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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6-10 (일) 12:46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8년_마가복음11강-1(최동진).hwp (64KB) (Down: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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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11강] 둘씩 둘씩 보내시며

 2018년 마가복음 제11강                                                        최동진

둘씩 둘씩 보내시며

말씀 / 마가복음 6:1-29
요절 / 마가복음 6: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불의한 시대에 열 두 제자들을 부르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을 세상에 내보내사 자립적으로 복음 역사를 섬길만한 종들로 훈련하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복음을 전하다 배척당하신 사건과 의인 세례요한이 회개의 복음을 전하다 죽임 당한 사건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이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갈수록 배척과 핍박이 심해지는 이 시대에 어떤 자세로 복음 역사를 섬겨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고향에서 배척당하신 예수님(1-6a)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복음 역사를 섬기다가 오랜만에 제자들과 함께 고향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고향은 언제나 그립고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그래서 명절만 되면 고향으로 내려가는 사람들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이고 모든 도로가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을 지경입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가면 영적인 긴장이 풀어져서 부모님과 친척 친지들을 만나 인간적인 이야기를 하며 회포를 풀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2a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예수님은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말씀이든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당시 종교지도자들과는 다른 권위와 감동이 있었습니다. 또한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손으로 권능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 쓸모없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새 사람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죄 사함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줍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의 지혜와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요7:16,17) 사람들은 이를 통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된 메시야이심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고향에서 메시야가 난 것을 크게 기뻐하고 마을 축제를 열어 대대적인 환영을 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b,3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지혜와 그 행하시는 권능의 역사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2-3절까지 3번씩이나 ‘이 사람이’ ‘이 사람이‘ '이 사람이’ 하며 무시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의 30년 동안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조금 언급된 것이 전부입니다. 이는 그 기간 동안 특별한 사건이 없는 평범한 삶을 사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아무런 생각 없이 사신 것은 아닙니다. 12살 때 예수님이 처음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절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 혼자 예루살렘 성전에 남아 율법 교사들과 토론을 하였는데 듣는 자가 다 그 지혜를 놀랍게 여겼습니다. 하루가 지나서야 예수님이 없어진 것을 알아챈 부모들이 예수님을 찾아 헤매다가 사흘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책망하는 부모에게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2:49) 반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이미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부모님에게 순종하며 목수의 삶을 사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로서 평범한 목수였습니다. 동생들도 자기들과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아무도 메시아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말씀을 선포하시고 죄 사함과 병 고침의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을 때 고향에 있는 친족들도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친족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목수일도 안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미쳤다며 잡으러 다녔습니다. 그들은 선입관과 편견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외모로 판단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과 동등시하는 교만 때문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보고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큰 특권을 받았지만 교만과 불신과 편견 때문에 영적인 눈이 멀어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당하시고 심히 마음이 상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4)”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선지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오랜 기간 인간적으로 친밀하게 지낸 사람들일수록 선지자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만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불신하였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오는 기적을 체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구원과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예수님은 믿음 있는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 말씀하셨습니다. 겸손하게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에 기초한 불신과 교만을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 사건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복음 역사를 섬길 때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배척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들은 어디를 가나 인기가 많으신 예수님을 보면서 덩달아 우쭐해 하며 예수님의 제자의 삶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한다면 배척받으시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가까운 가족이나 선배들, 친구들로부터 오해받고 배척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도 태어나실 때부터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인생들로부터 철저히 배척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3)”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는 버린 바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 되셨습니다.(벧전2:3)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에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주시고 캠퍼스 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영혼 구원 역사에 쓰임 받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삶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우리를 존경하고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이 길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고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적 소원 있고 겸손한 자들을 택하셔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존경받고자 하는 마음을 부인하고 배척 받으신 예수님과 함께 전도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는 복음적인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I. 제자들의 전도 훈련(6b-29)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배척 받을 때 상처받고 낙심하여 의욕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6b절을 보십시오.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은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더욱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순회 전도를 하시면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방황하는 무리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지만 추수할 일꾼이 심히 부족함을 보시고 본격적으로 추수할 일꾼을 양성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리고 부족한 제자들이 능력 있는 자립적인 사도들로 빚어지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어떻게 훈련하셨습니까?
첫째, 동역훈련
7절을 보십시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둘씩 전도여행 내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내보내신 것은 첫째는 장차 계승 역사를 섬겨야 할 제자들의 마음에 자립신앙을 심어 추수할 일꾼으로 키우고자 하심이요, 둘째는 어린 제자들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코자 하심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씩 보내면 더 많은 곳으로 보내어 더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둘씩 보내신 것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역사는 동역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역사를 섬기다 배척당하면 낙심하여 사탄의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둘씩 가면 서로 격려하며 합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4:9,10절은 말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한 둘이라는 숫자는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숫자를 상징합니다. 신명기19:15절에 보면 사람이 죄를 범하면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고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두 사람이 전하는 복음은 혼자 전하는 것보다 확실한 증거의 능력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동역자가 되어 함께 기도하며 동역하였을 때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복음역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동역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했다’보다 ‘우리가 어떻게 쓰임 받았다’는 역사(ministry) 철학이 있는 곳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이번 여름수양회를 준비할 때도 둘씩 둘씩 아름다운 동역의 역사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는 둘씩 둘씩 보낸다고 해서 서로를 의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권세를 의지하여 귀신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이름 권세입니다. 본래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은 예수님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예수님의 전권대사로 내보내시면서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힘입어 귀신들을 쫓아냈습니다. 전도는 한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마귀와의 영적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적 권세가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도전할 때 양들의 내면에 역사하는 귀신의 세력도 능히 쫓아낼 수 있습니다.
둘째, 믿음훈련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가져가야 할 것과 가져가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8,9절을 보습시오.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먹을 것과 배낭과 갈아입을 옷과 돈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전도여행으로서 이 훈련을 통해 자립적인 믿음을 배워 장차 복음역사를 계승하여 자립적으로 섬기는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지팡이와 신발 외에는 할 수 있는 대로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는 광야에서 들짐승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고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던 당시에 신발은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품이었습니다. 즉 당장에 없어서는 안 될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이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그들과 늘 동행하시며 때를 따라 모든 것을 공급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립적인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까지 그들 곁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언제까지나 그들과 함께 계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 그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세상을 감당할만한 능력 있는 영적 지도자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 속에는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원칙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믿음대로 역사하심을 배우고 자립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질 수 있습니다.
  전도 여행 갈 때 아무 것도 안가지고 가면 의식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복음의 일꾼들을 영접하고 섬길 자들을 예비하시고 섬기게 하십니다. 이때 그들은 영접하는 자의 집에서 떠나가기까지 머물러야 합니다. 반찬이 좋지 않다거나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해서 이 집, 저 집, 옮겨 다녀서는 안 됩니다. 그 집에 머물면서 복음도 증거하고 그 집에 병든 자나 귀신 들린 자가 있으면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주고 그 가족을 제자로 삼고, 그 가정을 가정 교회로 만들어 그 가정을 중심으로 그 지역을 복음화 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빌립보를 개척할 때 자신들을 영접한 루디아의 집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을 때 루디아를 중심으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영접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할 때 영접하는 자들도 있고 영접하지 않는 자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기가 죽고 낙심하기 쉽습니다. 또 부정적인 생각에 시달리며 불의에 빠지거나 혹시 복음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회의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복음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이 빛을 싫어하고 어두움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요3:19-21) 그러므로 복음의 종들은 예수님의 전권대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당당하고 분명한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만일 복음을 영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나가서 전한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그들은 회개의 복음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회개의 복음은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부담스럽습니다. 회개 하라고 하면 강한 거부반응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NIV 성경에 보면 “people should repent"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롬3:23)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이 심판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하는 둘째 사망입니다(계21:8) 인간은 죄 때문에 육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셔서 우리가 어떤 몹쓸 죄를 지었을지라도 진실되게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십니다. 사람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가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을 때 심판을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 역시 그 메시지의 핵심은 회개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회개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회개함으로 죄악된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될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즉 천국의 축복은 회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메시지가 구원과 희망을 주는 진정한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전권대사로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었습니다. 이 일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이 하시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권능을 덧입었을 때 그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순종을 통한 체험이 제자 훈련의 기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체험을 통해 능력 있는 예수님의 종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행한 능력의 역사는 한 사람을 돕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퍼져 궁궐에 있는 헤롯에게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헤롯은 제자들을 통해 일어나는 회개의 역사를 듣고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며 벌벌 떨었습니다. 헤롯은 왕복을 입고 왕궁에 거하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섬김을 받았으나 회개하지 않았을 때 내면의 죄로 인해 행복은커녕 불안하고 악령에 시달렸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리고 부족했고 숫자적으로도 몇 명 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행한 일들의 파급력은 이스라엘 전체를 흔들어 놓을 만큼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여 나아갈 때 부족한 제자들을 통해서도 큰 역사를 이루십니다. 열 두 제자를 통한 복음 전파 역사는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는 역사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7-29절은 의인 세례 요한이 어떻게 목 베어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헤롯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들므로 큰 죄를 범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이것이 옳지 않다고 분명하게 책망했습니다. 이때 헤롯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인생의 새 출발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헤로디아는 헤롯보다 더 악하여 요한을 원수로 여기고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고자 하였습니다. 또 헤롯은 요한의 말을 들을 때 번민 하면서도 달갑게 들었습니다. 헤롯은 악하지만 그래도 양심은 조금 살아있었습니다. 그러나 헤로디아는 어찌하든지 요한을 죽이고자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회가 왔습니다. 헤롯이 생일 날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 귀인들로 더불어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때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와 요사스러운 춤을 추었습니다. 이를 본 헤롯과 사람들은 즐거워하였고 헤롯은 취중에 “네가 원하는 것은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헛소리를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세례요한의 목을 구했습니다. 어린 소녀의 입에서 나온 상상할 수 없던 대답에 헤롯은 당황하여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맹세와 사람들 앞에서의 체면 때문에 헤로디아의 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더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는 시위병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함으로 요한을 죽이는 죄를 더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죽음은 음란한 어린 여자의 철없는 한 마디로 인해 무의미한 개죽음을 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 시대 가장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위대한 삶을 살았던 세례요한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요한의 죽음으로 복음 역사도 끝이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한 회개의 메시지는 헤롯의 양심을 자극하여 번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바톤을 넘겨받으심으로 본격적인 복음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변증가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요, 박해는 그리스도인의 무죄를 변증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전하는 회개의 메시지는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캠퍼스와 이 나라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하나님은 말씀이 없는 이 시대에 저희를 통하여 생명의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캠퍼스에서는 아무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자가 없을지라도 우리가 전한 복음은 캠퍼스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나라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됨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자들을 통하여 생명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학생들과 나이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양들이 부담스러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캠퍼스에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여 주일 예배 메시지와 많은 십자가를 감당하면서 온 힘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현재의 상태에서 만족하고 나의 수고를 알아주기를 바라며 인정받고 섬김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도자의 삶은 인정받는 삶이 아니고 배척받는 삶임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학사 수양회를 통해 구원 역사를 섬기기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까지 희생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 목숨까지 희생하고 싶어하지는 않음을 발견하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 받은 자로서 자기 목숨까지 대속물로 주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일생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복음 증거자의 삶을 힘써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그 시대의 영향력을 끼치는 제자들로 키우셨듯이 하나님은 우리들을 제자로 키우시고 우리를 통해 회개의 복음이 전파되고 구원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덧입고 단순히 순종함으로 시대를 섬길만한 종들로 자라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각자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쓰셔서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요회별, 팀별로 합심하여 기도하고 말씀대로 둘씩 둘씩 캠퍼스로 나아가 말씀을 증거함으로 믿음을 체험하고 자립적인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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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1강] 왕으로 세움 받은 솔로몬 관리자 2018-10-07 994
557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8강]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관리자 2018-09-30 1183
556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6강]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관리자 2018-09-23 1077
555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5강] 언약의 피 관리자 2018-09-16 980
554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4강] 깨어 있으라 관리자 2018-09-09 1058
553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3강] 첫째 되는 계명 관리자 2018-09-02 1177
552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2강]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관리자 2018-08-26 998
551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1강]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관리자 2018-08-19 1015
550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0강] 섬기러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18-08-12 985
549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9강] 부자와 하나님 나라 관리자 2018-08-05 990
548 요한복음 [2018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관리자 2018-07-29 981
547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8강] 첫째 되고자 하면 관리자 2018-07-22 1017
546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7강] 믿는 자에게는 능히하지 못할일이 없느.. 관리자 2018-07-15 1072
545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5강]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관리자 2018-07-08 1322
544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4강] 이 말을 하였으니 관리자 2018-07-01 1098
543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3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관리자 2018-06-2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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