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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10-31 (일) 16:29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0년_가을제자수양회_주제2강(최바울)-1.hwp (53KB) (Down: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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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주제2강]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2010년 가을 제자수양회 주제 2 강                  최바울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말씀 마가복음 8:27-38
요절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살아생전 제자양성에 온 힘을 기울이셨던 사랑의 교회 고 옥한음 목사님은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에게는 철저히 설교(preaching)를 하셨고, 제자들에게는 철저히 교훈(teaching)을 가르치셨다고 무리와 제자를 구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 가르쳐 주시는 교훈(teaching)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줄 알고 지금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서 가셔야 하는 길에 대해서는 그들 나름의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러했기에 당연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생겨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제자들대로 메시야의 길이 고난의 길임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영적인 눈과 귀가 막혀 있는 것이 답답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의 갈등이면서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갈등이기도 하였습니다. 전반기 사역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문제를 감당해 주셨지만 얼마 후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할 예수님은 계승역사를 위해 이제 제자들의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때가 왔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번 전도 여행을 제자수양회 삼아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올바른 자세를 가르치고자 작정하셨습니다.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시며, 나의 예수님을 따르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돌아보고 바로잡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27-33)  
  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의 여러 마을로 나가실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길가다 물어보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에 제자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요한,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검소하게 사시면서 백성들을 옳은 데로 돌이키고자 애를 쓰시는 세례요한과 같은 분으로, 또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그 시대에 도전하는 엘리야와 같은 분으로, 또 예언적 메시지를 전하는 선지자 중의 한 분으로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야말로 당시 타락한 종교지도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훌륭한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예수님의 부분적이고 인간적인 면만을 알 때 예수님이 존경과 호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는 제자들의 견해를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에 수제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사람들의 견해와 다르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이신 줄 알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좇았습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였던 요한과 안드레는 자신들의 목자인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소개 받고 예수님을 따라가 1박 2일 성경학교를 참석한 후,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요1장)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을 때 많은 고기가 잡힌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즉시 영접하였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그런데 왜 예수님에 대해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을까요? 왜 예수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양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증거하며 제대로 좀 알도록 전도에 힘쓰라고 하지 않으셨을까요? 이는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제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아직은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잘못 아는 그리스도를 전할 때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서 세례 요한의 모습만을 보았던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능력으로 떡을 배불리 먹어 본 제자들은 예수님은 항상 떡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메시야로 증거 하게 됩니다. 예수님에게서 엘리야의 모습만을 보았던 사람들처럼 예수님께 병 고침 받은 사람들은 항상 예수님께 병든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 달라고만 하게 됩니다. 비록 예수님은 그런 모든 일을 하셨고, 하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그것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는 일”(마1:21)이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1:29)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내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요,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으로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자들이었습니다.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을 좇으며 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고백은 했지만 예수님의 그리스도로서 감당하셔야 할 사역에 대해서는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알고 기대하는 것과 실제 앞으로 펼쳐질 현실이 많이 다를 때 제자들은 언제든지 실망하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제자들이야말로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어떤 일을 하셔야 하는지를 올바로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고백한 제자들에게 이를 비로소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읽어보시겠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셔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만 하고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를 치루시고 사망 권세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실 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예수님의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제대로 아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고백만 하고 정작 하시는 일은 잘 모를 때 어떻게 제대로 제자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베드로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드러내 놓고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베드로도 드러내 놓고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였습니다. ‘붙들고 항변했다’는 것은 많이 순화된 표현으로 원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예수님을 자기 쪽으로 잡아 당겨 꾸짖으며 비난했다는 뜻입니다. 평소에 예수님을 존경하고 그리스도로까지 고백했던 베드로가 갑자기 왜 이렇게 다급하고 무례하고 험악하게 돌변했을까요? 베드로는 그 능력 많은 예수님이 대제사장들에게 붙잡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는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능력의 역사를 보고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회복할 힘 있는 메시야임을 믿었습니다. 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죄인들에게 행하시는 사랑과 긍휼의 역사를 보고 예수님이야말로 다윗과 같이 공평과 정의로 이스라엘을 다스려줄 목자이심을 믿었습니다. 이 예수님이 지금보다 더 살만한 세상, 더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데 자기를 쓰고자 하신다면 자기 한 사람 무시당하고 고생하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원수들의 손에 돌아가시면 어떻게 됩니까? 그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생각하며 억센 팔로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33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책망하시되 부드럽게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사탄이라고 세게 책망하셨습니다. 왜 베드로가 사탄입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미혹시키려 했습니까?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했습니까? 베드로는 오히려 예수님을 생각해서 기특한 발언을 하였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보실 때 베드로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십자가 앞에서 드러난 그의 숨겨진 내면문제가 무엇입니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그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일(the things of God)은 예수님께서 반드시 죄의 대가를 치르므로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죽었다가 반드시 다시 살아 나사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심판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다시 살리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the things of men)을 생각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를 사단의 도구로 전락시킨 ‘사람의 일’이 무엇일까요? 십자가를 져야 될 길목에서 베드로는 자신의 목자요 스승인 예수님의 안위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신과 제자들의 장래를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루어질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꿈을 생각했습니다. 이 일들이 뭐가 그리 잘못된 일입니까? 제자가 스승을 생각하고, 수제자가 동역자들을 생각하고, 가장이 가정을 생각하고, 백성이 나라를 생각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하나님의 일보다 이런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사탄이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으로 하여금 또한 베드로와 제자들로 하여금 장차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음을 간파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일을 하라고 고기잡이 하던 어부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밤이 맞도록 수고로이 사람의 일을 하던 베드로를 절망 가운데서 만나주시고 말씀의 종이요 기도의 종이요 제자양성가로 쓰시고자 교회의 반석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시고자 소망가운데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베드로가 십자가 앞에서 사람의 일을 생각하며 감히 예수님께 항변해도 여전히 그에게 두신 소망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책망 하시면서까지 베드로를 통해 역사하는 사탄의 세력과 싸우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사람의 일을 생각하며 복음역사의 훼방꾼이요 대적자가 되지 말고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일군이 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다시 3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시기 전에 돌이켜 다른 제자들도 둘러 보셨습니다. 이는 베드로의 문제가 베드로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자들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이 시간 돌이켜 저희들을 보십니다. 누구보다 십자가를 열심히 지면서도 매번 십자가 앞에서 저희들 마음속에 돋아나는 베드로의 항변을 보십니다. 사실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는 일의 종류이기 이전에 일하는 동기와 목적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할 때 하나님의 일이 되고, 나를 위해 내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할 때 사람의 일이 됩니다. 십자가를 져야 하는 길목에서 사람의 일만을 생각할 때 아무리 수제자라도, 아무리 UBF에서 훈련받은 사람이라도 사단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가을학기 새로운 개척역사를 앞두고 있는 저희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저희들을 구원하시고 제자로 부르시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하는 소원으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제자들로 거듭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힘써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Ⅱ.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34-38)
  예수님은 베드로의 항변을 보시고 제자들을 통해 복음역사를 훼방하는 사탄의 역사를 간파하시고 무리와 제자들을 다 불러 놓고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같이 34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 보시겠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가야 할 길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 자기 존재를 부인하고 자기 개성을 부인하라는 것으로 생각되어 반발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기’는 자기중심적인 자기, 이기적인 자기, 쉽게 살고 싶어 하는 자기,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 자기를 가리킵니다. 이런 자기는 죄악된 자기입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게 말리는 자기입니다. 이런 자기가 좋은 자기인 것 같지만 결정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나쁜 자기입니다. 결국 나를 위하는 자기가 아니라 나를 망하게 하는 자기요, 우리를 병들게 하는 자기입니다. 우리를 깊은 믿음의 세계, 십자가와 부활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죄악된 자기를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둘째,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란 사명의 십자가를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먹고 살기 위해 져야 하는 ego의 십자가가 있고, 사명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얼마나 몸부림치며 투쟁합니까? 특히 우리나라 청년들은 OECD국가 중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가장 많은 ego의 십자가를 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십자가는 무의미하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ego의 십자가는 지면 질수록 몸과 마음이 약해지고 내면이 공허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명의 십자가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명의 십자가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지면 질수록 사람을 힘 있게 하고 생명력이 넘치게 합니다. 좀 고생스럽지만 반드시 열매가 있기 때문에 기쁨이 있습니다. 사명의 십자가는 사람을 위대하게하고 그 인생을 값지게 합니다. 이는 인간이 사명인의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창1:28)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 주신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이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당시에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사형수가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자기 스스로 지고 사형 집행장까지 가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되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곧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죽기를 각오하고 져야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은 역사하는 사탄의 세력 앞에서 타협하지 않으시고 더 분명하게 십자가의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강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까? 35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합니다. 내 힘으로 살고자 일생을 아등바등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목숨을 자기가 구원하고자 할지라도 아무도 자기 목숨을 구원할 수 없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구원해 주십니다. 이는 그가 예수님께 자기 구원을 맡겼기 때문이요 예수님이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자기 목숨을 예수님이 복음 역사에 쓰시도록 드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 같은 물질, 목숨 같은 시간, 목숨 같은 꿈과 목숨 같은 가정도 드렸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는 예수님께서 반드시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36-37) 사람이 자기를 위해 열심히 살면 간혹 운이 좋아서 온 천하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잃으면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한번 뿐인 인생을 살면서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나의 시간, 나의 물질, 나의 재능을 써야 헛되지 않을까, 진정 나를 위한 것이 되고, 진정 이 시대를 위한 것이 될까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예수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살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그럼에도 38절에 있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를 살다보면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을 부끄러워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 때로는 초라하게 보이고, 아무 것도 안하고 부끄럽게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의미가 있는 일은 주와 복음을 위하는 이 일 뿐입니다. 이 일을 힘써 감당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오실 때에 부끄러움을 당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학생시절 학과공부에서 실패하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주의 종들을 통해 저를 찾아오시고 92년 밀알 동산 여름 바이블 캠프에서 십자가 위에 달리셔서 저의 정욕과 무기력 무절제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저의 구원자요 그리스도로 고백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이후로 사람 낚는 어부의 삶을 결단하고 목자로 살면서 양들을 섬기며 예수님을 배우는 제자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학생시절에는 학생 계승 역사의 몇 안 되는 주인공으로, 졸업 후에는 풀타임 목자로 쓰임 받으면서 나름 수제자 그룹에 속해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스페인 선교사로의 부르심 앞에서 수제자답게 결단하고 시작한 선교사생활을 통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은 하였지만 저의 내면에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소원과 자세가 없는 자임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한번 두려움과 염려의 종이 되니 본국에 돌아와서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단은 제가 과거 하나님의 일을 하느라 등지고 살았던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해 있고 제가 얼마나 뒤쳐진 자가 되었는지 보여주며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사람의 일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4년간 평신도 치과의사로 살면서 때로는 안면에 마비가 올 정도로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거기에 최근에는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 목자로서의 사명도 틈틈이 감당하느라 주말에도 다른 데 눈 돌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빈틈없이 돌아가는 자신의 삶을 생각할 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는 책망 앞에서 회개의 심정보다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평신도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하며 살고 있다고 주님께 항변하였습니다. 또 괜히 주제 강의 말씀을 맡았다고 지금보다 더 많은 십자가를 지겠다고 결단했다가는 용량 초과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겨 회개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수양회가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도저히 말씀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던 죄인을 하나님께서는 저희 치과 바로 옆에 있는 양화진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한국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이 땅에 뼈를 묻은 언더우드의 무덤 앞에서 젊은 시절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언더우드의 무덤 앞에 서 있는 저의 모습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다가 잃어버릴 자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었지만 구원받고 영생에 들어가 있는 자 앞에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저의 심령에 막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말씀을 주시고 예수님과 같이, 언더우드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제자로 살도록 결단하게 도와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제자로 부르셨는데 주말에 하나님의 일을 좀 한다는 생각에 평일은 사람의 일, 자기 일에만 올인하고 있던 자신의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인정하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일을 마음 놓고 하기 위해 하나님의 일을 조금씩 하며 방패막이로 삼는 것은 결국 순수하게 복음역사를 위해 헌신하는 동역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쳐 사단의 도구로 쓰임받게 됩니다. 제가 사단이 쓰는 사람이 되지 않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원 가운데 평일을 나를 위해 쓰고자 하는 자기를 부인하고 캠퍼스 목자로서 힘써 말씀 전파의 십자가, 말씀 연구의 십자가, 양치는 십자가를 감당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일생 사람의 일만 생각하다가 하나님의 원수 노릇 할 수밖에 없던 죄인을 말씀을 통해 회개케 하시고 다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제자로 불러 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 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저희들을 원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일 중심으로 사는 ‘무리’가 아닌 하나님의 일 중심으로 사는 ‘제자’로 키우고자 하십니다. 이 예수님의 소망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쫓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가운데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예수님을 닮은 참 제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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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4강] 다만 그의 나라를 구하라 관리자 2011-10-02 2538
554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15강] 어린양의 혼인잔치 리스닝 2010-02-02 2538
553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1강]육신이 되신 말씀 리스닝 2010-02-28 2535
552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3강]굳게 잡으라 관리자 2009-09-20 2532
551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 19강]새 하늘과 새 땅 관리자 2011-03-06 2526
550 요한복음 [2010년여름수양회제3강]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리스닝 2010-07-25 2525
549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이동욱) 리스닝 2010-04-11 2525
548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1강] 여호와의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십계명.. 관리자 2009-06-21 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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