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9-09 (일) 12:33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8년_마가복음24강-1(이인구).hwp (64KB) (Down:46)
ㆍ추천: 0  ㆍ조회: 1060      
IP: 61.xxx.106
[2018년 마가복음 제24강] 깨어 있으라

 2018년 마가복음 제24강                                                                  이인구

깨어 있으라

말씀/ 마가복음 13:1-37
요절/ 마가복음 13: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J.F.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할 때 초청객중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만나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역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그때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역사관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람의 인생에 시작과 끝이 있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에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루하루가 소중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날 세상역사의 흐름을 알 때 방향성 있고 분명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거대한 하나님 역사의 물줄기에 서 있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배우고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마지막으로 말씀을 전하시고 나가실 때에 제자중 하나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갈릴리 촌에서 올라온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감탄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세 차례 지어졌습니다. 첫 성전은 솔로몬 때 지어진 것으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에게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성전건축을 자기가 완성할 수 있어 감사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드려 지었습니다. 두 번째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으로 그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후 거의 난민과 다름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을 모아 빈약한 재정과 노동력으로 지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으로 많은 한계를 극복해가며 지었습니다. 이 성전은 초라했지만 뜨거운 신앙의 결정체였습니다. 세 번째 성전은 헤롯이 무너진 스룹바벨의 성전 터전위에 B.C. 20년에 착공하여 그가 죽은 후 A.D. 63년경에 비로소 완성한 성전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방문할 당시 외형은 완성되어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드러나 있어 헤롯성전을 보지 못한 자는 아름다운 건물을 보았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속담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에 의하면 성전은 예루살렘 전체면적의 1/6정도나(360x460m) 되었고 황금을 비롯한 수많은 아름다운 재료들이 사용되었다고 했습니다. 성전의 주춧돌 하나가 길이 7.3m, 높이 1.2m 정도로 규모가 웅장했고 성전의 천장 돔은 순금을 입혀 놓아서 아침에 해가 뜨면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성전은 유대의 건축기법을 총 동원해 지은 것으로 히브리 문화의 금자탑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자들은 이 성전만큼은 영원할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은 보느냐 둘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2) 같은 성전을 보는데도 왜 이렇게 느낌이 다른 것입니까? 제자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과 그곳을 찾는 많은 예배자들 그리고 그 안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는 종교지도자들의 외형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성전의 실체를 보셨습니다. 이방인 출신(이두메인) 헤롯은 로마제국에 돈을 주고 유대의 왕이 된 후 (백성들을 착취해) 성전을 재건하면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사고자 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그렇게 얻은 성전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장사꾼들과 협잡하여 예배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시장처럼 만들었습니다.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 아닌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데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은 인간들의 탐욕으로 인해 잎만 무성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변질되었습니다. 처음 지어진 솔로몬성전은 믿음으로 지어졌지만 솔로몬 왕 말기부터 시작된 우상숭배의 죄가 가속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아 결국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파괴됐고 두 번째 지어진 스룹바벨의 성전 또한 간절한 믿음으로 지어졌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지도자와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는 죄에 빠짐으로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로부터 심하게 파괴되고 더럽혀지게 됐습니다. 마지막 헤롯성전 또한 하나님 영광이 아닌 인간의 욕심 때문에 지어졌고 또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사용됨으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헤롯성전은 82년에 걸쳐 완성되었지만 완성된 7년 후 처참히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충격적인 예언의 말씀에 제자들은 멘붕이 되어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성전의 붕괴는 세상의 종말처럼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4)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3가지 징조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거짓메시아가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고 둘째, 전쟁과 재난이 커질 것이고 셋째, 신자들에 대한 핍박이 심해질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은 약 30년 후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A.D. 66년 예루살렘에서는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민족저항운동이 일어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로마군대가 밀리면서 이스라엘의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이 틈을 타서 여기저기서 메시아를 자처하는 거짓 메시아들이 나타났습니다. 갈릴리 므나헴은 자신이 진짜 왕이라고 자처하며 대제사장을 살해했고 시몬 바르기오라는 자는 자주색 옷을 입고 다니면서 신비적인 일을 하며 메시아 흉내를 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반란이 거세지자 로마는 티투스 장군을 출격시켰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후퇴하다 성전은 안전하리라 믿고 성전으로 도망했습니다. 하지만 티투스장군은 예루살렘 성의 식량공급로를 차단하고 3년 동안 포위했습니다. 예루살렘성안에서 포위된 유대인들은 굶주림 속에서 죽어가면서도 교파와 당파의 싸움으로 더욱 찢어져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더 이상 저항능력을 상실했을 때 성을 공격해서 110만 명의 유대인들이 굶주림과 칼에 죽었고 97000명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로마군인들 사이에서 유대인들이 성벽사이에 금을 숨겨놓았다는 소문이 돌아 모든 성벽의 돌을 무너뜨림으로 결국 예수님 말씀처럼 성전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게 됐습니다.(요세푸스의 유대의 전쟁사) 현재 성벽의 일부만이 ‘통곡의 벽’으로 남아 그 참혹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후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많은 신자들이 권력자들 앞에서 수치와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됐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은 먼 훗날이 아니라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약 30년 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23) 마가복음 13장 말씀은 2천 년 전 한 번의 이스라엘 역사에만 적용되어 끝난 것이 아니라 21세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어린 아기를 업은 엄마가 밤에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보름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달 좀 봐라!” 말했습니다. 이때 아직 엄마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라면 단지 엄마 손가락만을 보겠지만 엄마 말을 알아들을 정도의 아이는 엄마 손가락 넘어 보름달을 볼 것입니다.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역사에 대한 다양한 많은 시각들을 가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세상에서 보여주는 것만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은 세상의 관점에서 사람들의 관점으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봐서는 안 됩니다. 세상역사를 주관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 편에서 역사를 볼 때, 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예루살렘 성전의 최후를 통해 인류역사의 최후를 보여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성전의 멸망은 앞으로 다가올 최후의 대 환란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인류역사의 말세의 때에 사람들은 이 말씀처럼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진행되는 환란의 쓰나미에 순식간에 휩쓸려 버릴 것입니다. 그 때는 아무리 최신식 스마트폰과 네비게이션으로도 도망갈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세의 때에 택함 받은 신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때를 준비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말세의 징조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째, 거짓메시아의 미혹(5,6)
  오늘날처럼 (과학기술을 통한) 합리적 사고방식과 빠르고 정확한 정보교환으로 어떻게 거짓 메시아가 나타날 수 있을까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몇 번의 검색만 해보면 이자가 가짜인지 진짜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눈 뜬 장님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정보들 중에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지 못하고 또 진짜라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할 때 더욱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문제는 내가 속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재수하기 위해 처음 서울로 올라올 때 아버지께서는 크게 걱정하며 경고했습니다. “서울은 순박한 충청도와는 달리 눈감으면 코 베가는 곳이야. 항상 속지 않도록 조심하고 깨어있어야 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서울역 근처의 종로학원을 다녔던 저는 아버지의 말씀에 한 달 동안 마스크를 쓰고 다녔습니다. 그 후 대학교에 들어와 보니 같은 하숙집형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경고했습니다. “신입생 때 정장입고 성경책 들고 친절하게 다가오는 여자 선배들을 반드시 조심해. 잘못하면 아프리카 선교사로 끌려가 인생 끝장날 수 있어!” 그러다 대학교에 들어와 모처럼 고등학교 때 단짝이었던 친구를 만났는데 정말 좋은 곳이 있다고 해서 따라가 보니 증산도 도장이었습니다. 믿을만한 친구와 너무나 친절하고 신령스러워 보이는 사람들과 같이 신령한 주문도 외우고 절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공부를 하며 미혹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지방 센타의 한 목자님이 자신의 자녀가 몇 년 동안 신천지에 빠진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당장 자녀를 돌이키고자 했지만 벌써 거짓복음으로 세뇌당한 자녀를 돌이키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결국 목자님은 직장도 포기하면서까지 신천지 사람들을 피해 다니면서 몇 달 동안 자녀와 함께 하며 말씀을 주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결국 그 자녀는 아버지에게서 예수님 같은 애타는 사랑을 깨닫고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신자들을 미혹하는 이단의 보편적인 형태는 진리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에 욕구에 맞게 바꾸는 것입니다. 또 진리의 말씀 일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성품 중 진리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신앙생활이 숨이 막히고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또 예수님의 은혜만을 받아들인다면 신앙생활은 안일해지고 제멋대로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시자 또한 은혜이십니다. 신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좁은 길을 갈 때 한 발자국도 좌우 어느 쪽이든 치우치면 비극이 일어납니다. 또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한계적인 지식과 경험과 이성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만약 억지로 이해하려고 힘쓴다면 이단에 빠지게 됩니다. G.K. 체스터톤은 말했습니다. “천국을 머리 안에 넣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자이며 그의 머리가 파열될 것은 당연하다. 지혜로운 자는 그의 머리를 천국 안에 넣는 것으로 만족한다.” 지혜로운 신자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하게 말씀이 인도하는 데까지 가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는 멈춥니다. 자기 생각대로 더 나아가고자 한다면 그때부터 거짓 영(이단)의 미혹에 빠지게 됩니다. 신자들이 복잡하고 혼란한 세상에서 믿음과 가치관이 분명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미혹될 수 있습니다. 특히 심각한 인생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나 신앙생활에 회의를 품고 있을 때 미혹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미혹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이 아닌 말씀에 기초한 분명한 영적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부분적으로 깊이 공부할 뿐만 아니라 성경전체의 흐름을 파악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전쟁과 재난(7,8)
  강대국들의 충돌지인 우리나라만큼 전쟁의 위협이 큰 곳은 없습니다. 하지만 ‘핵단추, 서울 불바다’하며 두려움을 주었던 김정은 북한 지도자가 얼마 전 문재인대통령과 판문점에서 만나 이제 한국에서 전쟁은 끝났다며 종전선언을 하면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역사상 전쟁은 예측할 수 없을 때, 인간의 순간적 그릇된 판단으로 촉발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천만 명이 죽은 제1차 세계대전도 한 세르비아 청년이 쏜 2발의 권총사고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세기만 해도 인간은 계몽주의 사상에 깊이 빠져 합리적 이성으로 이상향을 만들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은 결코 이성적이지 않고 합리적 이성의 가면 속에 악마의 광기가 숨겨진 존재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는 이 땅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고 만약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면 신자로서 마지막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갈수록 빈도와 강도가 세지는 자연재난도 말세의 징조입니다. 제 작년 경주지진, 작년 포항지진으로 걱정을 주더니 겨울에는 극한 한파로, 봄에는 심각한 미세먼지로 고통을 주다가 여름이 되니 미친 듯 한 무더위가 기존의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정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올라가고 그동안 지구 환경을 조정하던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세계 곳곳에 이상기후와 이상 현상이 나타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북극의 빙하가 2030년이면 완전히 녹고 이제 손을 쓰기에 이미 늦었다고 합니다. 매년 겨울과 봄마다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는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뿐 아니라 뿌연 공기로 앞을 볼 수 없어 정신까지 흐려지고 영혼까지 파괴하는 것 같습니다. 플라스틱은 인류에게 큰 편리성을 주었지만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잘게 부서져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바다를 오염시키고 바다 생명들을 병들이고 있습니다. 바다의 오염은 돌고 돌아 우리가 깨끗하다고 안심하며 먹는 생수에서도 미세 플라스틱 조각이 들어가 결국 인간을 병들이고 죽어가게 합니다. 과거에는 지진, 태풍 등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재해 때문에 고통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인간을 괴롭히는 재난은 지구 온난화, 대기오염, 해양오염, 신종 바이러스 등 인간의 탐욕의 죄 때문에 생긴 인재입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재난은 조절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었고 갈수록 빈도와 강도가 세지면서 결국 마지막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재난에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정말 무서운데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신자들은 재난의 의미를 알고 또 이런 재난도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믿을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재난들은 그 자체가 종말이 아니라 종말의 징조와 경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재난들을 통해 우리가 세상의 소망을 끊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셋째, 신자들에 대한 핍박(9-13)
  예수님은 말세의 때에 신자들이 당할 핍박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시기와 고난을 당하고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배신당하여 죽게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히틀러시대에 독일에서 어떤 사람이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체포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를 밀고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투옥이 되었고 고문을 당하였지만 불굴의 의지로 견디었습니다. 그런 중 연합군이 승리해 마침내 석방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석방된 후 어떤 사실을 알고 나서 자살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모든 고통을 견디고 인내했지만 자신을 밀고한 사람이 자신이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견딜 수 없어 결국 삶을 포기했습니다. 어떤 이는 지금은 일제시대도 아니고 여기는 이스라엘도 아닌데 예수님 믿는다고 누가 핍박을 하느냐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선데이 크리스찬처럼 적당히 믿으면 아무도 핍박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삶의 방향이 다른 세상 사람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같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지 않으면 미움 받고 심지어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애매하게 핍박을 받으면 피해의식과 믿음으로 사는 것에 회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핍박은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함이라.”(9c) 핍박은 권력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사도바울도 죄인이 되는 핍박을 통해 로마전도의 기초를 놓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핍박을 통해 신자들은 믿음의 증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속한 자가 아니요 예수님께 택함 받은 자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요15:19) 예수님께서는 핍박을 받을 때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라 하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하다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리허설을 하며 준비해도 막상 핍박을 받게 되면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핍박의 때에 신자들은 자신(생각과 경험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핍박의 때는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폭풍우 치는 밤바다를 항해하는 것 같은 인생핍박의 때에 신자는 자신이 잡고 있던 배의 핸들을 믿음으로 성령님께 넘겨줘야 합니다. 세상 끝 날이 가까워 올수록 사람들은 이기적이 되고 인본적이 되고 세속적이 되어 자신과 삶의 방향이 다른 신자들과 더욱 미워하고 핍박할 것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13) 인생은 짧고 빠른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 경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경주의 마지막 한 바퀴에서 낙오됩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존 번연은 꿈속에서 하늘의 문에서 지옥으로 통하는 길이 있는 것을 보았다 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믿음의 경주는 나 혼자 달리는 경주가 아닙니다. 신자는 말세의 때에, 아니 지금 인생경주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과 동행함으로 좁은 길을 끝까지 견디며 뛸 수 있습니다.
  말세의 때의 재난과 핍박은 종말의 징조이자 또한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해산의 고통입니다. 8절의 후반부를 보십시오.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These are the beginning of birth pain." 많은 산모들이 출산의 고통을 힘들어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해산의 고통을 통과하여 귀하고 사랑스러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재난과 핍박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신자들에게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의 징조가 됩니다. 또 이런 고통을 통해 세상에 둔 모든 거짓 희망을 털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돌이킬 수 있습니다.
  24절부터 보십시오. 말세의 모든 환란이 끝난 후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립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은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실 때는 시골 말구유에 가장 비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감당하고 섬길 낮고 천한 종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재림주의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십니다. 이 예수님의 모습은 왕은 왕, 심판주의 모습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믿지 않는 자들은 무너지는 땅과 함께 영원한 심판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고 말세가 어디 있냐며, 세상은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라며 담대하게 죄를 짓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친한 친구들이 다 지옥으로 가고 혼자 천국가면 재미없으니 자기도 지옥 가겠다고 웃으며 말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그가 죽을 때까지 예수님의 재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질병이나 사고로 내일 죽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죽음이라는 인생의 말세, 마지막을 날을 맞이합니다. 불신자들뿐 아니라 많은 신자들이 말세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형제는 “천국에선 결혼도 안한다는데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말세는 절대로 없을 거야!” 한 사모님은 “말세의 고통이 엄청날 텐데 나와 우리 애들이 늙어죽기까지 예수님께선 분명히 재림하지 않으실 거야” 하지만 진정 믿음 있는 신자는 때의 징조를 보며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대비합니다.
  28절에서 예수님께선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말씀하십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대부분 상록수인데 무화과나무는 그렇지 않습니다. 봄이 매우 짧기 때문에 무화과나무 잎이 돋기 시작하면 곧 여름이 다가올 것을 알게 됩니다. 무화과나무의 변화에서 계절을 파악할 수 있듯이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징조가 나타날 때 주의 재림이 임박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선 이 세대 즉 성령시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알지만 죽을 날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의 사실을 알지만 그 날은 모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선 ‘깨어 있으라’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33,34,35,37절)
  춘향전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통속 소설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참 복음적인 소설이고 이를 통해 인내의 믿음과 참된 소망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말세의 때에 끝까지 깨어서 믿음을 지킨다면 춘향전의 마지막 장면처럼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일편단심 이몽룡만 바라보며 모든 고문과 핍박을 견디던 춘향이가 D-day 하루 전 변심해서 변학도의 품에 안겨버렸다면 암행어사 출두하는 그 날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의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한 기생의 딸이지만 끝까지 깨어서 믿음과 소망으로 정절을 지켰을 때 암행어사와 함께 하는 승리의 날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천한 죄인들이지만 깨어있을 때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깨어 있는 삶은 스스로 조심하는 삶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임할 것입니다.(눅21;34)
  그러면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습니까? 24시간 내내 잠을 자지 말아야 합니까? 초대교회의 상징인 물고기처럼 하루 종일 눈을 뜨고 있어야 합니까? 34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타국에 가기 위해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있으라 명했습니다. 주인은 약속대로 반드시 다시 와서 결산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이 와서 자고 있는 종이 있다면 그는 그 집에서 영원히 쫓겨날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삶은 현재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삶입니다. 시대의 문지기요 또 종으로서의 사명은 기도하는 삶이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삶이고 또 현재 각자 주어진 직분에 충실한 삶입니다. 신자들은 장차 올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어야 합니다.(눅21;37)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요 영적 호흡이요 영적 레이더입니다. 기도함으로 우리는 시대를 분별할 수 있고 재앙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고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능력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말씀전파는 말세를 살아가는 택한 자들을 깨어있게 하는 큰 사명이자 축복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할 때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과 비전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또 복음을 전파함으로 죄악된 세상역사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역사를 이끄는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은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지어졌지만 죄 때문에 결국 다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성전으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린도전서3;16,17)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는 성전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매일 깨어서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죄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또 열등감과 자기비하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말세의 때에 깨어서 기도하고 말씀을 전파함으로 많은 생명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말세의 때에 부족한 죄인을 택하시고 깨어서 기도하며 말씀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고 또 지금도 세상 죄에 매이는 자신을 보며 불신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성전으로 세워주신 은혜를 감사하지만 기도와 말씀에 힘쓰지 않을 때 순식간에 세상인본주의 세속주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인생의 마지막 날에서 구원받은 자로 다시 얻은 새 생명을 깨어서 예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자녀요 성전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세상 죄에 빠져 세상역사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며 말씀을 증거함으로 하나님 역사를 이끄는 역사의 주인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택함 받은 신자가 말세의 때에 깨어있도록 경고하셨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세의 때에 택함 받은 우리는 깨어서 우리에게 맡겨진 한 생명을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62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5강]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난 솔로몬 관리자 2018-11-04 983
561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4강]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관리자 2018-10-28 1043
560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3강]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 관리자 2018-10-21 1240
559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2강] 지혜를 구한 솔로몬 관리자 2018-10-14 1014
558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1강] 왕으로 세움 받은 솔로몬 관리자 2018-10-07 994
557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8강]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관리자 2018-09-30 1183
556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6강]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관리자 2018-09-23 1077
555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5강] 언약의 피 관리자 2018-09-16 980
554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4강] 깨어 있으라 관리자 2018-09-09 1060
553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3강] 첫째 되는 계명 관리자 2018-09-02 1178
552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2강]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관리자 2018-08-26 999
551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1강]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관리자 2018-08-19 1016
550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0강] 섬기러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18-08-12 986
549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9강] 부자와 하나님 나라 관리자 2018-08-05 991
548 요한복음 [2018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관리자 2018-07-29 981
547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8강] 첫째 되고자 하면 관리자 2018-07-22 1018
546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7강] 믿는 자에게는 능히하지 못할일이 없느.. 관리자 2018-07-15 1072
545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5강]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관리자 2018-07-08 1323
544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4강] 이 말을 하였으니 관리자 2018-07-01 1099
543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3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관리자 2018-06-24 1248
1,,,11121314151617181920,,,39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