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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3-13 (일) 13:06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1년_누가복음_1강-1(고영훈).hwp (56KB) (Down: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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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 1강]내 부끄러움을 없애신 주님_고영훈
2011년 누가복음 제 1강                                                       고 영훈

내 부끄러움을 없애신 주님

말씀/ 누가복음 1:1-25
요절/ 누가복음 1:25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안녕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지난 주까지 귀한 이사야서 말씀을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가운데 살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부터는 봄학기 누가복음 말씀을 깊이 공부하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누가복음의 저자는 누가인데 그는 헬라인이요 의사이며 역사가였습니다. 저자는 누가복음을 쓸 때 가장 먼저 이 글을 쓰는 방법과 목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이 기록되기 전에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기록한 사람들이 여러명 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요, 말씀의 일꾼된 자들이었습니다(2). 저자는 직접 보지는 못하였지만 그 모든 일들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폈습니다. 그는 역사적 사실들을 놓치지 않고 그것들을 근거로 하여 차례대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쓰여졌기 때문에 진정성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누가복음은  진실에 기초한 진리를 추구하기를 좋아하는 캠퍼스 지성인들에게 가장 믿음을 심기에 적합한 말씀입니다. 봄학기에 이 누가복음 말씀을 통해 수많은 캠퍼스 지성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역사가 흥왕하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자 누가는 이 메시지를 데오빌로 각하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데오빌로 각하는 당시 로마사회에서 지체높은 고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영접은 하였지만 아직까지 믿음이 견고히 서지 못한 초신자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의 믿음이 확실해 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믿음이 확실해 지려면 역사적 사실과 함께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믿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누가가 가장 먼저 제시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신앙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I. 하나님 앞에 의인 사가랴와 엘리사벳(5-13)
5절을 보십시오.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때는 유대 왕 헤롯이 다스리던 시대였습니다. 이때는 역사적으로 신구약 중간기의 마지막 시기로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둡고 비참한 시기였습니다. 특히 헤롯의 시대는 강포하고 도덕적으로 매우 음란하고 부패했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누구보다 종교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하였습니다. 그들이 깨어서 백성에게 힘과 위로를 주고 희망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세속화 되어서 권력과 결탁하고 물질을 사랑하였습니다. 사회는 극도로 불안하고 피폐했으며 백성들은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기 힘들만큼 경제적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시대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법도가 땅에 떨어지고 부패와 불의와 음란이 만연한 시대였습니다.
바로 이런 시대에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 중의 하나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실 어떤 시대가 죄로 물들게 되면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시대의 분위기에 물들게 됩니다. 특히 그 당시 제사장들은 헤롯 왕의 눈치를 보며 살았습니다. 왕에게 잘 보여야 목숨도 부지하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란 말은 사람 앞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았음을 말해 줍니다.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 앞에서 사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 앞에서 사는 사람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고자 애를 씁니다. 삶의 표준이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초리를 의식하고 살아갑니다. 이들은 또한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으면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때마다 인기 연예인들이 마약 복용 혐의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약 하는 것이 드러나기 전에는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고 쾌락을 즐기는 수단으로 이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사람들 앞에 드러나자 하루 아침에 중죄인이 되어 모든 인기와 명예를 잃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 앞에서 살기 때문에 죄를 상대적으로 생각하고 사람들이 안 보는 데서는 은밀하게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절대적인 표준이 되기 때문에 은밀한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죄를 짓기를 두려워 합니다.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고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바로 오늘의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식하나 없는 초라한 늙은 부부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눈초리를 의식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그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심을 믿었으며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이 진정 지혜로운 삶임을 믿었습니다. 창세기의 노아시대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에서도 노아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되었을 때 그의 삶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삶임이 드러났습니다. 이와 같이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들의 평가보다도 하나님의 평가를 더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았습니다.
6b절을 보십시오. “...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흠이 없이 행하였다는 것은 절대적인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학 캠퍼스 시절부터 시작하여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여 노년이 되었어도 새벽기도와 일용할 양식으로 하루를 출발하였으며 성경공부와 소감을 절대적으로 감당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생명의 길이요, 승리의 길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임을 확신하고 변함없이 말씀을 좇아 살아왔습니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었다는 근거는 바로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흠이 없이 행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심판 받을까봐 두려워 의무감으로 행하면 흠이 없이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사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대로 살 때 주어지는 참된 영적 기쁨과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과 생명의 열매를 체험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좇아 사는 삶이 아무런 재미도 없는 수도원 생활처럼 무미건조한 삶, 율법에 얽매인 무거운 삶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말씀이 주는 참된 기쁨과 열매, 그 비밀을 깨달을 때 오는 참된 행복을 모르는 데서 생긴 오해와 편견입니다. 말씀을 좇아 살면 내면에 참 만족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힘을 공급해 줍니다. 말씀을 좇아 사는 삶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생명력이 넘치고 시절을 좇아 내면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한 자요,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육신의 나이는 많아 졌지만 그들은 독수리 날개 치며 창공을 오르는 것처럼 항상 젊은이의 기상과 생동감이 넘쳤을 것입니다.

셋째로, 심각한 인생 문제 앞에서도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오늘날에는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자식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상급을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그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데도 아들이 없다는 것은 가문의 수치요 제사장으로서 백성들에게 덕이 않되고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슬픔과 운명주의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기 쉬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8절을 보십시오. “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사가랴는 자식이 없어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차례가 되어 제사장의 직무를 행해야 할 때 ‘나는 요즘 너무 힘들다’하면서 뒤로 빠지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나아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선한 주권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롬8:28). 그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인생문제를 통해 더욱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게 되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사가랴는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의 성전에서 분향하고 백성들은 밖에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주의 사자가 사가랴에게 나타나 향단의 우편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라는 사가랴에게 천사는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우리는 여기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며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무자했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았는데 무자하였을 때, 당시에는 그런 그들의 삶이 무의미하게 보이기 쉬웠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도, 자기가 자신을 볼 때도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회의가 들기가 쉬웠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지나고 보니 그들의 의로운 삶은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을 낳게 되는 준비과정이었습니다. 그들의 의로운 삶은 결코 무의미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 죄악된 시대를 의로운 시대로 개혁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을 낳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만약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자식을 안 준다고 힘들어져서 세상과 타협하여 그 시대를 좇아 세상 잔재미나 즐기며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들은 결코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보내는데 쓰임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촛대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아 옮겨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의 믿음의 삶을 통해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하나의 희망의 상징이 됨을 깨닫습니다. 우리도 이 죄악된 시대에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사는 삶, 말씀대로 살고자 투쟁하는 삶은 결코 헛된 삶이 아니요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희망을 갖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계속하여 이 시대의 죄악과 싸우며 의로운 사명인의 삶을 끝까지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천사는 사가랴에게 ‘ 네 간구함이 들린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가랴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자녀를 주시도록 간구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단 자녀만이 아니라 그는 제사장으로서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는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어기며 사는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기도해 왔을 것입니다. 또 이방문화에 빠져 헤메는 그 시대의 젊은 청년들이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도해 왔을 것입니다. 그의 기도 생활은 일 이년이 아니라 수 십 년 동안 줄기차게 이어져 왔을 것입니다. 비록 기도의 응답이 없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사가랴의 기도 생활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모든 영적인 열매는 기도의 열매인 것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에서 롯이 소돔성에서 목숨을 구한 것도 아브라함의 끈질긴 중보기도의 열매였습니다. 사무엘서에서 한나의 눈물의 기도는 선지자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는 탕자 어거스틴을 성 어거스틴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우리 모임에도 새벽기도모임, 금요 철야기도모임, 역사가 있을 때 마다 저녁 기도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모임에 참석하여 기도한다고 당장 어떤 큰 역사가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임이 더욱더 기도에 힘쓰는 모임이 되어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들을 낳고 키우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잘 감당해 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I. 세례 요한과 내 부끄러움을 없애신 주님 (14-25)
14절을 보십시오. “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세례 요한의 탄생은 그의 부모들 뿐 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게 됩니다. 그의 탄생은 사가랴 부부의 한을 풀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메시아 탄생의 서곡을 의미합니다. 그의 탄생 소식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들의 심령에 찬란한 희망의 빛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장차 태어날 세례요한의 인격과 사명이 무엇입니까? 15,16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는 주 앞에 큰 자 곧 위대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의 위대성은 그의 인격과 그가 감당할 사명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어떤 점에서 주 앞에서 위대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첫째로, 그는 세상과 구별된 순결한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술을 마실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경제난 속에 스트레스를 풀고 인생의 허무함을 달래고 죄로 인한 고통을 잊어 버리기 위해 술을 마십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처음부터 술을 마시지 않고 그 시대와 구별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죄악과 싸우기 위해 순결한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모태로부터 성령 충만함을 입어 영을 좇아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불평, 원망, 염려, 욕심, 슬픔으로 충만할 때 그는 말씀 충만, 은혜 충만, 성령 충만, 기쁨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육신의 안일과 세상 즐거움 대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준비된 자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민으로서의 사명과 특권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나름대로 산 결과 죄의 노예로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들이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례 요한을 통해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셋째로, 그는 목자의 심정과 기도의 능력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그가 구체적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은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여 주를 위한 백성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아비가 자식을 사랑하고 소망을 두고 양육하는 일은 본능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아비들은 시대에 대한 절망으로 자식에게 관심과 소망과 마음을 주지 않고 독한 술을 마시며 되는 데로 살았습니다. 또한 자식들의 문제는 거스르는 것입니다. 거스른다는 것은 불순종하고 반항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반발심이 있으면 나중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조건 배척하고 거부하는 자식이 되어 모든 관계성이 끊어지게 됩니다. 이런 시대에 세례 요한은 그 시대 죄에 도전하여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여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축복의 메시지, 은혜로운 약속의 메시지는 좋아하지만 회개의 메시지는 싫어합니다. 듣기 싫어하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힘이 필요합니다.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이 힘든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하나님께 대한 특심한 열심과 백성들에 대한 상한 목자의 심정으로 바알 세력에 도전하여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돌이켰습니다(왕상 18:20-24). 엘리야의 심령이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요 그의 능력은 기도의 능력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런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사가랴는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너무 당황하고 기쁜 나머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늙은 자신과 아내를 바라보고 잠시 인간적인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때 가브리엘 천사는 그가 더 이상 불신적인 말을 못하도록 입을 닫게 하고 열 달 동안 벙어리가 되는 훈련을 주었습니다. 이 벙어리 훈련을 통해 사가랴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랫 동안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 사가랴에게 힘든 인간 조건을 기초로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벙어리 훈련을 통하여 그 마음속에 남아 있는 불신의 뿌리가 온전히 뽑히도록 도왔습니다.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그의 간구를 응답하시고 한편으로는 그의 남은 죄를 훈련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사가랴가 성전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다가 그가 말을 못하게 되자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로 알았습니다. 사가랴는 비록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었지만 조퇴를 하지 않고 그 직무의 날이 다하기까지 섬긴 뒤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후에 엘리사벳이 불가능한 가운데서 말씀대로 수태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경건한 생활을 하며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깊이 묵상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2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그녀는 주님께서 자신을 돌보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돌보심은 그녀의 부끄러움을 완전히 없애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의 부끄러운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그것은 바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지 못하니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웠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믿음의 본을 끼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웠습니다. 전도 할 때도 늘 마음속에 걸리는 문제가 있었고 양들과 인생 상담을 할 때도 괜히 자격지심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엘리사벳 가정에 ‘아이가 없다’는 한 가지 조건을 가지고 모든 것을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부부를 은근히 무시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 사모님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를 받고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을 것입니다. 다른 가정과 비교하며 무엇이 문제인지 알수가 없어 하나님께 답답함을 호소하며 간구하였을 것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한 가지 문제가 그녀의 전 생애를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열심히 신앙생활 하였는데 이런 자식 문제와 같은 하나님의 상급을 받지 못할 때 사람들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특히 오랫동안 목자 생활을 하였는데도 양을 통한 열매가 없어 부끄럽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선교일선에서 오랫동안 열심히 투쟁하지만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을 때 부끄럽습니다. 우리들에게 자식 문제, 열매 문제, 보상 문제 등은 자신의 힘으로 풀지 못하는 인생의 숙제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가 되자 믿음으로 산 엘리사벳 사모님을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을 잉태케 하여 그녀의 모든 부끄러움을 깨끗이 씻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을 계속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때가 되면 모든 부끄러움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하여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는 제주도 고씨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많은 섬김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뿌리 깊은 불교 집안이라 영적으로는 전혀 무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1982년 경희 치대에 들어오고 치의예과 2학년 1학기부터 ubf에서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치대의 믿음의 조상이 되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제주도 고향집에서는 제가 믿음으로 산다고 때마다 많은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말씀을 붙들고 믿음의 중심을 잘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1991년 5월 24일 치대 자매 믿음의 조상인 승원 동역자와 믿음의 결혼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저는 결혼만 하면 집안의 장손이고 또 우리 모임에서도 조상 부부이기 때문에 금방 대를 이을 아들을 얻을 수 있을거라 확신하였습니다. 아들만 낳으면 거센 집안의 핍박도 점차 잦아들고 저도 형제 목자감을 키우는 보람으로 더 열심히 사명인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후 2003년 7월 까지 12년 동안 아들 훈련을 주셨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저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였습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순탄하게 제가 이루고 싶은 것은 다 이루며  살아왔었습니다. 그러나 아들 낳는 문제만큼은 아무리 자신이 노력해도 않되는 문제였습니다. 제가 직접 낳을 수도 없고 동역자를 푸쉬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안고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형제 목자감 아들을 낳아 저의 부끄러움을 없애 주십시오 ’ 저는 오랜 기간 동안 이 아들 낳는 훈련을 받으며 조금씩 겸손해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저는 제가 제 힘으로 안되는 문제 앞에서 절망하고 괴로워 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의 아픔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인내심도 생기고 상대방을 잘 이해하고 겸손히 섬길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제게 어떤 양도 감당할 만한 목자로서 내면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제가 나이 40이 되었을 때 아들을 낳아 저의 부끄러움을 말끔히 씻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제가 이 놀랍고 크신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고 계속하여 새벽기도에 힘쓰며 제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 나가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들의 부끄러움 당하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의 때에 이 모든 부끄러움을 없애 주십니다. 그러므로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온전히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시간 ‘주님께서 내 부끄러움을 없애 주셨다’하는 고백이 우리 각자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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