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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8-05 (일) 13:35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8년_마가복음19강-1(고영훈).hwp (64KB) (Down: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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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19강] 부자와 하나님 나라

 2018년 마가복음 제19강                                                            고영훈

부자와 하나님 나라

말씀 / 마가복음 10:1-31
요절 / 마가복음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오늘 말씀은 이혼에 관한 문제, 어린 아이와 하나님 나라, 부자 청년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은 성서적 결혼관과 천국을 얻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부자청년을 통해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청년은 예수님이 가르쳐 준 영생의 길을 영접하지 못하고 그만 떠나 버렸습니다. 이 청년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시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나라와 영생을 얻는 길을 잘 배워서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실족하지 않고 모두 영생을 소유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결혼의 진리를 가르치신 예수님(1-12)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점점 십자가를 지시고자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십니다. 이 때 큰 무리가 예수님께 모여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어떻게 맞이하셨습니까?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이는 평소 하던 습관대로 말씀을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현재 온 인류의 죄 짐을 대신 지셔야 하는 심적 부담감과 함께 영적으로 어린 제자들의 문제로 인하여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항상 양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에 힘쓰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질문하였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들이 이혼에 대해 깊은 관심을 쏟아놓는 것을 볼 때 겉으로는 경건한 체하고 영적인 체하였으나 실상은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이혼을 해도 되느냐 따져 묻는 것인데 여기에는 어떤 시험이 도사리고 있습니까? 만일 예수님이 ‘이혼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나마 약간 허용한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요 ‘이혼할 수 있다’라고 하시면 이는 남성들의 이혼의 횡포를 방임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약자의 위치에 있는 여성들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하시든 이를 꼬투리로 예수님을 공격하고 율법에 걸어 고소까지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뭐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아시고 질문에 직접 답하시기보다는 모세의 율법에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이 때 예수님은 모세가 왜 그랬는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모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 백성의 상태에서 출애굽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혼 문제를 자기중심적으로 감정과 정욕에 따라 처리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아내를 함부로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를 막고자 법에 따라 이혼증서를 써주고 여자도 다시 결혼할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도 이혼 증서만 써주면 이혼 할 수 있다고 함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사회에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혼은 마음이 완악한데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창세기의 결혼의 진리를 기초로 올바른 결혼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6-8절을 보십시오.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우리는 이 말씀에서 결혼의 창설자와 주관자는 하나님이시오 결혼을 축복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혼을 늘 하나님 안에서 생각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결혼하면 두 사람은 이제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몸’이란 ‘one flesh'로서 이제 둘은 아교 같은 강력 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처럼 뗄 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그러므로 부부는 피차간에 뗄 수 없는 하나라는 것을 알고 상대방을 귀하게 여겨 주어야 합니다. 자기의 배우자는 자기 몸입니다. 그러니 자기 배우자, 즉 동역자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입니까? 동역자를 귀하게 여겨 보십시오. 가정에 행복이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적 허물을 떠나서 자기 동역자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귀하게 여기고 서로 열심히 힘써 섬길 때 하나 된다는 것의 축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하나님이 그 가정에 두신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혼은 몸을 나누는 것이요 더 나아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은 이혼은 꿈에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혼은 법이나 관습으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창세기에서 가르치는 결혼의 진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10-12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아주 엄격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혼은 근본적으로 간음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 결혼한 그리스도인 부부는 죽음이 그들 사이를 갈라놓지 않고서는 헤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혼인의 순결을 잘 지키며 자기 동역자를 귀하게 여기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I. 어린 아이들을 영접하신 예수님(13-16)
  13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 지금 이혼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들으면 안 된다고 꾸짖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무시하는 마음 때문에 함부로 대했음에 틀림없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엄격한 가부장적 제도 하에 여인들과 어린 아이들은 숫자에 치지 않을 정도로 무시했습니다. 제자들의 행동을 보신 예수님은 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여인이라고 해서 함부로 이혼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로 인해 몹시 마음이 상하시고 분노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마음 가운데도 이런 바리새인적인 요소가 있는 것을 보시고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그리고 계속해서 어떤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가를 말씀하셨습니다. 1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보실 때 어린 아이들은 어떤 점에서 귀합니까? 첫째로, 어린 아이들은 순수하고 진실됩니다. 이들은 겉과 속이 같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감추거나 꾸밀 줄 모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옵니다. 둘째로, 신뢰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해 줄 것을 믿고 조금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마음을 전부 다 믿고 받아들입니다. 셋째로, 겸손하게 배우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자의식이 전혀 없이 배웁니다. 배우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묻고 배웁니다. 이 때문에 계속해서 성장합니다. 이렇게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진실되며 신뢰하고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이중적이고 교만하고 따지고 비판하기를 잘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험한 세상에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어른스러워 지기 쉽습니다. 세상에서는 권모술수도 써야 하고, 몰라도 아는 체해야 하고, 서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세상의 악영향을 받아 신앙생활에서도 그대로 행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이런 어른스러움을 벗고 어린 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을 보면 그 내면은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은 내면을 가진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바로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될 때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진실되고 겸손하게 됩니다. 이 때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III. 영생의 길을 가르쳐 주신 예수님(17-31)
  1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길에 나가실 때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영생이라는 절실한 인생 문제를 안고 예수님께 나아 왔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22절을 볼 때 부자였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부자 청년이라고 했고(마19:22), 누가복음에서는 관리라고 했습니다(눅18:18). 그는 젊은 시절 열심히 공부하여 권세와 명예를 얻었고, 성실하게 일을 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젊은 시절에 범하기 쉬운 경거망동과 교만과 청년의 정욕을 극복하고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성공한 뒤 이에 자족하지 않고 영생에 깊은 관심을 가질 만큼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인정받는 모범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그는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었지만 영생을 얻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영혼은 참 만족이 없었고 마음에는 참된 평화와 안식이 없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세상 것을 다 얻었지만 영생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그 영혼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을 꿇고 간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영혼의 절규를 들으시고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영생의 길이 무엇입니까?
첫째, 죄인으로서 자아발견 해야 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영생과 선에 대한 그의 잘못된 개념을 바로 잡아 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이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물은 것을 볼 때 도덕적인 차원을 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이 행위로 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선의 개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하시므로 절대 선이신 하나님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약간 착하게 살았으면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 선이신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게 될 때 죄인이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도 예외 없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자 십계명 중 인간 상호간에 지켜야 할 계명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러자 이 청년은 놀랍게도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그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자녀들을 잘 키우기 위해 여섯 살이 되면 율법을 암송하도록 하고 계명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 청년도 이들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기 부인을 배우며 말씀을 암송하고 지키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는 사춘기의 이유 없는 반항심도 극복하고 젊은 날의 정욕 문제도 극복했습니다. 그는 거짓말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는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는 인간 기초가 잘 된,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에게서 큰 가능성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지적해 주시며 영생을 얻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 말씀에서 부자 청년의 문제가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그는 계명을 문자 그대로는 잘 지켰지만 그 계명의 근본정신은 실천하지 못하였습니다. 십계명의 근본정신이란, 처음 네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자신의 몸과 마음과 성품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요, 나머지 여섯 계명은 자신의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 청년은 계명의 근본정신은 알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신앙생활이란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도덕생활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란 소극적으로 나쁜 짓 안하고 주일 날 교회에 착실히 다니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희생하고 헌신하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이 사람은 율법 정신에 순종하지 않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면 죄인으로서 자아발견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상대적인 선을 기초로 나는 의인임을 주장할 때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불순종 후 행위로 구원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영생은 인간이 선을 행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은혜로 주시는 온전한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는 한 가지 부족함을 발견하고 겸손히 죄인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을 믿으므로 영생을 선물로 얻어야 합니다.
둘째, 영생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을 피상적으로 들으면 하늘의 보화 즉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팔아 알거지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청년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신 것은 영생은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귀하다는 가치관을 심고자 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 보화는 가장 가치 있고 귀한 것입니다. 또 영원불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 속한 보화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세상 권세와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얼마 못가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땅의 보화는 영원하지 못합니다. 땅의 보화는 얻는 순간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이런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둘 수 없습니다. 부자 청년은 세상의 보화를 다 얻고 난 후 절망하여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나 하늘 보화는 영원하고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늘 보화는 우리에게 참 생명과 평안을 줍니다. 참된 보화는 나의 시간과 물질과 젊음과 정열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보화를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만일 인생을 다 산 후에 ‘만일 내가 다시 인생을 산다면...’ 이라는 말로 인생을 후회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인생은 시행착오를 해서는 안됩니다. 젊음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합니다. 이 젊음을 참된 보화가 아닌 것에 써 버린다면 얼마나 후회스럽겠습니까? 참 보화를 찾고 이를 위해 전 인생을 드린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하늘 보화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킵니까?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하늘 보화를 약속하신 후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늘 보화임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참 보화가 되십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 안에 참 자유가 있습니다. 그 안에 죄 사함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그 안에 죽음의 권세도 이길 수 있는 부활이 있습니다. 그 안에 산 소망이 있습니다.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더라도 이 예수님을 얻은 사람은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는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잃어버린다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입니다.
  어떤 자가 예수님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에게 최고 가치를 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가치관은 완전히 변화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여 과거 세상에서 보화로 여기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는 보화 되신 예수님을 얻고자 전 인생을 아낌없이 투자했습니다.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엄청난 세상 보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늘 보화를 발견하였기 때문에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의 모든 특권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드렸습니다. 이 때 그는 구속 역사에 영원히 남는 하늘 보화를 얻었습니다. 마태복음 13:44절을 보면 천국의 보화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밭을 갈다가 보물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것을 얼른 흙으로 덮어두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밭에 감추인 보화가 얼마나 값진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참 보화 되신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은 세상 보화를 파는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영생은 하늘로부터 오는 선물이지만 이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팔 수 있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을 사랑하사 영생을 얻는 길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의 문제는 영생도 얻고 싶고 땅의 보화도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었습니다. 땅의 보화에 대한 미련은 그의 영적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 슬픈 기색을 하며 근심하며 가는 그의 얼굴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가는 그의 길의 종착역은 어디일까요? 결국 그는 영생을 팔아서 세상 재물을 사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99%는 다 잘했지만 결국 한 가지 부족한 것 때문에 그렇게 갈구하던 참 보화를 눈앞에 두고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23-25절을 보십시오. 부자 청년이 슬픈 기색을 하고 떠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 말씀은 한마디로 부자가 구원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의 문제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 부로 선한 일을 행하고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부자들이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분명한 영적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매우 놀라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며 실망에 찬 소리를 하였습니다(26). 그들이 그동안 주님을 좇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기쁨으로 제자 훈련을 받은 이유는 장차 부와 권세를 소유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언제까지나 가난하게 살아야 되지 않는가 하는 운명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가르쳐 주십니다. 2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구원은 인간의 선행이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하나님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베드로에게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 희생했으니 보상해 달라는 보상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또 우리는 부자 청년과 같지 않다는 자기 의가 숨어 있습니다. 어쨌든 베드로와 제자들은 세상의 모든 보화를 버리고 예수님을 좇을 만큼 용기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귀한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29,30절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주를 위하여 버리는 것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백배나 축복을 받기 위한 투자에 해당됨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인생목적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축복과 함께 박해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박해만 없으면 좋겠는데 반드시 박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박해는 우리의 믿음을 순수케 하고 땅에 붙은 소망을 떨어 버리고 참된 소망을 갖게 합니다. 박해는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자극제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은 현세의 축복 뿐 아니라 내세의 영생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때 잃는 것 같지만 실상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3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는 베드로에게 경고하신 말씀으로서 자기 의만 내세우고 투쟁하지 않으면 나중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현재 저에게도 부자 청년과 같은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학생 때부터 말씀공부하며 제자 훈련 통해 베드로와 같이 저의 모든 것을 다 팔아 주와 복음 역사를 섬기며 영생의 길로 잘 가고 있다고 자부하며 신앙생활 하였습니다. 천혜의 관광 도시 제주도가 고향이고, 집안의 장손으로서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면 안정된 생활을 하며 인생을 소시민적으로 즐기며 살 수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사명의 땅에서 고난 받으며 살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한 구석에는 이제 50중반의 나이인데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노후를 생각하여 물질적인 풍요도 누리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어 올 때 더 이상 우리 가정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일이 부담스러워 지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도 소극적이 됨을 보게 됩니다. 이제는 후배 목자들이 알아서 일선에서 사명을 감당하고 저는 뒤로 물러나 지내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이런 생각으로 더 이상 자신의 소유를 팔지 않고 챙기고자 하였던 죄악된 마음을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문의 부자 청년과 같이 세상 보화 때문에 영생을 놓치는 어리석은 삶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계속하여 참된 보화 되신 예수님을 얻고자 자신의 것을 다 팔아 영생을 얻는 귀한 삶 잘 살아 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계속하여 주와 복음역사에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 통해 참된 보화 되신 예수님을 얻고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는 진정으로 승리하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영생은 인간의 선행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회개할 때 죄 사함을 통해서 얻어집니다. 또 자신의 소중한 것을 기꺼이 팔아서 베풀 때 영생의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보화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을 얻기 위해 시간과 물질과 젊음 등 자신의 소중한 것을 파는 것이 바로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세상에 좋아 보이는 것이 많은 이 시대에 부자 청년과 같은 길을 가지 않고 참 보화 되신 예수님을 얻고자 투쟁하며 영생을 얻는 승리의 인생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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