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3-06 (일) 13:38
분 류 이사야
첨부#1 2011년_이사야서_19강-1.hwp (28KB) (Down:184)
ㆍ추천: 0  ㆍ조회: 2526      
IP: 61.xxx.74
[2011년 이사야서 제 19강]새 하늘과 새 땅
2011년 이사야 제 19강

새 하늘과 새 땅

말씀: 이사야 65,66장
요절: 이사야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오늘 65,66장 말씀은 이사야서의 마지막 결론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선지자 이사야가 일관되게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심판의 경고와 구원의 약속,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마지막으로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하며 어떤 자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받아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받아 사는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진리의 하나님께 복을 구하라(65:1-16)
  65장은 앞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64:7)라고 하소연하는 것에 대한 답변으로 시작합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1)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던 이방인들에게도 내가 여기 있노라 하셨습니다. 하물며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어찌 자기 자녀들을 찾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자기 백성들을 부르셨습니다.(2) “돌아오라, 돌아오라! 지금 곧 돌아오라” 그런데 그들은 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3-7절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죄 가운데 방황하는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산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고, 벽돌 위에서 분향하며 하나님의 노를 일으켰습니다.(3) 4절에 보면 죽은 자들로부터 계시를 받고자 무덤 사이에 앉아 있었고 율법에 금한 돼지고기를 먹으며 육신의 만족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 하며 자기 의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말 죄가 없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악한 행위를 낱낱이 기록하시고 반드시 그들의 품에 보응하실 것이라 경고하십니다.(6)
  그들의 죄는 실상 조상들의 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죄악과 너희 조상들의 죄악은 한 가지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들의 행위를 헤아리고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들의 죄는 우상숭배 죄였습니다. 그들은 산 위에서 분향하고 작은 산 위에서도 하나님을 능욕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을 진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이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포도송이에는 즙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 하나니 나도 내 종들을 위하여 그와 같이 행하여 다 멸하지 아니하고 내가 야곱에게서 씨를 내며 유다에게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내가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에 살 것이라” 하나님은 우상숭배 하는 타락한 그 백성이라도 다 멸하지 않으시고 야곱에게서 씨를 내시고 유다에게서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남겨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어 거기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성하신 구원역사는 세상의 죄악의 물결에 떠내려가지 않고 끝까지 남은 자들이 누릴 것이요, 이들을 통해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끝까지 죄악의 길을 고수하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13-15절은 그들이 당할 무서운 징계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주리고 목마르게 됩니다. 그들은 수치를 당하고 마음이 슬프므로 울며 심령이 상하여 통곡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름을 남겨놓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자의 저주거리가 될 것이요 하나님의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강대국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포로 되면 자유를 박탈당하고 중노동을 하며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강가에서 중노동을 하다가 잔인한 감독자에 의해 조롱과 멸시를 당합니다.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시137:3) 이스라엘은 수치와 모욕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은 이들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더 이상 거짓 신에게 복을 구하지 말고 ‘진리의 하나님’을 향해 복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땅에서 맹세하는 자 또한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진리의 하나님’ ‘아멘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아멘이시고 신실한 증거이십니다.(계3:14) 그리고 이 모든 약속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와 아멘’이 됩니다.(고후1:20) 우리는 그에게서 복을 구해야 하고 그를 통해 여호와께 맹세하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맺어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복된 자는 진리의 하나님 안에서 복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하나님 앞에서 숨겨졌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탕자 같은 이스라엘이라도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진리의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 맹세하는 자에게 약속대로 복을 주시고 이전 환난을 잊게 하시는 진리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Ⅱ.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65:17-25)
  택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예고하신 하나님은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를 약속하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신 것은 지금까지의 하늘과 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생각도 나지 않는 완전한 새 세상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포로 귀환 이후 이스라엘이 새롭게 회복될 그 세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포로생활 70년이 되었을 때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칙령을 반포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치욕스러운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 고향 땅으로 돌아와 다시 성전을 재건하여 예배를 회복하고 삶의 터전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크신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의 때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또 죄를 짓고 강대국을 통해 징계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 메시야께서 오셔서 다스려주실 때 실현될, 더 이상 고통과 슬픔이 없는 완전한 낙원을 가리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굳게 서고 하나님의 공의와 선이 완전히 실현되는 곳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장소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메시야의 통치가 실현되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700여년 후에 유대 땅 베들레헴의 한 구유에 인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한 아기로 보내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새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마3:16) ‘창조’는 분명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하나님이 하실 새 회복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된 자에게는 이전의 죄와 허물과 사망권세가 기억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8:1)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너무나 놀라운 역사이기에 하나님은 “보라!”라는 감탄사로 주의를 환기시키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게 된 자들이 누리게 될 은총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영원한 기쁨을 누립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본문에 기쁨 혹은 즐거움이란 말이 6번이나 반복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키 워드는 ‘기쁨’입니다. 기쁨이 어디서 옵니까? 참된 경배의 대상을 만나 엎드려 경배할 때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멀리 동방에서 베들레헴까지 와서 아기께 엎드려 경배할 때 가장 큰 기쁨, 진정한 기쁨을 누렸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야를 만났을 때 속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4:29) 그런데 인간에게서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은 죄입니다. 죄는 무거운 죄의식과 고통을 줍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고 기쁨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를 완전히 사해주시고, 예수님의 부활로 죽음권세를 파하시고 사망에서 우리를 영원히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기뻐 뛰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영생을 누립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사는 자들은 경건한 생활을 하게 되니 자연히 건강과 장수의 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오래 산다는 뜻보다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게 된 자는 죽음이 더 이상 왕 노릇 하지 못합니다. 사는 날 동안에도 생명력으로 충만한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특권입니까?
셋째로, 완전한 평강을 누립니다. 21-2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여기서 집을 짓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거두는 것은 전쟁과 침략이 그치고 평화로운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전쟁은 인간의 욕심과 탐심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더 이상 욕심에 시달리거나 지배되지 않습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넘칩니다. 절대 권력을 가져도, 세상 것을 다 가져도 마음에 평화가 없으면 불행한 것입니다. 25절에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루어질 참된 평화의 나라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죄가 들어오기 전 에덴동산에서는 이리나 사자나 뱀이 인간의 적이 되어 해치지 않았는데 인간이 범죄 한 후에 이들도 맹수로 변하여 서로 해치고 먹고 먹히면서 아름다운 자연 세계가 두려움의 정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에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어 진정한 평화가 임하게 되면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고, 사나운 이빨로 얼룩말을 물어뜯던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게 됩니다. 개구리를 간식거리로 잡아먹던 뱀이 흙을 양식으로 삼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습니다.
  세상은 놀라운 과학문명의 발달로 갈수록 편리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는 더욱 심해져 약육강식으로 살벌해지고 있습니다. 죄악 된 인간의 본성은 맹수의 기질이 되어 천사의 말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사나운 발톱으로 상대방을 해치고 죽이기도 합니다. 죄악 된 인간은 칭찬보다 무시하는 말을, 위로와 격려보다 상처 주는 말을 잘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게 되면 맹수의 사나움이 빠지고 사랑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온유와 절제의 성령의 열매를 맺고 원수도 친구로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 나라에 거하게 하신 은혜를 감사 찬송 드립니다. 또한 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종들로 귀하게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Ⅲ. 새 하늘과 새 땅에 합당한 사람들(66장)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들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하나님은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만을 크게 짓고자 하는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 자신은 온 우주에 어디나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형식적이고 외식하는 자세를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힘써야 할 것은 마음을 가난하게 하고 심령으로 통회하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렵고 떠는 자를 돌봐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합당한 주인공은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영접하고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3,4절에서 하나님은 형식주의자들을 심하게 책망하십니다. 형식적으로 소를 잡아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형식적으로 어린양을 잡아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다고 하십니다. 형식적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자족하는 마음이 생기고 영적으로 무디어지면 형식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고 자기 율법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말씀 앞에서 두려워하며 떠는 사람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받고 말씀 앞에 애통한 마음으로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돌봐주십니다. 개척 조상들이 성경지식도 능력도 부족하였지만 성서한국과 세계선교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하고 경외심으로 순종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가난한 가운데서도 헌신적으로 헌금을 하여 개척역사를 섬겼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아무 꼬투리도 없이 세계선교에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코스타리카 박바울 선교사는 부르심에 순종하여 맨손으로 선교지에 나아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그 역사를 친히 이루시고 승리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부요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이고 건성으로 듣고 비판적으로 듣고 흘러버려서 많은 말씀을 들어도 심령에 남는 말씀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 자들이라고 탄식하셨습니다. 말씀에 대한 자세가 우리의 영적 상태를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고 말씀이 달지 않을 때는 영적으로 심각한 위기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야말로 금식이 필요하고 회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이 통회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들에게 어떤 복이 임합니까? 7-9절을 보십시오. “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해산하게 하는 이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한 생명이 태어나는데도 열 달 동안 잉태하는 수고와 진통을 겪어야 하는데 나라가 서는 데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고 하루아침에 나라가 서게 됩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역사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곧 하나님은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듣고 순종하는 자를 위해 기적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10-14절에 보면 기쁨, 만족, 영광, 풍성함, 평강, 위로를 넘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더하는 바로 그 때,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백성들에게는 여호와의 보살핌의 손이 나타날 것입니다.
둘째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파하는 자들입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하나님은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이게 하사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이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남은 자가 된 자들을 온 세상 만방으로 보내사 하나님의 영광을 전파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을 제사장과 레위인들로 삼기를 원하십니다.(21)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될 뿐 아니라 성경선생이요 기도의 종으로 세움 받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전파하는데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서 마지막 말씀이 무엇입니까? 22-24절을 보십시오.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이 항상 하나님 앞에 있는 것 같이 그들 이름이 항상 있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모든 혈육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무너졌던 예배가 완전히 회복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 자격 없는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그들 중에 있어 동일한 은혜와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래도 구원받지 못하고 죄 가운데 있는 패역한 자들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에 던져져 심판받을 자들입니다. 길고 긴 이사야서 말씀 중에 하나님이 마지막 말씀으로 믿지 않는 자들이 받을 심판으로 끝내시는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멸망 받을 이들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이들도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뿐만 아니라 이들의 창조주시오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들도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도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돌아와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기를 원하십니다.(요10:16) 이를 위해 하나님은 어두운 이사야 시대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구원역사를 섬길 일꾼을 찾으셨듯이 오늘도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구원의 은혜만 누리고 앉아있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심판 아래에 있는 우리에 들지 않은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서를 마치는 이 시점에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이 하나님의 안타까운 아비의 심정을 덧입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영원한 기쁨과 평화를 예비하시고 모든 인생들을 초청하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는 가운데 새 하늘과 새 땅의 은혜와 특권을 누리며 사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67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7강]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관리자 2012-04-29 2604
566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2강]비천함을 돌보신 주님 관리자 2011-03-20 2604
565 야고보서 [2012년 야고보서 제5강] 길이 참으라 관리자 2012-02-19 2600
564 마태복음 [2013년 성탄절 제4강] 아기께 경배하세 관리자 2013-12-29 2598
563 갈라디아서 [2011년 신년수양회 제2강]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관리자 2011-01-02 2598
562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2강]참 목자 리스닝 2010-05-30 2598
561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3강]부활과 생명 리스닝 2010-05-30 2597
560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1강]내 부끄러움을 없애신 주님_고영훈 관리자 2011-03-13 2587
559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7강]열매를 맺으려면 리스닝 2010-06-27 2587
558 히브리서 [2013년 히브리서 제4강] 승리하는 믿음 관리자 2013-11-24 2579
557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6강]새 포도원의 노래 관리자 2010-10-17 2557
556 요한복음 [2009가을학기준비특강-1]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관리자 2009-08-16 2556
55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4강] 다만 그의 나라를 구하라 관리자 2011-10-02 2538
554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15강] 어린양의 혼인잔치 리스닝 2010-02-02 2538
553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1강]육신이 되신 말씀 리스닝 2010-02-28 2535
552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3강]굳게 잡으라 관리자 2009-09-20 2532
551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 19강]새 하늘과 새 땅 관리자 2011-03-06 2526
550 요한복음 [2010년여름수양회제3강]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리스닝 2010-07-25 2525
549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1강] 여호와의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십계명.. 관리자 2009-06-21 2525
548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이동욱) 리스닝 2010-04-11 2524
1,,,11121314151617181920,,,39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