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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5-30 (일) 16:05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요한복음_12-1.hwp (28KB) (Down: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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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요한복음제12강]참 목자

2010년 요한복음 제 12강

선한 목자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10:1-18
요절: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9장 사건을 배경으로 그 시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선한 목자 상’을 가르쳐주십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명분상으로는 목자였지만 양을 살리는 데는 관심이 없고 기득권을 누리는 데만 예민하여 권위적이고 형식적이고 율법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해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그 시대 양들에게 선한 목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이 어떤 면에서 나와 이 시대에 선한 목자가 되십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좋은 양으로서 예수님을 잘 배우고 예수님을 통해 선한 목자 직분을 감당할 종들로 빚어지기를 기도합니다.

Ⅰ. 목자와 양(1-10)
  본문에는 목자가 6번, 양이란 단어가 19번 반복되어 나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인생들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비유합니다. 시편 100:3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이는 생명이 결탁된 사랑과 신뢰의 관계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그의 기르시는 양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시고 영접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선언하십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끊임없이 경계하고 불굴의 용기와 강한 내면성과 인내심을 가진 자’를 의미합니다. 목자는 제 갈 길로 가는 양들을 한 눈 팔지 않고 지켜야 하고, 이리 떼가 나타나면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무지한 양들을 인내하며 소망 가운데 성장하기까지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양에게 관심가진 자들이 목자와 강도와 절도, 삯꾼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선한 목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로, 선한 목자는 우리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팔레스타인 지역은 목축을 하는 곳에 악한 짐승들이 자주 출몰하여 양들을 헤치기 때문에 마을마다 공동 소유로 양의 우리를 짓습니다. 밤이 되면 목자들이 자기 양떼를 우리 안에 넣고 문지기는 절도나 강도나 짐승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밤새 보초를 섭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다시 목자들이 오면 문지기는 문을 열어줍니다. 그런데 양에게 다가오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는 절도요 강도며, 다른 한 종류는 양의 목자입니다. 이들은 양의 우리에 들어가는 동기와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접근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절도나 강도는 훔치고 강탈하고자 하는 악한 의도로 양에게 접근하기 때문에 정당하게 문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다른 데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목자는 양을 돌보고자 하는 순수한 목적으로 오기 때문에 떳떳하게 문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절도요 강도 같은 바리새인들의 정체를 폭로하시며 양의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셨습니다.
둘째로, 선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불러 인도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낸다는 것은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양을 재산으로만 취급한다면 번호를 붙여 숫자 개념으로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는 양의 특징을 따라 각각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불러 인도합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양의 존재를 내면적으로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함께 생활하다보면 깊은 사귐이 있고 사랑의 관계성이 맺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을 잘 하는 양은 순종이, 날렵한 날쌘돌이, 두려움이 많은 양은 대장부라 하고, 진심을 다해 따라오도록 옥합이라 짓기도 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어머니 복중에 있을 때부터 나를 아시고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온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고 나에게 합당한 이름을 주시고 내 이름을 불러 인격적으로 인도해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셋째로, 선한 목자는 양들 앞서 갑니다.
  4절을 보십시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돼지는 뒤에서 회초리로 때려야 가지만 양은 목자가 앞서 가면 목자를 믿고 그 뒤를 따라 갑니다. 이는 목자와 양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임을 말해줍니다. ‘앞서 간다’는 것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양은 두려움이 많은데다 눈이 어두워서 뒤에서 push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목자가 앞에서 본을 보이면 그대로 따라 오는 것이 양의 특성입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시며 그 발자취를 따라 오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할 때, 앞서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이시지만 냄새나는 죄인들을 낮아져 섬기시므로 우리도 섬기는 생활을 하도록 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우리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법을 본받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여 어리고 연약한 소자 한 사람을 섬기는 어머니 같은 사랑을 배우게 하시고, 복음역사를 방해하는 사탄 마귀와 싸우실 때는 영적 장군의 진리에 기초한 믿음을 배우게 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양들에게 좋은 목자가 되려면 먼저 예수님의 좋은 양이 되고자 애를 써야 합니다. 나의 의지와 노력이나 신앙경력이나 인생경험으로 양들에게 항상 좋은 본을 보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보여야 할 본은 내가 먼저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또한 ‘앞서 간다’는 것은 길을 개척하는 인도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양들은 연약하고 분별력이 부족하여 스스로 알아서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독초를 먹고 병들거나 또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합니다. 목자는 앞서 가며 길을 개척하고 장애물을 제거하며 양들을 안전하게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양들은 어떻게 목자를 따라갑니까? 4b, 5절을 보십시오.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양에게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방어기전이 없습니다. 이리떼가 나타나더라도 다리가 짧아 도망가지 못하고, 또 뒤집어지면 일어나지 못하고 발버둥치다가 죽고 맙니다. 양이 살길은 목자의 보호를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양에게는 선천적으로 귀가 발달하여 목자의 음성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따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음성은 절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양이 누구의 음성을 듣는가는 곧 생사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타인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면 그 결국은 파멸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보다 타인의 음성이 더 많이 들리는 죄악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할 때는 분명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만 세상에 나가자마자 여러 가지 타인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친구를 통해, 선배나 교수님, 때로는 사랑하는 부모님을 통해 타인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경계해야 할 소리는 죄의 세력을 통해 들려오는 사탄의 음성입니다. 사탄도 때로는 말씀을 인용하기 때문에 깨어 있지 않으면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오랫동안 일용할 양식을 먹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떨어져 있으면 영적으로 둔감해져서 사탄의 음성에 넘어가 속게 됩니다.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우리가 살길은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넷째로, 선한 목자는 양의 문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목자와 양의 비유를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예수님의 양도 아니요, 양들의 목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그 비유의 말씀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들이 깨닫도록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이라 하시므로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의 문이 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목자가 집에서 멀리 떠나 초원에서 양을 먹이다보면 밤에 밖에서 잠을 자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때 울타리만 쳐져 있는 우리로 양들을 인도하고 목자는 출입구를 가로질러 침구를 놓고 잠을 잡니다. 그러면 목자가 바로 양의 문이 되는 것입니다. 양들은 목자를 통하지 않고는 안전한 우리에 거할 수 없었습니다. 목자는 양들이 통과할 때마다 세심하게 살피며 구원을 얻도록 하시는 구원의 문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입성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길로 가든지 산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 아버지께 이를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분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구원의 문이 되십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절도요 강도입니다. ‘먼저 온 자’는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예수님보다 위에 있는 자,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나타나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며 자기야말로 진짜 메시아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특징은 모두 예수님보다 자기가 앞선 자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별력을 가지고 이들의 거짓을 물리치고 예수님 편에 분명히 서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되는 영적인 복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구원을 받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9) 사람들은 나름대로 예수님을 통하여 받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물질주의 시대에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또 좋은 성적을 얻어 장학금을 받으면 큰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별로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영적 무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본래 구원이란 심각한 질병이나, 전쟁에서 적군에게 완전 포위되어 섬멸당하기 일보 직전에 구출되었을 때,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가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을 때 사용되는 말이었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와 같습니다. 사형 받을 때까지 시설이 좋은 형무소에서, 좋은 죄수복을 입고, 좋은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심판 아래에 있는 인간에게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은 이 죽음과 영원한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사람이 세상 온갖 좋은 것을 다 얻는다 해도 구원 받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항상 죄의식과 심판의 두려움에 시달리며 평안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온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구원의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둘째로,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게 됩니다. 양의 영적 생명과 성장을 위해서는 꼴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때마다 풍성한 생명의 꼴을 공급해주시므로 우리의 생명을 풍성케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해 죄로 고통 받는 인생에서 구원을 받고 순결하고 진실된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 지치고 피곤한 우리 영혼이 소생하여 세상을 살아갈 힘과 비전과 지혜를 덧입게 되었습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이 공급해주시는 생명의 꼴을 풍성히 먹을 때 우리의 삶은 윤택해지고 여유가 생기고 생명력이 넘치게 되어, 자신 하나 감당할 수 없던 자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살리는 사명인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들어가고 나오며 생명의 꼴을 마음껏 먹으므로 자유롭고, 평화롭고, 풍성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은혜는 썩어 없어질 세상에 것을 얻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세상에는 목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적도 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입니다. 도적은 목자가 잠간 방심하고 있는 사이 몰래 들어와 어린 양의 생명을 헤칩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대적은 바로 사탄 마귀라고 했습니다.(벧전 5:8) 사탄의 주 공격무기는 유혹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목적은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데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주 교묘하게 접근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기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에 회의를 품고 십자가 없이 편안하게 살도록 유혹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좋아하는 세상 것들을 미끼로 삼아 그의 낚시 바늘에 걸려들어 진리의 세계를 떠나 사탄의 종노릇하게 합니다. 사탄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하여 인간의 지혜와 세상경험으로는 이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를 분별할 수 있습니까? 그 말이 아무리 그럴듯하고 달콤하게 들려도 내가 듣고 싶은 말씀보다도 주님께서 나에게 하시고자 하는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도록 하십니다.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한 알의 썩는 밀알의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때 손해 보는 것 같고 자기를 잃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생명력이 넘치고 가치 있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승리의 인생이 될 것입니다. 아멘!

Ⅱ.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1-18)
  예수님이 선한 목자라는 확실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첫째,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이 말씀은 선한 목자의 삶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양들을 위하여 삽니다. 특히 양들을 살리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꿈과 이상적인 삶을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선한 목자는 인생목적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양을 살리는데 있습니다. 양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됩니다. 다윗은 그 시대에 선한 목자였습니다. 그가 양들을 살리기 위해 사자와 곰도 무서워하지 않고 맨주먹으로 싸워 물리쳤습니다. 골리앗과도 목숨을 바쳐 싸웠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윗도 장차 오실 메시아의 그림자에 불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인생들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시는 확실한 증거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의 영광과 존귀와 특권을 희생하시고 육신을 입고 천한 짐승의 구유에까지 낮아져 오셨습니다. 이 땅에서도 버림받은 땅 갈릴리 나사렛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사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새도 집이 있지만 예수님은 머리 둘 곳 없이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지한 인생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온 생애를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마침내 가장 흉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누가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습니까? 오직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뿐이십니다. 로마서 5: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습니다. 아직도 실수와 허물이 많은 자이지만 주님이 목숨을 버리셨기에 변함없이 주님을 따르며 배우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진실로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선한 목자가 되심을 고백하고 찬양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목자와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삯꾼이 나옵니다. 삯꾼은 양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돌보기 때문에 보통 때는 목자와 구별이 안됩니다. 그러나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기 때문에 양을 돌보는 목적이 오직 삯에 있다는 점에서 목자와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이리가 나타나면 먼저 자기가 살기 위해 양을 버리고 무책임하게 도망가 버립니다. 삯꾼은 양을 위해 희생해야 할 때나 원하는 삯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양 치는 생활을 미련 없이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기꺼이 자기를 희생합니다.
둘째, 선한목자는 양을 잘 압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목자가 양을 안다는 것은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아시는 것 같이 속속들이 다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는 달리 체험을 통해서 실제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잘 알지 못합니다. 부모님도, 친구도, 일대일 목자님도 나를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나도 나를 잘 몰라서 연약하여 죄에 넘어질 때는 나에 대해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 예수님은 나를 지으신 창조주로서 나의 태어남에서부터 나의 장점뿐 아니라 약점과 연약함과 허물과 고질병도 아십니다. 현재 내가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얼마나 수고하고 있는지, 말을 잘 듣지 않는 양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지 아십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선한목자 예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가 양을 아는 것처럼 양도 목자를 알아야 합니다. 양이 목자를 모르기 때문에 목자의 사랑과 능력과 신실함을 의심하기를 잘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자 그 고난에도 기꺼이 참예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아나갔을 때 어떤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그에게 두신 하나님의 선한 뜻과 사랑과 능력을 의심치 않고 끝까지 믿음의 선한 길을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양으로서 예수님을 통하여 무엇을 얻고자 하기보다 바로 예수님 자체를 알아나가는 데 신앙생활에 목적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선한 목자 예수님은 현재 우리에 들지 아니한 이방인들과, 앞으로 올 수많은 양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민족, 인종, 신분, 지역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현재 우리에 들지 않은 미전도 종족들, 아프리카 오지의 영혼들, 영육간에 굶주린 북한의 형제들, 율법의 노예가 된 중동의 이스마엘의 후예들도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립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17,18)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가룟 유다의 배반이나 빌라도의 잘 못된 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류구원을 위해 예수님의 자의적인 뜻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목숨을 버리셨다면 선한 목자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양들을 사랑하시고 또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셔서 자발적으로 하셨기 때문에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부활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자생활을 자기만족이나 자기영광을 위해 합니다. 또 구원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무감으로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로는 목자생활 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양들을 섬기되 부활신앙에 기초하여 자발적으로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양의 생사화복은 전적으로 어떤 목자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고 양들을 속속들이 아시고 양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양이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감사할 일입니까? 우리도 이 예수님을 본받아 캠퍼스 양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쳐 섬기는 이 시대의 선한목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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