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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9-18 (일) 12:36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1년_누가복음_22강-1.hwp (24KB) (Down: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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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22강]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2011년 누가복음 제 22강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말씀: 누가복음 11:33-54
요절: 누가복음 11: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표적신앙에 머물러 영적 눈이 감긴 사람들에게 눈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쳐주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힘써서 투쟁해야 할 제목이 무엇인가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점검하며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깨끗한 삶을 사는 자로 빚어지기를 기도합니다.

Ⅰ.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33-36)
  33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감추어두는 어리석은 자는 없습니다. 등불을 켜서 등경위에 두어 들어가는 모든 자로 그 빛을 보게 하고자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리의 빛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도 누구나 그 빛을 보고 구원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심도 어디까지나 진리를 더 잘 나타내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이렇게 빛은 비추이는데 눈이 어두우면 빛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눈은 몸의 등불로서 인생을 바르게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눈이 몸의 등불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눈이 성해야 합니다. 눈이 성하여 좋으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나쁘면 몸 전체가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눈(영안,靈眼)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이 좋다는 것은 영적인 관점(point of view)을 가진 것을 의미합니다. 곧 믿음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좋은 눈을 가진 자는 진리를 열린 마음으로 편견 없이 받아들입니다. 좋은 눈을 가질 때 진리를 통해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상황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눈을 가진 자는 영원히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삽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 것에 목매달며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생명의 열매 맺는 인생을 살고자 투자합니다. 눈이 성한 사람은 당장에 보이는 유익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심지가 굳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기억력 상실과 어두침침해지는 눈입니다. 시력이 나빠지니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영적인 눈은 죄 때문에 나빠집니다. 욕심이나 염려의 죄로 눈이 흐려지고 교만이나 아집이 진리를 왜곡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눈을 유지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하십니다.(35) 내 속에 빛이 없고 어두운 것은 상황 때문이 아니라 눈이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빛이 있으되 그 빛이 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을 흐려놓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서 죄를 회개하므로 좋은 눈을 회복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을 보면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을 책망하시면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에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세상 욕심에 눈이 멀어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고 미지근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토해내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뜨거운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려면 영적인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해야 했습니다. 한번 좋은 눈을 가졌다고 저절로 좋은 눈을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가장 좋은 안약인 하나님의 말씀을 바를 때 회개의 눈물과 함께 눈을 깨끗케 해줍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이는 눈을 밝게 하여 진리의 빛을 영접하는 자에 대한 주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기 전에, 특히 인생의 기초를 놓아야 할 젊은 시절에 먼저 사물을 바로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한 눈을 가지려면 절대 진리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한 기도로 눈을 깨끗케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종에게 성령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요16:13) 이로써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진리에 기초한 밝은 인생, 소망과 비전이 있는 확신 있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Ⅱ.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37-54)
  3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았는지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점심 식사에 초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식사하시기 전에 손을 씻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이를 이상히 여기고 속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손을 씻지 않는 것은 위생상의 문제뿐 아니라 장로들의 규례를 어기는 죄로 간주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바리새인들은 겉을 깨끗이 하는데 온통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내면이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것을 보셨습니다. 탐욕은 죄의 뿌리입니다. 탐욕을 다스리지 않는 한 이웃을 해치게 됩니다. 악독(wickedness)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리는 죄입니다. 그들이 속을 깨끗케 하지 않았을 때 아무리 겉을 깨끗케 해도 냄새나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정한 청결은 마음의 청결에서 옵니다. 내면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채워지고 진리의 말씀으로 채워질 때 겉은 저절로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이렇게 어리석게 되었을까요? 40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이 말씀은 그들이 겉과 속을 만드신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았음을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의식하며 사람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삼상16:7)
  예수님은 이들의 죄문제를 지적하신 후 어떻게 속을 깨끗이 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4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탐욕과 악독을 버리고 깨끗한 내면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기를 지키고자 노력하기보다 그들 안에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베풀고 나눠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구제와 깨끗한 삶을 연결시키셨습니다. 구제할 때 그 삶이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제 삶에서 주고 베풀고 희생하고 나누는 삶을 살 때 마음이 깨끗해지고 순수해지고 경건해진다고 하십니다. 야고보서 1:27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고인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깨끗해집니다.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은 그 내면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 차게 되지만 가진 것을 나누고 베풀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목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죄로 오염된 세상을 정결케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을 통째로 주님과 양무리들에게 부어드렸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2:17,18) 그의 베푸는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적극적으로 드리고 베풀고 나누는 삶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합니다. 하늘나라의 충만한 기쁨을 줍니다.
  그런데도 왜 주는 생활이 어려운 것입니까? 이는 내가 줄 만큼 충분하게 갖고 있지 않다는 가난한 생각 때문입니다. 또한 내 속에 죄로 말미암아 손이 오그라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우리 마음은 늘 오그라져 있어서 펴서 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손도 마음도 오그라들게 됩니다. Dr. Samuel Lee 선교사님은 늘 오그라진 문둥이 손을 펴서 주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죄인들의 고질적인 죄문제요 가난하여 늘 얻어먹던 한국 백성의 고질적인 죄와 싸우도록 하였습니다. 대신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으로 목자의 인생을 살도록 도전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실 가난한 자들에게 줄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더욱 더 쌓고자, 더욱 더 부하고자, 아끼고자 탐욕을 부리고 주는 인생, 나누는 인생, 섬기는 인생을 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고의로 거스리는 악독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비참한 삶입니다. 예수님은 내 속에 있는 것(what is inside)을 주라고 하십니다. 현재 내가 가진 것으로 주라 하십니다. 누구든지 베풀고자 한다면 줄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좋은 일”이란 아름다운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부자가 아닌 사람도 넉넉한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 수 있습니다.
-학력이 많지 않은 사람도 지혜로운 마음으로 실의에 빠진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 리더십이 없는 사람도 선한 일로 본을 보일 수 있습니다.
- 설득력 있게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진실한 말로 믿음을 줄 수 있습니다.
- 외모가 아름답지 못한 사람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 힘이 약할지라도 기도로 크게 도울 수 있습니다.
구제는 많이 가진 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자 하는 마인드가 있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구제는 손해가 아니라 나의 삶을 깨끗하게 하고 언젠가 내가 필요할 때 돌려받게 하는 선행의 은행에 저축해두는 것입니다. 잠언 19:17절에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주시리라” 하였습니다. 구제는 물질로, 시간으로, 친절의 봉사로, 내가 가진 은사나 능력으로, 받은 말씀으로, 중보기도로,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겉을 꾸미고 깨끗이 하고자 헛된 노력을 할 것이 아니라 현재 하나님이 나에게 잠시 맡기신 것을 적극적으로 나누어 진정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2절-54절에는 ‘화 있을진저(woe to you!)’라는 말이 6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는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주신 경고입니다. 그들이 어떤 점에서 화를 당할 자들이 된 것입니까? 첫째로, 율법의 근본정신인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42) 그들은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라는 율법은 철저히 지켜서 십일조를 드렸지만 율법의 근본정신인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렸습니다. 이들은 율법 조항에 얽매인 생활을 하다가 율법의 근본정신, 본질을 놓쳤습니다. 예수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근본정신이 결여된 형식주의를 책망하셨습니다. 둘째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사람들의 인정을 추구하였습니다.(43) 그들은 회당의 높은 자리를 좋아하였고 시장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문안 받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셋째로, 겉과 속이 다른 이중생활로 다른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쳤습니다.(44) 보통 유대인들의 묘는 동굴과 같은 곳에 장례하였으나 죄를 짓고 처형된 자는 봉분이 없이 평토장 하였다고 합니다. 대신에 하얀 회를 칠하여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그런 표식도 사라지고 사람들은 무심코 그 무덤 위를 밟게 되어 7일간 부정하게 됩니다.(민19:16) 이처럼 이들은 부지중에 다른 사람들을 부정케 하는 평토장한 무덤 같은 자들임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넷째로, 율법을 가르치기만 하고 자신은 지키지 않는 외식을 하였습니다.(46) 여기서부터는 당시 성경선생이었던 율법교사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들은 율법 외에도 613개 조항이나 되는 규례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강요하였지만 자신들은 전혀 말씀에 순종치 않았습니다. 성경선생은 먼저 본이 되는 자가 되어야 함을 경고해주십니다. 다섯째로, 진리를 전파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47-51) 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손들은 선지자의 무덤을 아름답게 단장하여 선지자들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들은 선지자의 무덤을 잘 단장함으로써 그들 자신은 조상들과는 달리 선지자를 존경하고 선지자의 발자취를 물려받은 자처럼 가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 자신도 세례요한을 핍박하였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마저 죽이려고 하는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여섯째로,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막는 악한 죄인들이었습니다. 52절을 보십시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지식의 열쇠는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를 가리킵니다.(마16:19)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복음에 관한 지식의 열쇠로 천국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 선생의 자리를 이용해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율법을 백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하여 참된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또 생명의 주 예수님을 배척하여 자신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들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영적 지도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심판 아래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선포해야 할 자들이 다른 사람의 구원을 막는 자가 되었으니 그들이 당할 화가 얼마나 큰 것입니까? 우리는 성경선생으로서 나 자신이 먼저 복음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경선생이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천국 문을 막는 심판 받을 악한 행위가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증거하였습니다.(고전 9:16) 우리가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천국에 들어가도록 돕는 진정한 목자 성경선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더 완악해져서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고자 그 목을 지켰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그들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없었습니다.(53,54)

결론적으로, 우리의 삶이 바리새인이나 율법교사 같이 되지 않으려면 자기 안에 있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베풀고 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로써 우리 자신들도 내면이 깨끗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먼저 본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성경을 가르쳐서 구원의 문을 여는 자로 귀하게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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