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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01 (일) 12:41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8년_마가복음14강-1(최동진).hwp (29KB) (Down: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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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14강] 이 말을 하였으니

 2018년 마가복음 제14강                                                          최동진

이 말을 하였으니

말씀/ 마가복음 7:24-37
요절/ 마가복음 7: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말은 인격과 생각을 나타내는 도구로서 사람들과 소통 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한 마디 말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고 하나님 역사에도 큰 힘이 됩니다. 반면에 말 한마디로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강의에서 바리새인들은 정통 유대인으로서 겉은 깨끗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 같았지만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었습니다. 반면 오늘 말씀의 수로보니게 여인은 유대인들이 더럽게 여기는 이방인이요, 귀신들린 딸을 가진 초라한 여인이었지만 한마디 말로써 예수님을 감동시킨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감동시킨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배워서 우리도 믿음의 말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칭찬과 복을 받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24-30)
  2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을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두로는 가버나움 서북 65km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 도시로서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베니게(페니키아)의 수도였습니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알파벳을 처음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였고 고대 문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자부심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건을 정점으로 2년6개월간의 갈릴리 사역을 마무리 지으시고 무리들을 떠나 지중해가 보이는 아름다운 해안도시에서 조용히 쉬면서 제자들과 깊은 영적 교제의 시간을 갖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였으나 그곳까지도 예수님의 소문이 퍼져서 숨길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은 어디든지 문제 많은 양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 발아래 엎드려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기를 간구하였습니다. 딸이 예쁘고 곱게 자라주기를 바라는 것이 딸을 둔 모든 부모의 공통적인 마음일 것입니다. 예쁜 옷을 입혀서 사진을 찍어주고 율동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리면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고 예쁘다고 댓글을 달아주는 것을 보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딸 아이의 눈동자가 이상해지기 시작하더니 괴성을 지르고 옷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동네를 뛰어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증상은 점점 심해져서 힘으로 도저히 제어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찻길로 뛰어들어 차에 치일 뻔 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어린 아이가 열만 조금 나도 불안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안절부절 하는데 귀신 들려 날뛰는 어린 딸을 바라보는 여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삶의 의미요 기쁨의 대상이었던 딸이 큰 슬픔과 근심의 근원이 되어 찢어지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한없이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도 일으키시고 손 마른 자도 고치시고 어떤 병에 걸렸든지 누구나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다 영접하여 주시고 고쳐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2000마리 떼귀신 들린 거라사 광인도 온전케 하셨다는 소식은 이 여인의 어두운 심령에 한 줄기 빛으로 임했습니다. 이 예수님이라면 귀신 들린 어린 딸도 고쳐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었습니다. 그녀는 헬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지성인이었습니다. 헬라인은 헬라문명을 꽃피운 사람들로서 철학과 지혜를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을 야만인 취급하는 등 문화적으로 우월감이 대단하였습니다. 수로보니게란 ‘수리아’와 ‘베니게’지역을 합병한데서 나온 이름으로서 베니게인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도 민족적인 우월감으로 헬라인들을 무시했습니다. 이런 문화적, 민족적 배경을 생각할 때 헬라인 여인이 유대인이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 엎드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오직 어린 딸을 구하여야겠다는 일념으로 헬라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민족적 적대감과 문화적 우월감은 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유대인이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제 딸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십시오. 제발 우리 딸을 좀 살려주세요” 여인의 기도는 참으로 처절하고 간절했습니다. 앞에서의 바리새인과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소같았으면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 같은 이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바로 고쳐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기서 ‘자녀’란 선민 이스라엘을 가리키며 ‘개’란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 취급하며 무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때까지 도움을 청하러 나아온 자들을 이런 식으로 외면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나아오기만 하면 기쁜 마음으로 영접하시고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와주시기는커녕 이 여인을 개 취급하며 모욕적인 말로 물리치셨습니다. 한마디로 너는 선민이 아니기 때문에 은혜를 베풀 수 없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세상 만민의 구주가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가 우리의 귀를 의심하게 합니다. 아무리 이방인이라고 해도 많은 사람 앞에서 이렇게 대놓고 개 취급 하는 것은 참으로 참기 힘든 일입니다. 여인의 입장에서 볼 때 사랑하는 딸이 귀신 들린 것만 해도 서러운데 개 취급까지 당하니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요즈음 같았으면 예수님이 여성을 폄하하고 인종을 차별하는 언어폭력을 했다며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첫째는, 구원 역사의 순서에 대해 가르쳐주고자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용한 ‘개’란 단어는 애완견을 가리키는 ‘퀴나리온’으로서 작은 강아지를 의미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평소 이방인들을 경멸할 때 주로 사용했던 ‘퀴온’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쨌든 개는 개입니다. 그러나 먼저 자녀인 이스라엘에게 배불리 먹게 하신다는 말씀은 여인의 간구를 거절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이스라엘만 구원코자 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이 구원 받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나 먼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다음에 이스라엘을 통해 이방인을 구원하는 것이 구원 역사의 순서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을 교육하시고 가르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로 보시고 조용하고 은밀한 이곳까지 오셨습니다. 구원역사의 완성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우치는 일이 시급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녀들에게 배불리 먹이시고 상아래서 구원을 기다리는 이방세계에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시고자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둘째는, 개와 같은 죄인으로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는 율법의 유무에 달려있습니다. 율법이 있는 자는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며 더러움에서 돌이키는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합니다. 반면에 율법이 없는 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지 모릅니다. 이것이 영적인 현실입니다. 헬라인들이 아무리 이성적이고 논리 정연한 사고를 가졌다 해도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의 실제 삶은 영혼이 없는 개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이 먼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히 자기를 낮추고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사람들은 은혜 받는 것을 너무 쉽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얼마나 비천하고 자격 없는 죄인인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서 겸손한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값진 것인가 깊이 깨달을 수 있고 은혜 받은 후에도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겸손훈련을 통해 철저하게 낮추셨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절박한 문제를 안고 온 여인에게 훈련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여인이 시험을 감당할 만한 믿음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a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감당할만한 시험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은 우리가 미워서가 아니라 성장하도록 돕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겸손 훈련을 잘 받고 성숙한 믿음을 가진 자를 구원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낮추시고 비천한 곳으로 인도하실 때 슬퍼하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개와 같이 추한 인생을 살다가 개죽음으로 끝날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훈련하사 하나님의 자녀로 빚으시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훈련을 적극적으로 감당하는 주님의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여인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재치 있게 받아 넘겼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다고 시인했습니다. “Yes, Lord”, “주여 옳소이다” 여인의 고백 속에는 예수님께 대한 깊은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인정하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입니까? 여인은 자신이 개 같이 비천하고 은혜 받을 자격 없는 존재임을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먼저 배불리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이 자녀만 먹이고 끝내는 분이 아니심을 알았습니다.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말함으로 다만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여인이 이렇게 모욕적인 말에도 요동하지 않고 겸손하게 은혜를 간구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 대한 깊은 신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사랑을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7-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믿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도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그 사랑을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영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인정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대접을 받는가에 매우 민감합니다. 상대적으로 차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 때 하나님의 주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발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따지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무시를 받는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주여(Lord)” 하고 불렀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15:22)”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는 여인이 예수님을 단순히 병 고치는 분 정도로만 인식한 것이 아니라 약속된 메시야로 영접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분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구세주가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하실 세상 만민의 구세주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녀로 대접받지 못할지라도 상 아래 개가 부스러기를 받는 것처럼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실 것을 믿고 구했습니다.
  여인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예수님은 여인의 말에 크게 감동 받으시고 곧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것도 부스러기 은혜가 아니라 자녀들에게 주시는 동일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말’은 감정을 극복하고 자신을 이긴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해야 할 믿음의 말입니다. ‘이 말’은 겸손하게 은혜만을 간구한 지혜의 말입니다. 마태복음 15:28절에서는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우게 됩니다. 믿음에서 나온 믿음의 말은 생명을 살리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우리는 입이 있다고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말이나 불평 원망하는 말은 입 밖으로 내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말을 기뻐하시고 그 믿음대로 역사하십니다. 잠언25:11절에서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라고 하였습니다. 시의적절한 말은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말을 잘 하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마음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어쩌다 갑자가 툭 튀어나온 말 한마디로 예수님께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평소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쌓았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의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말을 하려면 믿음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기도하면서 마음으로 주님을 경외하고 마음으로 양들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배우기에 힘써야 합니다. 나의 생각이 복음화 되고 말씀이 나의 삶을 지배할 때 우리도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이 겸손히 예수님께 무릎 꿇고 나아갈 수 있고 믿음의 말을 함으로 주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수로보니게 여인을 통해 여름 수양회를 앞두고 어떤 자세로 역사를 섬겨야 하는가 배울 수 있습니다. 선배의 권위와 자존심을 내세울 때 말씀을 무시하고 반발하며 이런 저런 핑계로 초청을 거부하는 양들에게 소망 두고 섬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영에 사로 잡혀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는 양들에 대한 진실된 사랑과 어찌하든지 도와주고 한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상한 목자의 심정이 있을 때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불신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고 초청역사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많은 양들이 수양회에 참석하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변화되는 은혜와 축복을 풍성히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II. 에바다(31-37)
  3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귀가 먹어서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답답한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33,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예수님은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서 손가락을 양 귀에 넣고 침을 그의 혀에 묻히셨습니다. 이는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그와 인격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예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방법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한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아픔과 고통에 깊이 공감하시면서 한숨 쉬며 탄식하셨습니다. 이는 동시에 영적으로 귀와 입이 막힌 자들로 인한 탄식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세계에 대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먹은 자와 같았습니다. 자기 생각과 현실 문제에 매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였고 세상을 사랑했고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에 얽매어 정작 하나님의 말씀은 배척하였습니다. 오히려 이방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님이 숨어 있는 곳까지 찾아와서 부스러기 은혜라도 듣기를 원했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는데도 말씀보다는 자기들이 원하는 말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싫어했을 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자부심만 있었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없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바울은 말세에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고자 하는 죄악된 모습을 잘 예언하였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4:3,4)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말, 자기의 사욕을 만족시켜주는 말만 듣고자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부담스러워하고 듣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고쳐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에바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즉시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도 전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적으로 막힌 귀와 입을 여는 권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경계하시며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경계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였습니다. 마음이 순수한 이방 세계에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그대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의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고 저의 언어생활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인간적인 말, 감정적인 말을 많이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낮아져 섬기기보다 높아진 마음으로 지시하고 판단하는 말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보다 사업적이고 형식적인 기도로 끝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많은 말을 하기 보다 먼저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자인지 발견하고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자세로 나아갈 때 진실된 믿음의 말 한마디를 기뻐 받으시고 역사하십니다. 제가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높아진 마음을 회개하고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제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 받은 자로서 말씀을 굳게 붙들므로 예수님을 깊이 배우고 생각이 복음화 되어 제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양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함으로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양들이 다 나아와 귀가 열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혀가 풀려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생명구원의 역사가 풍성히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겸손한 자세로 말씀 앞에 나아감으로 양들만 은혜 받는 것이 아니고 저의 마음에도 말씀의 은혜가 새롭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한 이방 여인, 수로보니게 여인의 절대적인 믿음을 통해 감동을 받으시고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간조건을 보시지 않고 믿음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다만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겸손하고 절대적인 믿음의 간구를 기뻐하십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도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준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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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4강] 이 말을 하였으니 관리자 2018-07-01 1099
543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3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관리자 2018-06-24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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