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0-02 (일) 12:37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1년_누가복음_24강-1(최동진).hwp (27KB) (Down:111)
ㆍ추천: 0  ㆍ조회: 2680      
IP: 14.xxx.152
[2011년 누가복음 제24강] 다만 그의 나라를 구하라
2011년 누가복음 제24강                                                                최동진

다만 그의 나라를 구하라

말씀/ 누가복음 12:13-34
요절/ 누가복음 12: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교훈이 나옵니다. 첫째는 재물에 대한 탐심을 물리치라는 것과 둘째는 생활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재물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하는 올바른 물질관과 염려 대신 해야 할 바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참으로 부요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13-21)

13절을 보십시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재산의 상속은 장자에게는 소유의 두 몫을 주고 동생에게는 한 몫만 주게 되어 있습니다(신 21:17). 그런데 형이 동생의 몫까지 다 차지해 버린 모양입니다. 아니면 형에게만 두 몫을 주고 자신에게는 한 몫만 주는 법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물질 때문에 형과 동생은 서로 심하게 다투었고 형제 사이의 의도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예수님의 명쾌하고도 권위있는 해석을 바라고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14). 그리고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셨습니다(15a). 예수님은 형제 사이에 일어난 다툼의 원인이 탐심에 있음을 보시고 근본문제를 해결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우리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할 절대적인 이유는 탐심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탐심이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가지려는 욕심을 말합니다. 탐심은 꼭 물질에 대한 탐심만을 기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권세와 명예에 대한 탐심, 육신의 쾌락에 대한 탐심, 먹는 데에 대한 탐심 등 여러 가지 탐심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탐심은 겉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종류의 탐심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탐심은 죄를 낳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십계명 중 마지막 계명이 탐심에 대한 계명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 20:17) 마음의 탐심을 물리치지 못할 때 도적질하게 되고 살인하게 되고 간음하게 됩니다.  사람이 탐심의 노예가 되면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숭배하게 됩니다(롬 1:23).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탐심을 부리게 됩니까?  이유는 많이 소유할수록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으로 요즈음에는 사치스런 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데에 돈이 너무 많이 듭니다.  평신도 목자님들은 조그마한 살 집 하나 구하는 데에도 억소리가 나옵니다. 물가는 자꾸 오르고 자녀들 교육비 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요즘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부모님들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세상에서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돈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면 돈을 많이 벌어서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정말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물질에 대한 탐심으로 더 많은 물질을 모으고자 인색해지고 이기적이 되어버립니다. 또한 많은 물질로 죄를 짓고 타락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15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생명은 행복을 의미합니다. 물질은 삶을 영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잘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해서 세계 경제규모 10위 안에 드는 부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삶은 갈수록 각박해져서 마침내는 OECD 국가중 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에 있지 않고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한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한 부자가 열심히 일을 해서 밭에 소출이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를 어찌해야 될지 몰라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묘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물건과 곡식을 쌓아 두리라.” 그는 즉시 큰 창고를 짓고 많은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모은 많은 재산을 보니 마음이 흡족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배를 두드리며 자기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9) 많은 사람들이 젊을 때 큰 돈을 벌어서 조기에 은퇴하고 그 후에는 때마다 골프를 치고, 분위기 있는 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때론 호화유람선을 타고 세계 일주도 하면서 럭셔리한 삶을 즐기기를 꿈꿉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2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리고 예수님은 비유의 결론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21) 예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어떤 점에서 어리석은 자입니까?

첫째로, 그는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몰랐습니다. 그는 생명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원하는대로 쓰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아무도 자기가 태어나야 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심으로 우리는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2:7절은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말해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생명의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므로 또 언제든지 취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을 위하여 써야 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며 자기가 생명의 주인인양 마음대로 행합니다(시 14:1). 그러다가 갑자기 생명을 잃고 패망에 이르게 됩니다. 부자는 육신의 생명을 위해서는 열심히 준비했으나 영혼을 위해서는 전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둘째로, 그는 무엇을 위해 재물을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는 재물을 모으는데는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지만 재물을 쓰는 지혜는 없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재물을 모아 자기만을 위해서 쓰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는 부요했으나 하나님께는 인색했습니다. 그는 온통 자기 밖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본문에는 ‘내’라는 말이 6번 나옵니다. 영어에는  I, my 란 단어가 11번 나옵니다. 그는 ‘내 곳간’ ‘내 모든 곡식’이라고 함으로써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인양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물질에 대한 청지기 사상이 없었습니다. 물질은 내가 벌고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의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존재입니다. 욥은 물질에 대한 분명한 청지기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하루 아침에 재산을 다 잃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사람이 물질에 탐심을 부리고 자기 것을 열심히 꾸리지만 죽을 때는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은행에 아무리 많은 돈을 저축해 두어도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은행이 하루 아침에 망해서 재산을 모두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열심히 모아서 써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결국은 자기가 쓰는 것만큼만 자기 것이 됩니다. 그렇다고 자기만을 위해서만 쓴다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이 다 허비하게 됩니다. 물질을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위해 쓰는 자는 지혜로운 것 같지만 어리석은 자입니다. 얼마전 신문에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라는 모임에 대해 소개된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 모임은 일억 이상 기부한 사람들이 가입할 수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는 최대한 아껴쓰지만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일억 이상 기부할 수 있는 사람만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며칠전 오토바이사고로 생을 마감한 중국집 배달원의 기사가 메마른 이 시대의 사람들의 가슴을 뭉쿨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고아로 자라나 고시원 쪽방생활을 하면서 박봉을 쪼게 어려운 아이들을 5명이나 후원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재단 앞으로 종신보험까지 들어 죽은 후에도 아이들을 후원하려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진정으로 부요한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생의 마지막까지 사랑을 배달한 그를 기부천사라고 하며 그의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 이렇게 물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들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감동을 줍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 부요한 자는 물질을 생명을 살리는 구원 역사에 사용합니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진 것이 없을 때부터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적은 물질이나마 드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마음에 탐심을 자연스럽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적은 물질을 잘 다스리는 자가 나중에 큰 물질도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물질을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이롭게 하는 데에 사용함으로 진정으로 지혜롭고 부요한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염려하지 말라 (22-34)

22절을 보십시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은 자들로서 하나님께 부요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결핍에서 오는 실제적인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주님의 일을 하다가 항상 가난하게 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현재는 먹고 살지만 장래는 혹시 굶어 죽는 것이 아닌가? 내 한 몸이면 괜찮지만 가장으로서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할 것을 생각하면 근심의 먹구름이 심령에 몰려왔습니다. 염려가 생기면 심령이 어두워지고 기쁨이 사라집니다. 얼굴은 새까맣게 되고 무기력해집니다. 염려하게 되면 마음에 분열이 생겨 마음을 드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기 때문입니다(23).

예수님은 까마귀와 백합화를 예를 들어 제자들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까마귀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아니합니다.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기르십니다. 하찮은 새도 이렇게 귀히 여기시는데 그들은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합니까? 또 실제로 염려한다고 해서 조금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염려함으로 키가 커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저는 열심히 염려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염려해도 키는 커지지 않습니다.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능히 해결 못하면서 다른 것을 염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26)?

27절을 보십시오. 백합화는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합니다. 솔로몬의 영광은 인간 최고의 영화를 상징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아름다운 의복을 만들어 입는다 해도 백합화의 청순함과 그윽한 향기와 아름다운 색깔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제자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상에서 볼 때 우리는 아무 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실제 문제에 부딪히면 염려가 생깁니다. 염려해도 소용없는 줄 잘 알면서도 염려가 생기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염려가 왜 생기는 것이며 우리가 이를 어떻게 물리칠 수 있습니까? 28b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염려는 불신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문제, 복음역사에 대해서는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염려가 찾아옵니다. 즉 사람이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대개 현재보다는 장래의 일에 대한 것이 많습니다. 현재에 먹고 살면서도 장래에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염려합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서 괜찮지만 크면 어떻게 공부시킬 것인가? 지금은 젊어서 괜찮지만 늙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노후 대책까지 염려합니다. 우리는 실제 생활에서 믿음으로 염려를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염려가 생길 때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하나님께서 어찌 그 아들과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롬 8:32)?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어떻게 먹이시고 백합화를 어떻게 입히시는가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불신에 빠져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현실문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비참한 나를 돌아보시고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현재도 먹이시고 입히시고 인도하시고 장래에도 돌봐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나를 괴롭히는 모든 염려와 근심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대신에 감사와 은혜와 평강이 차고 넘치게 됩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이런 것은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땅히 구해야 할 바가 무엇입니까? 31절을 보십시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구하라는 것은 추구하라는 뜻으로서 인생의 소망과 목적을 하나님 나라에만 두고 힘써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에서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 부르심 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현실 문제에 얽매일 때 일평생 먹고 사는 문제 해결하느라 온 힘을 쏟으면서 인생을 무의미하게 허비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할 때 인생다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과거 이 땅의 일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자기만을 위해 살던 자를 학창시절 구원하시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학창시절동안 믿음의 기초를 놓게 하시고 졸업후 군대광야훈련 기간과 병원수련기간에도 하나님 주신 소망을 붙들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개업을 할 때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상계동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개원가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각종 규제가 심해지면서 병원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위기의식이 점점 커졌고 현실의 염려로 하나님 역사에 마음을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1년전부터 병원 이전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을 벗어나 소아인구가 많은 신도시로의 이전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럴 경우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개업자리도 내 마음대로 정할수 없는 현실로 인해 손해의식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역사를 섬기기 가장 좋은 곳을 우선순위로 정하고 기도하였을 때 현재의 자리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개원 첫달부터 예상보다 많은 환자를 보내주심으로 조기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병원을 경영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로써 나의 작은 진심을 외면치 않으시고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몰려 오는 환자들을 보면서 성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잠시 흥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이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새롭게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다만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살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시간과 물질과 진심을 드리며 특별히 캠퍼스 영혼들을 살리는 생명 구원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세상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물질 중심으로 살고 믿음으로 사는 자는 소수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다가도 실제 문제에 부딪힐 때 두려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그의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소유를 팔아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베풀고 구제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시간을 팔고 물질을 팔고 젊음을 팔아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투자입니다(33).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34). 물질을 쓰는 것은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선한 사업에 쓰며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자는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는 것이요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딤전 6:18).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되지 않도록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어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젊음을 하나님께 드려서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생명의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87 시편 [2013년 추수감사절] 새 노래를 내 입에 두셨으니 관리자 2013-12-01 2690
586 시편 [2011년 추수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관리자 2011-11-27 2690
58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3강]죄사함과 사랑 관리자 2011-06-26 2690
584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11강]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관리자 2013-06-02 2687
583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7강]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관리자 2012-04-29 2686
582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2강]비천함을 돌보신 주님 관리자 2011-03-20 2686
581 갈라디아서 [2011년 신년수양회 제2강]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관리자 2011-01-02 2686
580 신명기 [2014년 신명기 제1강] 올라가서 차지하라 관리자 2014-09-14 2685
579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4강] 다만 그의 나라를 구하라 관리자 2011-10-02 2680
578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3강]부활과 생명 리스닝 2010-05-30 2680
577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2강]참 목자 리스닝 2010-05-30 2680
576 야고보서 [2012년 야고보서 제5강] 길이 참으라 관리자 2012-02-19 2675
575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3강]메시아의 잔치 1 관리자 2011-01-23 2673
574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6강]새 포도원의 노래 관리자 2010-10-17 2666
573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1강]내 부끄러움을 없애신 주님_고영훈 관리자 2011-03-13 2653
572 히브리서 [2013년 히브리서 제4강] 승리하는 믿음 관리자 2013-11-24 2639
571 요한복음 [2009가을학기준비특강-1]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관리자 2009-08-16 2639
570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3강]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관리자 2014-02-02 2638
569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3강]굳게 잡으라 관리자 2009-09-20 2629
568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1강]육신이 되신 말씀 리스닝 2010-02-28 2623
1,,,11121314151617181920,,,40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