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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9-20 (일) 12:38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요한계시록
첨부#1 2009요한계시록3-1.hwp (67KB) (Down: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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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요한계시록제3강]굳게 잡으라
2009년 요한계시록 제 3 강

굳게 잡으라

말씀 요한계시록 2:12-29
요절 요한계시록 2: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오늘 말씀은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발람의 교훈을 지키고 이세벨의 가르침에 꾀임을 받은 자들을 책망하시면서 '너희에게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 권면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허락하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굳게 잡고 순종하는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Ⅰ.버가모 교회에 보낸 편지(12-17)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신 예수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라 하셨습니다. 검은 공격용 무기입니다. 버가모 교회에 편지하신 예수님은 적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예리한 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든 영적 전투를 하실 수 있는 준비를 갖추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검에 비유하였습니다.(히 4:12) 또한 예수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온다 하였습니다.(계 1:16) 예수님의 말씀은 날선 검이 되어 성도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죄와 싸우시고 궁극적으로 회개시키십니다.
  버가모 교회가 있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버가모는 헬라어로 '성채'를 의미하는데 수백미터의 언덕위의 세워진 도시는 주위가 계곡으로 둘러싸여 말 그대로 천연요새였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소아시아의 행정의 수도가 되었고 황제 신전을 가장 먼저 건설하여 황제 숭배의 중심지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스클레피우스(의술의 신), 데메테르(농업의 신), 디오니수스(술의신) 등의 신전이 있었고 성채 중앙에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버가모 교회는 사단의 권좌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붙잡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로마는 황제를 숭배할 때 전체 시민이 참여하도록 했으며 참석치 않으면 국가에 대한 불충으로 간주하여 왕따 시켰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요동치 않고 황제 기념 축일에 참여치 않았습니다. 우상의 신전에서 나눠준 고기도 먹지 않았습니다. 결국 성도들은 이로 인해 핍박을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초대 버가모 교회의 감독이었던 안디바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안디바는 예수님의 충성된 증인으로 고통스런 순교를 당할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버가모 교회의 영적 환경과 그들의 신앙을 잘 아셨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순교자를 배출한 전통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에도 에베소 교회와 같이 두어 가지 책망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각 교회에게 칭찬만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좀 부족하더라도 위로의 말로 힘을 북돋워 주고 연약한 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책망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는 것이 더 힘들고 더 고통스런 일입니다. 마음이 아프다고 책망하지 않을 때 그릇된 길에 빠져 때를 놓치면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이 아프더라도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을 파멸로 이끄는 죄에서 돌이키시고자 하셨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은 모압 족속으로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의의 삯을 좇아 어그러진 길로 갔습니다.(벧후 2:15, 유11) 다시 말해 발람은 모압 여인들로 하여금 가나안으로 향하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행음하게 만들었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 앞에 큰 죄였습니다. 발람의 죄는 핍박이나 환난과 같은 외적 위협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내적 유혹이었습니다. 육적 생명의 위협이 아닌 영적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발람은 그 악한 죄로 인해 미디안의 다섯 왕들과 함께 심판받아 죽임을 당하였습니다.(민31:8) 그런데 버가모 교회에도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 내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오늘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순교신앙으로 믿음을 지키고 있는 교회라도 잘못된 교리나 생각을 붙들고 사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의 신앙이 복음적이고 순수하더라도 교회가 자세히 살피고 깨어 있지 않으면 이러한 악한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신들의 신앙을 과신하지 말고 겸손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예수님은 발람의 교훈, 니골라당의 교훈을 좇는 자들을 외부에서 핍박하는 세력보다 더욱 심각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들이 회개치 않으면 속히 가셔서 그들과 직접 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눈에 잘 뜨이지 않게 교회 내부로 파고드는 죄의 세력을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죄의 세력은 누룩과 같아서 곧 교회 전체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죄에 연약한 자들이나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린 신자들은 이런 죄의 세력에 쉽게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에 굳게 선 자'라도 죄로 인해 넘어 질 수 있습니다. 내부의 죄의 세력을 속히 분별하여 제거하지 않을 때 교회 전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나 교회 내에 작은 죄 문제를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보이지 않는 사단의 유혹과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에게 분명히 '회개하라' 말씀하시며 회개치 않을 때 직접 속히 임하시어 말씀으로 죄인들과 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직접 죄를 회개시키시며 교회를 지키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엄한 경고의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오려는 세상의 악한 교훈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편리하다고 교회에 유익이 된다고 속이고 들어오려는 세상 논리와 방법론, 합리적인 생각을 항상 살펴 물리쳐야 합니다. 또한 죄를 범하면 속히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영적으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겉은 신자인데 속은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할 신자들이 오히려 세속화되어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친목단체나 기업의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비쳐질 것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됩니까? 싸움에서 이긴다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는 상을 주십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17b)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겸손히 영접하고 자신을 돌이켜 발람의 교훈, 니골라 당의 교훈을 물리칠 때 감추었던 만나 곧 생명의 떡을 주십니다. 또한 승리자에게 흰 돌을 주십니다. 흰 돌은 당시 연회에 초대장 역할도 하였습니다. 곧 승리자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사단의 세력, 죄 문제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자 할 때 장차 우리가 얻을 영생의 소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승리자는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이름으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Ⅱ.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18-29)
  18절을 보십시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두아디라는 어떤 곳입니까? 두아디라는 빌립보의 첫 개종자인 루디아 목자의 고향으로 버가모 동쪽 내륙방향으로 약 72km 떨어져 있었습니다. 두아디라는 상업상의 요충지인 동시에 공업도시였습니다. 또한 두아디라에도 신전이 있었는데 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로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태양의 아들이라 하는 황제는 아폴로신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곧 두아디라에서 황제는 아폴로가 땅에 현현한 존재로 숭배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조, 염색, 도기 등 공업이 발달한 이곳은 조합(길드)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조합들은 자신들만의 수호신을 섬기며 수호신에게 바치는 공동식사를 한 달에 한 번 씩 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우상숭배와 함께 음란한 행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곳에 있는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였습니다. 편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그들을 감찰하시고 계셨습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예수님은 먼저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도 칭찬하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도 다른 지역과 같이 영적 환경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믿음이 있었고 성도들 간에 서로 사랑하였고 세상 사람들을 섬기고 인내하였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였습니다. 더욱 훌륭한 것은 그들은 처음 행위보다 나중 행위가 더 많았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 행위를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와 달랐습니다. 그들은 갈수록 믿음이 성장하였고 영육간에 풍성한 열매를 맺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회에 열매가 많고 계속적으로 성장할 때에 자칫 잘못된 점을 잘 드러내려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는데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자칫 문제로 분란을 일으켜 왕성한 역사를 방해할 수 있다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훌륭함을 인정하시면서도 동시에 책망하셨습니다. 영육간에 성장하는 교회라도 죄 문제를 간과하지 않으셨습니다. 분명히 회개토록 도우셨습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자칭 선지라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이세벨은 시돈의 왕녀로 아합 왕의 왕비였습니다. 이세벨은 아합 왕을 충동하여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의 나라로 만든 악한 여인이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이런 이세벨과 같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칭 선지자라 할 정도로 능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자칭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하였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아마 풍성한 사랑과 인내로 이세벨과 같은 악한 자도 너그럽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악한 자라도 교회의 믿음과 사랑 안에서 감당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복음적이고 순수한 교회일수록 더욱 타락하게 하는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세벨은 교회에 들어와 그럴 듯한 말로 사람들을 꾀었습니다.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까지 먹게 하였습니다. 특히 이세벨은 교회의 종들을 더욱 유혹하였습니다. 평소 우상을 숭배하지 않던 자들을 집중적으로 넘어뜨리려 하였습니다. 사단의 유혹에 접해 보지 않아 순수하였던 자들에게 다가와 그럴듯한 말로 실족시키려 하였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죄에 대해서는 편협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분명히 거절해야 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우상은 쳐다보아서도 안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죄를 용납하는 것을 관용으로 여깁니다. 이로 인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게 되고 세상과 구별된 것이 없습니다. 우리 모임도 이런 데서 예외는 아닙니다. 죄를 짓는 것을 보고도 서로 눈치 보며 덮어두거나 모른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함께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신앙 경력이 화려해도 물질주의나 육신주의의 세력에 한번 잘못 넘어가면 말려 들어가게 됩니다. 마음을 넓힌다고 세속주의를 용납한다면 복음 진리를 모두 잃어버리게 되고 우리는 껍데기만 남게 될 것입니다. 이세벨의 꾀가 무엇일까요? 그녀는 예수님의 종들에게 사단과 싸워 승리하기 위해서는 ‘사단의 깊은 곳’까지 알아야 한다고 그럴듯한 이론을 제시하였습니다.(24) '적을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 또 죄가 어떤 것인가 경험해 보아야 죄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은가?' 하였습니다. 곧 이들은 사단을 무찌르기 위해 악을 깊이 경험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악의 본거지로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그들은 거리낌 없이 행음하고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단의 깊은 것을 경험해 보면 그들을 알게 되고 승리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미혹되어 복음 진리를 잃어버리고 그들의 말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죄의 종 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사단의 궤계에 말려들어 악에게 넘어가 버린 그들에 대해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주님께서 용납지 않으시고 책망하셨습니다. 회개하도록 촉구하셨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회개치 않는 것이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또 네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치 않으면 끝장입니다. 이런 자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단번에 심판하시지 않으십니다. 회개 하기만하면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영접해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한 다윗도 자신의 죄를 애통히 회개하였을 때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한 기회를 주시지는 않으십니다. 회개치 않을 때 끝내는 죄에 합당한 보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가장 근본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회개치 않았습니다. 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회개치 않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회개치 않았을까요? 아마 자신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은 잘 하고 있고 이세벨의 말이 틀리지 않는데 왜 회개해야 하는가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의로 충만해 있었고 교만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좋은 결과만 얻으면 되지 않는가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국 이런 자들을 어떻게 하십니까? 22절을 보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예수님은 '볼지어다' 외치시면서 그들에게 심판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치 않는 자들은 심판하십니다. 안락하고 편안한 침상이 아니라 병으로 인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고통의 침상에 던져 넣으십니다. 그와 함께 간음한 자들도 동일하게 회개치 않을 때 같은 환란을 피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자녀들에게도 화가 있게 됩니다. 여기서 자녀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열렬히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회개치 않는 자들은 하나라도 예외 없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심판하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3b절을 보십시오.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은 외모만을 취하시지 않으십니다. 겉으로 죄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여도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주님은 그대로 갚아 주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살피어 진정으로 회개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수시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날마다 회개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나요 합니다. 그러나 죄악된 우리 자신을 알 때 날마다 회개치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 앞에 드러나는 우리의 허물과 실수를 발견할 때마다 끊임없이 회개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치 않고 어찌하든지 버텨 그냥 넘어가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뜻을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고 계십니다.
  이제 주님은 계속해서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4b절을 보십시오.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다른 율법의 짐은 지우시지 않으십니다. 이단들은 구원을 위해서는 다른 율법이 있다고 말하여 우리에게 짐을 지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른 짐을 지우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그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예수님은 성도들이 다른 것, 새로운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 하셨습니다. 단지 이미 받은 것, 그들에게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각 교회에 좋은 복음적 전통을 주셨습니다. 초대교회, 루터와 칼빈에 의한 개혁 교회에 안에 복음에 기초한 귀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 모임 안에도 주님께서는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좋은 것을 버리고 무엇인가 다른 새로운 것이 없을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주신 것을 더욱 발전시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존 것을 무시하고 새로운 것만을 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것을 구할 때 자신의 것을 잃어버리고 정체성을 잃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주신 것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굳게 잡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굳게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는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온 ́말씀과 기도́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신앙전통과 바울이 전한 서신마다 강조된 것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말씀에 기초해서 생활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기도하고자 하였습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복음적 가치관을 가질 때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유혹이나 핍박 앞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종들이 이세벨에게 넘어간 것도 말씀에 기초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그럴듯하고 좋아 보이고 자신들에게 유익이 될 것 같기 때문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사단의 권좌가 있던 버가모 교회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게 된 것도 엄청난 핍박 속에서 좀 쉽고 편한 방법을 제시하는 그들의 말에 넘어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씀을 좇고자 하고 기도하였다면 예수님의 책망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유혹에 빠지는 것도 말씀에 기초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것, 주님께서 주신 귀한 말씀과 기도를 굳게 붙잡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한순간이라도 놓아서는 안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도 혼자 있어도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철저히 말씀에 기초하고자 하고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사단은 틈탈 수 없을 것입니다. 환란이나 핍박이 있더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승리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삶 전체가 말씀과 기도에 기초하여 이루어 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거짓된 꾀에 넘어가지 않고 진리에 기초하여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이기는 자, 끝까지 주님의 일을 지키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그들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십니다. 이기는 자는 철장을 가지고 대적자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 같이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억압받으며 숨죽이며 살아가던 성도들은 장차 원수들에게 큰소리치며 그들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질그릇 깨뜨리듯 아주 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아버지께 받은 권세입니다. 성도들도 예수님과 함께 그러한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말씀하십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새벽 동이 떠오르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합니다. 별은 이때 가장 아름답고 찬란하게 비추입니다. 예수님은 악에게 지지 않고 이긴 승리자들에게 새벽 별과 같은 아름답고 찬란한 영광을 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계22;16에서 당신을 다윗의 자손으로 새벽별이라 하셨습니다. 이기는 자는 예수님을 얻게 됩니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을 본받고 따르는 신자들에게 예수님을 얻는 것 만한 상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리자들에게 최고의 상이신 예수님 자신으로 보응해 주십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안에 선배님들을 통해 주신 좋은 전통 즉 어찌하든지 말씀을 붙들고 말씀에 기초해서 살고자 하고 깨어 기도하고자 하는 영적 전통을 인해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은 그러한 전통을 굳게 붙들며 살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회개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영적 가치관을 배우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배우지만 실제 삶에서는 여전히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죄악된 본성대로, 세상의 가치관과 논리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데 뭐 하며 별 문제의식도 갖지 않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도는 체질론을 들먹이며 기도하기 어렵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시간 사단의 권좌가 있는 악한 시대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귀한 말씀을 듣고 영접합니다. 그리고 죄인이 무슨 일을 하든지 말씀에 기초하여 기도함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범사에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하루 시작을 말씀에 기초하여 기도로 출발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도 주님의 책망의 말씀 앞에 회개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것 주님께서 주신 귀한 말씀과 기도를 굳게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그것도 젊은 날 잠시 붙잡는 것이 아닙니다. 일평생, 매 사건, 순간마다 붙잡아야 합니다. 아무리 나이가 있고 경륜 있는 신자라도 사단은 봐주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주의, 육신주의라는 사단의 권좌가 있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단은 교묘하게 우리를 유혹하여 여전히 세속화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에 대항하여 맞서 싸워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말씀과 기도로 싸워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장차 우리에게 주실 영생과 천국을 소망하며, 만국을 다스릴 미래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승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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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4강] 다만 그의 나라를 구하라 관리자 2011-10-02 2679
578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3강]부활과 생명 리스닝 2010-05-30 2679
577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2강]참 목자 리스닝 2010-05-30 2679
576 야고보서 [2012년 야고보서 제5강] 길이 참으라 관리자 2012-02-19 2675
575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3강]메시아의 잔치 1 관리자 2011-01-23 2673
574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6강]새 포도원의 노래 관리자 2010-10-17 2665
573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1강]내 부끄러움을 없애신 주님_고영훈 관리자 2011-03-13 2653
572 히브리서 [2013년 히브리서 제4강] 승리하는 믿음 관리자 2013-11-24 2639
571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3강]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관리자 2014-02-02 2638
570 요한복음 [2009가을학기준비특강-1]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관리자 2009-08-16 2638
569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3강]굳게 잡으라 관리자 2009-09-20 2629
568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1강]육신이 되신 말씀 리스닝 2010-02-28 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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