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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8-16 (일) 12:56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가을학기준비특강(1)-요한복음.hwp (40KB) (Down: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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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가을학기준비특강-1]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2009년 가을학기 준비 특강                                                                   황아브라함

오병 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6:1-13
요절: 요한복음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오늘 말씀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들은 말씀은 다 안다는 선입관념 때문에 식상한 개념으로 귀 기울이지 않는 나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분들 중에는 “아 또 그거, 빌립의 부정적인 생각, 안드레의 오병이어를 드리는 믿음, 뻔한 거... 어디 한번 또 들어보자 뭐 새로운 게 있나”하고 잘 못 생각하고 있는 분들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다 아는 말씀이지만 새롭게 회개 하는 마음으로 들읍시다. 저 역시 새롭게 회개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하여 다 같이 안드레 믿음을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경희대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먹이는 놀라운 역사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오병이어의 기적
  오랜만에 제자들과 예수님은 무리를 떠나 조용한 시간을 갖고자 했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둘 씩 둘 씩 무전 전도여행을 할 때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오는 영적 긴장감에서 오는 피곤을 풀고자하는 일종의 휴가 소풍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님 생각이고, 무리 생각은 달랐습니다.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은 정작 무리들이 좇아올 수 없는 행위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무리들은 배도 없고 또 박태환 선수라 할지라도 수영을 하며 좇아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식으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어야 할 형편 같이 보입니다.
더구나 그 당시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로 무리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할 때입니다.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예수님이 가신 곳은 벳세다에서 동쪽
옆으로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반대쪽입니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최고의 명절로 노예에서의 해방에 대한 감사 축제이며 또 죄를 사하는 예식을 하는 아주 중요한 명절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리들은 직행으로 가는 예수님을 포물선을 그리듯이 빙 도는 길을 힘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좇아 왔습니다.  
  이를 볼 때 진정 사람들은 거대한 외적인 행사보다 실제 자신의 내면을 도와줄  예수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또한 인생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여러 가지 종교적 행사가 아니라 이들의 인생문제를 깊이 아시고 말씀으로 치료하시는 예수님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고 또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5,6절 말씀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6절에서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셨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배고픈 무리를 보시고 이미 그들을 불쌍히 여겨 어찌든지 먹이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하셨다는 뜻입니다. 또 이들을 먹이기 위해 빌립을 쓰시고자 빌립을 시험하셨습니다. 시험은 반드시 정답이 있고 또 답을 틀릴 수가 있습니다. 또 시험은  혹 답이 틀렸다 해도 나중에 정답을 앎으로 어떤 점에서 자기가 실수를 했는가를 알게 되어 자기 교정과 성장에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또 시험에는 틀릴 수 있는 함정이 있습니다.  빌립에게 내준 시험 문제는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는냐?”입니다. 이 시험은 영적인 시험문제로 세상 시험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영적인 사람인가 아닌가에 따라 이질문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이 말씀을 영적 소원이 부족한 사람이 보면 그냥 글씨대로 해석하게 되는데 그냥 글씨의 내용은 5,000명 아니 10,000명 이상이나 되는 무리를 먹일 수 있는 빵 공장의 장소를 묻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공부할 때 중요한 것은 절대로 글씨 그 자체를 공부하기보다는 그 말씀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Spirit을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으로 우리 영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 이 질문에는 실상 예수님이 어찌든지 이 배고픈 무리들의 형편을 잘 아시고 간절히 먹이고자하는 심정과 의지가 숨어있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서 이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을 읽어야 합니다. 이러한 예들은 성경에 무수히 많습니다. “제 7일에는 안식할 찌니라” 이 하나님의 계명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단순히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멍청한 유대학자들은 안식일에 금지된 일에 대한 규례를 만들어 안식일에 쉬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여러 가지 규례에 대한 짐을 지므로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포기하고 스스로 노예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제 7일에는 안식할 찌니라”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일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우리인간과 온전한 관계회복을 원하심이 숨어있습니다. 즉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께 나와 온 마음으로  참 경배와 찬송을 드리고 또 그날에 하나님이 이 모든 피조물들을 축복하기를 간절히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니라” “천하 만민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제 내가 복의 근원이 되었다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 속에 하나님께서 나같이 엉터리 같은 자라도 택하여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과 의지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간절한 축복의 소원과 간절한 사랑을 깨닫고 이를 배우고자 노력하며 어찌든지 남을 축복하고자하는 간절한 소원으로 남을 위해 축복기도, 중보기도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이럴 때 진정으로 내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또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 말씀 역시 이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소원과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비록 우리 육신의 장막터는 한정이 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실 때 전 세계를 품고 기도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의 장막터를 주셨고 하나님께서 전 세계를 품고 복을 주고자 하는 역사에 나를 동역자로 초청하여 같이 일하고자 한다는 하나님의 강한 Spirit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모든 성경말씀을 글씨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글씨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간절한 Spirit을 보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시대에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하는 서기관과 같이 성경에 무식할 수밖에 없고 빌립과 같이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빌립의 대답을 보십시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이 뜻은 말하자면 “빵공장이요? 예수님 참 답답하시네, 아 우리 주머니 사정을 그렇게 몰라요?” 하는 뜻입니다. 그는 육신적으로 예수님을 좇는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예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 예수님의 말씀 속에 들어있는 예수님의 간절한 목자의 심정에 대해 깨달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축복하여 쓰시고자 했으나 믿음이 없어 스스로 복을 걷어차 축복을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실패 후 실패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투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까지 같을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참으로 영적으로 둔하고 마음이 완악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빠른 시일 내에 자신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빌립에게 향한 것입니다. 해서 피곤하고 지쳐 멍청해진 제자들 역시 이 말씀을 자기에게 향한 말씀이 아닌 것으로 고의적으로 피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조금 있더니 안드레가 사라졌고 또 조금 있더니 조그마한 코흘리개 아이를 데리고 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아마 다른 제자들은 멍청한 생각으로 안드레를 멍청하게 쳐다보며 엉뚱한 안드레를 보고 참 멍청하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받으셨습니다. 어떤 점에서 안드레는 훌륭합니까?

첫째 그는 빌립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 속에 예수님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즉시 행동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이는 마치 야곱의 4째 아들 유다가 어려울 때 홀로 책임을 지고 자기 가족을 살리고자 생명을 무릅쓴 행동으로 장자권과 그리스도 탄생의 축복을 얻은 것과 같은 축복의 쟁취입니다.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은 안드레에게서 떡을 사서  먹이겠다는 뜻이 있고, 또 안드레는 예수님에게서 이 사람들을 먹일 수 있다는 뜻으로 안드레는 정확하게 예수님의 마음과 자기의 무능과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자 이 떡을 예수님께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불가능한 가운데 있는 것을 찾게 되고 또 아주 작은 것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오며 예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의지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이 오병이어 속에 있는 안드레의 믿음을 참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리고 안드레는 비록 반신반의를 했지만 넘치도록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무리들로 전부 앉게 하셨습니다. 이는 모두가 욕심이나 시기를 부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자기 때, 즉 자기 순서를 기다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 하나님의 축복이 저주가 되지 않고 끝까지 축복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 이 배고픈 무리들을 그야말로 음식이 목구멍에 차도록 먹이셨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끝까지 먹지 못하고 먹다 남은 빵 조각들을 버리기 시작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하시고 먹다 남은 음식 다시 말하면 남의 침이 뭇고 손의 때가 묻은 음식들을 12 바구니나 거두었습니다. 아마 예수님은 친환경 주의자로서 처음 시작이었고 또 친환경을 위해 처음 일하신 분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당장 배불러 버렸지만 배고픈 무리들과 제자들을 생각할 때 음식을 아끼고자 했던 거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늘 할머니께서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게 했습니다. 이는 음식을 하나라도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음식을 버리면 하나님께 벌 받는다 하셨습니다. 이 할머니 교육의 바람에 저희 집안에는 늘 음식을 버리지 않고 철저히 먹어 치우지 썩혀 버리지 않습니다. 이는 저희 할머니 교육이 아니라 예수님 교육입니다.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예수님은 예수님이 주신 모든 축복, 시간, 물질, 건강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유효하게 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도 낭비를 원치 않으십니다.  솔직히 경성센타 형제자매님들을 보며 하나님께서 참 많은 축복들을 주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구유 정신을 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시 한 번 결론으로 안드레 믿음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보리떡 다섯 개 작은 물고기 두 마리는 가난한 어린아이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아주 작은 음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물질을 쓰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과 즉각적인 순종의 행동을 받으시고 큰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이 작은 오병이어 속에 안드레의 예수님을 기쁘시고자 하는 이 믿음이 숨어 있어, 예수님께서 이를 받으시고 큰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인간은 자기 자신과 남을 책임질 수 있는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빌립은 스스로 남을 책임지고자 할 때 너무 부담이 되어 거절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역사의 주체자가 아니라 동역자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자로 인생들을 책임지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진심을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까하는 것을 기대하고 믿음으로 바라보는 존재입니다.

2. 멕시코 역사 보고
  저는 멕시코 역사를 섬기며 실수와 허물을 많이 행했습니다. 저는 늘 감사와 회개 제목으로 멕시코 역사를 바라봅니다. 현재 멕시코의 저희 센타의 보이는 열매는 일대일 160팀, 주일예배 약 130명 정도와 저희 자녀들을 포함하여 14명의 선교사 파송과 멕시코 내에 4개의 센타를 멕시코인들을 내보내어 개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들은 큰 역사라고 하지만 솔직히 저는 하나님께 회개하는 마음이 훨씬 더 큽니다. 만일 하나님이 주신 여러 가지 좋은 축복들을 잘 감당했다면 이보다 훨씬 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을 것입니다. 약 1년 반 전에  멕시코 역사에 구체적으로 역사를 보고 한 것 같아 이번에는 제가 제 모든 약점은 감추고 안드레와 같은 훌륭한 믿음은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 저의 오병이어를 드리고자 약간의 노력한 점을 한번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 역사의 가장 큰 공로자는 하나님이요 그다음은 저의 동역자 사라 선교사님입니다. 사라선교사의 인생 소감 제목은 “내 인생에는 방학이 없었다”입니다. 그만큼 일로 연단된 종으로 멕시코 역사에서 아주 훌륭한 성경선생들을 키운 장본인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 생략하고 못났지만 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저는 말씀과 기도의 오병이어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고 못하는 공부는 국어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을 하면서도 두려움으로 이야기 하여 나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자였으니 남들이 제 말을 들을 때 어떠했겠습니까? 해서 소감은 물론 메시지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ubf 체질이 아닌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소망 없던 저를 서제임스 목자님이 제게 소망두시고 그 요회에서 키웠습니다. 늘 그 당시 서제임스 목자님이 수요일 요회 모임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그야말로 늘 감동적으로 제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제임스 목자님은 시간만 있으면 늘 성경을 보셨습니다. 이것이 저로 하여금 메신저로서의 강한 소원과 성경 선생으로의 깊은 소원을 갖게 했습니다. 이렇게 서제임스목자님 밑에서 이분의 메시지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말씀을 어떻게 준비하는 가 비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간절한 소원과 비밀의 깨달음이 멕시코 역사를 아주 재미있게 섬기도록 했습니다. 남들은 은혜 받는지 아니면 지루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말씀을 보며 늘 스스로 은혜를 받아 매주 주일 메시지가 부담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기대감으로 오게 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주일이 큰 기쁨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또 저는 참으로 무능한 자입니다. 제가 어릴 때 어머니 젖을 먹다 어머니 젖꼭지를 깨물자 어머니가 제 따귀를 때림으로 젖을 끊었다고 합니다.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이 영향으로 저는 사람들 특히 어른들을 두려워하며 사람들을 피하여 자기 세계에서 자랐습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배워 출세하기 보다는 이 두려운 사람들이 많이 사는 두려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 나갈까 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니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며 여러 신앙위인 책들을 읽으며 한 가지 깊이 깨닫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위대한 주님의 종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종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제게 기도할 소원을 심어 주셨습니다. 저는 무능하여 소감도 잘 쓰지 못하고 피싱도 잘 하지 못하니 교회에서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청소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청소만 열심히 하고 다른 것을 못하는 고졸자를 똑똑한 고대생들은 무시를 하여 제 마음에 한이 생기게 했습니다. 저는 참 한이라는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늘 고등학교까지 하류학교에서 공부를 그래도 잘한 편이라 무시를 당한 적이 없었는데 ubf에서 처음으로 사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똑똑한 분들보다 잘해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참 쉬었습니다. 우선 대인 공포증, 대인 기피증이 있어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교제를 갖는 것이 싫고 부담으로 작용했는데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 공포증, 하나님 기피증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제가 기도할 때 늘 기쁨과 성령충만으로 저를 즐겁게 하고 제게 담대함을 주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이 되지 않고 점점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으며 사람들 앞에 담대하게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기도는 꼭 한 달란트를 받은 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장사할 힘이 없자 은행에 투자하여 이자를 받는 것과 같았습니다. 제 양이 없으니  당연히 제 기도는 거의 남과 남의 양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또 세계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많이 하는 것만큼 많은 기도 제목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야말로 넘치는 이자로 갚아 주셨습니다. 우선 기적으로  외대 야간에 스페인과를 만들어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또 훌륭한 사라 선교사를 동역자로 주시고 저를 말씀의 종으로 키우시고 멕시코선교사로 보내시고 기도로 참으로 기적 같은 일들을 참 많이 체험하게 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믿고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솔직히 ubf에서 많은 분들에 대해 기도 만큼은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어 이 시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무슨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는 소감들을 참 잘 씁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말씀에 크게 은혜 받았다하면서 메시지 후에 남들과 이야기 하고 전혀 기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수양회가 끝난 후 나중에 결단하려나 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의 경험으로는 말씀을 받자마자 즉각적인 기도를 하지 않으면 은혜 받은 말씀이 식어버려 회개와 결단이 잘 되지 않습니다. 해서 저는 무슨 말씀을 받으면 사람들 속에서도 속으로라도 중얼거리며 끊임없이 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또 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분들을 위해 기도투쟁을 많이 합니다. 이는 아무도 하나님께 제게 대한 송사를 하는 사람들의 송사가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 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기도와 말씀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가능한 모든 일을 지혜롭게 처리하는 사라선교사에게 맡기고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끊임없이 쉬지 않고 기도하고자 결단하고 투쟁한다고 했지만 기도할 때보다 기도 하지 않고 시간낭비 할  때가 더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둘째 저는 감사의 오병이어를 열심히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인 것 같습니다. 성경을 공부해보니 깊이 깨닫는 것은 하나님은 인생의 주관자이시며 또 무엇이든지 저를 위해 일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서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감사하고 회개 제목을 찾고 회개 투쟁을 했습니다. 솔직히 예수님을 알고 난 후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한번이라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의 성격은 싫어한 적은 있어도 사람을 미워하거나 시기 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좋은 일에 하나님께 너무 기뻐하며 감사하다가 저는 하나님께 자주 묻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무슨 축복을 기대하여 의도적으로 감사한다거나 또 아첨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을 아시지요?” 까지 질문하며 감사로 많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습니다.  또 환란의 때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넘치는 감사와 회개를 드렸습니다. 일예를 들어 Guillermo 라는 한 멕시코 양의 명의로 센타를 샀는데 그가 센타를 욕심내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부패가 충만한 멕시코에서 변호사에게 속아 2일 동안 감옥에 있었고 또 10만 불 약 1억 이상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다 설명드릴 수 없지만 저는 얼마든지 이 문제는 적어도 다른 사람이 책임져야할 문제로 다른 사람을 원망할 수도 있고 겉보기에는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저는 철저히 하나님 사랑에 감사했고 대신에 나의 숨은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 당시 사단의 역사로 주일 예배가 50명에서 35명으로 줄었는데 이렇게 감사와 회개로 일관 했을 때 하나님은 다음해 주일예배가 70명으로 성장케 하시고 또 갑자기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축복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님 은혜는 감사로 갚을 뿐이지만 사람의 은혜는 늘 기도로 갚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늘 은혜 입은 분들을 위해 속으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은 저와 저의 가정과 역사를 크게 축복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셋째로 주는 정신과 말구유 정신으로 역사를 섬겼습니다. 제가 ubf에 나올 때 30여 년 전에는 해마다 거의 모든 평신도 목자들이 건축헌금 백만 원과 성탄헌금을 백만 원씩 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은행원으로 받는 월급이 약 50만원이었습니다. 이 주는 정신을 배워서 멕시코 역사를 똑같이 섬기고 이 정신을 가르쳤습니다.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호세안 선교사님께서 헌금해놓은 것을 100% 시카고 본부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십일조는 물론 희생적으로 성탄헌금을 양들에게 가르쳐 세계 가난한 나라들을 돕도록 이제 까지 가르쳐 왔습니다. 예를 들면 작년 크리스마스 헌금에도 약 14,000불을 헌금하여 일부는 멕시코선교사들을 돕고 나머지는 북한을 위해 한국에 보냈습니다. Sergio 목자는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2000불을 헌금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참으로 말구유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예를 들면 일 년에 두 번 있는 수양회를 위해 정식으로 차를 대절해야 하는데 어떻게든 싸게 하기 위해 최고로 싼 수양회 장소와 또 고물차를 거저 빌려 하려니 해마다 차 사고 노이로제에 걸렸습니다. 한번은 Blas 목자 회사에 20년 된 20인승 고물차를 빌려 수양회에 33명을 태워 언덕길을 올라오다가 엔진이 파열되어 이 문제를 수습하고 오니 그 다음날 새벽 5시가 넘었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가난한 멕시코인들의 목자가 되기 위해 가난을 배워야 한다며 이 말구유 정신을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해서 첫째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의도적으로 공립학교를 보냈는데 매일 같이 도시락을 빼앗겨 눈물자국을 안고 집에 돌아 왔습니다. 이 말구유 정신이 멕시코인들에게 심겨져 가난하고 거지 근성이 있던 이들이 희생적이고 자립적인 목자들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넷째로 섬기는 정신을 가르쳤습니다. 멕시코 역사를 시작할 때 한국인 한사람이 제게 충고했습니다. 멕시코인들은 힘들다. 단물만 빼먹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예로 한 미국인 선교사가 결국 멕시코 인들 욕을 하며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어디 멕시코인뿐이랴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다” 하며 그 말을 무시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센타에서 살면서 매일 같이 청소하며 사는 것에 익숙해 있어 혼자 섬기는 것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섬기면서 섬기는 면에서는 멕시코 인들에게 요구하지 않고 저 혼자하고자 또 어찌든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일 더 궂은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비록 이들은 저와 같이 희생적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저를 사랑하고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렇게 희생적으로 역사를 섬기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약 6년이 지난 후 1990년 Edith 목자의 남편 Isidro 가 나타나 저보다 더 열심히 일하며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감사하고 훌륭해 보이던지 이 형제의  공부문제도 무시하고 멕시코 역사의 최고 공헌자인 Edith 목자와 결혼 시켰습니다. 그 후 수학 기초가 없어 학교를 못 마치는 것을 알고 수학공부를 시켜 사립학교를 졸업시켜 지금은 El Salvador에서 건축일에 주인이 100%믿고 일을 맡겨 요셉과 같이 일을 하며 하나님역사를 섬깁니다. 그의 좋은 영향의 시작으로 이제는 제가 섬기는 일을 하지 않아도 멕시코인들이 스스로 섬기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해서 저희 센타는 풀타임 목자가 없이 다 평신도인데도 센타가 문제없이 잘 돌아 갑니다.

이상에서 적으나마 제가 하나님께 드리고자 투쟁했던 5병2어를 적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백합니다. 제가 무엇을 했다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빌립과 같은 저를 오래 오래 참으셨습니다. 제가 좀 더 시간을 지혜롭게 써서 끊임없이 기도를 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열매로 축복해주셨을 것입니다. 이 시간 깊이 회개합니다. 제가 말씀과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기를 기도합니다. 남미 개척역사는 경한 일이요 전 세계 캠퍼스 개척역사를 위해 기도와 순종의 오병이어를 드리는 생활을 믿음으로 감당하겠습니다. 이것도 주님께서 도우셔야 가능한 일이지만 오직 믿음으로 결단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모든 분들이 오병이어를 찾아 주님께 헌신하는 가운데 주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복된 인생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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