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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5-06 (일) 12:36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8년_마가복음6강-1(오정훈).hwp (64KB) (Down: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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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6강] 열둘을 세우셨으니

 2018년 마가복음 제6강                                                            오정훈

열둘을 세우셨으니

말씀/ 마가복음 3:7-35
요절/ 마가복음 3:14,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 전파와 제자양성이었습니다. 그것도 많은 수의 제자를 세우지 않으시고 딱 12명의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평범하고도 인간적이며 허물 많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두신 예수님의 소망이 그들을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부족한 나 한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는 주님의 소망을 영접하고 이 시대를 섬길만한 주의 제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원하는 자들을 부르신 예수님(7-15)
  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셨습니다. 아마도 안식일에 한 손 마른 자 고치신 일로 발생한 바리새인들과 충돌을 피하고자 물러가신 것 같습니다. 세례요한이 잡혀갔을 때도 갈릴리로 물러가셨는데 예수님은 맞서 싸우지 않으시고 항상 물러나기만 하시는 용기 없는 분이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요 우리 인생들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과의 영적 싸움입니다. 예수님은 이 싸움을 하기 위해서 사람과의 무모한 싸움을 피해 물러나셨습니다. 사람들이 이 예수님을 따라 나왔습니다. 그 하신 큰일을 듣고 갈릴리로부터 유대와 예루살렘 심지어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에서까지 다 나왔습니다.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예수님을 에워싸고 밀쳐서 제자들에게 배를 띄워 대기시켜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병들고 귀신들려 고통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돌봐줄 목자가 절실히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소모적인 논쟁만 할 뿐 이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많은 사람들을 감당해줄 목자가 없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을 세우고자 무리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산으로 가셨습니다.
  1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누가복음6장12절을 보면 예수님은 밤새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시고 사도라 칭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자들을 주권적으로 부르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부르심이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았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요즘은 전부다 지원해서 들어가는 시스템입니다. 대학이나 직장은 물론이고 심지어 군대도 자신이 지원해서 합격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특히 해병대는 더욱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해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내가 원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택하고 부르시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6)” 고백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신이 원해서 제자가 되신 분은 별로 없습니다. 함바나바 목자님 영적 소원이 엄청 많아서 제자가 된 것 같은데 실상은 허리가 아파서 이다니엘 목자님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갔다가 말씀공부하게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부르심에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택하심의 은혜가 있습니다. 제자들을 보면 더욱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갈릴리 어부 출신으로 신분이 천하고 학문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요즘 취직하려면 얼마나 많은 스펙을 갖추어야 합니까? 토익900점은 기본이고 학벌이 좋아야 합니다. 지잡대(지방 잡 대학) 출신은 서류전형에서 거의 탈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이 시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예수님보다 훨씬 이전에 살았던 플라톤은 그의 아카데미아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 팻말을 붙여놓았다고 합니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플라톤의 제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기하학을 몰라도 되고 토익 점수가 900점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오직 은혜로 부르심 받은 자들은 누구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르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에 중간에 실수하지 않을까 잘 감당하지 못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롬11:29) 부르심 받은 제자들은 주님께 나왔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부르심 받았을 때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순종해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자는 이처럼 순종해서 나오는 사람입니다. 순종해서 나오는 자는 아무리 부족하고 허물이 많아도 누구라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께서 부르신 사람들은 누구이며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4,1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은 그 시대를 섬길 자들로 열둘을 세우셨습니다. 공자님의 제자는 70여명이었는데 예수님도 한 100명 정도 세우시지 왜 12명을 세우신 것입니까? 12는 이스라엘에서 상징하는 바가 큰 숫자로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나타냅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분명한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새로운 이스라엘의 조상들이요, 영적지도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또 12명의 제자는 창조적 소수입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세상은 다수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소수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말했습니다. 분명한 믿음과 가치관을 가진 소수의 12제자만 있으면 세상을 바꾸고 만민 구원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시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나왔지만 심정과 믿음을 가진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12명의 제자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이십니다. 고대로부터 스승과 제자는 기거를 같이하므로 그 인격과 삶을 배우도록 교육받아 왔습니다. 참 배움의 시작은 함께 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한 때 예수님께 나와서 말씀을 듣고 은혜 받고는 집에 다시 돌아가서는 드라마 연속극 볼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예수님을 제대로 배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예수님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양무리를 향한 목자의 심정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간절한 기도와 능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어떤 분이신지 배울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므로 많은 무리도 믿음과 심정으로 오병이어를 드릴 때 능히 먹일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상종하기 어려운 사마리아 여인도 겸손히 낮아져 섬길 때 변화되어 은혜를 증거하는 자가 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의 인격과 삶 그 섬기는 내면성을 배울 때 제자들도 장차 예수님께서 하신 그 일을 계속해서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므로 예수님의 심정과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특별히 양들과 함께 해야 하겠습니다. 학원 강사처럼 말씀의 지식만 가르치고 헤어지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내면의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보내신 사람들과 함께 하며 영혼의 대화를 하고 내면문제와 씨름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심정과 믿음을 배우고 한 사람을 섬기는 목자요 성경선생으로 쓰임 받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둘째로, 보내어 전도도 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첫 번째 목적이 예수님을 배우게 하는데 있다면 두 번째 목적은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전도하려면 먼저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알려면 성경을 배우고 순종하므로 말씀을 체험하고 성경선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역사는 말씀의 역사요 말씀을 전할 때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깊이 있는 일대일 성경선생이 되기 위해 말씀노트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학교 다닐 때도 누군가 시험범위 정리한 족보를 프린트해서 나눠줄 때 그 때서야 마음이 놓이고 시험을 감당할 준비가 되듯이 말씀노트가 준비되어야 양들을 말씀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요즘은 전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반대하고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서로 은혜 받는 것으로 자족하고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식어버렸습니다. 신자의 힘은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는데 있고 그럴 때 참된 보람과 생명력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모임은 학생들이 학생들을 일대일로 성경을 가르치는 역사가 충만하였습니다. 2학년만 되면 어설프지만 창세기 일대일을 시작하였고 때론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잘 몰랐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말씀을 전파하였고 그럴 때 우리 가운데 큰 역사가 일어났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지 않으면 항상 양 수준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나는 아직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할 수 없다 생각만 하지 말고 학생들이 성경선생들로 성장하여 말씀을 가르치는 종들로 쓰임받길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전도의 열정을 새롭게 주셔서 300팀 일대일과 12 마가 세우는 한해 되게 도우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로,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최근에 ‘귀신이 산다’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귀신이 정말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말 못하게 하는 벙어리 귀신, 거라사 군대 귀신 등이 나옵니다. 귀신은 이렇게 사람 속에 들어와 사람을 괴롭히고 사람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이런 귀신의 세력을 어떻게 내쫓을 수 있습니까? 이는 주께서 주시는 권능을 덧입을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9장에서 귀신을 내쫓으시며 그 비결을 묻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영적인 승리자가 되려면 반드시 권능을 덧입어야 하고 권능을 덧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분별력이 생기고 그 사람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싸워야할지 말씀과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새벽을 깨워 기도하고 철야기도를 힘써 감당하므로 주께서 주시는 권능을 덧입고 양들의 내면에 역사하는 귀신의 세력과 싸워 승리하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열두 제자들(16-35)
  16-19절에는 열 두 제자로 부르심 받는 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들은 모두 각자 개성이 뚜렷한 다양한 사람들로서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맞는 별명을 붙여주시므로 처음부터 소망을 심으셨습니다. 먼저 나서기 좋아하고 큰 소리를 잘 치지만 실상은 모래처럼 연약한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더하여 주시므로 교회의 반석이 되라는 소망을 두셨습니다. 또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여 주시므로 천둥 번개가 치듯 그런 권세 있는 말씀의 종이 되라는 소망을 두셨습니다. 안드레는 아이에게 있는 오병이어를 찾아 주님께 드리는 긍정의 에너지와 심정이 충만한 사람이요 빌립은 계산이 앞서지만 성경에 조예가 깊은 성경학자였고 바돌로매는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는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 나다나엘이었습니다. 마태는 민족의 등골을 빼먹는 이기적인 자였으나 후에 마태복음을 쓴 위대한 성경저자가 되었고, 도마는 의심이 많아서 늘 직접 보지 않고는 믿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변화되어 굉장히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종이 되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는 처음 부르실 때 한번 이름이 나오고 다시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 조용한 사람들이었으며 가나나인 시몬은 로마와 싸워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던 운동권 출신의 열혈당원이었고 가룟 유다는 그리옷 출신으로서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파는 배반자였습니다.
  이상의 열 두 제자를 볼 때 그들은 다양한 사람들이었고 완벽하거나 대단한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심히도 인간적이고 쉽게 의심하며 야심에 사로잡혀 서로 경쟁하고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못하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좇아 주님과 함께 하며 그 인격과 삶을 배웠을 때 그들도 변화되어 하나님 역사를 섬기는 위대한 종들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도 예수님 시대와 같이 내면문제 취업문제 장래문제 등 각가지 문제로 고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시대보다 이들을 도울 예수님의 제자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자는 많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별로 없습니다. 은혜받기는 좋아하지만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으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자로 세우시고 키우고자 하십니다.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자기 하나 감당할 수 없는 심히도 연약한 자인데 제자가 될 수 있을까 불의한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열 두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은 소망의 주님이십니다. 소망의 주님을 바라볼 때 나 같이 부족한 자도 훈련을 통해 능히 제자로 키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소망을 좇아 예수님을 배우기에 힘쓰므로 이 시대 구원역사에 쓰임 받는 제자들로 굳게 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0절 보십시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자 무리가 다시 모여들어 식사할 겨를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제 때 식사도 하지 않고 맏이로서 집안도 돌보지 않으시고 양무리들을 섬기시는 예수님은 가족들이 볼 때 미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제대로 미친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하실 만큼 하나님 나라를 향해 미치셨습니다. 그러나 비단 예수님 뿐 아니라 사람들은 다 가만히 보면 뭔가에 미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애들은 게임에 미쳐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 보면 애들이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도박에 미친 사람은 차 팔고 집 팔고 나중에는 자기 아내까지 팔아서 도박을 합니다. 해외원정도박하다 인생망친 연예인 운동선수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뭐에 미쳤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예수쟁이라는 말은 예수한테 미친 사람들, 그것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미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사도바울도 그래서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고후5:13)”라고 말하였습니다. 양들을 섬기느라 집안일을 소홀히 하고 식구들을 잘 챙기지 못하면 미쳤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미치고 주를 이해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 이는 영광이요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미쳐야지 뭐든지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또 미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이왕에 미칠 거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미쳐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는 일에 미치고 일대일에 미치고 성경읽기에 미치고 양들 섬기는데 미쳐야 하겠습니다. 제대로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므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나가는데 귀하게 쓰임 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비난은 미쳤다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22절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삼척동자도 이 역사가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다 아는데 그들은 일부러 이를 부인하고 귀신의 역사라고 비난하는 사악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23b-26절입니다.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나라가 당을 지어 스스로 분쟁하면 망하게 되고 분쟁하는 집은 콩가루 집안이 되어 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스스로 분쟁하면 자기만 손해 보는데 사탄이 누구 좋으라고 이런 어리석은 일을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통한 역사는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강한 자 사탄을 결박하고 그 집에 있는 인생들을 자유케 하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사탄보다 더 강한 자로 오셔서 인생들을 사로잡고 있는 강한 자 사탄을 결박하고 사로잡힌 인생들을 자유케 하는 구원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지 그렇지 않고 고의로 이를 부인하고 훼방하면 성령을 모독하게 되어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31을 보십시오. 친척들을 보내도 예수님이 집에 오지 않으니까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리고 직접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무리들은 어머니 동생들까지 와서 만나고자 하니 예수님이 만사를 제쳐놓고 가실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왜 이렇게 냉정하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이제 가족과 연락을 끊고 공생애에만 집중하려고 이러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가족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십니다. 34,3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그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자요 가족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끈끈한 관계가 바로 피로 맺어진 가족관계입니다. 이는 피가 물보다 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족을 소홀히 하면 사람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악한 자라고 하였습니다.(딤전5:8) 그러나 예수님이 보실 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중심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당신의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로 삼아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참 가족들입니다. 그러므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고 위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힘써 투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영적인 가족관을 갖고 가족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족을 돌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사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제가 어떻게 부르심 받게 되었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입생 신체검사 때 성경 공부할 할 생각이 있나요 라는 설문의 답 ‘예’와 ‘아니요’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저는 그 한 가운데 동그라미를 친 아주 완악하고 소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도 신입생 환영아카데미에 초청해 주시고 창세기 1장2절 말씀으로 천지창조를 영접케 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과 2학년 부활절 수양회에서 과연 살아나신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제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셨습니다. 장막에는 밤새 이를 갈고 코를 골며 잠꼬대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서로 영접하고 매주 식사 한 끼를 섬기므로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본과 1학년 때부터는 새 학기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양들을 얻어 일대일을 감당하므로 예수님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 잘 모를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말씀을 전파할 때 우리 가운데 큰 역사가 일어났었습니다. 이런 제자의 삶에는 오해와 비난이 따르기 마련이었습니다. 학생 때 어머니가 환갑을 맞았는데 마침 그 날이 주일이어서 저는 토요일 오후 기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갔다가 주일날 아침기차로 올라왔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어머니는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양들을 섬기느라 집에 잘 들어가지 않았고 제주도 빼고는 어디든지 양들을 심방하러 다녔습니다. 그 때 생명력이 넘치고 삶에 열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미치지 않고 탁구에 미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의 오른쪽 손목을 치시고 다시 주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붙들도록 하셨습니다. 가끔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자를 왜 부르셨는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저에 대한 의문일 뿐 아니라 제가 볼 때 별 소원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의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문제 많은 양들을 돕기 위해 부족한 저 한 사람도 부르시고 함께 하시며 전도도 하고 귀신도 내어 쫓도록 소망가운데 키우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이 소망을 좇아 다시 주님과 함께 하며 전도하고 악한 영과 싸우는 종으로 굳게 설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악한 세대 가운데 12제자를 부르시고 세우심으로 인류구원의 소망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이 시대에도 주님은 부족하고 자격 없는 우리를 부르시고 캠퍼스 목자요 영적 지도자로 세우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원하는 자들이요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 제자들입니다. 나를 부르시고 키우시는 주님의 소망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내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소망을 심령깊이 영접하고 이 시대를 감당하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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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1강] 둘씩 둘씩 보내시며 관리자 2018-06-10 1002
540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0강]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관리자 2018-06-03 1377
539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9강] 그가 누구이기에 관리자 2018-05-27 1182
538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8강] 씨가 나서 자라되 관리자 2018-05-20 1058
537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7강]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는 자 관리자 2018-05-13 1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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