랑과 관심의 손길로 시몬의 장모를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떠나게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증상이 호전되거나 조금 나아진 것이 아니라 즉각적이고도 완전한 치유를 나타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치료는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영육 간에 병든 우리를 치유하시는 것도 잘 먹고 잘 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섬기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십니다. 여인은 이로서 고통 가운데 있던 안식일에 완전한 치유와 회복을 얻으므로 진정한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유대인의 날짜 계산법에 의하면 해가 지면 안식일이 끝났습니다.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가 지기 무섭게 병자들, 귀신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온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왔는지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문 앞에 운집한 것을 보면 참 아픈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2달 전에 고대 안암병원에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꾸역꾸역 병원으로 계속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왔을까 참 세상에 아픈 사람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 저물어 해 질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물어 해 질 때라는 것은 하루가 끝나고 쉴 때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말씀을 전하시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도 낫게 하시느라 여러모로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수고하고 쉬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찾아오면 짜증나고 ‘사람들이 염치가 있어야지’ 화가 나게 됩니다. 그러나 영육 간에 병든 인생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염치를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어떻게 하여 주셨습니까? 34절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다 영접하시고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아래로는 치질 무좀 변비로 해서 위로는 심장병 허리디스크 만성신부전 각종 난치성 질병까지 예수님은 모든 병든 자를 돌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말 못하는 귀신, 도박중독 귀신, 정욕귀신, 분노 조절장애 귀신 등 그 시대 영혼들을 사로잡고 있는 귀신들을 다 내쫓아 주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병자를 다 영접하시고 치료하여 주신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아픔과 병든 내면을 깊이 이해하시고 돌아보시는 은혜와 긍휼의 주가 되십니다. 이 은혜를 체험한 세리 레위는 이 예수님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마12:20,21) 이 시대에도 많은 영혼들이 영육 간에 병들어 고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Broken family로 인한 상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좌절과 스트레스로 작은 상처만 받아도 이를 참지 못하고 폭발시키는 분노조절장애를 앓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열등감과 무기력으로 사람들과 정상적인 사귐을 갖지 못하고 소망 없이 우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분노조절 장애 또 우울증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담스러워 피하고 모른 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도 다 영접하시고 그 병을 고치시므로 내면의 어두움을 다 몰아내셨습니다. 이 예수님만이 병들고 상처받은 이 시대 유일한 희망이요 빛이 되십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이 예수님께 영육 간에 병든 영혼들을 데리고 나옴으로 이들이 나음 받고 회복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은혜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35-39)
3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은 전날 밤 해질 무렵 몰려온 온 동네 사람들 고치시느라 몹시 피곤하셨습니다. 아무리 못 돌보셨어도 100명이상은 고치셨으니 정말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앞으로 하루 이틀 이렇게 일하실 것도 아니고 이런 날은 좀 푹 주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푹 주무세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일어나셨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이니까 몇 시쯤일까요? 4시? 5시? 6시? 가끔 자신은 새벽7시에 일어난다고 말하는 분이 있는데 7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어쨌든 밤늦게까지 병든 자들을 돌보시고도 새벽 아주 이른 시간에 습관을 좇아 일어나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는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대개 할 일이 많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기도를 소홀히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쁘고 정신이 없으면 제일 먼저 놓아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고 일이 많고 바쁠수록 더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어찌해야 될지 모를 때 일을 감당할 지혜를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가끔 실수할지는 몰라도 완전히 실패하지는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종하 목자님은 바쁜 재활의학과 과장님이신데도 먼 창동에서 4시 반에 일어나서 꼭 기도하러 나오십니다. 새벽에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찬송가 한곡을 힘차게 따라 부르고 기도함으로 하루를 힘 있게 출발하시는 것을 보고 자주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는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하는 힘을 줍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간밤에 시몬의 집에서 많은 병자들이 치료받고 회복되는 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집 앞에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시몬과 제자들은 신이 나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지 몰라요. 어서 가셔서 그들을 고쳐주세요. 네에!’ 몇 몇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나를 찾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만백성이 그토록 원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도 ‘뭐라고 모든 사람이 나를 찾는다고? 이제 드디어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었구나! 어서 가자!’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커다란 플랭카드를 붙여놓고 사람들을 계속 끌어 모을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38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예수님은 사람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병들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치유하시므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으면 뿌리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치유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이를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서 전도하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이제 앞으로는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은 돌봐주지 않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뒤에서 나병환자를 또 고쳐주십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 땅에 오신 근본 목적이 복음을 전파하므로 죄인들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하기 위함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도 이 한 가지 목적을 결코 놓치지 않고 굳게 지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병 고침 받기 바라고 배불리 먹기 바라며 당신을 임금 삼고자 하는 무리들을 피해 계속해서 가까운 다른 마을들로 다니시며 복음을 전파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요구와 기대보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바로 그 일을 조금도 흔들림 없이 감당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사명인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우리도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 환호하며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붙들기 위해 애를 쓰게 됩니다.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살피고 도와주고자 애쓰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현실적인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 모임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군대에서도 주일날 종교행사 때 교회에서는 빵하고 우유밖에 안줬는데 성당에서는 사제 햄버거를 줬다고 하더라 하면 그 다음주 모두 성당으로 몰려간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갑니다. 본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말씀이 어렵고 자신들의 요구에 대해서 분명히 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썰물처럼 떠나가고 결국 12명의 제자들만 남게 되었습니다.(요6:66) 그들은 병 고침 받아서 사업이 잘 되서 남은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영생의 말씀이 계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끝까지 남은 자들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 역사는 소수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심고 몇 사람 혹 한 사람이라도 굳게 세우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감당하는 사명이 바로 이것입니다. 캠퍼스 지성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심어서 제자로 키우는 것입니다. 이는 대중전도나 질병치료 구세군 같은 구제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이 사명을 놓치고 쉽게 변질되어 버리기 쉽습니다. 유명강사를 초빙하여 사람들 많이 모으고 펠로우쉽 중심으로 바뀌기 쉽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우리는 계속해서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를 위해 부르심 받았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어려운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왔는가’ 정체성을 상실하면 본말이 전도되고 내적인 힘이 사라져 결국 펠로우쉽이나 나누는 이도저도 아닌 모임으로 전락하게 되고 맙니다. 우리가 이를 경계하고 지금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복음전파를 통한 제자양성의 본질적 사명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캠퍼스에 올라가서 계속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통해 한 사람이 죄사함 받고 변화되어 하나님 백성이 되는 역사가 계속해서 일어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센터에 올 때마다 자주 탁구장에 들렀습니다. 탁구장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기쁨과 열정이 생겨났습니다. 지저분한 것도 치우고 한 번씩 쓸고 닦고 청소도 하였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속으로 외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6주 전 축구하다가 심한 부상을 입어 오른쪽 손목을 아주 심하게 다치고 말았습니다. 운동은 고사하고 자동차 시동거는 것도 아주 불편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다행히 휘경동 명의인 믿음 한의원 함바나바 목자님이 아주 아프지만 정성스럽게 침을 놔줘서 많이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낫지 않게 되자 두려운 마음이 들게 되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힘든 시대를 탓하며 전도의 사명을 놓치고 펠로우쉽 중심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또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왔는지 정체성을 상실하고 되는대로 살 때 이도저도 아닌 인생이 됨을 깨닫게 하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새벽 밝기 전에 일어나 힘써 기도할 때 새 믿음과 소원을 주셔서 캠퍼스에 올라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전부터 돕던 한 형제를 다시 만나게 하여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목자로서 정체성을 지키고 목자의 사명을 힘써 감당할 때 자신이 먼저 살고 또 이 시대를 살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류에 편승하여 문제의식 없이 살아가던 것을 회개하고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는 주님의 뜻에 순종해 캠퍼스에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인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는 종으로 쓰임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3.원하시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40-45)
40절을 보십시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나병은 흔히 문둥병이라 불리는 불치의 천형을 가리킵니다. 이 병에 걸리면 진물이 나고 눈썹이 떨어져나가며 감각 이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또 연골을 침범하면 코가 떨어져 나가고 눈에 침범하여 안구가 돌출되거나 눈이 감기지 않게 됩니다. 그 병증의 지저분함과 무서움으로 혐오를 불러 일으켜 철저히 격리되어 진 밖에서 따로 살아야 했습니다. 다른 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래도 가족과 함께 살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철저히 고립되고 버림받아야 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길에서 사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멀리서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침으로 자신이 저주받은 문둥병자임을 알려야만 했습니다. 이런 나병환자들의 소원은 이 부정하고 수치스러운 천형에서 깨끗이 나음 받아 가족에게 돌아가 정상생활 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의 나병환자도 그 간절함 가운데 나와 꿇어 엎드려 예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꿇어 엎드렸다는 것은 인생이 나타낼 수 있는 가장 간절함과 겸손함의 표현입니다.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은 결코 꿇어 엎드려 간구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해도 가장 편한 자세로 아예 드러누워 기도합니다. 그러나 정말 간절하고 아쉬운 사람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주님께 은혜를 구합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원하시면’이라고 한 것은 자신이 죄인이요 그래서 감히 은혜받을 자격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께서 원하시면 얼마든지 깨끗하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전에 성경에는 ‘민망히 여기사’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원어적으로 ‘네가 나았으면 정말 좋겠다.’라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 처절함과 간절함을 보시고 예수님은 율법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대셨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난만 받던 그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내가 원하노니’ 이는 정말 내가 원한다(I do want)뜻으로 나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도 완전히 치유해주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42절입니다.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의 치유의 역사는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나타났습니다. 그 흉측하고 추한 몸의 상처가 깨끗하여지고 갓난아이 같은 새 살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기대하던 것 이상의 놀랍고도 완전한 은혜였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자신의 운명과 인생을 주님께 맡기면 내가 기대하는 것 이상의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됩니다. 문둥병 같은 불치의 병도 나을 뿐 아니라 나병과 같이 우리 몸에 퍼져서 영혼을 파괴하는 죄의 뿌리가 뽑혀 정결하고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런 은혜를 덧입기 위해서 본문의 문둥병자처럼 꿇어 엎드려 간절하고도 겸손하게 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3,44절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엄히 경고하사 삼가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오직 제사장에게 낫게 된 그의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리므로 정상생활로 돌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햇빛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듯이 은혜의 역사는 자연스럽게 다 드러나고 오히려 더 멀리 퍼져 나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로 인해 더 이상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은혜 받기 위해 몰려 나왔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므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서 전도하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예수님을 본받아 분명한 사명관과 정체성을 가지고 캠퍼스 복음역사에 헌신하므로 영육 간에 병든 자를 치유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데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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